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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변우석 더보이즈
뀰차챠 전체글ll조회 546l 1
열어 둔 창문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창문 양 끝에 매달린 깨끗한 흰 색 커튼이 소리 없이 펄럭였다. 팔 주위를 맴도는 햇빛이 커튼에 가려져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다 밀려오는 구름에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손에 땀이 찰 정도로 꽉 쥐고 있던 샤프를 소리나게 내려 놓았다. 땀이 찬 손을 여러변 쥐었다 피며 꼼지락 거렸다. 다른 모든 것들도 샤프처럼 쉽게 내려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먹을 꽉 쥐었다. 살기 싫었다. 부모님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웠고, 다른 이들의 시선이 너무 싫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들어오지 않는 돌 같은 머리에 성적은 언제나 바닥을 기었다. 성적표를 받고 나면 흔적도 남기지 않기위해 태워버렸다. 그리고 가짜 성적표를 가져가 부모님께 보여드리면 더 높은 성적을 요구해왔다. 잘 했다, 열심히 했구나, 수고했어 라는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들려주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을텐데 그런 말은 커녕 언제나 더 높은 점수를 요구했다. 앞서 걸어 가고 있는 내 뒷통수로 느껴지는 부모님의 시선이 불쾌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학교에서는 노는 부류로 통했기에 이미 문제아로 낙인 찍혀있었다. 무슨 짓을 하든 누가 잘 못 했든간에 화살은 언제나 나에게 향해 있었다. 동정, 경멸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싫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샤프를 집어들고, 문제집을 대충 펼쳤다. 한달 전, 엄마의 잔소리에 못 이겨 사버린 문제집은 당연하게도 깨끗했다. 이미 다른 것으로 꽉 차버린 머릿속에 억지로 집어 넣으려 해봤자 들어가지도 않을 텐데. 그저 시간 낭비, 돈 낭비일뿐이다. 책꽂이 한켠은 대충 수셔 넣어진 문제집으로 가득 차있었다. 틈날때마다 두손 가득 들고와서는 책상에 놓고 "성적 더 올려야지?" 하며 속삭여오는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들려주고는 휑하니 나가버리신다. 열심히 하라는 한 마디의 말만 해주면 좋을 것을. 나는 그 때마다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쓰게 웃었다. 펼쳐진 곳은 그나마 성적이 잘 나오는 영어. 읽는 척이라도 하려 일부러 작게 소리내어 읽었다. 옅게 줄을 치며 읽던 도중 눈에 띈 한 단어. 

 

 

different.  

 

 

'다른, 차이가 나는'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그 단어에 동그라미를 여러번 그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 너와 나는 달랐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외모, 성격, 성적 할 것 없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달랐다. 내가 다혈질에 시끄러운 성격을 가졌다면, 너는 언제나 차분하고 냉정했다. 내 성적이 바닥을 긴다면, 너는 언제나 저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너와 나는 그 만큼 달랐다. 마치 닮은 것 하나 없는 S극과 N극처럼. 

 

 

 

 

식탁에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대충 훑고, 못 본 척 현관으로 직행했다. 아침부터 뭘 저렇게 차렸는지..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학교를 자퇴한지 오래인 동생은 쳐자고 있을 테고, 아빠란 사람은 외국에서 살림을 차렸는지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다. 거지 같은 집 안의 부담감은 언제나 내가 메고 가야 했다. 깔끔하게 정돈 된 신발들을 발로 밀어내고, 멀찍이 떨어진 신발에 대충 발을 구겨 넣었다. 여태 식탁에 무언가를 계속 올리다 들려오는 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온다. 아침부터 화장으로 떡칠한 엄마라고 부르기도 역겨운 여자가 뒤 쪽에 서 내가 돌아보기를 기다린다. 그 인기척을 못 느낀 척 들어가지 않는 신발을 꺾어 신으며 차가운 문고리를 잡았다. 사람의 온기를 전혀 타지 않은 얼어 붙은 듯 차가운 문고리, 그게 마치 내 현실 같았다.  

 

 

"아들, 학교에서 졸지 말고 공부 열심히해. 이번에 성적 더 높여야지?" 

