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료하게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은 새벽 한시를 조금 넘기고 있고, 피부가 꽤 하얀 편의점 알바생은 애꿎은 핸드폰만 틱틱, 하품이 나온다. 불금에 알바라, 지루하다.
" 어서오세요, "
손님의 얼굴도 확인 안한채로 무성의한 인사를 건낸 알바생, 민윤기다. 열아홉이 되자마자 패기있게 자퇴서를 제출하고 하고싶은 음악을 하겠다며 출가한지 이년째, 사회라는게 생각보다 따뜻하지않다는것을 경험한, 사회초년생이라면 사회초년생이지만 아니라면 아닌, 그런 애매한 나이를 가진 21살 청춘, 모태솔로. 이유는 외모 컴플렉스도 뭣도 아닌 그냥 '싫어서'였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었고, 그냥, 고백해오는 여자들이 다 그저그래서, 흔히 말하는 '끌림'이 없어서였다. 주변에선 제발 연애 좀 해보라며 닥달하지만 윤기는 이상한 신념이 있었다. 첫사랑은 정말 끌리는 사람이랑 사귈거라는, 신념이라고 쓰고 목표라고 읽는, 그런것.
" 마쎄요. "
과자 좌판대에서 몇분, 음료수 좌판대에서 몇분을 기웃거리던 손님이 카운터에 맥주한캔과 오징어땅콩을 올려놓는다. 잡생각을 하다 정신이 번쩍 든 윤기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뒤를 돌아 마일드 세븐을 꺼낸뒤에 삑, 바코드를 찍는다.
" …5850원이요, 담아드릴까요? "
또 다시 무성의한 대답, 담아드릴까요? 하며 고개를 들어 손님을 보는데 교복을 보란듯이 입고있다. 요놈봐라, 고삐리가 교복도 안벗고 뻔뻔하게 술 담배를 사려고하다니 모범알바생 민윤기가 가만둘수없지, 하고 맥주와 담배를 옆으로 치운다.
" 안 담아주셔도 되요. "
" 그래, 1400원. "
" 네? "
" 미자잖아, 오징어땅콩만 1400원. "
" 미자아닌데? "
어쭈, 이놈좀 보게, 기가차서 헛웃음이 나왔는데 따라 웃는다. 뭐야 새벽인데 무섭게, 싸이코야? 윤기가 생각했다.
" 그럼 교복은 왜 입고있는데 학생? "
" …어 "
" 학생 맞지? 1400원. "
" 코스프레. "
" 허? "
" 코스프레라고, 교복입은거. "
자신이 교복을 입고있었다는것도 까먹었던것인지 살짝 당황하며 둘러대는데 둘러댈만한걸 둘러대던가, 꼴에 튀어나온 대답이 코스프레다. 새벽에 진상 고딩이라니, 최악이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교복가슴팍에 까만글씨로 쓰여있는 이름, 김태형. 김태형 학생, 이거 안되겠네.
" 몇살인데? "
" 20살, "
" 무슨띠? "
" 돼지띠? "
뻔뻔스럽게 외운듯한 답안을 줄줄히 뱉어내는 태형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손을 내둘렀다. 멍청한 표정을 짓는 태형의 얼굴을 계속 쏘아보고있자니 여학생이건 남학생이건 꽤 많이 울렸을 상인데, 문득 학생때의 자신이 생각나버린 윤기가 웃음을 터뜨린다. 인기는 없었지만 그냥 허세반 호기심반으로 펴봤던 담배, 쫄리는 마음으로 나이먹은 슈퍼에 찾아가 성인인척 담배를 주문하던 모습.
" 김태형 학생? "
" 네, 아니… 학생아니라고… "
" 됐다, 나가자 형이랑. 형이 사줄게. "
" …? "
" 형 학생때 생각나서 사주는거야 임마, 맥주 세캔 더 가지고오고, 저기 삼각김밥 유통기한 확인하고 간당간당한거 가지고와라. "
" …정말요? "
술 잘 못먹는데, 윤기가 고개만 끄덕이자 태형이 큰눈으로 정말요? 하며 눈을 깜빡이는데 키도 큼직한게 어리긴 어린지 하는짓이 꽤 귀염성있었다. 윤기가 사준다는말을 하자마자 금방 음료 좌판대에 걸어가 맥주 세캔을 더 꺼내고, 삼각김밥 유통기한을 신중히 확인하고선 양손에 가득 들고오는 태형이 귀엽기도하고 우스꽝스럽기도해 큽, 하고 웃음을 지었다. 삑-삑- 하고 맥주캔을 자기 카드로 계산한후 카운터 밖으로 나온 윤기가 편의점 밖 테이블로 턱짓을 한다.
