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sychic
비 내리는 잿빛 하늘 아래서 치루는 장례식. 이따금씩 내리치는 세찬 바람을 제외하고 나면 봄비가 내리는 묘지 주변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땅을 치며 설움에 북받친 오열을 토해내는 이도,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것들을 소중히 품어줄 이도 없었다. 누군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면 그가 26년의 인생을 얼마나 헛되이 보냈는지 짐작이나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연고가 없는 그에겐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그가 설정한 철저한 장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수 있게 모두 벙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던 그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귓가를 맴도는 것도 같았다. 아마 그의 예상 속 본인의 마지막은 아무도 없는 쓸쓸한 장례식이었을 것이다. 황금 같았던 주말도 뒤로하고 꾸역꾸역 일어나 이른 새벽에 치러지는 장례식에 참석한 것도 그런 그의 건방진 예상을 깨어주기 위함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품에서 반쯤 시든 흰 국화 한 송이를 꺼내 그의 관 위로 던졌다. 침통히 내려앉은 공기의 무게를 느끼며 서 있다가 걸리적거리는 우산을 접어 내려놓고 축축하게 젖은 소매를 매만졌다. 금세 젖어버린 뺨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턱 끝에 대롱대롱 달려서는 이내 뚝뚝, 반질반질하게 칠을 한 관 위로 떨어져 내렸다.
“더 지체하면 물이 찰 겁니다. 하필 이런 날….”
“이제 됐어요.”
누군가를 보내기엔 적절치 못하게 우울한 날이다. 마지막까지 잔혹한 하늘은 그가 평범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조차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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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분명히 말하지만 난 지금 여기 없는 거야. 한동안은 연락 하지 말고, 내 차 키 어딨지?”
“김성규 선생님.”
“….”
이상한 말투였다. 어조가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부름에 잠시간 굳어 있던 성규는 코트를 향해 뻗었던 손을 천천히 거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까맣게 차려입은 남자가 문턱너머에서 부리부리한 눈초리를 휘둘렀다. 하마터면 마주칠 뻔한 시선에 놀란 성규는 두 눈을 얼른 내리깔고 의자 위에 있던 낡은 서류가방에 집히는 것들을 마구 구겨 넣었다.
“오늘 상담은 모두 끝났습니다. 예약이 필요하시면 제 비서와 대화해주시겠어요?”
기대하고 있던 고분고분한 대답 대신 쿵-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례한 행동에 깜짝 놀란 성규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기어코 말리려는 비서를 뒤로하고 제멋대로 문을 닫아버린 남자는 성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비좁은 상담실을 날카로운 두 눈으로 훑어볼 뿐이었다. 성규는 흘끗 시선을 돌려 선반 위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이십분 전에는 출발했어야만 공항까지의 거리계산이 맞았다. 후- 작은 한숨을 내쉬며 한쪽 입 꼬리를 당긴 성규는 탁자 옆의 작은 베이지색 캐리어를 의자 뒤로 끌어다놓았다. 아직 비행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는 편이니 밟으면 아슬아슬하게라도 도착하기야 하겠지. 성규가 한참 공항까지의 시간을 다시 계산하는 동안 남자의 무심한 눈은 베이지 색의 갓을 씌운 낡은 스탠드 조명과 고장 난 흰색 블라인드, 아날로그 구형 라디오와 커다란 산세베리아 화분을 지나 명패가 놓인 작고 낮은 탁상 위에 머물렀다.
“김성규 선생님?”
“네.”
“아침을 베이글로 해결하신 모양이네요.”
“그건….”
“일전에 연락드렸던 이호원입니다. 분명 오늘 중으로 방문하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이호원?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에 성규는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투박한 전화기 옆에 붙여둔 메모지를 뒤적였다. 이호원…. 중얼중얼 마치 주문이라도 외는 듯 여러번에 걸쳐 이름을 되새기자 남자의 왼쪽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아, 이호원씨? 끝내 찾아낸 노란 메모지 위에는 ‘이호원, 오전 11시 방문상담’이라는 검은 글씨가 휘갈겨져 있었다. 분명 아침에 통화를 했었다고 했는데 어째서 잊었지…? 비서의 행동을 보면 그도 알고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저 또한 까맣게 잊고 있었단 사실에 성규는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드러나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한 것 같네요.”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을 건네며 성규는 노란색 메모지를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여태껏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호원은 어깨를 으쓱이곤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많이 급하신가보네요. 여전히 이상한 억양. 친절한 얼굴에 속아 아무렇지 않게 네. 하는 대답을 내뱉으려던 성규는 입술을 벙긋거리는 것으로 바보 같은 행동을 그만두었다. 질문이 아닌 질타. 성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하자 그도 미소를 지우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텅 비어버린 두 눈과 마주치자마자 발끝부터 돋기 시작한 소름이 허벅지와 등허리를 타고 전신으로 흩어졌다. 우현과 아니, 굳이 우현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눈이 마주쳤을 때, 성규는 별다른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었다. 매일 같이 마주하는 눈들이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마주침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직업병. 성규는 그만큼 교감이라는 것에 무지했다. 공감능력을 우선시하는 심리상담가라지만 성규가 심리상담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성적에 맞는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었다. 헌데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근거 없는 두려움에 휘둘린 두근대는 제 심장소리가 너무 컸다.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목이 잠겨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호원은 손에 들고 있던 자켓을 제 팔에 걸어놓고 성규의 맞은편 소파에 유연한 동작으로 착석했다.
