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운이가 되게 화내던데! 전화 맘대로 끊었다고!"
어느새 방에서 나온 이재환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눈을 올려 이재환을 바라보았다.
이홍빈은 누구야? 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너가 가만히 있자 이재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택운이가 화낸다고 해도 안 무서워하네?"
"어, 어? 화냈다고? 아하, 나는 이제 죽었겠다."
이재환이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너 말에 영혼이 담겨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 눈치였지만
입을 끌며 아주 그냥, 남친 앞에서 딴 생각만 해요, 라고 중얼거리는 건 안 빼먹고 말이다.
너가 괜시리 민망한 마음에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얼굴을 본 이재환이 슬쩍 기분 이상한 웃음을 지었다.
"막 남들 앞에서도 이렇게 귀엽게 웃어?"
이재환도 너를 보며 웃음이 새어나오는 듯 머리를 기울이며 물었다.
어이없는 질문에 너가 웃음이 새어나왔다.
"원래 내가 귀엽게 웃는 걸 어떡하면 좋지?"
"그럼 남들 앞에선 웃지 마. 막 정색해, 나처럼. 이거 봐. 별빛아."
얼굴을 찡그리며 못난 얼굴을 한 이재환이 너무 웃겨서 탁상을 쳤다.
요즘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이재환이 웃기게 생겨서라고 단정짓고 말지, 뭐.
*
"벌써 가? 오늘은 나랑 있기로 했잖아."
"별빛아. 정말 미안해. 급한 약속이 생겨서."
문 앞에 서있는 이재환을 보고 너가 아쉬운 듯 말했다.
이재환은 그 와중에도 더 챙겨줄 건 없는지 자신이 가져온 짐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내가 이것저것 챙겨오긴 했는데, 그래도 별빛이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하고! 알겠지?"
"너무 과분하게 줬어. 안쓰는 그릇들이나 반찬통은 나도 많은데."
괜시리 투덜대고 보는 너의 모습에 이재환이 성큼 너 앞으로 걸어 왔다.
너가 눈동자를 움직여 힐끔 재환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재환은 피식 잔웃음을 짓더니 두 손으로 너의 볼을 꾹 눌렀다.
"삐졌어요? 먼저 가서?"
"아, 안 삐졌어. 내가 애야?"
너가 힘을 꽉 주며 볼을 누르고 있던 이재환의 손을 떼어냈다.
밀어낼수록 붙는 껌딱지같이 이번엔 어깨를 잡고 놔줄 생각이 없는 이재환이었다.
"삐졌는데? 삐졌네."
"아, 진짜. 이재환..."
두 손을 가린 채로 꺼이꺼이 웃어대는 이재환을 바라보았다.
이재환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가는 거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원망스러운 마음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재환은 어느새 현관문을 열어 집 밖을 나섰다.
"저녁 같이 먹자. 연락할게, 별빛아."
"응. 알았어."
"그리고 내일 사람 불러서 쇠창살은 떼버리자?"
이재환이 뿌듯하게 말하곤 문을 닫았다.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문을 닫으니 이상하게 허전함이 밀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전처럼 또 도둑이 들었을 때가 생각나 마른 침을 삼켰다.
불과 어제 있었던 일이 아른거려서 집 안에 있는 것조차 잠시 힘들었다.
너는 주위를 살피며 탁자로 향했다.
"어."
탁자에서 낯익은 핸드폰이 눈에 띄었다.
바보같은 이재환이 핸드폰을 두고 간 것이다.
베란다로 향해 밖을 확인해보니 벌써 어디쯤 간건지 재환이는 보이지 않았다.
"생각나면 다시 가지러 오겠지..?"
너가 베란다 앞에 서서 재환이의 폰을 만지작거렸다.
슬금 폰배경을 확인해보니 기본 배경화면이 떡하니 있었다.
너는 그러고보니 같이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단 생각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다고 지금 몰래 사진을 찍어주기는 조금 너 딴엔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손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이재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너가 당황하며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차학연]
정택운인 줄 알고 핸드폰 던질 뻔 했네,
근데,
받아도 되나.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재환이 핸드폰 두고 갔어요. 라고 말하고 바로 끊어버리면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
"재환이 핸드폰 두고 갔.."
'어차피 그쪽한테 전화하려고 한건데 잘됬네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너가 죄없는 눈을 깜박였다.
근데 이 인간, 말투가 조금 소릅돋게 바뀐 것 같다.
"저 누군지 알..."
