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이모네 집들이가 있는 날에 엄마와 이모가 크게 싸웠다. 밤에 맥주를 마시며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이모가 동생과 나를 돌봐주었을 때의 과거 이야기가 나왔고 그 떄 엄마가 우리를 맡기며 [어차피 너도 애 낳아서 키울건데 그 전에 연습한다 생각해]라는 식으로 했다고 한다. 분명 그때의 이모는 그것보다 더 모진말을 했어도 우리를 맡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15년도 더 지난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조금만 더 상냥했었더라면, 조금만 더 좋은 말투였었더라면 하는 생각과 섭섭함이 아니였을까. 엄마는 어느 정도의 술도 먹었고 평소에 자신의 말투에서 비롯된 타인의 과거에 대한 섭섭함에 불만이 많이 쌓여있었다. 그 때 싫었더라면 거절했으면 되는 일을, 그 때 다 괜찮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와서 미련이 남아 자신에게 불만을 하냐는 것. 사실 나도 싫지만 좋다고도 하고 거절하고 싶지만 알겠다고 하며 많은 감정을 미루고 참는 사람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이해 못할 존재가 되는 구나 싶어 조금은 슬퍼졌다. 우리 엄마는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일까. 순간적으로 엄마는 화가 나 큰 소리로 그럼 안맡아줬으면 됐지 왜 이제와서 그러냐며 역정을 내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맏벌이이신 우리 부모님은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우리를 여기저기 맡겨놓고 일을 가시고는 했다. 자신의 사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우리 엄마는 그냥 애들이나 집에서 돌보게 놔두지 왜 가게를 해서 힘들게 하냐고 아빠에게 말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돈은 돈대로 벌어야 했고 우리는 돌봐주지도 못하며 남의 손에 맡겨야 했던 엄마의 서러움이 마음 깊은 것에 크게 자리잡아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다. 이모는 그게 아니라 말을 조금만 더 좋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거 아니냐는 반문을 했지만 엄마의 감정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고 이미 자신의 고칠 수 없는 성격과 말투인데, 그렇게 되어버린 환경에서 자랐는데, 자기는 항상 나쁜 사람이 된다며 화를 내었다. 엄마의 큰 소리는 사실 처음 듣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혼나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복합적인 감정과 울음 섞인 고함. 나는 괜히 내 탓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친구들과 놀다가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 안갈 수 없어서 이사한 이모집으로 갔었다. 만약 내가 집으로 바로 갔었더라면, 이모가 말하는 엄마의 모진 말에 동조를 하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서러움을 조금은 지켜주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그 곳에 없었더라면 옛날 얘기도 나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그런 미련이 남는다. 난 더 이상 그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도피했다.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주변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그 상황을 견뎌낼 수가 없어서 미안해서 금방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러다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친척동생 방에 가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거실에서는 크게 싸우는 소리는 계속 들리고 주변에서는 말리고 겨우 16살 밖에 안된 친척동생과의 이야기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큰 이모가 엄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달래주었고 엄마랑 싸운 작은 이모는 거실에 힘없이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이모 곁으로 가서 술을 따라주며 이모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빨개진 눈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른도 별 거 없지?"하며 민망하다는 듯이 웃는 이모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이모집에서 자려고 했지만 조금은 진정이 된 엄마가 옷을 같아입으며 거실로 와서는 미안한 마음은 전혀 없는 듯한 말투로 이모와 이모부에게 사과를 했다. 차라리 안한 게 나을 정도로. 그 때 엄마는 "언니인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했다. 분명 그 상황을 충분히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괜히 서러움에 큰 소리를 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더 많다고 무조건 참을 필요는 없다. 나이가 많아도, 어른이어도, 노인이어도 다 감정은 있는 것이니까. 나도 옷 갈아입으러 화장실에 가서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 복잡하고 많은 감정들이 느껴져서 혼자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나도 엄마를 달래주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었고 등을 쓸어내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눈물이 너무 많은 나라서,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내가 만약 11살의 친척동생처럼 순수하고 어렸더라면 그랬겠지? 지금의 나는 클 대로 커버렸고 이제야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참 어렵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이모는 이모부에게, 엄마는 아빠에게 의지를 하며 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텐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텐데, 난 누구랑도 얘기할 수가 없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에게 말하기에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들에게 난 항상 어른스러워야 하고 혼자서 무엇이든 이겨낼 줄 아는 그런 사람이고 다른 사람보다는 감정이 메말라있는 그런 장녀이다. 이 압박감에서 더는 벗어날 수도 없고 사실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크다. 하지만 나는 여리고 생각이 많고 눈물도 많은 겨우 22살 어리숙한 사람일 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이다.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에게 사과를 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 이럴 때면 정말 나 혼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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