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승 윤 X 남 태 현
달달한 썰들 몇 개 모아놓은 단편 모음집입니다
달달하다 -2- :: 김칫국인지 아닌지
"교보문고 놀러가고 싶어"
"갈래?"
지나가는 소리인데 덥썩 물어 가자고 하는 승윤이었다.
"진짜로?"
"그래, 가자"
승윤이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태현의 손을 잡고 근처에 있던 버스정류장으로 이끌었다. 당황한 듯한 태현에도 불구하고 승윤의 얼굴에 뭐가 그리 신 난지 싱글벙글 해진 상태였다.
어쩌면 썸, 이게 김칫국이라면 그냥 학원 같이 다니는 친구 사이였다. 강승윤과 남태현은.
둘의 가는 길에는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었다. 간단한 수다와 그냥 별 의미 없는 장난. 어느새 웃고 떠들다보니 도착해버린 .
지하로 내려가니 스쳐 지나가게 되는 사람이 많았다. 서로 사랑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커플들, 이어폰을 낀 채 혼자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 급하게 서류 가방을 들고 뛰는 사람. 사람 냄새, 깔깔대는 이곳이었다. 태현이 이런 모습이 신기한지 우와- 하며 감탄했다. 오랜만에 보는 이런 들뜬 모습에 승윤은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있던 태현 앞에 나타난 물품 보관함.
"너 여기 안 닿지?"
"닿거든?"
승윤이 큰 키를 자랑하며 물품 보관함 맨 위로 손을 올렸다. 아무래도 키가 작은 태현인지라 그 끝까지는 닿기가 무리가 있었다. 고개를 높게 들며 낑낑 대던 태현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진짜 작다. 너"
그러더니 승윤이 태현의 오른쪽 손목을 잡고선 쭉 올렸다. 까치발을 들게 된 태현의 손 끝이 사물함의 끝에 간신히 닿을랑 말랑했다. 태현이 승윤의 행동에 깜짝 놀라 아래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름대로 잘생긴 이목구비가 태현의 눈으로 들어왔다.
"너는 안되겠다"
그러면서 승윤이 태현을 향해 웃어 보였다. 왜 이래, 사람 설레게. 키 크다구 자랑하는 것도 아니구.
문고를 둘러다 보면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작은 수다와 지나치는 가슴 간지럽히는 웃음 정도만. 시간이 꽤나 지났고 갈 시간이 되어 태현과 승윤은 이 좋은 기분 그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평소 차멀미가 심하던 태현이였던지라 태현이 고개를 아래로 뚝뚝 떨어트리며 가벼운 잠을 자고 있었다. 승윤은 별로 졸리지도 않았던 터라 그저 깨어있었다. 버스가 덜컹덜컹. 까맣고 작은 머리통이 달랑달랑. 승윤은 그냥 빤히 태현의 작은 머리를 보고 있었다.
'나 머리 너무 많이 흔들고 자면 꼭 깨워야 해.'
태현의 말이 떠오른 승윤이었지만 이 뒤통수를 보니 때리기는 커녕 쓰다듬어야 할 판이었다. 승윤이 아빠 미소를 짓고 가는데 덜컹-하고 버스가 크게 움직였다. 승윤이 깜짝 놀라 태현을 살폈지만 깨지 않는 걸 보고선 후-하고 짧은 한숨을 쉬었다.
덜컹
실은 그 때 태현이 살짝 눈을 떴다. 멀미 때문에 꾸역꾸역 자는 잠인 만큼 잠귀도 밝았다. 방지턱을 넘어 덜컹대는 버스에 눈을 안 뜰 수가 없었다. 왜 그런데도 태현은 안 일어났냐 묻는다면
'나를 왜 쳐다보고 있는 거야, 부담스럽게'
태현을 쳐다보고 있던 승윤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잘 잔 척 눈을 뜨고 아웅, 잘잤당-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태현은 그냥 눈을 감고 앞으로 남은 짧은 8 정거장 동안 조용히 가야지- 하고 있었다. 끼익- 버스가 한쪽으로 쏠리고 태현과 승윤의 몸이 동시에 한 쪽으로 쏠렸다. 태현은 자는 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쏠린 몸을 한 쪽으로 돌리기도 민망해서 그냥 고꾸라진 채로 서서히 원래 자리로 가고 있었다. 계속 싱숭생숭 하는 태현의 마음. 그리고 타고 있는 버스. 자꾸 불편했었는지 뒤척이는 태현에 승윤이 어깨를 살짝 숙여 태현에게 포개었다. 태현도 한결 편했는지 무의식적에 나온 좁아진 미간이 기분 좋게 풀렸다. 뭐, 태현은 깨어있어서 승윤의 배려에 살짝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숙여 승윤이 안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좋은 것 같아, 이 사람.
태현은 승윤의 행동에 가슴이 쿵쾅쿵쾅 쳤다. 이 일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친구는 좋아하는 거다- 하면서 태현에게 김칫국을 권했다. 태현도 이게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지금!! 승윤의 태도에 태현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자꾸만 설레게 만드는 이 남자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곧 버스에서 도착을 알리는 한결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렀다.
"태현아, 일어나. 내려야 돼"
으응-? 태현은 머리를 정리하며 졸린 눈으로 일어났다. 정확히는 일어나는 척이였겠지만. 아싸, 연기 잘했어. 혼자서 뿌듯해하는 태현이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더운 바람이 몸을 휘감았고 그 따듯한 기운에 태현이 몸을 쭉 폈다. 승윤은 그냥 태현이 귀여웠는지 그냥 태현이 하는 꼴을 보고만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생물체가 내 옆에 있을 줄이야.
”나 이제 가야 돼"
"앙, 잘잤당"
태현의 동문서답에 승윤이 장난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치잇- 태현은 승윤의 모습에 승윤의 팔을 팡팡 치며 마구 웃어댔다. 그러더니 승윤이 마구 내려치는 태현의 손을 잡고선
"아, 맞다"
"뭔데"
"나 너 아까 잘 때 머리 짱 세게 때렸는데 못 느꼈어?"
짱 세게 때렸다면 일어났겠지, 이 거짓말쟁이야. 근데 사람 마음 헷갈리게 묻지도 않은 거짓말을 해? 나 배려해준 그 어깨는 뭔데?
김칫국이 아닌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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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nd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