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학 전, 방학 기간 동안 닝 미리 고등학교 진도 예습도 하고 다이어트라던가 피부 관리라던가, 스타일도 바꾸고 화장하는 연습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듯 원래도 적정 몸무게에 화장 안 해도 예쁘장한 외모였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성적도 그럭저럭 나오는 편이었는데 이와쨩이 ‘성인이 되어서 찾아오면 그때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말 한 마디만 믿고 나중에 찾아갔을 때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서, 예뻐 보이고 싶어서, 자신이 이와쨩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엄청 노력할 듯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입학식 날, 학교에 닝에 대한 얘기가 퍼질 것 같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기에 앳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늘씬하고 예쁘장해서 애들 다 저도 모르게 한 번씩 눈길이 갔을 듯. 그리고 그런 시선들을 받는 닝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겠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덜덜덜 떨고 있었을 듯.
남들 시선을 받는 건 익숙하지 않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긴장 돼서 토할 것 같았음.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이랑은 뿔뿔이 흩어져서 학교에 친한 사람도 없고, 혹여 말실수라도 할까 봐 입도 꾹 다문 채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애들이 ‘얼음공주’ 같은 유치하지만 닝 분위기랑 어울리는 별명을 붙였을 듯.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낯설어 했던 닝, 점차 같은 반 애들이랑 친해지면서 종알종알 잘 얘기하고, 잘 웃고 하면서 학교생활에 무리 없이 적응할 듯. 근데 닝이 너무 잘 웃어서 별명을 ‘얼음공주’가 아니라 다른 걸로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얘기가 애들 사이에 잠깐 돌았었는데 안 웃고 있을 때는 빼도 박도 못하게 차가워 보여서 그냥 별명 안 바꾸고 그대로 놨을 듯.
아무튼 더 예뻐진 닝, 가끔씩 고백도 받았을 것 같다. 신발장에 고백 편지가 있다거나 어떤 애가 불러서 나가보면 고백을 한다던가. 닝, 이런 상황이 처음인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니까 고백 받는 횟수가 중학교 때보다 많아져서 조금 당혹스러울 듯. 하지만 당연하게도 닝에게는 이와쨩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너의 고백은 받지 못하겠다, 고백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이렇게 잘 돌려서 그리고 자신의 뜻은 확실하게 전달 되도록 고백을 거절하겠지.
매번 고백을 거절하는 닝에 친구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사실은 그런 사람은 없는데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절하는 거 아니냐고 짓궂게 물으면 닝은 되게 수줍게 웃으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고. 얘기하면서도 그게 누군지는 밝히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닝의 친구들, 수줍어하는 닝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구나, 하고 알아차릴 듯.
닝, 동아리는 방송부로 아나운서를 했을 것 같다. 왜냐면 방송을 통해 닝의 목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지니까 이런 걸 자주 하면 소심한 성격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소심한 상태라면 이와쨩한테 말도 제대로 못 붙일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해보고, 아무것도 못 해보고 거절당하는 건 싫으니까.
방학 기간 동안에는 열심히 예습하고, 학기 중에는 열심히 복습하면서 부지런히 공부하던 닝, 중간고사와 기말 고사에서 내내 좋은 점수 받았을 것 같다. 전교 5등 안에는 들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렇게 계속 공부하고 학교생활을 이어나갔을 듯.
닝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와쨩은 별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듯. 닝이 학교를 다녔던 때처럼 성별을 불문하고 학생들이랑 잘 지내고, 수업하고, 가끔 애들한테 자잘한 간식을 나눠준다거나 간식거리들을 나눠 먹는다거나. 오히려 그때보다 애들을 대하는 데에 더 익숙해지고 노련해져서 이제는 먼저 장난을 치는 일도 생길 듯. 그리고 여전히, 이와쨩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은 많을 듯.
닝의 경우에는 닝이 전혀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쨩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이와쨩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귀엽다고 생각할 듯. 그리고 어느 날, 어떤 학생이 고백이라도 하면 미안하다며 최대한 상처 안 받게 거절을 하면서도 닝의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를 듯.
