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다. 01
- 귀환 (1)
아. 시끄러 누가 자명종을 바꾼거야? 난 이거 아닌데? 엄마가 끄겠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무도 나와서 끄지 않은 것이다. 미친듯이 울리는 소리에 내 귀가 다 지쳐가는 기분이 들어 결국 이불더미에서 일어섰다. 대체 아침 댓바람부터 엄마가 어딜 나간거람? 시계가..
" 어? "
비몽사몽한 머리를 애써 흔들어 깨우며 흐릿한 시야로 시계를 찾아 이리저리 눈을 돌렸지만 시계는 커녕 애꿎은 책더미만 보일 뿐이였다. 뭐지?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소리를 따라 이불을 이리저리 들추니 웬 납작한 네모가 미친듯이 울리고 있었다. 이건가? 이건 뭐야? 두께는 얇은 것이 한손에 착 감겼다. 중앙에 동그란 홈이 파여있어 그걸 꾹 누르니 순식간에 화면이 밝아졌다. 화면에 떠오른 글자를 읽어보자니 ..뭐?옆으로 밀라고? 화살표를 따라 옆으로 밀었더니 오오! 화살표가 손가락을 따라온다! 이게 대체 뭐지? 다마고치도 이런 능력은 없는데! 한껏 신기한 기분에 이리저리 둘러보자니 묘하게 손이 크다. 어.. 그러고 보니 여기 우리집 아니였지.
" 여긴 대체 어디야? "
어? 나말고 다른 누군가 또 있나?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이불을 들추고 침대 밑을 살펴보아도 아무도 없다.
" 헉! 귀신? "
또다! 왜 나랑 하는 말이 같은거지?! 깜짝 놀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물러가라 물러가라 속으로 빌었다. 이러면 엄마가 무서운 것도 다 사라진다고 했단 말이야.
" 갔겠지? "
근데 왜 안사라지는거야?! 덜덜 떨며 조심스럽게 이불을 내리자 침대 옆 협탁에 어떤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나와 똑같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것도. 헉! 내가 가라해서 이불안까지 쫓아왔나봐! 으..
" 미안해요! 무서워서 그랬어요! "
이번에도 하는 말이 같았다. 그럼 그 남자도 내가 무서워서 이불에 숨어든걸까? 조금 긴장이 풀려 다시 이불을 내리니 거울 속 그 남자도 이불을 내리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용기가 생겨 주먹을 불끈 쥐고 완전히 이불을 벗어나니 그 사람도 나와 같은 행동을 취했다. 어라? 조금 이상한 마음에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똑같이 손을 뻗는 그 남자.
" 이거.. 거울이잖아? "
동그란 눈매와 통통한 입술이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다. 조금 웃긴 표정을 짓고 입을 크게 벌리며 아무리 이상한 행동을 취해도 거울 속의 남자는 나와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 설마..나? "
말도 안돼. 이 남자는 누구고, 여긴 어디고 난 어디로 온거야? 혼란스러운 마음에 빠르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지만 낯선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 마루바닥은 없고 웬 하얀 대리석 바닥만이 눈에 밞혔다. 우선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보자. 꿈일거야. 천천히 방문을 닫고 침대에 주저앉아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손끝에 감기는 이불의 촉감이 지독하리 선명하다. 숨쉬는 느낌마저도. 정말 꿈이겠지? 곧 우리 할머니가 데리러 올거야 그래,걱정하지 말자. 그냥 편하게 잠이나 자야지! 그제서야 정리된 마음에 침대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우리 집에는 침대 없는데! 이 방 주인은 좋겠다! 신기한 마음에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을까 벽장에 커다란 갈색 책이 보였다. 그리고 새겨진 글씨는 OO초등학교 26회 졸업앨범 어라, 나 저기 다니는데! 이 방 주인은 이미 졸업했나보구나! 신기한 마음에 얼른 뽑아 책을 펼치니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와! 김종인이 왜 여기있지? 이름이 같은건가? 진짜 닮았는데! 김종인 이라는 사람들은 다 시커먼가봐 크크 웃으며 책장을 넘기자 또 다시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훈이랑. 진아랑, 민희랑... 어라? 앨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였다. 이상하다? 앨범이 벌써 나왔나? 아닌데 우리 졸업식 안했는데.. 앨범은 졸업식에 준다고 했는걸? 설마! 꿈이니까 미래에 온건가? 그런건가? 크크, 완전 웃기게 나왔네 꿈에서 깨면 엄청 웃기게 나왔다고 놀려줘야지! 아, 내 사진은 잘 나왔을까? 두근두근, 기대감에 종이를 빠르게 넘겼다. 6학년..6반! 우리반이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앨범을 넘겼더니 내 사진이 보였다. 으! 이상하잖아? 역시 이때 애들이 장난쳐서 그래! 크크 그래도 기분 좋다! 친구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며 넘겼더니 사진이 끝나고 편지가 나왔다. 어라? 나는 편지 안썼는데 언제 우리반 애들이 다 쓴거람? 꿈에서 깨면 혼내줘야지! 왜 나만 빼고 쓴거야! 그래도 읽어봐야겠다 흠흠.
" 우리반 정말 추억 많았고 너무 재밌었어 그리고 이걸 읽지 못할 징어야.. 알고있네 짜식 나 몰래 썼구만? 니가 비록 여기 없어도 우리는 널 기억할거야. "
음? 내가 그렇게 인상 깊었나? 뭘 기억까지야 짜식 부끄럽네. 실실 웃으며 읽어가던 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읽을 수가 없었다. 왜 하나하나 다 나를 기억한다고 하는 걸까?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없는 사람마냥.. 뭐야, 마치 내가..
" 죽은 것 같잖아. "
에이, 김징어 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날 기억해준다고 했는데! 그런 못된 생각이나 하고.. 어? 근데 여기 왜 국화꽃이 같이 나온거지? 아이들의 편지를 하나하나 다 읽고나니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편지가 남아있었다. 장문이네! 우리반 아이들을 한명한명 언급하며 쓴 편지는 코끝을 찡하게 울렸다. 감동이구만. 우리 선생님 이거 쓰면서 우신거 아니야? 근데 왜 나한테는 안적으신거지? 코를 박고 꼼꼼히 읽었지만 아이들 이름중 내 이름은 없었다.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에 글을 읽어 내려가자 마지막으로 라는 말과 내이름이 드디어 나왔다.
[ 마지막으로, 이자리에 없는 징어에게 ]
..어?
[ 선생님은 너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행복했고 지금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 구나. 니가 없는 우리반은 얼마나 쓸쓸했던지. 너의 웃음과 따뜻함을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할 거란다. 사랑한다. ]
아이참, 정말 다들 왜 그런담. 두근, 두근 가슴이 터질듯이 울리는 심장소리에 손을 올려 아프게 쥐었다. 나 살아있는데. 다들 왜 이렇게 쓴거야? 응?
입술이 덜덜 떨려왔고 눈이 떨어지지 않는 앨범에서 고개를 올리자 검은색 교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교복의 명찰에 한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사랑스러운 한 아이가 우리의 곁을 떠났어도 6학년 6반은 추억할 것입니다.]
도경수 라는 명찰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