 

 

공부, 공부. 저 놈의 공부 소리 지겹지도 않나. 문고리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잘 다녀오라고 좀 해주면 안되요. 그 말 한 마디 들으면 금방이라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질 텐데. 엄마라고 부르며 껴안고 펑펑 눈물을 흘릴 텐데. 그럴 일은 평생 없겠지. 저 여자가 그런 말을 꺼낼 일은 없으니까. 대답 대신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거칠게 닫히는 소리에 앞에 서 있던 옆집 꼬맹이가 몸을 한껏 움츠린다. 큰 눈으로 힐끗 째려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다시 눈을 내리 깔며 입을 삐쭉 내민다. 문에 기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자 총총 거리며 올라서더니 타지 않는 나를 응시한다. 손을 몇번 내 저으니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힌다. 닫혀버린 문 처럼 꽉 막힌 인생이 답답하다. 버튼 하나 누르면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가 내 인생이면 좋을 텐데. 힘 없이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여기서 구르면 죽을까, 다치기만 할까. 발을 헛 디뎌 콱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 해봤자 하늘을 내 뜻을 받아 드릴 생각이 없는지 나는 빠르고, 안전하게 1층에 다다랐다. 밤새 비가 내린 탓인지 마르지 않은 빗 물이 아직 땅을 적시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찰방 거리는 소리에 미간을 구겼다. 또 비가 올 모양인지 회색 빛 구름들이 낮게 떠다녔다. 하지만 다시 들어간다거나 저 여자에게 우산을 갔다 달라고 부탁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젖고 말지.  

 

 

"이성열" 

 

 

말끔하게 교복을 차려 입은 너가 꽤나 화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째려 본다. 아, 어제 같이 가기로 했었지, 약속 안지키는 것을 참 싫어하는 너인데 내가 왜 까먹었을까. 그 여자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 밤새 게임을 한 탓일까. 미안, 미안 씨익 웃으며 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나보다 작은 키를 가진 탓에 나는 편하지만 너는 아니겠지. 미간을 구기며 어깨에 올려진 손을 거칠게 쳐낸다. 매섭게 노려보더니 성큼 성큼 앞서 나간다. 가벼운 내 가방과는 달리 묵직해보이는 검은 색 가방이 들썩인다. 하복 밑으로 드러나는 팔이 꽤나 근육질 이다. 요즘 시험 때문에 너무 안움직여서 운동을 했다나 뭐라나. 그래봤자 마른 몸이지. 가슴은 꽤나 단단해보이는데 허리는 잘 빠진 호리병 마냥 얇다. 한 번 쯤은 저 허리를 쓸어내려보고 싶은데 그럴 빈틈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입 맛만 다셨다.  

 

멍 때리는 사이 벌써 저 만치 가 있는 너를 쫓았다. 어쩐 일로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만지나 했더니 영어 단어를 외우는 중이다. 붉지만은 않은 입술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뻐끔 거린다. 너의 앞 모습 보다는 옆 모습이 좋았다. 서로 바라보기 보다는 함께 걸어나가는게 좋았으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빨리 간다는 말이 맞았는지 어느 새 학교 안으로 들어 서고 있었다. 반은 같았지만 자리는 멀었다. 내가 창가 쪽 끝 자리라면 너는 복도 쪽 맨 앞이었다. 평소라면 끼고 있지 않을 검은 색 뿔테 안경을 쓰고 수업에 집중하는 너의 뒷 모습을 관찰하는게 언제부터인가 내 습관이 되가고 있었다. 보여지는 뒷 모습 처럼 너의 속 내를, 본 모습을 알 수 없었다. 한 번쯤은 뒤돌아서 앞모습을 보여주면 좋을텐데. 다혈질인 나와는 다르게 항상 냉정하고 차분한 너의 모습이 아닌, 너의 진짜 모습이 보고 싶다, 명수야.  

 

마음이 통한 건지, 내내 뒷 모습만 보여주던 너가 힐끗 뒤돌아 나를 응시 한다. 안경 속으로 보이는 너의 눈은 깊고 맑았다.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은 너의 눈이 난 참 좋았다. 그 눈을 바라 볼 때면, 아무 생각도 고민도 근심도 잠시 뿐이라지만 잊을 수 있었다. 너의 손 끝이 앞을 가르킨다. 수업에 집중을 하란 뜻일까. 하긴, 그 만큼 쳐다봤는데 뒷통수가 따갑지 않은게 이상하지.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교과서를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하얀 교과서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성열?" 

 

 

"네?왜요" 

 

 

수업에 집중하란 이야기가 아니라 앞에 선생님이 있다는 거였나. 왜 몰랐을까. 바로 앞에 서 있었던 선생님의 인기척을. 

 

 

"뭐?왜요? 지금이 무슨 시간이지, 이성열?" 

 

 

"무슨 시간이긴요. 수학시간이지" 

 

 

"그럼 너의 책상에 펼쳐진 교과서가 무슨 과목이지?" 

