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Iver - Skinn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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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on skinny love, just last the year
어서 와요, 여윈 사랑, 그냥 이번 해를 버텨줘요
pour a little salt, we were never here
약간의 소금을 뿌려요, 여기 오지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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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고 선 쿠로오는 며칠째 끊이질 않는 물줄기를 내다보면서 빗방울이 똑똑 떨어져 내리고 있는 '비 우' 자를 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그 한자가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모양을 본떴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부터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빗방울들이 우산을 쓰고 있는 모양새로 유치원생의 쿠로오 테츠로에게는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사람들을 다 젖게 만들어놓고는 지가 우산을 쓰는 꼴이라니. 어두운 남색 장우산을 펼치며 대학교 2학년생이 될 쿠로오 테츠로는 비웃었다.
네코마 졸업생들과 졸업예정생들이 모일 패밀리 레스토랑은 모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3년 간의 등굣길을 따라가면서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길 이곳저곳이 꽤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 공터 한구석에 항상 더럽게 쌓여있던 쓰레기봉투들은 전부 없어졌고, 낮에는 어린이들이 뛰어놀다가 밤에는 불량한 중고등학생들이 심심찮게 담배를 피던 놀이터에 있었던 위험해 보이던 낡은 뺑뺑이 놀이기구도 사라지고 없었다. 나름 오래 버틴다고 생각했던 썩 맛있진 않던 라멘집 자리에는 어느샌가 서브웨이가 들어와 있었고, 그리 친하지 않았던 중학교 동창이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집의 문패도 들어본 적 없는 특이한 성씨로 바뀌어 있었다. 새로 생겨난 것보다는 없어진 것들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쿠로오는 마치 현실세계에서 틀린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틀린그림찾기'라는 합성어 속의 '틀린'이라는 단어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번 입맛을 다셨다.
그것 말고 그의 심기를 조금 불편하게 한 것은 낡은 음악재생기기에서 유선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이 왠지 좀 먹먹하게 들린다는 점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쿠로오가 들었던 이 안에 담긴 음악들 중에서 우울하지 않은 곡을 꼽으라면 그 편이 더 어려울 것 같지만, 하필 비 오는 날 길을 걸으면서 듣기에 지나치게 잘 어울려서 답답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그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면서 차들이 물을 튀기며 달리는 것을 보다가 자신의 발치에 놓인 꽤 커다란 물웅덩이에 이 엠피쓰리를 실수로 빠뜨리는 상상을 해버렸다. 정말 별것 아닌 망상이었지만 갑자기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괜히 두려워져 그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겉옷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그 기기를 꼭 붙들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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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세차게 내린다고 말할 수 있는 빗줄기를 뚫고 약속 시간보다 4분 정도 늦게 도착한 건물 3층에 위치한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리에프와 시바야마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나와 있어서 그를 반겨주었다. 며칠 전부터 장마마냥 축축하게 내리는 비에 내부는 어딘가의 테이블에서 아직 치워지지 않은 듯한 퀴퀴한 케첩 냄새가 났고, 밖이 내려다 보이는 큰 유리창 안팎으로 맺힌 물방울이나 입구의 발 매트가 눅눅하게 젖어있는 것이 그를 약간 거슬리게 만들었지만 옛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며 가볍게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누오카가 대각선 방향에 의자를 빼서 앉으며 우산을 놓을 마땅할 곳을 찾고 있는 그를 보더니 물었다.
"그러고 보니 쿠로오 선배는 바로 옆집이면서 왜 켄마 선배랑 따로 왔어요?"
"얜 오늘 노트북 보러 부모님이랑 같이 빅카메라 갔었거든."
"오, 선배, 좋은 거 사셨어요?"
"아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했어."
"뭐야, 부모님만 헛고생 하셨잖아?"
"불효자."
"아니 이걸 이렇게 몰아간다고...?"
"야, 야, 일단 먹을 거부터 시켜놓고 얘기해."
