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집 여사님 덕에 생전 안 먹던 아침밥을 먹고 등교를 해보네. 이게 얼마만이냐.
나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렇게 일찍 등교도 하고.
오랜만에 나서는 등교길은 생각보다 설레는구나.
그렇게 설레서 버스정류장에 다다르자 버스가 도착했다. 럭키-
교복 너무 오랜만이라 설레는 거 아님? 나 진짜 회춘했다! 근데 수능 또 보는 건 좀 시발이당.
이제 버스카드 되면 삐빅 하겠네. 청소년입니다 소리도 나오던가? 어제는 삑- 이였는데 오늘은 삐빅 이겠구나. 버스카드를 자연스레 찍는데
'잔액이 부족합니다-'
아 망했다. 허벌나게 망해벌임..과거의 나 감안안도.. 온갖 육두문자가 다 떠올랐지만 나 성이름 포기를 모르는 인간. 뒷사람에게 양해를 구해보도록 한다.
"..어 이게 무슨일이람? 나는 제때 제때 충전을 하는 사람인데..이게 이게 왜이럴까..?"
물끄러미 다시 그쪽을 쳐다보자 뒷사람은 뭐 어쩌라고요 이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같은..교복이네요.. 지금 왠지 시간도 딱 적당하고 여유 있을 그런 시간이죠 그죠? 마음도 여유롭고."
"...?"
"학생 빨리 안 내리고 뭐해"
기사 아저씨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굴하지 않았다. 민폐면 어떠냐고. 나 학교 좀 일찍 가보자고. 모든게 완벽했는데 과거의 나 대체 뭘 한거냐고.
그렇게 나는 다시 뒷사람에게 어필을 시작했다.
"잠시만요, 그게 그니깐..음 여유는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하잖아여..그래서 그런데 제가 그쪽 주머니에 있는 돈 잠시 잠깐 빌릴까 하는데..아님 그냥 같이 찍어주심 안될까여? 저 집에 진짜 돈있는데.. 급하시면 계좌이체라도 해드릴게요..제발요..! 내일 꼭 드릴게요 학번 말해주시면.."
"여유야 있죠. 지금이- 오 7시 35분, 집에 갔다 다시 와도 뭐 늦어도 8시면 집 갔다오면 충분하겠네요. 그 여유로 집갔다오세요, 그리고 여유는 주머니가 아니라 이런 시간적인 요인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에? 내가 무척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자 그쪽이 더 당혹스러운냥 날 쳐다봤다.
눈빛에 담긴 건 딱 하나, 뭐해 안내리고? 그렇다. 나 내렸어 씨바.
명찰도 못보고 그냥 내렸네. 아오. 되는 일이
"여기서 뭐해?"
"있네 있긴."
"뭐가 있어?"
"아니아니 어., 손에 몽쉘이 두.개.네."
"그럴땐 모른 척 해야지 내가 생색내지- 또 아침 안 먹었지?"
"놉 나 오늘은 아침 먹었어 그랬더니 벌써부터 졸리다."
"아침먹은 것 때문에 졸리긴, 원래도 뭐.."
"너 진짜-"
"..그래서 안 먹어?"
"나 하루네끼야. 조바."
사실 내심 놀라지 않은 척 너랑 장난질이나 하고 몽쉘 까먹고 있지만 너보고 나 좀 많이 놀랐어. 내가 이사가서 놀랄 법도 했겠구나 너.
그야 그럴게 같은 동네 살아서 바로 10분도 안되는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을 정도니까. 눈에서 멀어져야겠단 생각 드니까 바로 간 것 뿐인데.
어제는 청첩장을 쥐어주던 니가 오늘은 손에 몽쉘 하나 쥐어주는게 왜이리 기분이 이상한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아무말 없이 몽쉘 먹는 정재현 옆태 구경이나 하면서 있는데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너 근데 왜 지금 여깄어?"
"어? 왜 여깄냐니?"
