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가이드.
문 앞에 기대 앉아 그저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검고 - 푸르고 - 검다. 먹구름 낀 하늘을, 그 어둑어둑한 곳에서 차마 눈 뗄 수 없어 눈을 부볐다. 해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그의 능력이 '비'임을 어렴풋이 깨달아, 문 뒷편 흐느낌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방법을 앎에도 행하지 않음은 또 무엇인가. 문 열면 모두 끝날 일이었다. 문고리를 돌려 열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끝날 것임을 알았음에도-'그'의 말과 울고 있을 진영의 얼굴이 겹치듯 흘러 무릎에 얼굴 묻고 울먹였다.
'가이딩'은 그물과 같다. 센티넬을 가이딩하는 동안 그물은 해지고, 가이드는 목숨이 깎여 죽고 만다.
「제게 맞는 가이드는 없었어요...지금까지는」
진영이 그동안 맞는 가이드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모두 죽어버린 것. 두려움과 함께 서러움에 떨었다. 가을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다 이내 거세게 변했다. 비가 찼다. 찬 비 내림에 제 발목 젖는 것은 모르고 그저 눈물 몇 방울에 뺨 젖는 것 서러워 울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사납게 거리를 두들겼다. 빗물에 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카락 끝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만 쳐다보았다. 눈물 빗물 섞여 흐른다. 사랑하는-사랑했던-이가 두렵다.
현실은 만화도, 소설도 아니다. 저에겐 죽음을 각오하고 진영의 옆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폭주하는 센티넬은 스스로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한다. 하루, 길어야 이틀 후면 제 풀에 지쳐 쓰러질터다. 그러면 비도 멈출 것이었고, 저는 다시 다른 센티넬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도 저에게 무어라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에 있어 센티넬은 절대적 약자였다. 아무리 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한들, 가이딩 없이 그들은 손에 폭탄을 쥔 어린 아이와 같았다. 통제 없인 자멸할 뿐이다.
센티넬이 죽음을 맞이할 땐 꼭 그 능력에 맞게 소멸한다. 찬식은 한 번 센티넬의 죽음을 본 적이 있었다. 머리 끝부터 수많은 불꽃이 되어 사라지던 센티넬을. 발화(發火)하고 또 발화(發花)하던 그 아름다움을, 서러움을. 진영은 구름이 되어버릴까. 빗방울 되어 스러질 터인가. 마치 인어 공주와 같이 거품이 되어 사라질 터다. 어리석게도 목소리도, 다리도 잃은 인어는 끝내 버림받고 거품 되어 사라진다. 찬식은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참으로 어리석고 가련한 인생이다. 사랑은 희생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찬식은 믿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희생에, 사랑에 몸 던지지 않는다. 옳다고 생각한다. 헌데도 비는 끊임없이 내린다. 찬 비 내리던 것이 이젠 점점 추워진다. 얼어붙을 것만 같은 가을이다. 비는 눈꺼풀에서 내려 발목까지 내린다. 눈물 문질러 닦고 일어났다. 집까지 가는 길은 미치도록 춥다. 누군가의 울음 소리 방울방울 액화되어 고대로 찬식에게 쏟아부어진다. 의미없는 욕설만 몇 마디 씨근덕댔다. 가을인데 춥고 지랄이야,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