오랜만에 모인 멤버에 빠른 속도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자리가 더 산만해지기 전에 야쿠가 가운데에 놓여있던 메뉴판 세 개를 집어 빨리 고르라는 듯 왼쪽 오른쪽으로 친절하게 건네거나 시원하게 던졌다. 바로 옆자리에서 날아든 메뉴판을 멋지게 캐치한 쿠로오는 그렇게 애들을 닦달하는 야쿠를 보면서 어쩌면 야쿠도 주장 자리에 참 걸맞은 인재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빡빡했던 선배들로부터 네코마 고교 배구부 주장이라는 자리를 물려받은 자신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아닌 그가 이끄는 네코마 배구부도 썩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 배구하던, 혹은 하고 있는 남자들은 덩치도 덩치에 인원수가 제법이었기에 길게 마주 보고 앉는 것도 일이었지만, 각자 취향을 모아서 음식들을 주문하는 건 더 대단한 일이었다. 심지어는 애들이 착해빠진 나머지 뒤늦게 뛰어 들어온 덩치 큰 러시아계 혼혈 남자애와 그 하프와는 대조되게 정말 아담한 남자애 둘을 장난스레 혼내고 그들의 취향까지 반영하겠답시고 의견을 조율하는 바람에 주문은 더 늦어졌다.
쿠로오는 긴 리스트의 주문을 받아 적던 종업원이 메뉴 확인까지 다 하고 테이블을 떠나고 나서야 몇 인분인지 제대로 세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운동하던 놈들이면 대충 알아서 다 깨끗하게 먹겠거니 싶어서 그냥 편하게 뒤로 누웠다. 그제서야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는 후배들의 익숙한 목소리와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높은 톤의 웃음소리들이 귀에 들어왔다. 그때 쿠로오는 별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터였는데, 막상 이렇게 다들 모이고 나니까 정말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믿기지 않던 문자에 고이 개어두었던 상복을 입고 뭔가에 홀린 듯이 집을 나섰던 그날 이후로 거의 처음 느껴보는 안정감이었다. 막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타이밍 좋게 1, 2학년 후배들끼리 떠드는 걸 바라보던 야쿠가 작은 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좀 괜찮냐."
새로 입단한 구단 생활에 적응하랴 연습하랴 쿠로오보다도 훨씬 바빴던 야쿠 모리스케는 정말 저번 여름에 보고 만난 기억이 없었기에 쿠로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얼굴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가까이 지내고 의지했지만 좀처럼 볼 일이 없던 놈한테서 이런 걱정 어린 말을 정말 간만에 면대면으로 들으니 그는 별거 아니었는데도 조금 울컥할 뻔했다.
"응, 뭐, 나름."
"뭐야, 그 대답. 자다 깬 놈 같아."
"실제로 머리는 자다 깬 스타일이니까."
"카이,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그런 거야?"
그 졸업생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시바야마가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사이 화장실 갔다 온 리에프가 무슨 얘기 중이냐며 중간에 갑자기 끼어들었지만 딱 마침 주문한 음료수들이 나오면서 대화의 흐름이 흐지부지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직후에 쿠로오와는 조금 먼 쪽에 앉아있던 야마모토가 그러고 보니까 다들 어제 애들러스랑 라이진 경기 보셨냐고 서두를 떼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배구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당연히 봤다고 대화에 참여하면서도 그는 내심 더 불편한 쪽으로 얘기가 안 흘러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대화가 잘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로오는 이 마음씨 착한 배구부 동료들이 자신이 요근래 어떻게 지냈는지 전부 대충 알고서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괜히 혼자 찔려서 착각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 감은 낯설지 않았다. 단체채팅방에서도 쿠로오는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즐겁게 웃으면서 놀아도 상관 없었건만, 조금 느리게 흘러가던 대화 속도가 쿠로오가 나서서 먼저 시답잖은 농담을 하거나 웃긴 이모티콘을 보내고 나서야 자기들끼리 마음 놓고 떠들기 시작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분명히 졸업했고 이제 자기들 대장은 따로 있을 터인데 왠지 그는 아직도 자신이 주장 노릇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놀고 있던 터인데 말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말을 끝마칠 때마다 묘하게 자신을 단순히 쳐다보는 게 아닌 주시하는 듯한 야쿠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괜찮다는 대답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뭔가 그 이상의 것을 파고들려고 하는 크게 뜬 눈동자를 제대로 마주 볼 자신이 없었기에 다른 애들과는 모두 눈을 마주쳐도 야쿠만은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왜 이토록 죄지은 기분을 받아야만 하는지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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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 told you to be patient
