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던 신입생 복도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딱 봐도 다른 학년, 고삼 정도 되어 보이는 예쁜 누나, 아니 약간은 양아치 같아 보이는 누나가 내려와 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선배의 등장에 교실은 조용하면서도 수근거리는 분위기였다.
어, 저기 있다.
그 예쁜 누나는 찾던 사람을 찾은 것인지 작게 혼잣말을 뱉고는 마지막으로 시선이 멈춘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 진영이, 왜 누나한테 이 학교 온다고 말 안 했어? 누나 속상하잖아."
"아..."
"표정이 왜 그래. 누나 안 반가워?"
"아, 아뇨. 놀래서요. 누나 오랜만이에요."
"엉, 이따 점심 누나랑 먹자. 먹을 거지?"
"네?"
이따 누나네 반으로 와~ 이 한 마디만 던지고 그 예쁜 누나, 여주는 다시 3학년 층으로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여주의 방문에 진영은 놀랐고, 갑작스러운 여주의 점심 신청에 한 번 더 벙쪘다.
아, 바본가... 누나가 몇 반인 줄 내가 어떻게 알고.
여주와 진영의 인연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첫 만남, 이때도 진영은 1학년이었으며 여주는 3학년이었다. 공부를 딱히 잘하지 못했던 여주에게 좋은 고등학교를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질리도록 듣는 3학년은 아주 지루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따분하게 지내던 날 중 하루, 그때 진영을 만났다. 그날도 여주는 점심시간에 평소처럼 밥을 빠르게 클리어 한 다음 운동장으로 나갔다. 뭐 딱히 하는 건 없지만 우중충한 학교 건물 안에 있는 것보단 운동장에서 햇빛 받고 있는 게 여주는 더 좋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항상 같이 다니는 우진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린다나 뭐라나. 아무튼 근데 그날은 항상 체육관에서만 연습하던 농구부가 운동장에 나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야, 쟤 누구야...?
주위에 남자는 많았으나 연애에 통 관심이 없던 여주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을 보자마자 여주는 옆에 있던 소영에게 누구냐 물었다. 여주의 물음에 살풋 웃은 소영은 1학년인데 잘생겼다고 유명한 아이라고 말해줬다. 그게 진영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진영의 이름과 반을 알게 된 여주는 연락을 했고, 매일 조공을 갖다 바쳤다. 진영이 이러지 말라고 해도 여주는 귀여워서 주는 거라며 그냥 받으라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여주는 졸업을 했으며 고등학교 적응을 하느라 진영에게 쓰던 신경은 제로가 되었다.
"누구야?"
"어, 그냥, 아는 누나."
/
진영은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아니, 먹고 있었다. 먹고 있었는데......
"왜 누나랑 안 먹어, 진영아?"
"누나가 몇 반인지 몰라서요."
"아, 깜빡했네. 3학년 1반. 기억해~"
"네. 근데 누나 여기서 먹게요?"
엉. 당연하단 듯 대답하곤 음식을 입에 가져다 넣는 여주를 보는 진영은 기가 찼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저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진영은 친구의 눈치를 한 번 살핀 뒤 괜찮다는 친구의 신호를 받고 다시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진영아, 매점 갈래? 누나가 사 줄게."
"아, 괜찮아요. 친구랑 같이 교실 가려고요.
"그래? 알겠어, 그럼... 나중에 누나 보러 와~"
밥을 다 먹자마자 들려오는 여주의 매점 소리에 진영은 거절을 했다. 또 전처럼 얻어먹기만 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딱히 매점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실망한 것 같은 말투에 진영의 친구 대휘는 실망하신 것 같다고 매점 다녀오라고 했지만 진영은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교실로 돌렸다.
"저 누나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너는? 너는 별로야? 왜 이렇게 철벽쳐?"
아까 여주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던 것을 본 대휘는 진영에게 별로냐며 물었다.
"그닥."
"왜? 예쁘잖아. 완전 이득인데 왜? 왜?"
"예쁜 건가..."
