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웬만한 학창시절 얘기는 할 게 없다.
다 똑같은 패턴이야
만나서 밥먹고 수다떨고 애들이랑 풀장가고 파티하고
맘이 픽업하러오고 아 맞다 캐시가 면허 딴 정도?
난 뉴질랜드 그 여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왔거든
이유야 여러가지였지만 제일 큰 건 아마도 재정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었어
맞벌이도 아니고 엄마 혼잔데.....
난 이년 정도를 다른 애들보다 더 못한거잖아
그러니 수학이나 과학 모든게 다 딸렸지
그래서 더 악바리로 했지만 결국 재수하고 원하는데 들어갔어
그 까지의 과정을 썰으로 한번 풀어보고자 해
생일 파티 후에 딜런이랑 정식으로 사귀고 난 3분기 파트를 정신없이 보내고
4분기에는 엄마랑 부쩍 자주 통화를 했어
유학원에서도 자주 선생님이 오셔서 홈스테이 맘도 캐시도 대충 어떤 분위긴지 파악했지
한 번 캐시에게 솔직하게 털어넣은 적도 있어 친자매 같은 사이니까
캐시는 그저 내가 뭘 선택하던 널 존중할거라고 얘기해줬고
사실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얘기했겠지만 그 상대가 캐시라서 결정에 후회는 없었어
문제는 딜런이었지
정말 무서웠어
만약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 때문에
하지만 저번에 일본인 사건도 있었고 말하지 않을수록 오해는 깊어갔잖아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만났어
나는 애들 몰래(캐시만 알고 있는 채로) 유학원이랑 상담 하에 학교를 나왔고
사실 난 언제든지 귀국하기만 하면 되는 실정이었어
유학원에선 거의 한달간의 기간을 줄테니까 그게 마지막이라고 했고
근 한달동안 딜런을 못 볼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청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어
딜런도 공부해야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졸라댔나 싶기도 해
하지만 그 땐 정말 절박했거든
얘기를 처음 꺼낸건 한 떠나기 2주 전 쯤이었을 거야
나 이런이런 사정이 있어서 학교에서 퇴학 수순을 밟았다
지금 가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이래도 나랑 사귈수 있냐고
딜런이 아무말도 안하길래 그냥 끝인가 싶었는데 생각을 좀 해봐야되겠다더라고
생각을 한단건 사실상 거의 뭐 헤어지는 걸로 확정이잖아 표정도 어두웠었고
그래도 8개월 정도 동안 즐겁게 썸도타고 연애도 했다고 생각하면서 위로했지
둘이 아무말도 안하고 버스타고 가는데 딜런이 갑자기 미안하다는거야
그래서 내가 왜? 이랬더니
고민할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기다리는게 당연한건데, 괜히 흔들렸다고
나는 네가 뭘 하던 너의 의사를 존중할건데 그게 법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는 거면 헤어질거라면서
농담을 하더라고.. 그제야 완전 긴장 다 풀리고 눈물 터지고
사실 딜런한테 많이 미안하기도 해 실제로 사귀면서 딜런 좋다고 한 애도 여럿 있었고
맘만 먹으면 더 좋은 여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안깨지고 쭉 가준거잖아
게다가 예정에도 없었떤 재수까지.
그 후 기간 동안은 차차 다른 애들한테 귀국한다는 소식을 알렸고
다들 덤덤하게 이별 파티를 준비하더라고
공항은 새벽에 맘이 데려다 주기로 했었지 아마... 하도 울어서 운전한게 캐시였는지 맘이었는지 긴가민가
생일파티같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싫어서 정말 아는 애들만 불렀어
나, 애슐리, 댄, 벨라, 맥스, 딜런.
