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곧 시작합니다. coming soon |
'키다리 아저씨께.'
방안에 사각사각 연필소리가 울렸다.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책 향기에 소년이 고개를 들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방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갈색 원목 탁자에 앉아 편지를 쓰는 소년의 하얗고 큰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분홍색 캐릭터 연필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만족스러운지 소년은 한없이 연필을 쓰다듬었다가 편지를 바라보았다가를 반복했다. 소년을 닮은 하늘색 편지지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에 흔들렸다. 창 밖에는 새하얀 구름이 계절을 알려주듯 평화롭게 흘러갔다. 창가에 걸터앉은 비둘기 두 마리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책상 한 쪽에 자리잡고 앉은 치즈색 고양이는 꼬리를 흔들며 하품을 했다.
'오늘도 역시 좋은 날입니다. 이 곳은 봄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에요. 학교 교정에는 벚꽃이 한가득 피었고, 텃밭에는 파릇파릇하게 새싹이 돋아났어요. 학교 고정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났고, 창문에 심어놓은 화분에도 꽃망울이 하나둘 맺혀서 기분이 상쾌해지곤 합니다. 언제 꼭 한번 놀러와주시길 바라고 기다리도록 할게요.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록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놀러오신다면 직접 저희 학교를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요. 학교 건물이나, 운동장, 기숙사...모두 다요.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아저씨 덕분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가고 있어요. 요즘에는 방과후에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전을 읽곤합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책 냄새는 참으로 기분 좋습니다. 조금은 눅눅하게도, 조금은 마른 풀 냄새 같기도, 조금은 냄새에서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나는 듯 한게 오묘합니다.'
편지지에 춤추듯 연필을 놀려 써내려가던 소년의 손이 멈칫 멈추었다. 잘 써지지 않는지 연필 끝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보니 이미 소년의 편지지에는 꽤 고민해서 쓴듯 썼다 지운듯한 꾹꾹 눌러진 연필 자국들이 한가득이었다. 편지지를 들어 읽어보며 한참을 다시 고민하던 소년은 이끝내 미련을 버렸는지 가차없이 편지지를 구기고는 책상 옆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소년은 하늘색 편지지를 다시 한 장 북 찢어내더니는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키다리 아저씨께
요즘은 확실히 봄이 왔는지 불어오는 바람에 봄내음이 가득합니다. 아저씨께서는 일하시느라 바쁘셔서 봄바람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 편지에 봄바람을 가득 담아 보냅니다. 이렇게 밖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저씨께서는 감사하게도 제가 좋은 작가만 되주길 바라신다하셨지만, 태송 원장님께서는 받기만 하지말고 감사의 마음을 확실히 표현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작가가 된다면, 제 첫번째 책은 아저씨께서 꼭 처음 봐주셨으면 합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가장 큰 감사의 표시입니다. 어제도 방과후에 학교 도서관에서 고전을 읽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책 특유의 그 향은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퀘퀘하다 느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저는 그 향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어쩌면 불치병처럼 평생을 제 주위에서 떠나지 않는 중독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좋습니다. 아저씨께서도 작가인 제 꿈을 응원해 주시는 만큼 책 내음을 좋아하실거라 믿고 바쁘신 아저씨를 위해 책 내음도 한가득 넣어 보냅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두 가지 향이 함께 날지 모르겠습니다.'
"최준홍."
조심조심 바른 글씨로 편지를 써내려가던 소년이 움찔하더니 선을 쫙 그어버리고 말았다. 순간 허망한 표정을 짓던 소년이 고개를 홱 돌려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준홍을 불렀던 소년은 그저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서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가만히 연필을 쥐고 노려보던 준홍은 울상이 되어 편지지를 내려다보았다. 지우면 어떻게든 사라지겠지. 준홍은 희망을 갖고 지우개로 벅벅 지우며 볼펜으로 쓰지로 않았던게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자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이미 남아버린 연필 자욱은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한없이 계속 지우다보니 편지지의 하늘색이 벗겨져갔다. 하얗게 얼룩처럼 번진 흔적을 바라보며 준홍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 편지지는 다시 회생시킬수 없을 것 같았다. 얼룩까지 남아버려서 이걸 어떡해. 어쩐지 오늘따라 술술 잘 써지더라. 준홍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야, 유영재!"
뭐. 준홍이 침대에 누워있는 영재를 매섭게 불렀지만 영재는 눈을 감고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씩씩대던 준홍이 됐다는듯 몸을 돌려 책상에 앉고는 새로운 편지지를 한 장 꺼냈다. 다시 또박또박 옮겨 적고있던 준홍을 영재가 나지막히 불렀다. 야. 최준홍. 아 뭐 왜. 속상하냐? 그럼 안속상하냐? 준홍이 쏘아붙이며 영재에게 손을 휘저어 말 걸지 말라는 의사를 내비췄다. 한참을 말 없이 준홍이 편지쓰는 모습을 바라보던 영재가 준홍에게 말을 걸었다. 야, 정대현은 어디갔냐? 아 몰라 병신아. 나 바뻐. 기분이 순간 나빠진 영재는 입을 부루퉁 내밀고는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제서야 조용해진 방에 준홍이 만족스럽게 웃고는 기지개를 한번 쫙 폈다.
"으아-. 흐. 시원하다."
마저 편지를 써내려가던 준홍이 살랑살랑 봄바람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아아, 아저씨 보고싶다. 다시 집중해서 거의 편지가 끝나갈 무렵 바깥에서 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홍아, 우리 지금 외출해야 돼. 알겠다고 대답을 한 준홍이 편지를 마무리지어 연필을 탁 소리 내어 내려놓고 곱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아마 외출 할 때 우체국에 들려 편지를 부치면 될 것이었다. 서둘러 겉옷을 걸친 준홍이 편지를 소중히 껴안고 방 바깥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아저씨가 참으로 보고싶은 날입니다. 머리는 검은색이실까요? 아님 갈색이실까요. 어쩌면 흰색일지도 몰라 조금 가슴이 아프려합니다. 아저씨께서 늙지않으시고 오래오래 저와 함께 살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꼭 유명한 작가가 되어 아버지나 다름 없는 아저씨께 효도하며 살고싶습니다. 어서 그날이 오길 아저씨께서도 원하고 계신다고 믿고있겠습니다. 이제 잠시 외출하고 오려합니다. 오늘같이 바람이 살랑하니 좋은 날에는 방안에만 틀어박혀있으면 오히려 좋지않을 것이라 생각하니깐 아저씨께서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오후에는 공부할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따스한 2013년 3월 23일 토요일 봄을 닮은(자칭) 준홍 올림' |
뻘뻘뻘 |
네 결국 저질렀네요. 한참을 글잡을 왔다갔다 하기만 하며 눈치보고 있었는데 결국은 썼습니다. 구독료도 안걸었어요. 왜냐하면 구독료걸만한 글이 아니거든요........ 그냥 저 스스로 만족감을 얻고싶어서 쓴 글이니깐 댓글도 기대안합니다. 껄껄껄. 연재하다보면 재밌어지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