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 (Nell) - 지구가 태양을 4번 봄이 왔어야 할 그 해, 겨울 w. 별여울 이진기의 여성편력은 화려했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의 깊이냐 하면. 한 때 앨범 한 장씩 여자를 갈아치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한 때 카사노바하면 이진기, 이진기하면 카사노바였을 때가 있었다. 반듯해보이는 남자 연예인 1위, 학창시절에 공부 잘 했을 것 같은 남자 연예인 1위, 결혼하고 싶은 남자 연예인 1위, 함께 고기굽고 싶은 남자 연예인 1위. 모든 차트순위와 시상식들을 휩쓸며 인기의 정점을 찍던 때, 이진기의 여성편력 역시 정점을 찍었다. 은연 중 알려진 당대 최고의 카사노바라는 말은 괜히 있었던 것이 아닌지, 방송 관계자들 중 이성에 목마른 사람들은 날을 새우며 기회를 노리다 그에게 달려들고는 했는데. 인기의 비법을 물으면 그는 난처하게 웃으며 답했다고 한다. 아…. 저 그렇게 인기있는 남자아닌데.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돈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여자는 따라붙는다. 그 것은 그에게 있어 부정할 수 없는 공식과도 같았다. 데뷔년차도 어느 덧 칠년을 찍으며, 이십대 중반에 선 그는 본의아닌 리즈를 맞으며 외모를 꽃피웠고 그에따라 자연스럽게 음반판매량이 늘어나고, 대중적인 인기에 불이 붙으며 그는 당대 최고의 솔로가수로 자리잡았다. 갈수록 불어나는 인기에 그의 수입 역시 비례했고, 스물다섯.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그는 청담동과 대치동에 들으면 정말 억, 소리가 날 정도의 빌딩을 소유할 정도로 떼부자가 되었다. 열 여덞. 어린 나이에 데뷔한 만큼 그의 팬층은 두터웠고, 연예계에 있어 그의 위력이란 대단했다. 순하게 생긴 이목구비에 이에 대한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감미로운 목소리, 바르기로 유명한 인성. 거기다 가창력까지 겸비했으니 남자고 여자고 모두 그의 노래를 찬양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데뷔 초에 찬 바람 쌩쌩 부는 음지에만 있던 것도 아니다. 좋은 소속사와 그 당시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목소리와 외모는 곳곳에 숨겨져 있던 누나 팬들의 애정을 불러들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인기많은 십대 꼬맹이 정도에 불과했던 그가 이리 유명해지고, 많은 이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감히 당대의 히트 가수였던 윤 모씨도 오르지 못했던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던 건 순전히 그의 노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나마도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소속사의 언플과 뒤에서 봐주는 크나 큰 배경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진기는 있을 수 없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노래 몇마디만 불러줘도 앞줄의 여자들이 쓰러지는 발라드 가수. 그게 바로 이진기였고, 지금의 그이며,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과도 같았다. 오는 여자 낯가리지 않고, 가는 여자 붙잡지 않는다. 그가 지금까지 길고도 질게 생명줄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였다. 자세하게 파고 들자면 그가 원하고 싶어서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진전시켰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손을 많은 여자가 거쳐갔다는 여론도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순해빠진 성격 때문에 고백하면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주는 것이 불어나고 불어나 끝에 양다리를 넘어 얼떨결에 세다리까지 걸치게 되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지만 그와 헤어진 여자들 중에 그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 들이댄 것은 자신이고 질려서 혹은 실망해서 그로부터 빠져나온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 헤어지자. 진기는 제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번으로 벌써 세번째 통보였다. 두번이나 이별을 고해놓고선 늘 다시 돌아와 붙잡고 마는 여자와의 만남은 아무리 착해빠진 진기더라도 그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진심으로 좋아했던 여자였다. 군대에 가있는 동안 저를 2년씩이나 기다려준 여자였으니 결혼도 생각하고 있었던 여자였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던 만큼, 그녀가 그에게 쏟는 애정은 상당했고 그에 진기는 그녀에게 그에 비례되는 더 많은 애정을 쏟아붓고는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일인가. 늘 저만 바라봐주는 줄 알았던 여자는 알고보니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대방이 있었던 있는 집의 하나 뿐인 딸래미였다. 