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OST-내님의얼굴
成事在天
성사재천: 일이 되고 안됨은 오로지 천운에 달렸다.
아비는 한양에 온 뒤로 자주 볼 수 없었다.
덩달아 마루에 너렁너렁 누워 살던 삼촌도 자주 보이지 않게 되었다.
관상쟁이가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기에 하나 있는 자식을 내버리고 집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바깥출입을 즐기지 않던 매부 지간이 무슨 일이 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였다.
민석은 굽혔던 허리를 피었다. 먹구름이 뒤덮인 하늘은 음울하기 그지없었다.
이만하면 쑥떡을 만들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민석은 소쿠리를 흔들었다. 고슬고슬한 쑥에서 짙은 향이 올라왔다.
형이 과거에 급제했다. 아비는 비통하게도 말했다. 그리고 얼마뒤 형에게서 서신이 왔다.
섬에서 아버지와 삼촌, 형이 한 데 모여 즐겨 먹던 쑥떡이 그립다.
사실은 아우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쑥떡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하는 팽헌삼촌의 물음에 세식구가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그제 서야 경직 되어 있던 아비의 얼굴에 묘한 웃음꽃이 떠올랐다.
멸문을 당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형의 급제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얼굴에 처음 떠오른 미소였다.
쑥을 골라내던 민석은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관직에 나가면 화를 큰 화를 입는다던 형.
그러나 형은 거침이 없었다. 아비는 미신을 믿는 관상쟁이일 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형의 얼굴도 민석의 얼굴도 편치 않았었다.
'두구두구두구'
지면을 흔드는 소리였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임에도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민석은 불안해졌다. 말발굽이 땅을 치며 올라오는 소리가 섬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섬에서도 한참이나 고개를 올라야 하는 곳에서 살던 민석이었다.
말이라면 숱하게 보아왔지만 이렇게나 많은 말들이 뛰어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보았다.
비탈길 위로 검붉은 갈기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말을 탄 사내들이 일제히 민석에게로 달려왔다. 민석은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그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그럴수록 민석은 몸이 굳어지는 듯 했다.
이윽고 맨 앞에 있던 사내가 민석의 코앞까지 왔다. 민석의 몸은 돌이 된 것인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고삐를 쥔 사내가 말을 멈추려 했지만 급정거하기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민석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말은 키가 컸다. 그리고 아주 높이 뛰어 오를 수 있는 동물이었다.
그는 민석의 위로 뛰어 올랐다.
"대군!!"
굵직한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석은 감았던 눈을 떴다. 구릿빛 말을 탄 사내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염려의 빛이 스치고 있었다.
민석을 향한 것이 아니라 민석의 위로 뛰어오른 남자를 향한 것이었다.
"나리 괜찮으십니까!?"
말에서 뛰어 내린 남자가 그들을 향해 급하게 달려왔다.
민석은 몸을 떨었다. 남자는 무시무시했다.
한 눈에도 격식 있게 차려 입은 남자들이 민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네 이놈!"
우악스런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민석을 잡아먹기라도 소리친 사내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민석은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소리를 지를수록 겁이 나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만."
단정하면서도 호방한 목소리였다. 거칠지만 기품이 배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민석의 뺨이 떨렸다.
쉬이 그럴 수가 없었다. 눈물은 이미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무엇 보다 겁이 났다.
높은 이를 건드린 것 같았다.
대군이 어떤 관직인지는 모르지만 사내의 부하들이 입고 있는 옷은 한 눈에 보기에도 좋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잘 갖춰 입은 자들의 대장이니 분명 지체가 높은 이 일 것이다.
민석이 꿈쩍도 하지 않자 사내는 뭉툭한 칼집으로 민석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한참이나 보던 이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