설마,
마치 보면 안될 사람이라도 본 건 마냥 보는게 정재현은 마치 내가 과거에서 온 사람인 걸 아는 것만 같았다. 어떡하지 미친.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렇게 당일 날 바로 들키진 않던데.. 주인공 버프요..제발요..
"너 지금 여기 있으면 안되잖아."
"그게..무슨 말이야.."
"너.."
'꿀꺽-'
"선도잖아 오늘,안가?"
그럼 그렇지 성이름 괜히 제발 저렸다^^ 역시 명불허전 똥촉 답네~
"다행이다 십년 감수했.....
가 아니라 나 오늘 선도? 선도????"
개폭망이다. 오늘 학주데이라 내가 편성표보고 지랄 지랄 하던게 진짜 엊그제구나.
망했다 망했어. 시발 망했어.
"재현아.."
"응?"
"나 학교.. 아프다고 하고 가지말까?"
"갑자기 왜? 어제는 태릉간다며"
"하 내가 너한테도 그 얘기 했니?"
"학생회실에서 회의하다가 그랬잖아, 그래서 학주쌤이 너보고 함 가르쳐 보까~ 이랬던 것 같은데."
"그래.. 하루만에 태릉간다던 애가 갑자기 오늘 개한테 물려서 파상풍진단이라도 받았다고 하는 건 무리겠지^^.."
푸흪ㅋ아..그건 아무래도 좀.
웃어오는 너에게 참 너는 나이들어서도 애기때도 한결같이 잘났구나 싶었다. 응 이와중에 얼굴만 보여~
이왕 이렇게 된거 쌤한테 그냥 지각이라고 사실대로 말하고 혼나지 뭐~
뭐가 대수겠어. 너, 나, 열여덟 청춘이, 지금이 중요한거지.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날 또 후회했으며 사실대로 말한 대가로 컴퓨터 실 청소라는 엄벌에 쳐하게 된다시발.
2.
우리학교는 3교시 후 점심을 먹는다. 고로 지금은 점심시간- 그리고 오는 날이 장날인 것이 오늘 씨에이 활동한다네 4교시부터, 그럼 난 본동아리 학생회니까 오늘 정재현을 본다는 말씀.
아 또 참고로 설명하자면 우리학교는 남녀 분반이다. 난 문과 여자니까 1~4반중 3반. 그리고 문과 남자는 5~7반. 이과 여자는 8~9반 남자는 10~11반.
그리고 문과남신 정재현은 5반이야. 아 나는 지금 우리반 절친 신준희와 함께 밥을 먹고 급식 잔반을 버리려고 일어나려는 중이였다만. 때마침 저기 정재현이 보이네. 내가 정재현 좋아하는 건 고1때 부터인지라 이미 절친 준희도 알고 있는 상태였음. 그래서 준희는 아 갑자기 나 배 아픈듯^^ 이러고 눈치껏 잔반 버리고 튀어버렸다.
쥰내 똑또캐..쥰내 눈치이쏘..
"정재 하이 어? 삼각함수과 교수님은?"
"태용이한테 왜그래ㅋㅋㅋ 태용이 먼저 매점 갔어."
"와 성이름이 아주 난 아예 보이지도 않냐?"
"응~ 애석하게도 우리 재현이랑 삼각군말곤 내 눈엔 아무도 안 보이는 구만ㅠ"
"그래도 꼬박 꼬박 대답은 하시네 그래?"
"네다숨~(네 다음 숨진또)"
"저게 진짜"
"줘궤즨쯔~"
"예쁜 내가 참는다."
"응~ 평생 그렇게 참고만 살아~"
여기서 이태용이 왜 삼각함수과 교수냐. 자기가 삼각함수는 기똥차게 잘푸는 것 같다고 그것만 믿고 이과왔다가 낭패보는 중이라 삼각함수 전공은 안되냐고 전과할거라고 정시로 갈거라면서 이과에서 하루살이처럼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 처럼 살아가고 있는 분 되시겠다. 벌써 매점에 갔다니 뭘 좀 아네. 오늘은 황천길 보리 굴비랑 마그마 고추장국이 나오는 바람에 나도 매점 가야되는데. 내가 발을 돌리자 정재현이 물어왔다.
