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Know Your Name
W.꿀피닛
01
자신을 향해 인사를 하는 성열을 무시한 우현이 드르륵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지금 기분이 즐거운 건지 아니면 안 좋은 건지 알수가 없었다. 울림 고등학교 전교 1등 이면서 동시에 재수 털리는 선도부 김성규를 자신의 손바닥 위 에서 갖고 노는건 흥미 있는 일 이었다. 근데 달갑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 너 술냄새 쩐다. "
" 알아. "
성열의 말에 대충 대답을 건낸 우현이 어제 모텔 에서 본 김성규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 아침에 본 단정한 교복 차림이 아닌 노골적 으로 야하지는 않지만 야한 느낌이 드는 올 블랙의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차분한 일반 머리가 아닌 약간의 펌이 들어간 가벼운 느낌의 스타일 이었다. 여기 까지 회상을 하자 우현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 졌다. 단지 자신의 학교 모범생 으로 선생의 사랑을 받고 불량한 학생을 잡아 벌점을 준다는 철 없는 이유는 아니었지만 왠지 짜증이 났다. 게다가 색기가 흐르는 얼굴 이라니.
" 진짜 매치가 안된다. "
저절로 나온 중얼거림에 우현은 픽 하고 웃었다. 뭔가 배신감 비슷한 느낌 마저 드는것 같았다. 어젯밤 여자와 관계를 치르느라고 피곤한 몸과 술 기운이 남아 정신 없는 상황 으로 모텔 에서 나와 명찰을 두고 나온게 이런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아침에 본 단정한 김성규와 어울리지 않는 붉은 자국이 우현의 눈 앞에 그려 졌다. 어제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을 했지만 성규는 우현을 눈치 채지 못했었던것 같았다. 하긴 매일 아침 불려서 이름을 적혀도 적히는 사람이 우현 뿐 아니라 상당히 많았으니까. 우현은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책상에 엎드렸다. 일단은 너무 졸렸고 또… 조금 충격 이었다.
*
" 왜 몰라요. 같은 반 인데. "
" 그… 그야, 난 김성규랑 별로 안친하니ㄲ…, "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복도를 걷던 성규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교실 앞 을 쳐다 보았다. 성규의 반 남학생을 붙잡고 자신의 행방을 물어 보고 있는 남우현의 모습이 시야에 가득 들어 찼다. 저절로 반대 방향 으로 돌아가려는 걸음을 애써 붙잡지 않고 뒤돌아 걸으려 하는데 발 걸음이 멈추어졌다. 우현이 성규를 불렀다. 삐그덕 거리며 돌아가는 고개를 괜찮은 척 하며 우현을 쳐다 본 성규가 얼굴을 굳혔다. 설마 말 했을까. 방금 닦고 온 손에 다시 땀이 차는 기분이 들었다.
" 왜 형이 어디 있는지 다 모른데. "
" …… . "
" 형. "
우현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반 남학생을 쳐다 보았다. 다행히 우현이 자신에 대해 말한것 같지 않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교실로 후다닥 도망을 치듯 들어가 버린 남학생을 보다가 다시 우현을 쳐다 본 성규는 미간을 좁혔다. 분명 남우현과 자신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더더욱 아는 사이도 아니였다. 그런데 왜 '형' 이라는 단어를 쓰며 3학년 마저도 벌벌 떨게 만드는 남우현이 친한척 까지 하고 저 에게 이렇게 들이 대는지 이해가 가지 앉았다. 입을 다무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 달라는 우현의 말도 거슬리는데 이렇게 대하니 더 거슬 렸다.
" 나 배고픈데 빵 좀 사줘. 속도 안좋으니까 우유도 사오고. "
" … 뭐? "
" 시키는 대로 다 하라고 말 했는데. 안 사올 거예요? 안 사오면 뭐……. "
다 말해버리면 되고. 하며 말 끝을 흐리는 우현의 말에 성규는 기가 찼다. 그러니까 나보고 니 셔틀 노릇을 해라 이거야? 어이가 없었다. 아니 자존심이 상했다. 차라리 더럽다면서 패는게 기분이 덜 나쁠것 같았다.