선물은 정말 괜찮다고 했는데 부랴부랴 들고 왔더라고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없는 뉴질랜드를 기억할 수 있는 것들과 자기들이 손수 만든게 대다수였어
글 쓰려니까 좀 슬퍼지네
제일 감동적이었던건 벨라와 딜런의 스크랩북
둘다 같은 패션 기업에 종사하니까 그런 디자인 보는 안목은 좋거든
우리 같이 놀고 찍은 사진들을 잡지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진짜 좋았어
물론 다른 것들도 다 기억에 남고
내가 sns를 안하다 보니 애들한테 이메일 번호를 알려줬었어
후에 페이스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슬프지만 최대한 애들이랑 많이 만나려고 했어
짐 다챙기고 홈스테이 맘이 양고기 스테이크를 해줬는데 그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진짜 짠하더라
다음날 출국이라서 일찍 자두라 했는데 잠이 안오는거야
거실에서 셋 다 아무말도 않고 빅뱅이론 봤다...
항상 1분에 한번꼴로 터졌는데 아줌마도 캐시도 둘 다 조용하더라
괜히 뻘쭘해져서 잠오는 척 방에 들어갔는데
캐시가 들어오더니 너 안자는거 다 안다고 내일이 마지막이 아니라 네가 성공해서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거라고
거기 가서도 꼭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라 하더라... 짠했다
이건 비교적 최근 일이니까 기억이 잘나네.
벨라는 집안 사정이 있어서 같이 공항에 못간다고 너무 아쉬워 하더라
댄도 그 날 대회가 있었고 맥스는 부상때문에 참여하지 못해서 이쪽으로 왔고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먼저 나와있는 딜런이랑 그냥 말 없이 한참을 안았었지
지금은 롱디가 익숙하지만 그 땐 미래도 불확실했고 당장 안정적인 것도 없었으니까
딜런은 계속 내가 불안해하니까 안심시키려고 괜찮다 딴 여자 안만난다 이런얘기하길래
웃으면서 공부나 해 이랬더니 알겠다고 자기는 쿨 가이라고 하더라.. ㅋㅋㅋㅋㅋㅋ
비행기는 오사카에서 내려서 한 번 더 갈아탔어
진짜 침울하더라... 남은 일년 동안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계속 새기면서 한국에 도착했고
진짜 몇 년 만에 보는 엄마랑 돈 아낀다고 외식도 잘 안했는데 간만에 한식 엄청 먹었어
엄마가 더 늙어보이는게 너무 안쓰럽더라...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자꾸 늘어나지
고3인만큼 스트레스도 심했고 애들한테 딱히 내가 유학갔다 왔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얘기하진 않았어
아예 살다 온 애들도 많았고 말 안해도 다들 다 알게되니까.. 소문이 돌아서
게중에는 뉴질랜드는 유학으로 취급도 안해주는 애들도 있더라고
진정한 유학은 런던 아니면 미국 동부권이라며.. 상관없다 걔보다 재수했어도 좋은 대학 갔으니
처음엔 느슨한 뉴질랜드 생활에서 나사를 조이는게 너무 불편했어
늘 방과후엔 놀러다녔으니까 ...
옆에서 떠들던 캐시도 없고 다들 침묵을 지키면서 야자하는게 너무 무섭기도 하고
페이스북은 아직 파지 않았어 나태해질까봐 sns 라는게 약간 중독끼도 있잖아
이메일로 근황을 주고 받았고 딜런도 한국 입시의 현실 막 이런걸 찾아보고 했나봐
힘든걸 아니까 메일도 한번에 몰아서 보내고 소포 같은것도 챙겨주더라고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비타민 같은것도 챙겨주고 사진도 보내주더라
중간에 딜런이 한국 온 것 빼곤 거의 2년간 못본건데 사진으로 보니 정말 ...
앳된 소년에서 남자가 됐다는 말이 오글거리지만 이럴때 쓰는거더라
물론 내 사진은 안보냈음 다들 고3의 여학생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잖아 ^^
맥스도 나처럼 자퇴해서 바로 농장 가서 일하고.. 누나랑 다 같이 내려갔었지 아마
수능 쳐 보니까 암담하더라 치자 마자 어차피 놀러 나갈 친구도 없으니 집에 바로 들어왔어
엄마는 잘쳤냐고 묻지도 않으시더라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
혼자 속으로 재수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전단지 하나 내밀더라
뉴질랜드 생활비보단 적게 나올거라고 이번 일년이 마지막 투자라고...
