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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수열] 간극 ː Chapter 2, 안개 (1) | 인스티즈

 

 

 

 

간극 ː Chapter 2, 안개 (1)

 

 

 

1

 

 오월의 꽃내음이 복도를 적시고 있었다. 성열은 문득, 교정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서부터 이어진 벚꽃나무의 행렬이 그의 눈동자 안에 포근히 고였다. 들리는 말로는 전 교장의 공적이라 했다. 이 학교에 발령된 첫 날, 학생들의 등하굣길이 온통 시멘트로 점철되어있는 것을 보고선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성열은 호롱불 마냥 밝혀진 풍경에 잠시 시선을 두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벽을 손끝으로 스치며, 재차 걸음을 옮겼다.

 막 교실 문을 열려던 성열이 멈칫했다. 창가에 누군가 걸터앉아 있었다. 미동 하나 없이, 마치 고목 같은 모양새였다. 역광으로 잔뜩 뭉개진 옆모습에 바람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텅 빈 교실. 기다란 그림자가 마룻바닥을 어둑하게 물들였고, 누군가는 말간 유리창 너머를 언제까지고 바라볼 것처럼 보였다.

 한참이나 망설이던 성열이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삐걱, 고작 한 발짝 내딛었을 뿐인데 그 소리가 요란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상대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마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좀 더, 좀 더 다가갔다. 그러는 사이 거리는 점차로 좁혀져 최후엔 역광의 너비마저 반절로 줄어들게 되었다. 우뚝 솟은 콧날이 햇살을 등진 채 선명하게 비쳤다. 그것이, 퍽 익숙하다고 느끼던 찰나

 “나 좀 재워주라.”

 청명한 음성이 울렸다. 안녕, 오늘도 좋은 하루구나. 꼭 그렇게 건네는 인사말처럼 덤덤한 어투였다. 성열은 제 귀를 의심했다.

 상대가 창턱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미처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자 성열의 안면에 반 뼘쯤 그늘이 졌다. 눈이 마주쳤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거리였다. 뒤늦게야 그를 알아차린 성열이 뒷걸음질 쳤다. 주먹이 긴장으로 세게 쥐어졌다.

 묻고 싶었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과 마주하니 물음은 저편으로 쓸려 내려가고 못 다 푼 앙금만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리라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한낱 오만에 불과했다는 것을 성열은 이제 와 다시금 깨달았다. 저곳에 서 있는 건 단순한 타인이 아니다. 제게 있어 김명수는 고름. 마구 짓눌려, 더는 손 쓸 도리마저 없어진 상처의 지층이었다.

 성열이 창백한 낯빛으로 등을 보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를 뚫고 화살이 날아왔다.

 “우리 부모님 이혼한대.”

 우뚝, 내뻗으려던 다리가 멈추어 세워졌다. 성열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김명수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길고 짙은 눈매. 어딘지 감정을 동여맨 시선. 반듯한 콧대와…… 무미건조하게 닫힌 입술.

 그 입술이 움직였다.

 “부탁이다. 일주일만 신세지게 해줘.”

 “…….”

 “너 말곤 이런 부탁할 사람, 아무도 없어.”

 정적이 스며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깊이로, 더 넓고 더 고요하게. 성열은 불현듯 저릿해져오는 손끝을 느꼈다.

 무언가 변하려 하고 있었다. 저조차 모르는, 무언가가.

 

 

2

 

 골목으로 접어들자 가까이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열은 미적미적 걸음을 옮겼다. 반쯤 끌려오는 그림자마저도 유독 노곤한 밤이었다. 충혈 된 눈시울을 비비다 무심코 가로등을 쳐다보았다. 얼룩진 빛 아래 날벌레가 득시글했다. 쟤네도 고민이란 걸 하고 살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침 몇 마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성열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꿈을 향해 돌진하기에만도 벅찬 생이겠지.

 밤하늘은 며칠째 별 하나 없었다. 내일도 비가 오려나. 근래 들어 소나기가 잦았다. 내리는가 하면 그치고 그치는가 하면 다시 내렸다. 아마 요 며칠 새 제 기분이 싱숭생숭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괜한 상념을 떨쳐내려 성열이 도리질을 쳤다. 그 바람에 찬 공기가 볼을 깎았다. 성열은 몸을 움츠린 뒤 좀 더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어서 가서 따뜻한 물에 목 끝까지 잠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곤 아무 생각 없이, 푹 잠들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성열이 뿌연 숨을 뱉었다. 그 사이로,

 「부탁이다.

