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너무 밀려.
백현이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백현은 핸드폰을 들어 종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인은 얼마 가지않아 전화를 받았다.
-아, 어디야!
"지금 가고있는데 차가 너무 밀려서...좀 늦을 것 같아. 친구는 왔어?"
-아니. 지금 혼자있어. 둘이 쌍으로 날 바람맞히네.
"그래? 다른 길로 빠져서 얼른 가야겠다. 좀만 기다려!"
-엉. 어여 와.
백현은 핸들을 돌려 오른쪽 길로 빠져서 좀 복잡하지만 빨리갈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그러자 뒷차도 함께 핸들을 돌려 백현이 가는 길로 따라왔다. 이 길을 아는사람이 또 있구나. 별루 없던데. 생각하며 뒤따라오는 차를 보려고 백미러를 보자 고가의 외제차가 있었다. 재규어 타고 이런 길로 다니는 사람도 있네. 긁히면 어쩌려구... 백현은 신경 쓰지않으려 했지만, 자꾸만 제가 가는 길로 따라오는 것 같은 재규어에 백미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종인과 만나기로 한 음식점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그 옆에 뒤따라오던 재규어가 주차되어있었다. 여기오는 길이었나? 생각하고 잠시 쳐다보고 있는 사이, 재규어의 운전자가 내렸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였다. 남자는 수트자켓을 팔에 걸치고 와이셔츠에 넥타이 색까지 아주 단정하게 차려입고, 머리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해 두피쪽에는 검은 머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백현이 계속해서 쳐다보자 남자는 백현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있었고, 뒤늦게 눈치챈 백현이 서둘러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종인이 기다리고 있는 방을 찾아 들어갔다.
"어유, 미안해. 좀 늦었지? 근데 친구는 아직 안왔나봐?"
"응. 거의 다 왔다고 좀 전에 문자 왔었는데."
백현이 종인의 옆에 앉자 닫혔던 문이 금방 다시 열렸다. 종인이 일찍도 오네, 라며 투덜거렸다. 옷매무새를 다듬던 백현이 고개를 들어 문쪽을 본 백현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까 그 재규어에서 내리던 남자였다.
"어, 안녕하세요! 왜 자꾸 같은 길을 오나 했더니 종인이 친구분이셨구나..."
백현의 말에 대답없이 웃기만 하던 남자가 종인의 맞은편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종인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백현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여기는 찬열이. 박찬열. 내 오래된 친구야. 그리고 여기는 변백현. 나랑 만나는 사람이야, 찬열아."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서 반갑대. 나한테 네 얘기 많이 들었다고."
백현은 능숙하게 손을 움직여 수화를 하는것을 보고, 그가 말을 못한다는 종인의 말이 더욱 실감나게 와닿았다. 종인이 말해주는 것을 듣고 여전히 웃고있는 찬열에게 백현이 말했다.
"저두 반가워요, 찬열씨."
*
"근데 정말 잘생기셨어요."
「백현씨도 잘생기셨어요.」
"으학학, 너도 잘생겼대. 웃기네."
"김종인보다는 뭐 내가 훨씬 아깝지."
백현의 말에 푸스스 웃던 찬열이 백현을 향해 손으로 말했다.
「백현씨는 일 안힘드세요?」
"일 안힘드냐고 묻는다."
"어우, 힘들죠! 나이가 어려서 제대로 된 일은 하지도 못하구 잡일만 해요."
백현은 변호사였다. 어렸을 적부터 하고싶었던 일이라 열심히 공부했고, 그 덕에 어렵다던 사법고시를 한번에 패스하고 지금은 거의 최연소 변호사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게 일이 모든지 잘 풀릴 무렵 부모님이 함께 여행하던 도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살아남아 우울증에 걸려 허우적 댈 때, 정신과 의사인 종인을 만나 우울증을 극복하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찬열씨는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신다면서요!"
「아니에요, 그냥 취미로 가끔 그리는 거에요.」
"아니라고는 하는데, 구라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얘만큼 그리는 사람이 없어. 중, 고등학교때 모든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고 다니건 전설의 박 드로우(draw)."
종인이 비아냥 거리는 소리에 백현이 웃기 시작했고, 찬열도 뭐라고 수화를 하려다 그냥 웃어버린다. 대화를 하던 도중 찬열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일어났고, 찬열이 완전히 나가자 백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원래부터 말을 못하는 거야?"
"글쎄, 그 얘기만 하면 그렇게 잘 움직이던 손도 가만히 있어. 근데 실어증이 아닐까, 싶어."
"실어증이 장애는 아니잖아?"
"아냐, 실어증도 언어장애 3, 4급으로 들어가."
"아, 정말? 몰랐어. 비교적 쉽게 나을 수 있는거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입만 열면 되는건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다르거든. 자기방어일 수도 있고 뭐 그런거지."
너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의사같다. 진짜 의사 맞거든.
찬열이 다시 들어오고, 백현은 생각했다.
찬열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고싶다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