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뇽.단편]Back
지용은 양 손에 들고있던 짐을 내려놓고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도어락 커버를 밀어올리자 버튼들이 불빛을 내며 자신을 눌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나의 방문은 환영받을 수 있는 일일까? 자신없게 손을 두어번 떨어뜨리던 지용은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뻗어올렸다.
지용이 5889이라는 비밀번호를 전부 다 누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용은 번호를 다 누르고 커버에 손을 올렸다. 이제 이 커버를 내리기만 하면 문이 열릴 것이다, 하고 막연히 생각하던 지용은 머리를 세게 후려치는 듯한 생각에 몽롱하던 정신이 깼다. 병신아, 최승현이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을 리가 없어.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지용은 커버를 세게 내리눌렀다. 지용의 걱정과는 다르게 도어락 해제음이 복도를 울렸다. 지용은 자기도 모르게 가빠왔던 숨을 안정시켰다.
왜 번호가 그대로인거지?
문을 열고 들어가 짐을 현관 구석에 몰아넣고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열자 냄새가 훅 끼쳤다. 최승현 냄새인가? 함께 살았을 때는 항상 맡던 냄새라서 몰랐던 건지 꽤 생소한 것 같았다. 아니면 오랜 시간 차이 때문인가?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는 냄새를 맡으며 지용은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지용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 사람이 살지 않는 건 아닐까?
"승현아."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지용은 습관처럼 시계를 쳐다보면서 승현이 직장에 있을 거라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했다. 만약 2년 전과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그러고 보니 2년 전의 일도 이 시간 쯤이었다.
지용은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면서 한 쪽 팔을 쓰다듬었다. 괜히 엇나가는 생각 하지 마 권지용, 그건 다 끝난 일이라고. 지용은 시선을 돌렸다. 하얗게 페인트로 칠해진 최승현의 방 문이 시선에 잡히고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네가 꼭 이 안에서 자고 있을 것 같아. 지용은 문 손잡이를 당겼고 문은 쉽게 열렸다. 지용의 바램과는 다르게 승현은 없었지만 깔끔하게 정렬된 평소 승현이 좋아했던 아티스트들의 앨범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다든가 가까운 곳에 나갈 때 항상 걸쳤던 후드 집업이 행거에 걸려있다든가 하는 것은 지용의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책상 위를 손으로 쓸며 지나갔다. 먼지는 묻어나지 않았다. 최승현이 아직 여기에 살고 있어.
지용의 시선은 책상 한 구석에 세워진 승현의 사진으로 향했다. 웃고 있는 승현의 사진은 반이 찢어져나간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쪽에 담겨있을 사람은, 지용 자신도 정말 잘 아는 사람이였다. 나를 찢어낸 사진이잖아 이건. 지용의 기분이 단번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빙구같게 왜 웃고 지랄. 하지만 승현의 웃는 모습은 잘생겼다. 지용은 엄지 손가락으로 승현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다시 사진을 내려놓았다.
내 사진을 찢어냈다는 건 나를 지워버리겠다는 뜻인가.
지용은 승현의 방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가볍게 튀어오르는 몸을 바로하고 열린 문 바깥을 본다. 현관문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 때 어디선가 도어락 커버를 올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용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움직이려고 했지만 안전 벨트에 묶인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느릿느릿하게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추고 커버를 닫는 소리가 들렸다. 지용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용의 눈 앞으로 2년 전의 자신임이 분명한 형체가 뛰어가는 게 보였다. 가지 마. 침대 시트를 쥔 지용의 손에 땀이 찼다. 2년 전의 자신은 현관문 앞에 기대하는 표정으로 서 있고, 현관문은 열린다. 지용은 제 눈에 눈물이 차는 걸 느낀다. 제발……. 지용의 안쓰러운 바램에도 불구하고 2년 전의 자신 앞에는 승현보다 키가 조금 작은 멀쩡한 인상의 남자가 서 있다. 남자는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안녕? 하고 말하는 소름끼치는 목소리 앞으로 자신이 누구세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남자는 대답 대신에 2년 전 지용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남자의 힘에 저항하며 소리지르는 자신의 쇳소리가 지용의 귀에 맴도는 것 같다. 그만! 지용은 2년 전의 자신과 남자가 몸싸움을 하며 승현의 방 안으로 밀려오는 걸 지켜본다. 자신은 이제 승현의 콘솔 위에 놓인 승현의 트로피를 집어든다. 망설임 없이 싸우던 남자의 머리통을 트로피로 가격하는 자신을 보며 지용은 눈물을 줄줄 흘린다. 안 돼! 지용은 소리지르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남자가 지용의 바로 앞에 서서히 무너지며 이내 머리에서 피를 쏟는다. 2년 전의 지용과 현재의 지용은 둘 다 울고있다. 지용은 자신의 발이 남자의 피로 젖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지용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황급하게 발치를 내려다보지만 남자의 피 같은 건 없다. 지용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2년 간의 치료는 부족한 것일까? 지용은 눈동자를 황급히 굴리며 승현의 콘솔을 쳐다보았다. 트로피는 없다. 승현이 처음으로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받아온 트로피 따위는 없었다. 지용은 콧물을 훌쩍이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괜찮아 권지용. 그건 정당방위였잖아. 너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잖아.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문제가 있겠지. 지용은 가쁘게 숨을 쉬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승현의 방 문을 닫고 방 문에 기대서자 도어락 커버를 밀어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용은 당연하게도 몸을 굳히고 방 문에 딱 붙어 섰다. 설마 또? 몸이 뻣뻣하게 굳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리고 지용은 여전히 헐떡거리고 있었다. 이러다간 죽을 것 같아. 하지만 겁먹은 지용의 예상과는 다르게 현관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지용이 예상했던 남자가 아니였다.
"권지용?"
최승현이 가방을 현관문 앞에 내려놓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어루만져주는 그 행동에 지용의 울음이 멎었다. 지용은 부들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승현의 뒷목을 감싸안으며 승현이 해 주는 키스를 받았다. 입술을 떼고 나자 승현의 눈동자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늘이 네가 나오는 날인 줄 알았어."
승현이 조용하게 말했다. 데리러 갈까 생각했는데 네가 나를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아서……. 승현의 말을 자르며 지용이 끼어들었다.
"승현아. 나 돌아왔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잘 했어."
승현이 지용의 등을 끌어안으며 지용의 어깨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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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스토리 이해 안되시는 분들을 위해 ㅠㅠ.... 지디와 탑은 연인 사이였고 함께 사는 사이였어요. 어느 날 탑은 출근하고 지디는 집에 혼자 남아있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집에 강도가 들게 되고 지디는 몸싸움 끝에 남자를 죽입니다. 지디는 정당방위라는 게 인정되지만 정신병원에 2년간 갇혀 지내며 탑의 면회조차 거부합니다. 그리고 소설에 쓴 바로 이 시점이 지디가 정신병원에서 나와 탑에게로 돌아간 부분입니다. 뭔가 엉성한 것 같네요.. 갑자기 쓰고싶어져서 스토리 구성도 없이 막 써서 그럴거에요 아마 ㅠ^ㅠ 그나저나 여긴 탑뇽분자들이 별로 없는 듯 하네요...?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은 이 필링! 은 안 틀릴 것 같네요 하... 그래도 저는 꿋꿋한 여자니까 다음에도 갑자기 쓰고싶어지면 똥글 들고 오겠슴당 여러분 기다리세요 사랑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