 ……기어코, 목소리가 찾아들었다.

 

 어쩐 일인지 이층창문에 노란 불빛이 소복했다. 성열은 의아해하며 휴대폰 액정을 살폈다. 아직 열한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각. 부모님의 귀가는 언제나 새벽 한시를 전후해 이루어졌다. 설마 벌써 오셨을 리는 없을 텐데. 어쩌면 저가 나올 때 깜빡하고 켜두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긴가민가한 심정으로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더더욱 이상했다. 현관문이 깨끗한 것이다. 평소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붙이고 가는 전단지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문이었다. 성열은 한차례 심호흡을 한 후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릭, 가벼운 기계음이 번졌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익숙한 향취가 피어났다.

 “아들! 왔어?”

 “……엄마?”

 왜 이 시간에 엄마가……. 성열이 멍하니 멈춰 섰다. 자연스레 거실로 눈길이 갔다. 폭탄이라도 맞은 양 잔뜩 너부러진 옷가지들. 그 옆에 까만 여행용 가방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성열은 설명을 요하는 얼굴로 거실과 제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내 겸연쩍은 미소가 돌아왔다.

 “워낙 오랜만에 가는 출장이잖니, 이래저래 준비할 게 많더라. 그러고 있지 말고 어서 들어와.”

 “, 맞다…….”

 출장 전 날엔 항상 퇴근이 빨랐지. 그제야 납득한 성열이 안으로 들어섰다. 저로서도 간만의 일이라 까맣게 잊고 있던 터였다.

 “근데 아빠는? 같이 온 거 아니었어?”

 “오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 만나서 한 잔 하러 가셨어. 정말이지, 내일은 어쩌려고.”

 어머니가 걱정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성열은 제 방에 대충 가방을 던져둔 뒤 부엌으로 향했다. 아빠한테도 친구가 있다니 의외네. 그 말에, 어머니가 웃으며 눈을 흘겼다.

 “얘는. 지금 좀 무뚝뚝하게 변해서 그렇지 네 아빠 학창시절에 인기 되게 많았어.”

 “에이, 말도 안 돼.”

 성열은 코를 찡그리곤 싱크대에 놓인 컵을 집어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아버지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머, 얘가 안 믿네.”

 “당연하지. 내가 여태껏 살면서 우리 아빠만큼 썰렁한 인물을 본 적이 없어요.”

 “믿기 싫음 말아라. ,”

 찰나였다. 지나가는 말처럼 평온한 어투로, 어머니가 물어왔다.

 “너 명수랑은 잘 지내고 있니?”

 성열은 자칫, 마시던 물을 그대로 내뿜을 뻔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짐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

 성열이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왜기는, 요즘 들어 네가 명수 얘기를 도통 안 하잖니. 중학교 때는 그렇게 사이좋던 애들이.”

 “…….”

 “혹시 싸우기라도 했……,”

 거기까지였다. 성열은 소리 내어 물 컵을 내려놓았다.

 “나 피곤해. 잘게 엄마.”

 “성열아? ……!”

 이윽고, 성열의 방문이 쾅하고 닫혔다. 그 쌀쌀한 공기에 어머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가 왜 저런대.”

 

 

 

 

 

-

 

사실 뒤에 더 있는데 분량 문제로 잘랐어요 ^^;

아, 그리고 혹시나 전개상 이해가 안 되거나 중간에 스토리가 좀 빠진 것 같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안심하세요. 의도한 부분입니다.

어차피 뒤에 따로 해결편이 마련되어 있으니 지금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편안하게 즐겨주세요.