 

 

"뭐긴요, 당연히 수ㅎ..이 아니라 국어네요" 

 

 

하하. 뒷 통수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실실 쪼개는 짝꿍 새끼의 뒷 통수를 휘갈겨 주고 싶었지만, 넓은 아량을 가진 내가 참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 교과서로 장난스레 머리를 내리치는 선생님을 밉지 않게 쳐다보니, 어딜 노려보냐며 몇 대 더 때리고서야 교탁으로 돌아가신다. 키득 거리며 웃는 너의 모습에 한순간 넋을 놓았다. 웃는 모습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웃을 때면 자연스레 접히던 눈과 푹 파인 매력적인 보조개. 아마 내가 그래서 반했었지, 웃는 모습이 참 예뻐서.  

 

칠판을 두어번 두드리는 선생님으로 인해 너의 웃음은 거두어지고, 시선도 앞으로 향했다. 고개를 한 껏 숙인채 문제를 푸는 모습은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때론 얄밉기도 했다. 그 여자의 비교 대상은 항상 너였으니까. '명수는 또 다 백접 맞았다던데, 너는 이게 뭐니?쪽팔려서 어디 말하고 다니지도 못하겠네. 84점이 뭐야?84점이!' 뭘 그렇게 원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다 빼앗아 갔으면 됐지. 요즘 사회가 다 그렇다. 공부, 오로지 공부. 공부가 아니면 뭐든 다 안되는 개 같은 세상. 요즘은 대학교를 나와도 듣보잡 대학교면 취직하기도 어렵다던데. 몇 년 남지 않은 사회 생활이 벌써부터 두렵다. 

 

 

똑똑- 

 

 

"이성열"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책상에 살짝 걸터 앉은 채 내 뒷통수를 쓰다듬는 손길에 잠에서 깨지 않은 척 계속 엎드렸다. 잠시라도, 몇 초라도 그 손길을 더 느끼고 싶어서. 여름이든 겨울이든 후끈한 내 손과는 달리 너의 손은 차가웠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손길이 어느 때보다도 따듯했다. 감은 눈이 파르르 떨렸다. 

 

 

"깨어있는 거 다 안다. 자는 척 생쇼 그만하고 일어나라? 밥 안먹냐" 

 

 

2교시 시작 전 부터 밀려왔던 졸음에 잠시 눈을 붙인다는게 점심시간까지 자버렸나보다. 어쩐지 몸이 쑤시더라. 허리를 두드리며 먼저 나가버리는 너를 따라 나섰다. 더위에 다 풀어버린 불량해보이는 내 복장과는 달리 목 끝까지 다 잠근 너의 복장은 한 눈에도 답답해보였다. 항상 단정함과 반듯함을 추구하는 너와 나는 참 달랐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너의 옆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답답해 보이는 맨 위의 단추 하나를 풀러냈다. 깜짝 놀란 듯 우뚝 멈춰 버린 너는 살짝 흔들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우물쭈물 거리는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너가 곤란해 하면 안되기에 욕구를 꾹꾹 눌러 담았다.  

 

 

"ㅁ..뭐야?" 

 

 

"답답해 보이길래. 너무 꽉 막혀 있으면 안 좋아. 그러니까 친구가 나밖에 없지. 나랑만 밥먹는 이유가 있었네" 

 

 

"뭐래, 나 너 말고도 친구 많거든? 그 중에서도 너랑 가장 친하니까 그렇지...친구니까 " 

 

 

친구니까. 그래, 우린 친구지. 친구니까 너를 좋아하면 안되는데, 난 네가 왜 이렇게 좋냐.  

 

 

"왜 이렇게 좋을까, 명수야" 

 

 

"뭐?" 

 

 

"너가 왜 이렇게 좋을까, 친구니까 좋아하면 안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 

 

 

멍하니 서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 하는 너에게 쓰게 웃음지어 보였다. 경멸하고, 욕하고, 때려도 되는데 너가 떠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풀려버린 단추를 다시 잠그려던 너의 손이 힘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넌, 나 싫어하냐?" 

 

 

"좋아해" 

 

 

"...뭐?" 

 

 

"나도 너 좋아한다고" 

 

 

 

 

너와 나는 달랐다. 하나 부터 열 까지 모두 다른 S극과 N극 처럼.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함께 할 수 있었다. 비슷하거나 같아서 잘 통하는 것 보단, 다르기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겐 좋았다.  

 

난 네가 참 좋다, 명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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