제 딴에는 그 것이 정략결혼이라 무어라 여기는 듯 보였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끊어질 듯 말 듯한 비지니스적인 관계이기보다는 서로의 동의하에 약혼반지까지 맞춘 평범한 커플과도 같았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배반한 여자들을 잘 알았기에 진기에게 그녀는 유난히 어렵사리 마음을 둔 상대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가 그에게 처음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했던 날, 진기는 나이도 체면도 모두 다 내려둔 채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한번만 생각해달라고 애원했었다. 믿었고, 너무도 좋아했던 그녀였으므로 그녀가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통보가 진심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분명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진기와는 달리 그녀의 속사정은 달랐다. 약혼 예정이었던 상대에게 한낮 바람에 불과하던 진기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켜버렸으니 어쩌면 제 신분을 수직 상승시켜줄지도 모를 기회가 송두리째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애원하는 진기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나갔던 그녀는 진기가 겨우 그녀를 잊고 음반활동에 매진할 즈음에야 그에게로 돌아왔다. 잔뜩 술냄새를 풍긴 채 헤실거리며 웃는 그녀에게 진기는 별다른 말도 하지 못하고 문고리를 열고 말았고 결국 그 날로 두 사람은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며 애써 한 화장까지 뭉개버리는 그녀를 겨우 진정시킨 진기는 제 침대에 그녀를 눕혀놓고선 이도저도 못해 결국 넓다란 거실에 눈을 붙이고 말았다. - 그만하자. 우리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지친 것 같아." …. "- 우리 나이도 있고. " …. "- 그리고.. 나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 거, 너도 알지?" ..네. "- 그런데 나. 아직 너랑은 결혼하기 부담스러운 것 같아. 마음의 준비도 안됐고.. 그리고.. 끊어질 듯 말 듯 아득하게만 이어지는 목소리에 진기는 더 이상 듣기 힘들다고 판단했던건지 잘게 입술을 다물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앞머리 사이로 손을 넣어 뜨거워진 이마를 붙잡았다. 몇일 새 또 연락이 되지 않아 어렴풋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머리에 작게 신음을 내뱉던 진기는 이내 미안하다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내놓는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전화기로 떨어지는 진기의 목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끊는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기야. - 고마웠어. 정말. " ..저도요. " 혀를 내어 초조한 듯 입술을 축이던 진기는 이내 그녀가 만족스러워할만한 대답을 내놓고 만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그녀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고상한 웃음소리가 진기의 귀에 콕콕 박혀왔다. 잘 지내.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그녀의 인사와 함께 휴대폰을 내려둔 진기가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끝까지 이러고 마는구나. 전화를 끊기 무섭게 밀려오는 자책감에 핸들을 쥔 진기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고 만다.
넬 (Nell) - 지구가 태양을 4번
봄이 왔어야 할 그 해, 겨울
w. 별여울
이진기의 여성편력은 화려했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의 깊이냐 하면. 한 때 앨범 한 장씩 여자를 갈아치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한 때 카사노바하면 이진기, 이진기하면 카사노바였을 때가 있었다. 반듯해보이는 남자 연예인 1위, 학창시절에 공부 잘 했을 것 같은 남자 연예인 1위, 결혼하고 싶은 남자 연예인 1위, 함께 고기굽고 싶은 남자 연예인 1위. 모든 차트순위와 시상식들을 휩쓸며 인기의 정점을 찍던 때, 이진기의 여성편력 역시 정점을 찍었다. 은연 중 알려진 당대 최고의 카사노바라는 말은 괜히 있었던 것이 아닌지, 방송 관계자들 중 이성에 목마른 사람들은 날을 새우며 기회를 노리다 그에게 달려들고는 했는데. 인기의 비법을 물으면 그는 난처하게 웃으며 답했다고 한다. 아…. 저 그렇게 인기있는 남자아닌데.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돈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여자는 따라붙는다. 그 것은 그에게 있어 부정할 수 없는 공식과도 같았다. 데뷔년차도 어느 덧 칠년을 찍으며, 이십대 중반에 선 그는 본의아닌 리즈를 맞으며 외모를 꽃피웠고 그에따라 자연스럽게 음반판매량이 늘어나고, 대중적인 인기에 불이 붙으며 그는 당대 최고의 솔로가수로 자리잡았다. 갈수록 불어나는 인기에 그의 수입 역시 비례했고, 스물다섯.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그는 청담동과 대치동에 들으면 정말 억, 소리가 날 정도의 빌딩을 소유할 정도로 떼부자가 되었다.
