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até lemon madeleine
"아, 그냥...산책."
"새벽 1시가 넘었는데 산책은 무슨 얼어 죽을."
"잔 말 말고 가라면 좀 가. 괜히 토 달지 말고."
"...오늘 사장님이 나한테 소개해줄 사람 있다고 하셨는데?"
"개뿔. 그거 다 수작인거 몰라?"
"어, 어?"
"사장님이 그럴 사람 아니라는 거 알잖아? 너네 사촌 형이니까,"
"그럼 지금 내 말이 틀렸다는 거야? 그래서 내 말 안 듣겠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종인아."
"됐어. 어디 계속 꼴리는 대로 해봐. 그런 짓, 너 잘하잖아? 차라리 잘됐네. 스폰서 잘 꼬셔서 승승장구, 신분상승이나 해. 그럼 너 놔줄게."
"야, 김종인."
"때가 되면 니가 지겨워하기 전에 내가 알아서 꺼져주겠다고, 이 등신아."
"그런데 있지, 도경수."
"어?"
"지금은 때가 아니야. 지겨울 틈이 없거든. 그래서 싫어. 너한테 스폰이니 뭐니 피라미 새끼들이 달라붙는 거."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요점만 딱 말해."
"여기 밖이잖아! 제 정신이야?"
"니 눈엔 지금 내가 제 정신으로 보여?"
"피라미 한 마리도 없어. 알잖아? 나한테는 너 뿐인거. 그러니까 내 어장에는 너밖에 없다고."
"어장 관리 똑바로 해라. 그 어장에 갇힌 새끼가 미쳐 날뛰기 전에."
"벗어. 내 꺼잖아. 와이셔츠."
"변태새끼. 아무데서나 벗으래-?"
"그래서 아쉬워?"
"어. 존-나."
종인은 지갑 속에 숨겨둔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안 들키려고 잘 숨겼더니만 이런 짓도 소용이 없어졌다. 도경수 때문에 담배 피우는 것도 참 어이없게 걸리고 말았으니까. 새끼, 조심 좀 하지. 티나게 옷에 담뱃재나 묻히고. 그래도 종인이 구차한 변명거리를 늘어놓지 않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도경수를 위해서였다. 연습생 주제에, 심지어 노래하는 놈이 담배 피우다 걸리면 어떻게 될 지는 안 봐도 뻔했으니까. 준면에게 걸리는 순간 경수는 쫓겨날 지도 모른다. 의외로 준면은 그런 것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종인은 담배를 피우면서 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는 게 어쩐지 텀이 길었다. 받지 않자 전화를 끊고 다시 걸어보는 종인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하는 여자의 목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기분 나빠. 감히 내 전화를 씹어? 종인은 고작 경수에게 전화를 씹혔다는 것에 화가 솟구쳤다. 그 뒤로 몇 번을 더 전화를 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종인은 이젠 화가 난다기 보다는 기분이 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슬금슬금 들었다.
"오세훈. 닥쳐."
"아, 좀. 오세훈. 너네 반으로 안 가냐?"
"왜, 쪽팔리긴 하냐? 하여튼 그렇게 정신 나간 놈처럼 들쑤시던 애가 그래도 도경수 목소리 한 번 듣고 아주 칠렐레 팔렐레 녹더라."
"녹긴 뭘 녹아? 그냥 괜찮은 거 확인했으니까 안도한 건데."
"웃기고 있네."
전 날 밤에 종인이 세운 업적?을 세훈에게서 낱낱이 전해들은 경수가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티는 안 냈지만 종인이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고맙기도 했다. 물론, 무엇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연락을 안 한 자신의 잘못이 제일 컸으므로. 다 까발려지자 스스로가 창피하긴 한 지 책상에 엎드려버리는 종인의 머리칼을 경수가 살살 어루만졌다. 귀여워. 속마음은 감추고.
그러다 종인이 몸을 살짝 일으키더니 자신의 손을 경수의 목 뒤로 뻗어 어깨동무를 하는 것처럼 몸을 기댔다. 약간은 묵직한 무게에 경수가 어어, 하고 살짝 앞으로 휘청했다. 종인은 그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 경수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럽게 포박된 경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종인을 향해 조그맣게 왜? 라고 입을 오물거렸다. 종인은 확 뽀뽀해버릴까 하다가 학교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냥 졸려, 라며 때 아닌 잠투정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애가 뭐래-? 헛소리 말고 얼른 가. 가서 아침 자습이나 해."
"와, 도경수. 누가 들으면 모범생이라고 오해하겠다. 내가 언제 자습하는 거 봤어?"
"그래도 고3이잖아. 너는 안 해도 우리반 애들이 공부하니까. 방해하지 말고 빨리 가. 종인이도 졸리다잖아-."
"지랄한다. 배짱도 없는 주제에. 소란 피우지 말고 좀 가라."
"빼도 박도 못하게 해줄까?"
"뭐를?"
"진짜 변-태."
"왜? 공부 하고 싶다는 건데-?"
"....씨.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응. 도경수. 나 하고 싶은데, 해도 돼?"
"그래, 해. 실컷 해. 공부,"
"내가 언제?"
"방금. 실컷 하라고 했으면서."
"야! 그건,"
"교실이라서 실컷은 못하니까 가볍게 이런거라도."
"아, 응. 찾긴 했는데..."
대충 학교가 끝날 쯔음에 맞춰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학교 앞에서 만나자고, 찬열이 직접 학교로 찾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을 경수가 극구 사양했다. 아무래도 보는 눈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애들도 있는데 괜히 이상한 소문 만들기 싫었다. 무엇보다도, 김종인. 얘가 알면 큰일 난다.
"아, 아니. 그냥-."
"앞으로 폰 간수나 좀 똑바로 해."
"응..알았어. 미안."
"꼴에 미안하기는 하냐? 근데, 그러지 마."
"응?"
"고작 이런 걸로 미안해하지 말라고.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 듣기 싫어, 난. 그 소리는 평생 한 번만, 최후의 말로 딱 한 번이면 충분할테니까. 그 말 자주 듣기 싫어."
"그렇지만 미안한 걸 어떡해? 말이라도 안 하면 불편하니까."
"니가 앞으로 나한테 미안할 일 만들지 않음 되잖아."
"그럼 서로 하지 않기로 하자. 어때?"
"에. 싫어. 장담하는데 그건 절대 불가능이야."
"아 존나.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이래? 도경수, 내기할래? 미안할 짓 하나 안 하나?"
"내기? 무슨 내기?"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미안할 짓 최대한 안 하는 걸로. 무조건 먼저 미안하다고 한 사람이 지는거야."
"오케이. 콜! 쉽네. 어떤 식이든 미안하다는 말만 절-대 안 하면 되잖아?"
"그래. '미안'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순간, 게임 끝이다. You go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