악착같이 해서 장학금 받고 들어갔어 (아쉽게도 전학기는 아니고... ㅎ)
처음 재수 결정을 했을 때 딜런한테 이메일을 보냈어
이런 이런 사정 때문에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고 이렇게 그냥 다닐 바에야
1년을 더 투자해서 내가 원하는걸 하고 싶다고
그런데 답장이 없는거야 거의 2주 간..... 그러다가 캐시한테 이메일이 왔어
딜런이 지금 벨라가 먼저 취직한 회사의 패션 위크를 치르고 있는데
모든 전자기기 사용이 불가능해서 어쩔수 없다고 하더라
나중에 물어보니 일부러 내 시험에 영향 끼칠까봐 말을 안했데
정말 고마운건 그동안 다른 여자 눈길 안주고 애들이 게이냐고 뭐라 하면
벨라가 자기 남자친구라고 거짓말 해주고.. 다들 배려심이 너무 깊어..
딜런은 프랑스 지사에 시험을 봤는데 다행히도 영국 지사에 3명 정도 자리가 빈게 있어서
아쉽게도 팅겼지만 ! 영국 지사로 인턴직을 맡게 됐어 사실상 마지막엔 프랑스 지사도 가능했는데
자기 아버지의 고향이니 그걸 느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딜런은 내 선택을 다시 한번 더 존중한다고 얘기했어
그리고 졸업식 사진도 여럿 보냈는데 다들 기뻐보이더라
맥스는 남섬에서 힘들게 다시 올라와서 사진찍고 갔다고 ㅋㅋㅋㅋㅋ
벨라는 다른 애들보다 훨씬 좋은 기업에 취업을 빨리해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안타까운 사실은 바로 댄이었어
댄은 사실 럭비 입단도 가능했는데 4분기 2번째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던거야
사실 그 운동이 격하기도 하고 맥스도 그렇기에 운동을 포기하고 남섬으로 내려간거고
맥스는 운동 하나만 믿었는데 부상 하나에 아무것도 자기가 해 놓은게 없단 걸 아니까
내가 재수할 때 들었던 감정처럼 암울해 하더라고....
캐시는 대학 진학하지,
맥스는 남섬 내려가서 부모님이랑 누나랑 농사지으며 카페 운영하지
이사벨라는 정직원으로 취업했지
딜런은 인턴직 일하고 있지
댄만 빠진거잖아
댄이 괜히 캐시한테 성질도 부리고 했는데 캐시가 묵묵히 다 담아내 줬나봐
사실 내가 한국 돌아왔을 때 두번 정도 사겻다 깨졌다를 반복했다고 하더라
재수 하고 조금 흐트러 질 때 쯤 타이밍 맞게 런던에서 딜런이 왔어
사실 엄마는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국제 전화로 뉴질랜드 있을 때 계속 얘기를 했거든
딜런은 휴가를 받고 나온거라 2주의 시간이 있는데 3박 4일은 한국에서, 나머지는 집에서 보낼거라고 하더라
짧게 머물다 간 것도 다 나 재수에 신경쓰라고 배려해준거... ㅠㅠ
나도 바깥공기 마셔 본지도 오래 됐고 딜런이랑 같이 손잡고 밖에 나가서 돌아다녔다
진짜 사실일줄은 몰랐는데 실제로 혀 끌끌 차고 욕하는 어르신들도 있더라고
내가 지방 사람이라서 딜런한테 많은걸 못보여줘서 아쉬웠다...
그랬더니 서울이야 다음에도 갈 수 있는거고 지금 1 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1 년이니 제대로 준비하라는 거
결국 남은 반년 미친듯 공부하고 결과도 만족스럽게 얻어 냈고
영국에 딜런 보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딜런도 가족 행사 때문에 뉴질랜드에 오기로 했고
애들도 빨리 보고싶다며 오라 해서 뉴질랜드로 갔었어
정말 이렇게 살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난건 내 생에 엄청난 축복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