고백하고 나서 갑자기 ‘망했다’ 싶은 얼굴이 되더니 눈물을 흘리고,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달래려고 했던 말에 순수하게 기뻐하던 모습. 조금,
...귀여웠는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와쨩 다급히 손으로 입을 막고, 혹여 들은 사람은 없나 주변을 살핀 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듯. 그리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 거다.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 했는지 듣지 못하기도 했고.. 사실, 알아내려고 하면 알아낼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겠지. 그냥, 그떄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 닝의 소식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고 일부러 찾지도 않지만, 그 애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기는 하겠지.
스승의 날이 되면 괜히 더 떠오르고 그럴 듯.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름 있는 명문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 거다.
닝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열심히 하지 않은 날이 없었겠지 공부든, 자신을 가꾸는 일이든, 교우관계든, 학교생활이든. 인기도 식지 않았을 것 같다. 졸업식 날, 많은 애들이 닝에게 관심을 기울였을 거고, 고백도, 단추를 주는 사람도 많았겠지. 정작 닝은, 드디어 이와쨩을 만나러 간다는,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생각 밖에 없었지만 말이야.
중학생 동생이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와쨩이 아직 그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닝, 대학교 입학 전 방학 기간 동안, 또 생각했겠지. 언제, 어느 때에 이와쨩을 만나러 가면 좋을까. 닝이 졸업식을 하던 날은, 이미 이와쨩네 중학교가 방학을 해버려서 가지 못했고. 개학식은 닝도 이와쨩도 정신이 없을 거라 기각. 그렇다고 아무 날도 아닌 날에 갈 수는 없어서 달력을 붙잡고 한참을 고민하던 닝, 마침내 스승의 날을 발견해냈겠지. 그래, 이 날이라면 졸업생인 닝이 학교에 들러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닝은 부지런히, 그리고 차근차근, 이와쨩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해냈을 거다. 공부에 알바에 교우관계에, 이래저래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느라 힘이 들지만, 이와쨩을 만나러 갈 생각을 하면 곧바로 기운이 났을 듯.
스승의 날이 되기 며칠 전, 닝은 예쁜 흰색 원피스를 샀겠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그와 어울리는 굽이 높지 않은 구두도 사고, 가방도 사고, 그날 하고 갈 화장이나 헤어스타일도 미이 연습했겠지.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할지도 생각해보고, 연습도 하고.
시간은 흘러 흘러, 스승의 날이 되었을 거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께 한 번씩 찾아가 인사라도 드리라며 일부러 일찍 끝내주신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속으로 전하고, 닝은 집에 들려 세팅을 끝낸 뒤, 4시, 그러니까, 중학교 수업이 모두 끝날 시간에 맞춰 학교로 출발하겠지.
그 시각 이와쨩은 마지막 7교시가 체육이라 체육관에 있었을 거다. 이미 중간고사도 다 끝난 터라 애들이 체육관에서 신나게 놀았던 탓에 농구공이라던가 배드민턴채 같은 걸 정리하고 있었겠지. 밀대 같은 걸로 체육관 바닥도 닦고 하면서 바쁘게 정리를 하던 중이었을 거다.
에어컨을 틀어놓긴 했지만 이리저리 움직이던 탓에 좀 더워서 청소를 하던 중에 잠시 멈춰 서서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땀을 식히고 있었겠지. 그리다 문득,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게 떠오르면서 닝의 생각이 나겠지. 꽤 자주 떠오르는 닝에 그 어지간히 인상 깊었던 고백이구나, 싶어서 이와쨩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으면서 다시 밀대로 바닥을 닦으려는데,
끼익-.
하고 체육관 문이 열릴 거다. 이와쨩 뭐지? 하고 움직임을 멈추고 열리는 문을 돌아봤겠지. 그리고 들리는 또각또각 하는 구두소리,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하얀 원피스 자락과 함께 흔들리는 검고 긴 머리카락. 그리고 붉은 꽃 한 송이를 손에 쥔 채,
…안녕하세요, 선생님.
...
혹시, 저... 기억 하세요?
그를 부르며 나타난 닝. 닝은 이와쨩을 보며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수줍게 웃겠지. 그리고 그런 닝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와쨩. 중학교 졸업식 때 봤던 순수하고 어리숙하던 그때보다 더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완전히 어른으로 자란 닝의 모습에 완전히 얼이 빠졌을 듯.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성인이 되어서 찾아오면 한 번 생각해주시겠다던 말, 지켜주세요.
결정타를 날리는 닝. 이와쨩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닝만 바라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