난 당신에게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했었죠
and I told you to be fine
진정하라고 말했었죠
and I told you to be balanced
중심을 잡으라고 말했었죠
and I told you to be kind
친절해지라고 말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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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인 것이 아쉽지 않도록 아홉 명의 남자들은 많은 것을 사 먹고 버스로 몇 분 더 떨어진 거리의 번화가 중심을 구경하다가 들어간 쇼핑몰에서 좋아하는 선수의 포스터를 충동구매하고 근처의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고 탬버린을 치며 춤을 추다가 최근에 카이가 찾아냈다는 가성비가 괜찮은 야키니쿠 뷔페에 가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배부르게 저녁을 해결했다. 사실 쿠로오는 야키니쿠를 굽는 중간에 살짝 맥주 생각이 났던걸 무심코 입밖으로 내뱉는 바람에 졸업 예정생들을 잠깐이나마 기대하게 만들어 야쿠에게 질책을 받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졸업생들 중에서도 아직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술을 구매할 수 있는 나이의 사람은 없었기에 쿠로오는 사주지는 못한다며 내년 생일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라고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럼 선배는 어떻게 맥주의 맛에 눈떴냐는 리에프의 들뜬 질문에는 그냥 씨익 웃어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이 모임에 나오는 일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던 쿠로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에 갇혀서 쌓여가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씻겨나간 듯한 기분이 되었다. 처음엔 이들이 자신의 기분을 지나치게 살핀다는 느낌도 받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늘 서로가 알고 있던 그 배구부 남자애들로 돌아가 허물 없이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혼자 있길 원하면서도 사람을 만나야지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성격이라니. 자기가 생각해도 꽤 지랄맞은 성격이 아닌가 하는 과격한 생각도 속으로 해보았다.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세 명의 졸업생들이 나머지 인원들 것까지의 저녁값을 나눠 계산하고 난 뒤에 한참을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졸업식 때 되는 애들은 다시 보자고 기약하며 비교적 약해졌지만 우산을 안 쓰기엔 추울 법한 빗줄기를 뚫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거장으로 흩어졌다. 낙지처럼 흐물거리는 키 큰 후배가 자기보다도 작은 선배한테 지하철역 쪽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쿠로오는 당연하게도 켄마와, 그리고 우연히 타는 버스의 정류장 방향이 겹쳐 야쿠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방향과는 반대되는 식당과 유흥가가 몰린 쪽으로 똑같은 매무새의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직장인들 여러 무리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던 야쿠가 체력들 좋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물론 그렇게 말한 본인이 아마 방금 지나간 그 사람들과 지금 여기 셋을 포함해서 가장 체력이 좋은 축에 들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 후 잠시 이어졌던 정적은 야쿠의 담담한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뭐가?"
"나 사실 걱정 많이 했거든. 근데 생각한 것보다 그렇게 막... 쳐져 있는 것 같진 않네."
"...나말야?"
"응, 너."
야쿠의 말에 조용히 걸어가고 있던 켄마가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쿠로오는 그 말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억지로 소리를 만들어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사실까지 야쿠가 캐치해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류장과는 조금 먼 발치에 떨어져서 세 사람은 도로를 바라본 채로 멈춰 섰다. 비가 확실히 거의 안 내리기 시작한 걸 확인한 야쿠가 우산을 접는 것을 보고 쿠로오도 가로등 아래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를 체크하고는 따라서 우산을 접었다. 켄마만이 여전히 우산을 쓴 채였다. 야쿠는 사람이 없는 쪽으로 우산을 털어가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뭐라 하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어한다고 들은 것 같길래."
