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StartFragment-->라일런의 말에 입을 삐쭉거렸다. 선착장 앞에 미리 대기해 있던 비서 엘번이 차문을 열어주었다. 라일런은 먼저 차 밖으로 나서 손을 내밀어 내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본 엘번은 놀란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였다. 거의 여자를 대동하던 라일런이 이런 파티에 시꺼먼 남자 심지어 가족도 아닌 그저 친구라고 하기도 뭐한 상하 관계가 포함되어 있는 나를 대동하는 것은 매우 이색적이고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색적이고 놀라운 상황을 그저 재미라고 치부해버린 라일런은 나를 오늘 처음 보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업을 걸고 있는 여자인 양 굴었다. 그런 라일런의 모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런 나를 본 라일런은 마음에 안 드는지 내 미간을 눌렀다.
선장파티는 괜찮았다.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들과 샴페인도 좋았다. 딱 하나 내 동행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진,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누군데?”
“우리 아버지.”
“뭐?”
“다시 말하고 싶진 않은데 그냥 데려가면 되지?”
“아니 아니 근데 그게 무슨 소리야. 나를 왜?”
“뭐, 그냥 직원으로서 소개시키는 것뿐이야. 나름대로 너 우리 회사 초창기 때부터 있던 사람이잖아?”
“정말 그 뿐이야?”
라일런은 한쪽 눈썹을 살짝 들었다.
“진,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넌 생각이 너무 없어서 탈이라니까?”
하지만 그 생각 없는 짓거리가 좋은 쪽으로만 풀렸었다는 것만은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 이다.
어쨌든 그 대꾸에 마음에 안 들었는지 라일런은 가까이 그의 숨소리가 들릴만한 거리까지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냥 아무 말없이 따라오는 것이 좋을 거야, 진. 너도 몇 번 당했는데도 상황 판단이 그리 느린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마도 그런 눈치는 공부머리와는 관련이 없나봐?”
라일런의 말에 귓바퀴가 울리는 듯 했다. 그의 말이 맞다. 대학교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만나왔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감당이 안 되는 미친놈인 것 은 잘 아는 사실임에도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그의 한계치를 계산 못하고 몇 번 그 미친 짓을 당해야만 했다. 그에게 말고는 언제나 눈치가 빠르다는 말만을 들었던 나는 언제나 내가 왜 그랬는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그 말에 선상에 올라왔을 때부터 무알콜인 샴페인만을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술을 마셨던가 했다. 아니면 내가 그 라일런의 심기를 또 거슬리게 하려고 했을 리가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닥치고 고분고분 따라오라는 그의 뒤를 생각없이 졸졸 따라갔다.
그리고 그 따라감의 끝에 이미 장성한 아들들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한 중후한 멋을 내는 중년이 서 있었다. 라일런과 같은 금발에 라일런보다는 좀 더 짙은 흑 회색눈을 가진 그는 아마도 확실하게 라일런의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오, 그래 이 청년이 그 청년이냐?”
“예, 그러니 약속을 지켜 주세요.”
아마 이 청년도 그 청년도 나를 지칭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는 듯 했지만 그 약속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 다음으로 내뱉는 말에 그 약속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었으며 차라리 그 뜻하는 바를 모르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그러마. 내 아들이 게이라는데 억지로 약혼을 시킬 수야 없지.”
나는 경악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지만 내가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 은 알 수 있었다. 라일런이 게이라니 그러면 그 약속은 약혼을 깨는 것 일 테고 그럼 그 청년은...그리고 나는 그 상태에서 라일런이 다시 툭 칠 때 까지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고 아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여기서 부정한다면 나는 또 라일런의 미친 짓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이 상황이 그 미친 짓을 당하는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시끄러운 내 머릿속과 지금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파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 제가 떼를 써서 데려 온 거라서요.”
떼를 쓰다니 자신하고 정말이지 안 어울리는 귀여운 표현을 쓴 라일런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얼어 있었다.
라일런이 내 상태를 보더니 한숨을 쉬고 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제가 약혼을 할 뻔 했던 것에 화가 났나 봅니다. 이 사람 화 좀 풀어줘야겠어요. 이 사람 화나면 애타는 쪽은 이쪽이라서요.”
라일런은 능글맞게 웃으며 얼어있던 나를 밀회 장소로 종종 이용되곤 하는 선박의 많고 많은 문중에 하나를 열어 들어가 나를 끌어 당겨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