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또 뭐해?"
지용이 잔뜩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승현의 화를 풀어주겠다고 이리 저리 끌려다녔던 탓이었다. 끌려다녔다고 해서, 승현이 지용에게 형 여기 같이 가 줘요, 따위의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분명 지용이 주체였는데, 어느 순간에 끌려가는 쪽이 끌고 가는 쪽이 바뀐건지. 초반에는 승현의 화가 풀린 것으로 안도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순간 지용에게는 세상 무엇보다도 제 얇디얇은 다리 두 짝이 소중했다.
"어... 뭐 좀 드실래요?"
"먹일 생각은 있고?"
"당연하죠... 저기 편의점 있네요."
승현은, 사실 지용을 이렇게 끌고 다닐 생각이 아니었다. 단지 같이 술을 마시며 그래, 남자들의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처음 그 생각이 들었을 때는 시간이 너무 일렀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지용을 끌고 다녔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 7가 넘었는데, 차마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형씨, 술 한잔 하실랑가? 무슨 저잣거리 왈패도 아니고, 이건 아니었다. 형... 저 너무 힘든데, 술 좀 같이 마셔줄래요? 애인에게 차인것 마냥 아련하게 해볼까 해도, 첫째로 너무 민망하고, 둘째로 애인이 바로 옆에 있으므로 감정 이입이 안 될게 분명했다. 그, 형, 술 하실래요? 이것도 왠지 건들건들해보인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컵라면 먹을까? 아니면 삼각김밥?"
지용은 어딘가 신나보였다. 먹을 거에 저렇게 행복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승현은 어쩐지 미안해져서 이 컵라면이랑 이 라면이랑 저 삼각김밥이랑 스트링 치즈랑 먹으면 맛있다더라, 등 자신이 아는 편의점 지식을 다 꺼내놓았다. 정말 배고팠던지, 지용은 만원어치의 그것들을 전부 사들고 가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러나 승현의 머리엔 여전히 하나 뿐이었다.
술.
사실 남자들의 대화, 그런 거 필요없고 우선 지용이 술 취한 걸 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부천사가 따로 없다고 그러던데, 자신의 앞에서는 취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단 둘이 마신 거 말고, 회식 자리 등에서도 말이다. 하루는 4차, 새벽 3시까지 달렸는데도 말짱해서 짜증도 냈었다. 물론 서운했던 것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두렵지만 지용이 자신에게 서운했던 것을 듣고 싶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승현은 주류 앞을 떠나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