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w. 민트
백현은 가쁜 숨을 골랐다. 손 안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하며 밝은 빛을 띄웠다. 액정에 수신자의 이름이 떴다. 박찬열. 찬열의 이름을 보면서 백현은 가쁜 숨을 골라댔다. 죽을 거, 같아. 어두운 길가에서 형형히 빛나는 불빛이 백현의 눈가를 따끔히 찔러대었다. 터치액정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백현이 홀드키를 풀고 덜덜 떨리는 음성을 애써 숨기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응, 백현아. 아까, 너랑 닮은 사람 본 것 같아서ㅡ. 너 집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
" 에이, 나 지금 집인데. 착각한 거야. 얼른 와. 맛있거 사가지고. "
어차피 사와도 못 먹을테지만. 백현이 속으로만 생각했다. 뱀파이어의 습성인지, 백현은 뾰족히 솟은 송곳니를 혀로 쓱 훑었다.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어질 정도로 퇴화된 송곳니를 혀로 몇번 핥아보던 백현의 머릿속에 전조등이 켜졌다. 지금 들어가지 못한다면 종인은 분명 화를 낼 것이다. 자제력도 없는데 지금. 때가 언젠데. 하면서. 그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칠흑같은 눈으로 저를 몇 번이나 쳐다보면서 머리에 각인시킬 것이다. 하지만.
" 찬열.. "
백현은 찬열의 이름을 몇 번이고 굴려 보았다. 입 안에서 까끌하게 발음되는 그의 이름이 생소하고도 설레, 그를 기다리게 하면. 아니, 그가 제게 조금의 의심과 의아함을 품게 되는 날이면 백현은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백현과 종인이 거처하는 동굴ㅡ평범한 아파트였다. 단지 어둠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아니 무서워하는 종인 덕에 사시사철 빛을 전부 차단해놓아 그곳은 늘상 어두웠다ㅡ이 아닌, 찬열과 백현의 집으로.
*
차, 막힐 거 같았는데. 찬열보다 고작 몇분 일찍 들어온 백현은 숨을 고를 길이 없어 화장실로 무작정 들어갔다. 크림슨의 눈동자가 거울 너머에서 저를 번뜩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놀란 백현이 얼른 관자놀이에 힘을 주고, 눈동자를 천천히 제어했다. 붉은 기가 서서히 가시면서 색소가 풀리는 것처럼 그 자리를 검은색이 메꿨다. 백현아, 왔어? 밖에서 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응! 곧 나가. 백현이 찬열에게 냅다 고함을 질러 놓고,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종인. 진짜 미안. 나 지금 집이야. 나중에 연락하자.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말을 듣고 백현은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눌러 껐다. 종료를 가볍게 터치한 백현의 손 위에서, 최신형의 스마트폰이 진동소리를 내며 꺼졌다. 핸드폰을 가볍게 손 안에서 굴리던 백현은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보이는 찬열때문에 놀라서 뒤로 미끄러질 뻔 한 것을 간신히 넘겼다. 찬, 열아아. 백현이 앓는 소리를 내자 찬열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 미안... 난 너가 그렇게 놀랄 줄 몰랐지. "
" 아으... "
" 미끄러졌어? 어디 좀 보자. "
" 어, 아니아니, 괜찮어. "
찬열의 목덜미가 제 입쪽으로 숙여져 매끈한 목선이 드러났을 때, 백현은 온몸의 피ㅡ라고 해봤자, 백현 자신의 피가 아닌 남들의 피로 이루어진 백현의 몸 속이었지만ㅡ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입술을 피가 날 듯 깨물면서 백현은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찬, 열아. 나 별로 안다쳤어. 얼른 씻고 와. 백현이 한글자한글자 어렵게 발음하면서 찬열을 떼밀었다. 어어, 뭐라구? 찬열이 떠밀리다시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고, 백현은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
찬열은 긴 몸을 일으켰다. 어젯 밤, 백현이 잠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온기 없이 말끔히 정리된 옆자리를 보던 찬열은 실소를 터트렸다. 백현이 제 옆에서, 얼마나 많이 끙끙거리고 뒤척이고 온몸을 꼬았는지, 찬열은 죄 알고 있었다. 평소의 싱글거리는 얼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원래부터 이 얼굴이었다는 듯이 찬열의 얼굴이 가면 씌워지듯 바뀌었다. 일부러 도발 좀 해봤는데, 안 넘어오네. 확실히 백현의 자제력은 그 나이대 뱀파이어들에 비해 강한 편이었다. 그 빌어먹을 오리지널 뱀파이어가 교육을 잘 시키는게 분명했다. 찬열은 비시그레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뭐하길래 지금 전화를 받냐, 도경수. "
' 넌 잘 되가냐? '
" 뭐가. "
' 그 순진한 어린 뱀파이어 꼬셔내는거. '
" 내가 누구야. 박찬열 아니야, 내가 ."
