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들은 나의 빛나는 장애인 연기를 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연기에 너무 몰입한 모양이었다. 나를 쳐다보던 양아치들 중 한 명이 툭 내뱉었다. 야, 얘 침흘려. 그 말에 양아치 한 명이 내 입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땅바닥에 침을 내뱉었다. 에이 씨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장애인년이 걸리고 지랄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양아치들이 눈으로 힐끔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시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양아치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양아치들이 내 눈 앞에서 멀어질 때 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흘러내린 침을 닦아냈다. " 이제 집에 가야.. " 고개를 쳐드는 순간 나와 마주치는 눈동자에 걷다말고 자리에 굳었다. 나를 쳐다보는 나른한 표정의 남자아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그 나른한 눈동자 속에는 마치, 나는 네가 지난 밤에 변백현 몰래 포르노를 본 것을 알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했다. 의역하면, 나는 네가 방금 장애인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뜻이겠지. 나는 생글 웃어보이고는 제자리에서 재빨리 도망쳤다. 으아아아아악! 얼굴이 확확 불타올랐다. 잘 구운 감자처럼. 불타는 감자처럼. 아마 저 남자는 앞으로 나를 장애인 연기하는 장애인으로 볼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리저리 치이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나는 변백현에게 매달렸다. 비록 여우같긴 했지만 정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 줄 줄 아는..
" 떨어져. " 여우새끼였다. 변백현이 도도한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내 얘기를 듣다말고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시간은 새벽 두시. 땀 뻘뻘 흘리고 흙이 진탕이 되어 돌아왔으니 내가 더러울만도 했다. 나는 변백현의 다리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오늘 하루 얼마나 스펙타클했는지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내 말이 측은했는지 변백현이 다정하게 팔로 내 어깨를 잡고 남은 발로 내 몸을 내려찍었다.
" 아 좀 떨어지라고! "
" 배켜나! " 결국 변백현은 발로 나를 차올리고 나서야 방 안으로 쿵쾅쿵쾅 들어갔다. 나는 마지 소설 속의 여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자리에 쓰러져 흑흑 울어댔다. 설마 변백현이 방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어 힐끔힐끔 방문을 쳐다보는데, 변백현은 금세 잠에 들었는지 나와 볼 생각조차 않았다. 나는 작게 혀를 차올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재미없네. "
정말 재미없었다. 나는 방으로 쭐래쭐래 걸어들어왔다. 심신이 다 지쳤다. 나는 침대 위로 낙하하듯 점프했다. 오늘 하루종일 스펙타클한 일들을 생각하면 수면 보충을 조금 더 해 놔야 될 성 싶었다.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변백현한테 엉덩이를 자진모리 장단으로 맞고있었다. 순식간에 엉덩이는 오리궁뎅이가 되었고, 눈알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흰자는 그새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변백현이 칼을 들고 어슬렁 어슬렁 나타나더니 그 칼을 쳐들고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변백현이 내게 점점 그 칼을 들고 다가오더니 아무것도 없는 어두컴컴한 앞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 도경수를 존나 카와이 하게 잘라볼게요!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경수를 존나 카와이하게 자르겠다니.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도경수를 카와이하게 자르겠다니. 두 번 다시 없을 악몽이었다. 가만히 있다보니 목이 너무 말랐다. 나는 꾀죄죄한 얼굴로 부엌으로 나갔다. 변백현이 앞치마를 두르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계란후라이인 모양인데, 계란후라이가 맞나 싶을 만큼 까맸다.
" 어, 일어났네." 변백현의 흥미없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봤자 변백현은 내 대답을 듣기 위해 물어 본 것이 아니었다. 집 안에 탄내가 진동했다. 나는 코를 틀어막고 물을 들이마셨다. 변백현이 그런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새까맣게 탄 계란후라이를 내게 넘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스러워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이 틀림 없었다. " 컥. " 순식간에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계란후라이를 변백현이 만들었다는 생각에 너무 감동받은 모양이었다. 먹던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지 못하고 목에 걸렸다. 변백현이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 " 아,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감동 받으면 곤란한데.. "
뭐이새끼야? 내 손에 들려있는 후라이팬으로 변백현의 대가리를 찍을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고 몇 번이나 더 기침하고 나서야 기진맥진한 얼굴로 식탁에 쓰러졌다. 변백현이 혀를 두어번 차며 나를 응시했다. 나는 변백현에게 세번째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존나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순화시켜 네 오염된 콧구멍에 나의 순결한 세번째 손가락을 꽂아올리겠다는 뜻이었는데 변백현은 유유히 반사, 하며 집을 나섰다. 우으아아아아아악! 짜증이 치밀었다. 어떤 의미로든 변백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집에있는 레이싱걸 잡지로 마음을 풀어야 했다. 나는 방 안을 뒤졌다. 며칠 전,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마지막 선물이라며 삼식이가 내게 건네준 것이었다.