"어디가?"
"매점 가려고."
"어차피 이따 CA니까 나랑 같이 가자."
"어? 어- 뭐 그러지 뭐."
"..난 안 가. 징그러운 것들. 썸이고 커플이고 다 망해라~"
"..왜 그러냐 진짜, 그치?"
재현아. 나 지금에서야 보여. 빨개진 니 귀 말이야. 나 이제야 느껴. 이렇게 설레는데. 어떡하지?
나는 아 그러게? 라며 자연스럽게 둘러대보지만 이미 분위기는 뚜루뚜뚜. 정재현은 큼큼대더니 대뜸 가볼까? 하고는 앞장서서 간다.
같이가 이 눔아. 고딩이라 그런지 풋풋하고. 재현아, 지금의 나는 18살이 아닌 30살이 들어있는 젊은 몸뚱아리일 뿐이라서 너가 너-무 귀여워.
사실 그렇지 않아도 너는 귀여워. 나 다가가도 돼?
3.
매점에 도착하자 보이는 마구잡이로 얽혀있는 저 행렬들. 우리학교 매점은 아줌마의 뽑기운이라 돈들고 무작정 저 정글을 헤쳐 나갈 수 밖에 없다.
고로 일단 로맨스는 뒷전, 나는 저 무리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소리다. 재현아 미안.
"참으로 오랜만이네."
"어제도 왔잖아."
"어제의 나와 비교하지말아줘. 어제의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야."
"뭐래 진짜 ㅋㅋㅋㅋ"
"뭐 먹을래?"
"음- 초코 우유?"
"에몽이야 타임이야"
"나는 타임이 프로도로."
"이거 들고있어. 오늘은 누나가 쏜다."
"맛있는 거 사주면 다 누나야."
뭘 좀 아네 우리 재현이. 익숙한듯 내가 벗은 마이를 받은 재현이를 뒤로 하고 나는 그 무리에 뛰어들었다.
가자마자 프로도가 그려진 쪼코타임과 럭키하게도 딱 하나 남은 내가 먹을 치아바타 소세지빵을 움켜줬는데..그랬는데..
"..."
"..."
"또 보네요."
"..제가 먼저 집은 것 같은데."
"착각이예요, 제가 더 많이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빵 망가지니까 꽉 쥐지말고 놔요."
"싫어요."
"놓으면 반이라도 주랬더니, 그럼 내가 다 먹을거예요."
"그건 해봐야 아는 거 아닌가?"
"해보죠 그럼?"
"힘으로라도 뺏어 보시던지."
"그럼 감사히 먹을게요-"
마치 힘으로는 내가 못이길 걸 알았다는 듯 재수 없게 웃으며 확 가져간다. 내가 조금만 더 버텼어도..아오. 학주 저 진짜 태릉 못가나봐요.
근데
'삐삐삐비삑'
"학생 이거 잔액이 부족하다고 나오는데?"
"아 그럼 현금으로..."
주머니를 뒤적 거리는 듯 싶더니 이내 망연 자실한 표정으로 계좌이체.. 를 외친다.
그러자 매점 아주머니, 아 나 그런 거 몰라 어려워. 이 짝이 계산 할텨? 라며 내게 물어왔다.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
"여기요 현금~거스름도 없어요! 여기 프로도랑 같이"
"오야-"
"감사합니다~~~~"
뒤를 돌자 불타는 눈빛으로 서있는 버스남이 보인다. 그러게 사람일은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을.
선행을 베푸셨어야죠. 나는 앞으로 다가가 한 마디 했다.
"여유는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 맞는 것 같은데?"
"..하"
"패배 인정하는 거죠?"
"처음부터 승부라고도 생각 안 했거든요?"
"반이라도 띵가 줄려고 했더니. 안되겠다-"
"..인정."
"네? 잘 안 들리는데 너무 작아서."
"인..정하겠습니다..그니까 반띵해줘요..나 오늘 방송준비하느라고 급식도 놓쳐서.."