엄마, 제 새로 사귄 친구 눈이 좀 이상해요! 어떡하죠? 무슨 소리냐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던 대휘에게 진영은 반장 같은 거 할 거냐며 말을 돌렸고, 단순한 대휘는 바로 그 주제로 생각을 돌렸다. 그러게... 하고는 싶은데 뽑힐 수 있을까?
/
교실로 온 여주는 중학교 때부터 같이 다니던 우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알게 된 지훈의 앞에 앉았다. 셋은 3년 내내 같은 반을 이어오는 중이며 학교에서 유명한 사고뭉치들이다. 이 셋이 얼마나 사고를 잘 치냐하면 수업 중 무단 이탈이며 무단 지각, 무단 결과는 내킬 때마다 했고 자신들을 정의의 사도라 칭하며 꼰대 같은 선생님들에게 귀엽게 엿을 먹이곤 했다. 다른 아이들은 쉽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혀를 내두를 때가 많았다. 지들이 무슨 조지 위즐리랑 프레드 위즐리야 뭐야...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젊은 여자 교생선생님이 온 적이 있었는데, 지훈이 조금, 아니 많이 잘생겼다. 그래서 그 교생이 반한 건가 교생 실습 마지막 날 지훈에게 추천한다며 소설책 하나를 주었다. 근데 그 책은 제목부터 유혹적이었고 책장 사이에 쪽지도 하나 있었다. 뭐 보나마나 따로 연락하자는 쪽지겠지. 그걸 지켜보던 여주는 불쑥 둘의 대화에 끼어들어 교생을 비꼬았고, 지훈은 그런 여주에게 맞춰서 둘이 사귀는 척 오글거리는 말을 주고 받았다.
"선생님, 이건 못 받을 것 같네요. 우리 여주가 질투가 좀 심해서요~"
"뭐야, 박지훈~ 그래도 선생님께 받은 선물이라 넘어가주려고 했는데 알아서 잘하네?"
"당연하지. 나한테 여자는 여주 네가 아니면 다 아웃이야."
"쌤도 있는데 부끄럽게 뭐라는 거야~"
스킨쉽이란 스킨쉽은 다 하며 가까이 안겨 있던 둘은 교생에게 눈을 돌리고 안 가고 뭐하냐는 것처럼 쳐다봤다. 둘의 이... 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교생은 기가 차 자리를 떴다.
"아, 우웩, 엑."
"존나 더러워, 박지훈. 어떻게 주둥아리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그러는 너는 부끄럽게 뭐라는 거야아? 뭐라는 거 야 아? 어디서 앙탈이야, 죽을라고."
이거 박우진 오면 말해 주자. 아 너무 웃겼어.
/
"그래서 그 애기는 어떻게 됐냐. 밥 같이 먹었어?"
"먹었지. 먹었는데... 하..."
"먹었는데 왜 그래, 또."
"매점을 거절 당했어......"
매점을 거절 당했다며 한껏 풀이 죽은 여주를 보고 지훈은 오늘 이대로 가다간 여주가 교실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하여 머리를 분주하게 굴렸다.
"천천히! 천천히 하자, 여주야. 오랜만에 만났고, 한참 동안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이러니까 애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 천천히 가까워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여주야."
그런가...? 지훈의 말에 조금 위로가 된 것 같은 여주를 보고서야 둘은 긴장을 늦출 수 있었다.
5교시 내내 잠만 자던 여주가 벌떡 일어나자 짝이었던 지훈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씹, 놀래라...
"나 아무래도 진영이한테 다시 가야겠어."
말을 끝내자마자 교실을 나간 여주에 우진과 지훈은 잠시 벙쪄 있었다.
"아, 좀 별론데."
"뭐가."
"배진영."
"김여주 좋아하냐? 우리 사이에 사랑은 안 된다."
야, 무슨 소리야. 장난스럽지만 진심이 비친 우진의 말에 욱한 지훈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되받아쳤다.
"너나 좋아하지 마."
-
이건 장편을 생각하고 써 놓은 글이긴 한데
괜찮나요? 더 써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