그럼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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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그대ㅎㅎ전구에요~ 성열이에게 명수란 어떤 존재일까요...보려하지않아도 시야에 들어오고, 잊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스며들어버리는...아픈상처요....고름이라....성열이의 엄마까지 명수를 아는걸보면 참 서로 친했던것같은데...여전히 둘의 관계의 비밀은 여전히 안개속이네요....차츰 차츰 안개가 드러나면 어떤일이 있었는지 알수있겠죠...? 그대를 1주일만에 봐서 너무 기뻐요ㅜㅜ
12년 전
스위치
반가워요, 전구님! 너무 늦었죠? ㅠㅠ 스토리 연결 마무리 짓고 다듬다 보니 시간이 예정보다 오래 걸렸네요 ;_; 다음 편은 업뎃이 좀 빠를 거예요.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

12년 전
독자2
와....고구마입니다 성열이와 명수사이엔 무슨일이있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네요 성열이랑 명수랑 친했던것같은데 어쩌다 이렇게됐는지ㅠㅠ아 어쩌면 과거에 친구사이말고 연인사이였을수도있....있으려나?으잌 어쨌든 왜 지금 이렇게 변해버린걸까요ㅠㅠ성열이는 명수를 피하고, 성열이한테 명수는 고름. 상처이고 명수는 성열이가 자길 밀어내고 피하는걸 알면서 자꾸 다가가고ㅠㅠ... 궁금해도 이게 의도하신부분이라니 참.... 그저 기다릴뿐이네요ㅋㅋㅠㅠㅠ그나저나 성열이네부모님은 출장을 함께가시는것같은데 직장이 같으신가봐요 우왕....성열이네 부모님이 출장하신틈을타서 명수랑 무슨일이날것같네요! 뭔가 일이 일어난다면 둘의 사이가 조금 묘하게변할것같다는 생각이드네요ㅎㅎ여튼 좋은글 써주셔서감사합니당 오늘도 잘 보고가요~.~
12년 전
스위치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고구마님! 저도 얼른 뒷이야기를 풀어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네요.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
12년 전
독자3
으진짜궁금해져요ㅠㅠㅍㅍ
12년 전
스위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다음 편 가져올게요!
12년 전
독자4
으아 저 저번에 텍파 메일링부터 암호닉 달았던 에비에요 텍파잘받아씀니다 잘읽어습니다ㅠㅠㅠㅠㅜㅜ아니 그건 그렇고, 헐!! 뭔가 더 얘기가 나올랑말랑 하다가 안 나온 거 같은 느낌...아 그대 이러실거에여? 왜 조련하세요ㅠㅠㅠㅜㅜㅜㅠㅠ전 웁니다 엉엉 웁니다 땅바닥치면서 웁니다ㅠㅠㅜㅠ성열이랑 명수 뭐에요? 둘이 뭔 사인데요ㅠㅠ나한테만 귓속말로 소근소근 해주면 안되여? 궁금해터짐ㅜㅜㅜ엉엉 좋은 글 잘봐써요ㅠㅠㅠ감사합니다!
12년 전
스위치
에비님 반가워요! 텍파 잘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 : )
이, 이건 조련이 아니라 단순히 분량 문제... ☞☜ 하나만 힌트를 드리자면 저 둘은 과거사가 너무 길어서
사실 쟤네 과거사만 전체 글의 1/2 수준이에요… 그래서 그걸 풀면 전 쓸 게 없어집니다… ㅠㅠㅋㅋ
모쪼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려요 ^^

12년 전
독자5
개샴푸에욯ㅎ 아 간극은 보면 제일 궁금한게 성열이랑 명수의 과거사!!!!!!! 언제쯤에야 알수있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과거에는 정확히 무슨사이였을까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연인일까 친구일까 ㅠㅠㅠㅠㅠ ㅠ 궁금합니다ㅠ그대는 정말 브금과 내용을 정말 잘 맞게 고르시는듯해요 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그대글 볼때 완전 초 집중모드로 돌입하게되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편도 무지무지무지 궁금함 ㅠㅠㅠㅠㅠㅠㅠㅠ 기다릴께요그댘ㅋ

12년 전
스위치
안녕하세요, 개샴푸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둘의 과거사는 3부 쯤에서 시원하게 밝혀질 예정입니다 :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완결까지 함께 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_!

12년 전
독자6
반례하!!!소나기에이어안개!!!으왁!!기다리던간극이당!!!어우..명수분위기장난아닌데요??대박이다..재워달래..난또다른쪽으로생각응...응??뭔생각이지..개가짖는소리를..어헣..성열이는과연..어떻게할까여..ㅎㅎ잘읽엇습니다!!수고하셧어요!!
12년 전
스위치
반가워요 반례하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른 쪽으로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 )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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