"방송부? 이름이.."
김도영.
이름은 예쁘네. 뭐야 명찰색도 똑같이 흰색이네? 동갑이다. 반말 콜? 그러자 바로 오케이 싸인을 주는 그였다.
근데 왜 그동안 못 본 것 같지. 하긴 그도 그럴게 작년에는 간부수련회가 무슨 학교분위기때문에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엎어졌었고 올해도..아마 내가 안 갔던 것 같다. 정재현이 섭섭해했던 기억도 있네.
그래 거기서 정재현이 고백을 너무 많이 받아서 한동안 속쫄이며 살았었지..
반띵해주자 바로 입에 넣고 개 맛있어.. 라고 외치는 김도영을 보며 참 짠하다고 생각했다.
"이정도면 거의 나 생명의 은인 수준 아닌가?"
"짜증나지만 인정해줄게."
"짜증? 확 도로 뺏는다?"
"은인님 즈승흐응"
씹느라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김도영을 보며 나도 한입 먹고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톡톡 쳐왔다.
뒤 돌자 정재현이 서있고.
"왜 이렇게 안 나와?"
"아 헐 재휸 나 무슨 일이 좀.."
"어? 너"
"정재현?"
"김도영이랑은 무슨일로?"
"아 그게 설명 하기가 긴데..별거 아냐-"
"..길어도 다 들을 수 있는데 나는."
"..."
그때였다. 길어도 다 들어줄 수 있다는 재현이가
아주 많이 좋아했었다고 늦은 고백을 해오는 서른의 재현이와 겹쳐보인 건.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를 두고 정재현 뒤에 있던 김도영이 입을 열었다. 나만 보이게 입모양으로. 세글자.
썸타냐?
"...퀰커쿠컼뤀ㄹ캘럭ㅌㅋ캨렄ㄹㄱ"
"괜찮아?"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의 목구녕으로 넘어가려던 소세지가 팝핑캔디마냥 탁 튀겨 목에 걸려서 사레들리고 말았다.
괜찮냐는 재현이의 걱정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김도영의 썸타냐 뿐이였음을.
"어우 어떡하냐. 괜찮니-?"
"이거라도 먹어"
프로도 우유를 들이대는 정재현을 거절하고 가라앉힐 겸 매점 좌석에 앉았다.
그때 김도영이 입을 열었다.
"난 이만 방송 준비해봐야되서 갈게."
"어 잘가"
"컼ㅋ러..잘가.."
"아 맞다 성이름."
"어?"
"아ㅋㅋㅋ 오늘 일 절-대 잊지 못할거야. 특.별.히. 이건 아무한테나 안 주는 기횐데, 내일 점심방송 내가 디제이하는데 사연 보내고 싶은 거 있으면 뭐가 오든 언제 오든 무조건 너 일빠따로 해줄게."
나 갈게. 아 그리고 사연은 인스타 디엠으로 보내주라. 김도영이라고 치면 아이디 젤 먼저 뜰걸? 얼굴이 프사니까 팔로우해.
그렇게 김도영은 뭘 의도한 건지 쓸데없는 의문만 남긴 채 사라졌고 사라지자 정재현은 매점 테이블에 엎드려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이내 나를 보곤 말했다. 성이름.
"나한테는"
비밀 만들지마.
-
안녕하세요 도짜님들 저와써여~~~~무엇이 대체 재현이를 질투하게 만들었게요 ㅋㅋㅋㅋ
그리고 도영이랑 재현이는 무슨 사이게여~
싸게 싸게 빨리 돌아와봐써여
도짜님들 암호닉요 저번에 신청이 너무 저조했지만 그래두 꾸준히 받겠습니다
전에 신청해주셨던 분들도 지금 밑에 목록에 없으시면 꼭 꼭 다시해주세요ㅠㅜㅠ 제가 누락했으면 욕도 해주시고요!!!!
☆암호닉 닉 닉 닉★
복숭아 님 위퍼 님 내일없는고삼 님 윙코따마님 뽀집사 님 보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