"담배는 내꺼 피자. "
" …네, "
" 태형아, "
" 네? "
" 몇살이야? "
" …어, 열,아홉. "
" 엄청 티나, 앞으로는 반에 더 삭은애한테 뚫어달라고해라, 알았지? "
" …네. "
윤기가 짧은 손톱으로 캔맥주를 까서 건내자 태형이 감사합니다, 하더니 벌컥 들이킨다. 알싸한 알코올 향이 코끝을 맴돌자 태형이 목을 살짝 감싸쥐며 크으, 하는 소리를 낸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윤기가 어린애 데리고 뭐하는거야, 민윤기 병신 한심한새끼, 중얼거리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 형 담배 저랑 같은거 피네요. "
" 뭐, 마쎄? "
" 응. "
" 마쎄 이름 바뀐건 아냐? 메비우스래, "
" 알아요, 이름 존나 촌스러워. "
" 이름보다 더 웃긴게 뭔줄아냐? "
" 뭔데요? "
" 이름 바뀐 이후로 메비우스하나요, 하는 손님을 한명도 못봤다? "
어이없다는듯 살짝 터진 실소와 함께 윤기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선 깊게 빨아들인다. 순식간에 뿌옇게된 시야에 태형이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 형 저도 한 까치만. "
" 어딜, "
태형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윤기의 담배곽에 손을 대려고 하자 윤기가 탁, 하고 태형의 손을 쳐낸다.
" 아 왜요 형, 같이 피자며…, "
" 자, "
태형의 눈앞에 윤기가 내민건 새 담배가 아닌 윤기가 피던 담배였다. 그것도 윤기의 손에 붙들린채로, 이게 무슨 애취급이야, 순간 자존심이 팍 상해 고개를 홱 돌리자 윤기가 킬킬웃으며 입가에 더 가까이 대준다. 담배 특유의 알싸한 향이 코를 자극해오자 결국 유혹을 못참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는 태형. 오랜만에 빨아들인 니코틴은 꽤 자극적으로 다가왔고, 취기가 후끈하고 올라온 기분이 들어 삼각김밥을 뜯어 베어물었다.
" 담배 축축해. "
" 뭐, 더럽냐? "
" …아니요. "
태형이 투덜거리자 놀리듯 담배를 제 앞으로 쑥 가져와 킬킬거리며 웃는 윤기였다. 취한것은 아니었지만 금새 상기된 윤기의 하얀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 근데 너 집 안들어가냐, "
" 고삼의 방황. "
" 개까부네,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중이병 재발한거 아니면 순순히 들어가. "
제 입으로 가져간 담배를 마저피우며 다시 시작된 훈계에 태형이 듣기싫다는 의미로 캔맥주를 들이킨다. 미자라지만 덩치때문인지 꽤 잘먹는다는 생각이들무렵, 윤기가 담뱃재를 턴다. 뭉툭하게 떨어진 담뱃재가 주황색 불빛을 내며 바닥에 불똥을 튀겼다.
" 맞아요, "
" 뭐? "
" 중이병 재발. "
" 중이병 치료제가 매라던데. "
" 아닌데, 술과 담배라던데, "
" 그건 악화제같은데, "
윤기의 말꼬리를 늘여잡아 말장난을 쳐대는 태형이 마냥 야살스럽진 않았기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술이 약하고 입에 맞지않아 평소엔 입에 대지도않는 윤기였지만 태형의 앞에선 이상하게 잘만 들이켜졌다. 이상하게 정신도 말짱하고, 사람은 기분따라 주량이 변한다던데, 아마 이런경우가 아닐까 싶어 얼마 남지않은 맥주를 입안에 털어넣고서 새 맥주캔을 하나 더 깠다.
" 빨리마시면 더 취하던데. "
" 설마 미자보다 못마실까, "
미자,미자, 몇개월만 지나면 미자 탈출이구만 말끝마다 미자를 붙여대는 윤기가 새삼 아니꼬와 보란듯이 반도 더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한번에 들이마셨다. 태형을 따라 윤기도 벌컥, 윤기를 따라 태형이 새 맥주캔을 까서 또 벌컥벌컥, 무언의 자존심싸움에 서로 번갈아가며 벌컥벌컥 들이킨다. 으, 목따가워. 맥주의 강한 탄산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자 태형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 상황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윤기가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연다.
