"저... 손님?"
"..."
아아, 정말 곤란하다. 정말, 정말로 곤란하다구 지금.
그러니까 이게 지금 어찌 된 상황이냐 하면은, 겨울도 아닌데 패딩에 목도리까지 칭칭 동여맨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는 새카만 선글라스를 낀 남자 손님이
10분이나 지나도록(체감 시간은 족히 30분은 될 것이다) 이렇게 망부석마냥 주문도, 대답도 않고 계속 멀뚱히 서 있기만 하고 있다 이거야.
복장부터가 이미 온 사람의 이목을 주목시키기 충분했다. 모두가 여름인데 홀로 겨울이다. 대체 이게 뭐하자는 거지...?
지금 그나마 늦은 밤이라 카페에 손님이 없기에 망정이지 손님이 바글 바글한 오후 타임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더니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했다.
"손님, 뭐 필요하신 거 없으세요?"
"...라떼."
"네?"
"라떼 주세요. 카페라떼. 달게."
목도리로 가려 두었던 하관을 잠시 오픈한 뒤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 남자 지금 분명 들떠있는 것 같았다.
근데 입술 모양이랑 목소리가 굉장히 익숙한데... 내 시선이 느껴지기라도 한 듯이 자기 할 말을 끝낸 뒤 곧바로 목도리를 위로 올려버리는 매정한 이 남자.
아니 자기 얼굴이 뭐 국보라도 되는 거래?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꽁꽁 가려두면 안 궁금하다가도 궁금해진다는 걸 모르는 거야?
"카페라떼 달게! 주문 받았습니다. 드시고 가실 건가요?"
도리도리. 그저 고개만 좌우로 내젖는다.
아까 얼핏 들었던 목소리가 꽤나...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앉아 계셨다가 진동벨 울리면 카운터 쪽으로 와주시면 돼요."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카운터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보통 손님들은 카운터 근처에 앉아 있다가 벨이 울리면 그때서야 이쪽으로 오는데...
뒷통수가 시선으로 따끔 거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그 남자의 시선은 끈질겼고 덕분에 괜히 내 손만 바빠졌다.
"주문하신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손님.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
"...네."
아무래도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한 글자 말하는데 이렇게 긴 침묵이 흘러야 했다니...
테이크 아웃용 컵에 담긴 라떼와 같이 내민 우리 카페 쿠폰을 한참을 쳐다보던 그 남자는 저 한 글자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나갔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기분이 정말... 묘하단 말이지.
***
편지가 너무 늦었어요.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내용이 아마 바리스타 자격증 따고 카페에서 일하게 됐다였던 것 같은데.
카페에 사장님이 안 계시고 저 혼자만 일하다 보니까 집에 오면 거의 실신 지경이에요. 그래도 틈틈히 편지 쓰고 있으니까 너무 섭섭해 하지는 않았음 좋겠다.
저번에 라디오에서 학연 씨가 기억에 남는 팬 얘기할 때 제 얘기하면서 편지 내용 중 한 줄 읽어주셨던 거 알아요? 나 그때 진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
택운 씨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내 편지 읽고 있는 지 궁금해요. 티 좀 내줌 어디가 덧...나겠다. 너무 나만 특별 팬 서비스 받으면 다른 별빛 분들이 섭섭해 할테니까.
어째 당신한테 쓰는 편지인데 다른 멤버들 얘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아요. 괜히 미안해지네.
당신 덕분에 내가 고등학생 때도 안 했던 공부를 해요. 택운 씨는 나를 현명한 길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야. 믿고 따라갈게요. 비록 팬싸는 늘 노 당첨이지만... (씁쓸)
아니 대체 몇 장을 사야 당첨이 되는 거야. 공카에 앨범 육십 장 샀는데 당첨 안 된 거 인증샷 올라온 거 봤어요? 그거 나예요. 창피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여튼, 보고 싶어요, 정말. 오늘 내가 일하는 카페에 굉장히 기묘한 사람이 왔었거든요. 왜 그 남자 생각을 하는데 당신 생각이 같이 드는 거야?
가까이서 한 번 보고 싶다, 택운 씨. 콘서트 때도 광탈 당해서 겨우 첫콘... 것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택운 씨를 봤어요.
비록 당신은 나를 모르고 있겠지만, 그래도. 오늘도 참 많이 좋아합니다. 빅스의 레오도, 일반인 정택운도.
마지막 문장은 항상 같다. 반듯하게 접어 봉투 안에 넣고서 그냥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매번 꿈자리가 뒤숭숭 한 나인데 그 날은 유독... 푹 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
저녁 여덟 시. 사람이 점점 빠지기 시작한다. 여기 있는 사람은 이제 시험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페북을 하고 있는 여학생 몇 명과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중히 쓰고 있는 남녀 한 쌍 뿐이다. 우리 카페는 분위기가 좋기로 유명했다. 여느 카페처럼 큰 소리로 떠드는 아주머니 무리들도 없고
농도 짙은 스킨쉽으로 타인의 안구에 습기 테러를 하는 커플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여길 찾는 사람들은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뿐ㅇ...
딸랑
"어서오세...요...?"
어제 그 남자다. 어제랑 똑같은 차림새로 똑같은 시간에 다시 왔다.
택운 씨, 이상해요. 기분이 정말로 정말로 이상해요.
왜 이렇게 내 마음이 일렁거리는 건지 나는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