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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오자마자 몰려오는 피곤함에 느릿하게 씻은 후 침대에 누웠다. 분명 누우면 바로 잠에 빠질 것 같았는데 천장을 보는 순간 잠이 확 깨버렸다. 머릿속에 반복되는 두 얼굴에,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방황한 나까지. 잘못한 것이 분명 없었음에도 이상하게 불편했다. 고개 저으며 애써 부정하려 해도 눈앞에 떠오르는 얼굴에 결국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남팀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뭔가 달라. 방긋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내 앞엔 그저 피곤한 얼굴로 쳐다보는 우현이 서있었다. 애써 좋게 말해 피곤함이지 그의 얼굴은 사뭇 굳어있었다. 어제 우연히 마주친 게 뭐라도 잘못된 걸까. 결국 참지 못하고 보고서를 내러 가는 김에, 작은 메모지에 우현에게 전할 말을 적었다. 팀장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 보고서 위, 노란 메모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러냐며 깔끔하게 적어 같이 그에게 건넸다. 살짝 고개 숙여 받아든 우현이 순간 미간을 좁혔다. 이러면 내가 진짜 꼭 반성문이라도 낸 것 같잖아. “수정할 부분 없으니 자리로 가서 일 보세요.” “아, 네..” 전에도 한번 이런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몰라 고민하다 메모지에 적어 그에게 건넨 적이 있었고, 그는 그제야 웃으며 평소처럼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도 뭔가 삐쳐서 그런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업무 관련으로 날 혼낸 뒤엔 미안하다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과를 하던 우현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자리에 돌아가서도 계속 그의 눈치를 보다 결국 폰을 꺼내들어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우현이 확인하는 것 까진 봤으나, 내 폰은 조용하기만 했다. 메모도, 문자도 안 되면 이젠 정말 방법이 없는데. 이젠 괜히 나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작은 오타 하나에 5분 넘게 잔소리를 듣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자리로 돌아가도 그의 사과는 없었다. 이쯤 되면 나도 이제 화가 날 만하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 모든 것엔 정도가 있듯, 나의 기준에선 우현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혼자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와 다시 폰을 꺼냈다. 아직 성열을 보기엔 좀 껄끄러우나 딱히 얘길 들어 줄 사람은 없고. 결국 성열의 이름 위를 왔다 갔다 망설이는 손가락이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 “미안. 많이 기다렸어?” 솔직히 성열을 어떤 얼굴로 맞아야 할지 몰랐다. 싸운 것이라면 사과를 하면 되고, 그냥 평범한 약속이라면 웃으며 맞이하면 되고. 하지만 고백을 받은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어정쩡하게 넘어가 버린 상황에 내가 먼저 연락한 게 신기했다. 멀리서부터 달려오기라도 한 듯 맞은편에 앉아 숨을 고르는 성열에게 웃으며 커피를 건넸다. 정말 목이 말랐는지 한 번에 반 이상을 마셔버린 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니가 먼저 연락할 줄 몰랐는데.” “아, 그냥.. 근데 너 입가에 상처는 뭐야?”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심한 것도 아니고, 신경 꺼.” 수상하게 말을 더듬는 행동에 그를 흘겼지만, 끝내 무슨 일인지 말하지 않았다. 내가 딱히 어서 말하라며 부추기는 타입도 아니고, 언젠가 말해주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현이 말이야. 무슨 일 있었어?” “뭐?” “아니, 날 대하는 게 완전 달라졌다니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별 일 아닐 거란 그의 말에 수긍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래 된 사이는 아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성열의 계속되는 부정에도 내가 쌓인 게 많았는지 보고 느낀 걸 그대로 털어놓았다. “남우현 얘기 그만하면 안 돼?” 답답함에 남아 있는 커피를 몽땅 다 마셔버리고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곧 이어 들리는 성열의 말에 여전히 잔을 붙든 채,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내가 너무 심했나. 무안함에 헛기침하며 딴청을 부렸고, 그러다 제대로 들어 주지 않는 그에게도 짜증이 나 노려보았다. 내가 그냥 장난치는 줄 아나.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듯 내가 뭘 하든 웃어버리는 그에, 내게 고백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방을 들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화났어?” “내가 뭐.” “에이. 너 같으면 다른 남자 얘기만 하는데 좋아하겠냐?” 뒤에서 부르는 성열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여 걷다 뒤이어 들리는 말에 제자리에 멈췄다. 성열은 방심한 틈에 치고 들어오는 게 여전했다. 마치 잘못을 저질러 그 부분을 콕 집어내는 것처럼 괜히 찔리기만 했다. 예전처럼 어깰 감싸는 행동에도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고, 다정히 말 거는 목소리에도 두근거렸다. 