" 근데 너 어디사냐 태형아, "
" 요 주변, 왜요? "
" 요 주변,인데 왜 한번도 못봤지? "
" 난 형 자주보는데, "
" …내가, 내가 너한테 담배도 팔았냐? "
" 사복입으면 그냥 주던데요. "
" 헐랭방구, 나 완전 미자 탐지긴데 널 못알아봤다고? "
" 탐지기는 무슨, 큽. "
헐랭방구래, 헐랭방구. 21살 성인남자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태형이 말대꾸를하다 뒤늦게 터진 웃음을 참아가며 윤기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형, 슬슬 취해가는지 헤실헤실 웃고있다. 가오리를 닮은게 꽤 귀엽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 형 한까치만, 제발, "
" …어, 어? "
" 담배좀, "
" …아, 담배, 담배. 그래 담배 펴야지! 고삼은 담배 좀 펴야돼. "
불과 몇분전까지만해도 중이병이다 뭐다 하면서 태형을 훈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멍청한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어제끼는 윤기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하얀 반팔티 네크라인 위 하얀 목덜미가 열이올라 불긋불긋, 담뱃불을 붙여준다며 라이터를 집은 집게손가락끝이 불긋불긋했다. 태형이 윤기의 담배를 입에 물자 틱,틱, 하는 소리와 함께 희뿌연 담배연기가 편의점 앞을 감쌌다.
" 형 진짜 하얗네요? "
" 응? 뭐가, 피부가? "
" 완전 백인피부같은데. 혼혈같은거 아니죠? "
" 혼혈? 그런거 아님. "
" …큽, 아님? 아님 됐음. "
" 이응이응, "
술버릇이 인터넷용어 남발인가, 웃음보가 터지기 일보직전인 태형이 담배를 빨아들이다 켁켁댔다. 근무시간에 음주, 21살 성인남자가 맥주 한캔 반 먹고 취하다니 여러모로 웃긴상황이었지만 태형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 형 취했어요? "
" 노노, "
" 취했잖아. "
" …아직임. "
" 취했는데? "
" 아아아, 괜츈. "
" 큽...크흡..큭... "
결국 터져버린 웃음, 편의점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어깨를 경련하며 웃어제끼는 태형이었다. 저 때문에 웃는건줄도 모르고 의아하게 태형을 바라보다 태형의 어깨를 토닥이는 윤기. 고요한 복합상가 골목에 태형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태형아, 취함? "
" 큽....노노.. 안..취함.....큭...크읍 "
" 아 그래? 형도 취한거 노노해, 맥주 더 가져와랑. "
" 알았, 큭, 어, 요. "
" 이응 키윽~ 소주 가져와도댐~ 비싼술은 안댐~ "
생긴건 완전 차갑게 생겼는데, 취중본색이라는 말을 이럴때 쓰는거라던가. 편의점 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간 태형이 음료 좌판대를 기웃거린다. 사실 태형은 윤기에게 관심이 있었다. 한창 이성에 눈을 뜰 나이고, 혈기왕성한 나이지만 어째선지 태형은 수많은 여자친구를 사귀었음에 불구하고 정말로 좋아해본적이 없었다. 오히려 윤기같은 스타일의 하얗고 마른남자를 보면 아랫도리가 시큰해진다던가, 하는 징조때문에 자신의 성취향을 슬슬 깨닫고 있을 무렵이었던것이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신중하게 호감이 있어서 자주 들른건데 매번 처음 온 손님처럼 대했던것이 배알꼴리고, 결국 교복을 입고 술 담배를 사니까 그제서야 관심을 보인 윤기가 얄미워 일부러 소주를 두병 꺼내고 카운터에 있는 플라스틱 컵도 하나 꺼냈다. 시간은 어느덧 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고, 윤기의 교대타임은 새벽 5시, 낮 알바생은 행운스럽게도 친한 후배였다. 나이스 샷, '정국아 문자 보는대로 최대한 빨리 알바 교대하러와^^ 형이 나중에 치킨사줌' 하고 문자를 보내자, 잠귀가 밝은 후배녀석은 몇초도 지나지 않아 '아싸 스노윙ㅋㅋ' 하며 답장을 보내왔다. 나이스, 말그대로 나이스샷이었다.
" 형, 소주 먹을 수 있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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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델루젼입니당 (매우졸린)
쉬어가는 타임의 단편입니다.....
가볍게 읽으시면 좋을것같아요 나코틱과는다르게
내면묘사 그런거없고 파릇한 청춘게이입니다 상,하 단편으로 끝날꺼라 나코틱에 큰지장은 없습니다.
하.. 나코틱이 잘 안써져서 이것 먼저 들고 왔네요
한편에 다 올리려고했는데 잠..잠이.....
그만...잠..잠이...!
전 이만 자겠습니다.. 사실 지금도 조금 졸고있어요....
나코틱은 최대한 빨리 들고오겠습니다!
피드백은 항상 달게받습니다..
감샇ㅂ니다
암호닉
호시기호시기해 융기쨔응 비리미 명치 유니크 복숭 22 독방 민트초코 태태매거진 슈가 깨끗한나라 TRG-42 에어컨 뷔뷔 스웩 자괴감 검은별 희 뷥슈가_ 강낭콩 이제봤니 칸쵸 소름 윰슙 슈가곰 뿌뿌 맥스봉 모카 애플민트 툐롱툐롱 큥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