열 여덞. 어린 나이에 데뷔한 만큼 그의 팬층은 두터웠고, 연예계에 있어 그의 위력이란 대단했다. 순하게 생긴 이목구비에 이에 대한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감미로운 목소리, 바르기로 유명한 인성. 거기다 가창력까지 겸비했으니 남자고 여자고 모두 그의 노래를 찬양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데뷔 초에 찬 바람 쌩쌩 부는 음지에만 있던 것도 아니다. 좋은 소속사와 그 당시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목소리와 외모는 곳곳에 숨겨져 있던 누나 팬들의 애정을 불러들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인기많은 십대 꼬맹이 정도에 불과했던 그가 이리 유명해지고, 많은 이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감히 당대의 히트 가수였던 윤 모씨도 오르지 못했던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던 건 순전히 그의 노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나마도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소속사의 언플과 뒤에서 봐주는 크나 큰 배경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진기는 있을 수 없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노래 몇마디만 불러줘도 앞줄의 여자들이 쓰러지는 발라드 가수. 그게 바로 이진기였고, 지금의 그이며,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과도 같았다.
오는 여자 낯가리지 않고, 가는 여자 붙잡지 않는다. 그가 지금까지 길고도 질게 생명줄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였다. 자세하게 파고 들자면 그가 원하고 싶어서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진전시켰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손을 많은 여자가 거쳐갔다는 여론도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순해빠진 성격 때문에 고백하면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주는 것이 불어나고 불어나 끝에 양다리를 넘어 얼떨결에 세다리까지 걸치게 되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지만 그와 헤어진 여자들 중에 그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 들이댄 것은 자신이고 질려서 혹은 실망해서 그로부터 빠져나온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 헤어지자.
진기는 제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번으로 벌써 세번째 통보였다. 두번이나 이별을 고해놓고선 늘 다시 돌아와 붙잡고 마는 여자와의 만남은 아무리 착해빠진 진기더라도 그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진심으로 좋아했던 여자였다. 군대에 가있는 동안 저를 2년씩이나 기다려준 여자였으니 결혼도 생각하고 있었던 여자였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던 만큼, 그녀가 그에게 쏟는 애정은 상당했고 그에 진기는 그녀에게 그에 비례되는 더 많은 애정을 쏟아붓고는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일인가. 늘 저만 바라봐주는 줄 알았던 여자는 알고보니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대방이 있었던 있는 집의 하나 뿐인 딸래미였다. 제 딴에는 그 것이 정략결혼이라 무어라 여기는 듯 보였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끊어질 듯 말 듯한 비지니스적인 관계이기보다는 서로의 동의하에 약혼반지까지 맞춘 평범한 커플과도 같았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배반한 여자들을 잘 알았기에 진기에게 그녀는 유난히 어렵사리 마음을 둔 상대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가 그에게 처음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했던 날, 진기는 나이도 체면도 모두 다 내려둔 채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한번만 생각해달라고 애원했었다. 믿었고, 너무도 좋아했던 그녀였으므로 그녀가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통보가 진심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분명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진기와는 달리 그녀의 속사정은 달랐다. 약혼 예정이었던 상대에게 한낮 바람에 불과하던 진기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켜버렸으니 어쩌면 제 신분을 수직 상승시켜줄지도 모를 기회가 송두리째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애원하는 진기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나갔던 그녀는 진기가 겨우 그녀를 잊고 음반활동에 매진할 즈음에야 그에게로 돌아왔다. 잔뜩 술냄새를 풍긴 채 헤실거리며 웃는 그녀에게 진기는 별다른 말도 하지 못하고 문고리를 열고 말았고 결국 그 날로 두 사람은 다시 관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며 애써 한 화장까지 뭉개버리는 그녀를 겨우 진정시킨 진기는 제 침대에 그녀를 눕혀놓고선 이도저도 못해 결국 넓다란 거실에 눈을 붙이고 말았다.
- 그만하자. 우리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지친 것 같아.
" …. "
- 우리 나이도 있고.
- 그리고.. 나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 거, 너도 알지?
" ..네. "
- 그런데 나. 아직 너랑은 결혼하기 부담스러운 것 같아. 마음의 준비도 안됐고.. 그리고..
끊어질 듯 말 듯 아득하게만 이어지는 목소리에 진기는 더 이상 듣기 힘들다고 판단했던건지 잘게 입술을 다물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앞머리 사이로 손을 넣어 뜨거워진 이마를 붙잡았다. 몇일 새 또 연락이 되지 않아 어렴풋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머리에 작게 신음을 내뱉던 진기는 이내 미안하다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내놓는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전화기로 떨어지는 진기의 목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끊는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기야.
- 고마웠어. 정말.
" ..저도요. "
혀를 내어 초조한 듯 입술을 축이던 진기는 이내 그녀가 만족스러워할만한 대답을 내놓고 만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그녀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고상한 웃음소리가 진기의 귀에 콕콕 박혀왔다. 잘 지내.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그녀의 인사와 함께 휴대폰을 내려둔 진기가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끝까지 이러고 마는구나. 전화를 끊기 무섭게 밀려오는 자책감에 핸들을 쥔 진기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