곰곰히 생각했다. 학교엔 언제쯤 나갈 수 있으려나. 아마 부모님이 나를 집으로 개끌듯 질질끌고 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몰래 서울로 튀어오고 나서는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모님은 아들이 그다지 걱정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정말 좋은 가정이었다. 아들에게 관심없는 존나 좋은 가정. 변백현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나는 변백현의 집을 탐험하기로 결정했다. 이름하여 변백현의 모든 것을 밝히자 탐험대. 아마 변백현의 방에는 많은 포르노 잡지들과 어렸을때 앨범들이 가득하리라. 나는 씨익 웃으며 변백현의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들어갔다. 변백현이 자신의 방 물건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변백현방의 방 문을 열고 안을 힐끔 들여다봤다.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있다. 액자도 참 많고. 나는 슬금슬금 들어가 방 문을 닫았다. 변백현이 돌아오려면 한참 멀었다. 교복을 입고 나간걸로 봐서 토요일이지만 보충수업을 하러 나간 것 같았으니까. 나는 변백현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에 올려진 자그마한 액자들을 쳐다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떴다. 변백현, 모르는 아이 한명과 낯익은 사람 한 명. 어디서 본 얼굴인지 제대로 기억나진 않는데 잔뜩 나른한 표정이 어딘가 낯익었다. 웃을 줄도 아네. 활짝 미소지은 얼굴이 보기 좋았다. 셋은 친구인 모양이었다. 액자에 놓여진 사진마다 셋이 같이 찍은 사진들 뿐이었다. 금세 씁쓸해져 왔다.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으면서. 책꽂이에 들어있는 앨범 하나를 꺼내들었다. 마찬가지로 셋의 사진이 잔뜩이었다. 그런데, 이 얼굴 대체 어디서 본 거지. 정말 본 것 같은데. 나른한 얼굴이 눈에 밟혔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겠거니 하고 앨범을 닫아 책꽂이 안에 집어넣었다. " 야! 나왔어! 친구들이랑 같이 왔는데.. 얘 어디갔어? " 눈을 크게 떠올렸다. 보충수업 하러 간 거 아니었어? 이 방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벌벌 떨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은 이 단어 하나였다. 씨발, 좆됐다. 나는 안절부절하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변백현의 침대 밑으로 숨었다. 어찌나 깔끔을 떠는지 먼지 있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나는 변백현 침대 맨 구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변백현이 의아한 목소리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야, 그냥 와서 앉아. 하는 친구의 말에 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러나왔다. 도합 세명. 변백현, 친구1, 친구2.
" 얘 서울 지리도 모르는데 어딜 처 나간거야? " " 걍 요 앞에 좀 갔겠지. 뭘 그렇게 신경을 써? "
" 닥쳐 이빨부자. 누가 신경을 썼다 그래. "
그 애 여기있는데. 왜 밖에 안 나가고 지랄이야! 방바닥이 깨끗해서 망정이었지 얼마 못 버티고 뛰어나갈 뻔했다. 놈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극도의 불안감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기 위해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는데, 한 놈이 벌떡 일어섰다! 으아악! 나는 튀어나오려는 비명소리를 입으로 틀어막고 꼼지락댔다. 다행히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선 모양이었다. 한참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 오지 않는 내가 이상한지 변백현이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고보니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어뒀는데..
" 야 그냥 우리들끼리 가면 안 돼? "
불만어린 목소리에 변백현이 답했다. 어디 나가서 길 잃고 헤매나보지. 야, 일단 나가자. 친구를 걱정하지 않는 좋은 자세. 변백현에게 본받아야 할 자세. 변백현이 휴대폰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변백현 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둘이 기지개를 펴는지 끄아앙, 하며 개새끼같은 소리를 내다가 방 밖으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말 없는 친구2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물건을 떨어트린 모양인지 물건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 … "
" … " 씨팔, 눈이 마주쳤다. 경직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놈에게 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 " 안녕? 난 도경수라고 하는데 이 집 안의 평화를 위해 아무 말 없이 변백현을 따라 나가주지 않겠니? "
" 야! 김종인 안 나와!? "
실패였다.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김종인은 굳은 얼굴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낙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이내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나는 눈을 떠올렸다. 어, 그러고 보니까.. 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저 얼굴 어디서 많이... 하도 안 나오는 김종인이 이상했는지 변백현과 그 친구가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변백현이 김종인을 툭 건드렸다. 야, 가자. 퉁명스러운 말에 김종인이 어, 그러니까. 하며 고뇌하는 말을 내뱉었다. 제발 이야기하지마, 제발, 제발.
" 네가 찾던 친구, 네 침대 밑에 있는 것 같은데. "
..씨발. 인생은 존나 아름다웠다. 김종인의 말을 들은 변백현이 뭐? 하고 소리지르며 침대 밑을 내려봤다. 어두운 곳에서 변백현과 내 눈이 마주쳤다. 변백현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해? 간신히 짜낸 목소리인 모양이었다. 내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 바퀴벌레들이 얼마나 심한 고충을 가지고 있나에 대해 연구해 보기 위해서…. "
내 말을 들은 친구1이 푸하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변백현이 맙소사, 하며 제 이마를 짚었다. 나는 꼼실대며 침대 밑에서 기어나왔다. 모든 것은 김종인 때문이었다. 나는 김종인을 노려봤다. 어, 어디서 본 낯익은 얼굴이다. 김종인도 마찬가지인지 나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 얼굴 앨범에서 봤던…
" 어제 그 감자남!? "
" 어제 그 장애인? " 으악악악악! 장애인이라는 소리에 의아했는지 변백현이 우리 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애인? 무슨 소리야? 나는 소리를 악악 질러댔다. 변백현이 내 사이에 끼어들었다. 친구1은 아예 바닥 청소를 할 모양인지 바닥에 쓰러져서 웃고 있었다. 씨발 장애인이래! 침대 밑에 대체 왜 들어가 있었던 거야 존나웃.. 으학학학학! 이 시대 최고의 장애인은 저 아이가 틀림 없었다. 친구1의 귀가 팔랑거리고 있었다. 변백현이 명령했다. 박찬열 자리에서 일어나, 이 더러운 새끼야. 변백현의 말에 박찬열이 후아후아 연신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도비같이 생겨가지고 뭘 처웃어. " 나도 모르게 혼자 한 생각이 튀어나간 모양이었다. 도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