“급하시다니, 간단히 끝내야겠군요.”
“…본인이 직접 상담 받으실 건가요?”
“주말엔 이곳에 계시지 않을 예정입니까?”
“네…그렇긴 한데….”
“좋습니다.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걸로 하죠. 환자 하나를 이곳으로 보낼 겁니다.”
“아, 잠시만요.”
가슴주머니에 꽂아두었던 펜을 집어 들고 성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하세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방문 상담을 받을 예정입니다.”
열심히 그의 말을 받아 적던 성규는 번뜩 고개를 들고 후다닥 제 앞의 달력을 집어 들었다. 달력에는 파란색 동그라미들이 빼곡하게 늘어서있었다. 호원은 제 말이 끊겨 기분이 나빠졌는지 약간 인상을 쓰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규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날짜를 세보곤 이내 눈치를 보았다. …그건 곤란할 것 같은데요. 매주 월요일마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 하나가 예약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무려 세 달치 프로그램이었다. 성규는 그에게 유감의 말을 내뱉으면서 한시도 자리에 가만있질 못하는 작은 체구의 남자아이를 떠올려야했다.
“지금 이 시간부터는 모든 환자들의 예약이 취소될 겁니다.”
“그게 무슨….”
“손해는 충분히 보상해드리죠.”
이상한 말을 술술 내뱉으면서도 여유롭던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그가 오른손을 들어 번쩍이는 은색의 손목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검은 가방 하나가 먼저 들어왔다. 그것을 들고 있는 사내는 마찬가지로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채였다. 순간 성규는 잘못된 일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국제적 범죄 집단, 마약, 살인…. 온갖 무서운 남자들의 인영이 성규의 머릿속을 점령해갈 무렵 호원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탁자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으로 쓸어보더니 소파 위에 먼지가 묻은 손가락을 문질러 닦아냈다.
“청소를 꽤 오랫동안 안 하셨나보네요. 주로 환자 기록은 어떻게 보관하십니까?”
“…보시다시피 컴퓨터는 없어요. 제가 일일이 소견서를 작성해서 보관하는 편…인데요.”
“금고 같은 건가요?”
“네 저기….”
성규가 탁상 뒤의 녹색 철제 캐비닛을 가리켰다. 호원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가 들고 온 가방을 앞으로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
“대충 본론은 끝난 것 같으니 이만 하고 돌아가 봐야겠군요.”
“네?…아, 네.”
금발머리의 남자가 문을 열자 호원은 자켓을 챙겨들며 깔끔하기만 한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끝까지 상담실을 훑는 눈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아무렴 어떠랴. 엉거주춤 뒤를 따라 일어난 성규는 가운을 만지작거리며 손에 베어난 축축한 땀을 닦아냈다. 퍽 불편한 3분이었다.
“아, 2시 비행기를 타실 예정입니까?”
“…그건 어떻게….”
“…웬만하면 다음 비행기를 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럼. 남자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얼떨결에 따라 고개를 숙인 성규는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무겁기만 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바람처럼 그가 다녀간 자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순간 풀려버린 다리 힘에 너울대는 빨랫감마냥 주저앉자 벌어진 가방 틈으로 낙엽을 닮은 돈뭉치가 어림잡아 수십 다발이었다. 다음은 고민할 틈이 없었다.
“이호원씨!”
빠르게 뒤쫓아나간 복도에는 애타는 성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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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진이 빠져버린 얼굴은 고사이 10년여는 흐른 것 같았다. 축축 처지는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려 놓고서 성규는 양껏 시원한 공기를 들이켰다.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에 가슴 언저리가 묵직하니 고통스러웠다.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흘끗대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겨우 틈을 찾아 낸 휴가계획이 막 틀어지려는 참이었으니까. 징징, 깊숙한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눈치 없이 울려대었다.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성규는 결국 심술이 터졌는지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고야 말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너….”]
내팽개치다시피 캐리어를 내려놓은 성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대강 훔쳐냈다. 듣는 사람 짜증나게 바락바락 악을 질러대는 꼴을 보아하니 확인하지 않아도 우현이었다.
“비행기 놓쳤어. 나 좀 늦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뭐?”]
“자리 생기는 대로 갈 테니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비행 스케줄을 확인하던 성규의 팔에 오소소 소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
휴대폰너머로 조잘대는 우현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깜빡이지도 못하는 성규의 눈에 전광판 위로 새겨지는 이륙지연 표시와 방금 놓쳐버린 비행기의 사고소식이 뒤섞여 붉게 번뜩였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듯 쐐기를 박는 정형화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침묵으로 뒤덮였던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뛰기 시작하는가하면 게이트 앞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웬만하면 다음 비행기를 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 어른어른 귓가를 울렸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두 동강 난 에어캐나다 항공기가 빠른 속도로 성규가 있는 공항을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거대한 검은 연기와 그 사이를 무섭게 비집고 타오르는 불꽃이 금방이라도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일렁였다. 손끝부터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돋아났던 소름의 정체를 눈앞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