" 기분 나빠요? 내가 돈은 안주잖아요. 그냥 사달라고 부탁 하는 건데. "
" ……. "
" 돈주고 뭐 해달라 명령 하는거 아닌데… 기분 나쁠거 없잖아요. "
우현의 말에 무엇이 포함 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 성규는 주먹을 꽉 쥐며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돈은 안주잖아요. 이 말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매점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계산을 하기 위해 꺼낸 지폐를 보며 마음도 무거워 졌다. 어떻게 벌은 돈 인데. 아까워서가 아니 였다. 그냥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반 앞으로 돌아 오자 여전히 우현이 서 있었다. 그리고 성규가 건낸 빵을 받은 우현이 " 또 올게요. " 하며 계단을 내려 갔다. 저절로 오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지만 꾹 삼키고 교실로 들어 섰다. 아까 전 우현 에게 붙들려 있던 남학생이 성규 에게 다가 왔다.
" 뭐야. 그 새끼 왜 온거야? "
궁금한 얼굴로 저를 쳐다 보는 남학생 에게 대충 핑계로 얼버무리고 성규는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가슴이 불안 하게 두근 대었다. 마치 물건 이라도 훔쳐서 들킬 까봐 걱정 하는것 처럼. 학교 에서는 평범한 학생 이었다. 밤 에는 몸을 팔면서 돈을 벌었지만 학교 에서 만큼은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조용히 지냈다. 부모가 없는 가난한 저의 처지에 열심히 죽어라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아 생활 하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빛을 남기고 죽은 부모 때문에 알바로 버는 돈만 으로는 벅차 어쩔수 없이 몸을 팔게 되었다. 하지만 이 근처 에서 일을 하지는 않아 들킬리가 없었다. 그런데 우현이 알았다. 어제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을 본 것 같은게 착각이 아니였었다.
" 성규야, 수업 들어야지? "
갑자기 이어폰이 빠지는 기분에 어깨를 움츠리고 소리가 난 쪽을 쳐다 보자 문학 선생님 이었다. 벌써 1교시 종이 친건가. 아까 부터 자꾸만 땀이 차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고 책을 꺼내 었다. '종로5가' 신동엽의 시를 배울 차례 였다. 선생의 낭송을 따라 책을 읽어 내리던 성규가 멈칫 했다.
"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쪽 기대 앉아……, "
선생의 목소리가 리플레이 되는것 같았다. '창녀' 라는 단어에 가슴 한쪽이 쿡쿡 쑤셨다. 처음 몸을 팔기 시작 했을때 울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수단 이었을 뿐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 이다. 성규 자신 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의 아래서 신음을 흘려도 수치스럽지 않았다. 몸을 팔때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 이다. 그래서 그나마 괜찮았다. 그런데 우현은 알고 있었다. 몸을 파는 김성규를.
*
" 야, 요새 너 학생부 안 가더라. "
" 걸릴게 없으니까. "
" 걸릴거 많은데. 명찰도 없고 피어싱도 했고. "
성열의 말에 우현이 그런게 있어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성열이 궁금 하다며 우현 에게 계속 물어 보자 우현이 성열을 밀어 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성규의 비밀을 알게된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성규는 복장이 불량한 우현을 잡는 척 하며 그냥 보내 주었고 우현이 빵을 사오라면 사오고 돈을 달라면 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성규는 우현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런 성규가 처음은 재미 있었지만 갈수록 흥미가 떨어진 우현은 공중에 담배 연기를 뿜으며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더 재미가 있을까.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질이 나쁜 학생이 아니 었다. 술도 먹고 담배도 피며 심심하면 여자도 끼고 자지만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에게 존댓말도 쓰고 이유 없이 사람을 패는 또라이 짓은 하지 않았다. 그건 우현 나름의 자존심 이었다. 날라리 라는 소리는 들어도 양아치 소리는 듣지 말자. 하는.
" 남우현. "
" 왜. "
" 오늘 우리 술 마시러 갈래? "
" 둘이? "
" 미쳤냐. 징그럽게. 당연히 여자도 끼지. "
성열이 아잌 거리며 질색을 하자 우현이 따라 하며 실실 웃었다. 그나저나 얼마 전 본 중간고사 에서 김성규는 전교 3등 을 했다. 물론 전교 3등 도 좋은 성적 이기는 하지만 항상 1등을 하던 김성규가 3등을 하니 놀라울 따름 이었다. 내가 너무 괴롭히는건가. 하는 착한 생각을 하다가 우현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