찬열이 호탕하게 웃었다. 수화기 너머 경수도 한참을 웃다가 속삭이듯 전화기에 대고 말을 했다. 아, 그 잡종은 걍 배제해도 되는 거잖아. 왜 나한테만 이렇게 어려운 임무를 맡겨서 짜증나 죽을거같아. 경수가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찬열에게 제 사정을 말했다. 아니 그 오리지널-뱀파이어는 확실히 오래 산 티가 나드라. 접근을 못하겠어.
" 왜, 너 그런거 잘 하잖아. "
' 뭔데. '
" 도경수식 막무가내 떼쓰기. "
' 이 새끼가. '
" 화내지 말고. 암튼, 마스터는 귀국했어? "
' 엉. 이제 시작인거지. 우리 마스터 아주 신났다. 뱀파이어들 찾아냈다고. 이번에 완전 뿌리를 뽑겠다던데. '
" 하여간 마스터 진짜 못말려. "
찬열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경수에게 세시까지, 본부로. 라는 말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찬열이 가방에 챙기는 것은, 백현에게 말했던 직업인 대학생들의 필수품 전공서적이 아니라 총이었다. 잘 빠진 글록의 표면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훑은 찬열은 총탄 대신 은으로 만든 탄환과 성수를 챙겨 넣었다. 허무맹랑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찬열의 직업은 뱀파이어 헌터였다. 사실 일반인들은 이런 직업 자체를 알지 못했다. 아니, 뱀파이어 자체가 없는 줄 알고 있었다. 신화 속에만 존재하던 그런 존재로.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이들은 치열하게 싸웠고, 헌터들의 일족은 뱀파이어에 의해 거의 몰살되다시피 했다. 헌터들의 우두머리는 총 셋이었는데, 헌터 무리들이 모두 죽어 갈 때, 그들이 필사적으로 살려내려고 애쓴 사람들은 바로 자신들의 아들이었다.
' 아빠, 아빠? '
' 찬열아. 네가 이제부ㅌ, 윽.. 헌터란다. '
' 아빠!! '
약 40명 가량 있었던 헌터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뱀파이어들이 그들을 습격했다. 집이 모두 불탔고, 그 틈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아버지들의 피가 묻은 총을 들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뱀파이어 무리가 자신들을 찾아냈다. 그 때 찬열과 경수, 그리고 마스터는 비슷비슷한 나이었다. 자신들에게 돌진해 오는 뱀파이어들을 본 찬열은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다가오는 뱀파이어에게 총을 가장 먼저 쏜 사람이 지금의 마스터였다. 그는 놀랍도록 침착한 모습으로 뱀파이어들을 쏴 죽였고, 멍해있는 찬열과 경수의 손을 잡고 달렸다.
" ... "
잠시간의 과거 회상에 빠진 찬열은 다시 이를 갈았다. 뱀파이어들을 용서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찬열은 눈을 감았다. 그 모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사실상 뱀파이어 일족과 헌터들간의 대결은 서로에게 치명적인 것이라서, 거의 모든 헌터들이 사망했고 뱀파이어들 또한 살아남은 자가 눈에 띄게 적었고, 대부분 해외로 망명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백현과, 그 오리지널-뱀파이어가 뻔뻔하게 한국에 와서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찬열은 이를 갈았다.
" 절대, 용서 못하지. "
총을 챙겨 넣은 찬열이 집을 나섰다.
*
사실 뒤편까지 쓰려고 했는데 오늘은 정력이 딸리네요...
정말 대강대강 프롤로그 쓰고 사실 구상도 얼마 안 해 놨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 짱짱 감사드려요 여러분 최고 사랑해요...!
아직 뭐가 잘 안잡혀가는 거 같죠?
뒤로 갈수록 멤버들도 많이 나올거에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ㅠㅠ 여러분 그럼 안뇽... ㅜㅜ
필력 딸리는건 좀 봐주세요 잉잉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