내가 이성열을 좋아해? 말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표정이 그렇게 웃겼나, 가만히 따라 걷던 성열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왜 그래. 뭘 그렇게 생각해.” “아무 것도 아닌데?”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빨리 걸었다. 이것도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그 긴 다리로 성큼 성큼 걸어와 다시 어깰 감싸는 동안에도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젠 살짝 상체를 숙여 얼굴을 살피는 대담한 행동에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이상하다는 걸 너는 알까. “벌써 다 왔네. 언제까지 고개 숙일래? 내가 이러는 게 싫어?” “아, 아니!” “뭘 그렇게 놀래. 어떤 대답이든 기다릴 테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혹시 내가 지금 남들이 보기엔 딱 봐도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정작 본인이 깨닫지 못 하고 있는 경우일까. 천천히 고개 들어 그를 쳐다봤다. 드디어 마주친 시선에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지금 이 혼란스러움을 잠재울 해답을 찾으려 하는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때 내가 좀 뜬금없긴 했는데. 장난하는 거 아니고, 진짜 너 좋아해.” 또 방심했다. 그저 이 분위기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내게 그는 아무런 전조 없이 또 한 번 날 흔들었다. 평소 장난 끼 많던 얼굴이 아닌 그는 그대로 진지했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는 것 외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던 내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정말 모른 척하고 있는 걸까, 미친 듯이 떨리는 심장에 티가 날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그를 쳐다봤다. “내가 싫은 건 아니지?” 싫은 건 아냐. 같이 있으면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딴 생각할 틈이 없어. 이거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난 이렇게 점점 깨닫고 있는데 왜 말을 하지 못 할까. 이럴 땐,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어정쩡하게 넘기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진짜 싫어?” “누가 싫대? 너 좋거든?” 동그랗게 커진 눈을 보자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그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푹 숙이다 재빨리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이런 저런 고민에 빠졌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언제까지 이런 고민만 해야 하나. 웃으며 다시 한 번 더 말해보라는 성열에 아무 말도 안 했다며 잡아떼기 바빴다. 이게 아닌데. 한 번 더 좋아한다며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그를 끝까지 밀어내는 것도 무리겠지. “알았으니까 그만해.” “이렇게 된 거 나 지금 대답 들을래.” 그냥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걸 눈치 채고 있었다. 그냥 도망가면 엘리베이터 타기도전에 붙잡힐게 뻔하고. 그냥 넘어갈 방도를 찾지 못한 채 다시 성열을 마주했다. 아이 같은 두 눈이 보기 좋게 휘어졌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까. “되게 많이 복잡했는데. 나도 좋은 것 같아..” “좋은 것 같아? 그럼 안 되지, 확실하게 말해.” 마치 어린 아이 가르치듯 장난스럽게 인상을 쓰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렇게라도 편하게 해주려는 그의 배려인가. 어느새, 정말 빨개져 버린 얼굴을 힘겹게 들어 입을 열었다. “나도 너 좋아..” 그리고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진정하려 해도 빠르게 뛰는 심장에, 점점 빨개지는 얼굴에 부끄러움이 앞서 그를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앞으로 진짜 잘해줄게. 고마워, 정말.” 듣기 좋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곧 이어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 다시 눈을 감았고, 이마에 조심스럽게 닿았다 떨어지는 기분 좋은 감촉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양 볼을 감싸 다시 한 번 더 이마에 뽀뽀한 그가 살살 볼을 꼬집다 쓰다듬으며 정말 환하게 웃었다. “우리 내일 또 만나. 남우현 그 놈은 그냥 신경 꺼버리고, 힘내. 내일 봐.” 가다말고 뒤돌아 손을 흔드는 모습에 따라 웃으며 조심히 손을 흔들었다. 무슨 행동이든 설레게 만드는 그가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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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뒤에서 질질 끌어버리긴 했지만..
역시 팬픽을 써야하나.,ㅜㅡㅜ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고마워요. 반응이 너무 없어 고민 많이 하긴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분명 계실거란 믿음에 다시 힐링!
고마워요.
+시험 기간이죠? 다들 열공하시고 이번주도 힘내세요!
암호닉♥
도끼
텐더
SZ
해프닝
롤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