'이별빛 씨잖아요.'
핸드폰을 살짝 들어 다시 발신자를 확인해보았다.
지금 차학연이란 사람이 전화한게 맞는 걸까.
"아, 마, 맞긴 한데요."
'이별빛 맞으면서 아닌 척이야.'
그러면 그렇지,
익숙해진 싸늘한 목소리에 안심하며 자세를 바로 고쳤다.
"또 성질이야. 저는 왜 찾으세요."
'급하게 부탁할 일이 있어요. 지금 바빠요?"
*
또 어제처럼 누군가가 집 안에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이 자꾸 들어서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딱히 보고 싶진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너에게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 건 처음이었기에
힘겹게 안 움직이려는 발걸음을 옮겼다.
"스타라잇."
딱딱한 영어발음에 너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름은 예쁘네, 별빛."
칭찬은 하고 있지만 표정은 별로 밝아보이지 않는 차학연이었다.
그니까 별로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머리 흉터가 보일까 모자를 더 꽉 쓰는 너였다.
"고마워요. 차학연이 나한테 칭찬을 다 하고 신기하네요."
"원래 칭찬 잘 해요. 천성이 착해서."
뻔뻔한 말을 주고 받는 차학연이 싱긋 웃다 너를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데리고 갔다.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온 차학연이 너에게 하나를 쥐어주었다.
"앉아서 말 할까요? 급하긴 하지만."
"저는 2층에 앉고 싶지만 영 급하시면 뭐, 1층에 앉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너는 복수라도 하듯 싱긋 웃으며 차학연보다 먼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쩔 때 보면 나보다 더 싫어하는 것 같은데, 저 이재환 친구인데?
막 이렇게 함부로 대할 거예요?"
"그런 얘기는 먼저 함부로 대하지 않고 말해주실래요?"
이재환 친구 아니랄까봐,
너보고 한 마디도 안진다고 혼잣말로 꿍얼거리는 차학연이었다.
너가 시간을 확인하며 재환이랑 밥 먹기로 한 사실이 점점 신경쓰였다.
답답한 너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저 바빠요. 부탁이 뭔데요."
너의 말에 차학연의 눈이 흔들리다 서서히 입을 여는 눈치였다.
"....사실 지금 이재환이랑 만나면 안 될 사람이 한국에 왔어요.
그 사람이랑 재환이가 만나지 못하도록 그 쪽이 도와줘요."
*
너의 눈이 말똥말똥 커졌다.
지금 보이는 차학연은 지금까지 만난 모습 중 제일 진지해 보였다.
"이제 걔, 나랑 택운이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있잖아요. 그쵸?"
"저기, 이봐요. 차학연 씨. 이유는 말해줘야죠. 그리고 누구를 만나지 말게 하란 건데요."
당황한 너 모습을 보던 차학연이 얉은 웃음을 지었다.
"다 말해줄게요. 그러려고 만난건데?"
'어떻게 보면 얘가 더 자세히 말해 줄수도 있어. 나보다 착해.'
왜 갑자기 저번에 정택운 씨가 말했던 말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차학연이란 사람을 색안경 끼고 보고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줄이야.
"이재환이랑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헤어졌네요.
그 쪽 핸드폰 번호 힘들게 알아냈는데 연결이 안 된다 그러고.
이재환이 핸드폰 두고 가서 망정이지."
"아, 그러게요. 하필 저는 핸드폰이 고장이 나서."
"아마 이재환은, 정택운 만나러 갔을 거예요."
"왜요..?"
너를 보며 미소를 짓던 차학연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너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학연아. 넌 그대로네."
어디선가 차학연에게 말을 툭 던지고 2층에서 내려온 남자가 또 다른 남자와 가게를 빠져나갔다.
차학연이 넋 놓고 있을 사이 이상하게 생각한 너가 유심히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한 쪽 손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너가 고개를 휙 돌려 다시 차학연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꽉 깨문 차학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쟤가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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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드릴 말은 죄송합니다.
2달 동안 바쁜 이유로 종이비행기를 거의 연재중단 해왔네요.
뒤늦게나 돌아와서 반겨주실지는 모르겠으나 (전편 읽으려면 다시 구독료 내셔야하고...ㅠ)
몇달 전 글에 지금도 댓글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꼭 완결 낼 작품입니다.
최대한 빠르게빠르게 완결까지 달려갈테니 독자님들 너그럽게 이어 봐주시길 바랍니다!..ㅠㅠ
금방 24편 들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