쿠로오는 야쿠가 방금 내뱉은 문장 중 '생각했던 것보다'라는 말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입밖으로 내지는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가 별 말이 없자 그를 잠깐 흘겨보고 난 야쿠가 버스에 탈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털어낸 우산을 잘 접어가며 다시 최대한 별일 아닌 척 말했다.
"너 걔랑 그렇게 친했냐?"
그 말에 켄마가 이번에는 야쿠가 아닌 쿠로오를 쳐다보았다. 마치 선을 넘는 질문일까 봐 실제로 하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이 여태까지 가장 묻고 싶었던 게 바로 그것이라는 눈빛이었다. 질문의 대상이었던 쿠로오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기에 고민했다. 사실 언젠가는 누군가로부터 바로 그 질문을 듣지 않을까 싶어서 본인도 몇 번 곱씹어보았던 의제였지만, 남들이 듣기에 그럴싸한 답변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도 잘 설득하지 못할 정도로 볼품없는 답변이었기에 그냥 나중의 일로 미루어두었건만,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그 의문점을 제3자가 정확히 짚어내자 더욱 할 말이 없어진 것이었다. 야쿠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는 쿠로오를 기다려주다가 정류장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는 걸 보고는 그를 똑바로 마주 보고 서서 다시 말했다.
"못 챙겨줬던 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말하자면 썩 상담사로서의 자질이 뛰어나진 않던 보건 선생에게 말하기 껄끄러운 사적인 질문을 받은 아이가 된 것처럼 쿠로오는 대답하기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야쿠도 켄마도 그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다만 쿠로오가 싫어하는 것 같았기에 대답을 구태여 종유하지 않던 켄마와 달리 야쿠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뿐이었다. 더욱이 이미 서로의 행선지가 명확한 상황에서 자리를 슬며시 뜨거나 다른 말로 질질 끄는 등 회피할 수 없었기에 그는 다음 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대답을 요구받을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어떤 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 말로 몇 분만에 겨우 운을 뗀 쿠로오에 나머지 두 사람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결국 동창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지금 던지고자 하는 이 물음이 그 질문에 대한 은근한 대답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쿠로오는 둘의 시선에 응하지 않고 길 건너편의 프랜차이즈 카페 입구로 한참을 망설이던 여자 둘이 드디어 유리문을 열고 우산을 접으며 들어가는 걸 보면서 물었다.
"왜 내가 걔 얘기할 때마다 별로 안 좋아했어?"
이번에는 쿠로오의 질문을 들은 야쿠가 말이 없었다. 사실 그건 야쿠에게만 묻는 말은 아니었다. 여태까지 그녀의 이름을 말했을 때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던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저 자신과 같은 학년을 지냈던 사람들 중에 그들을 대표할 만한 이가 야쿠 밖에 없던 탓이었다.
그 순간 인도와 인접한 3차선을 달리던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배려없이 세차게 물을 튀기며 지나가서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류장 쪽에서 누군가가 가방 혹은 옷에 묻은 흙탕물을 털어내며 작게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덜덜덜 거리는 버스 엔진음 수어 개와 헤드라이트의 빛들이 연이어 정류장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쿠는 잘 접힌 장우산의 끝을 땅에 댄 채 몇 바퀴 반시계방향으로 돌리다가 다시 시계방향으로 돌려 원래대로 바로잡고는 아무것도 없는 도로의 중앙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걔랑 오래 잘 지내던 애 한 명도 못 봤었으니까."
마치 중얼거리듯이 내뱉어진 말이 끝나자마자 때맞춰 도착한 야쿠가 타고 돌아갈 버스의 엔진음이 세 사람이 서 있는 정류장 근처의 공간을 꽉 채웠다. 아까 전부터 다가오는 버스 번호를 확인해 두었던 야쿠는 홀로 작은 웅덩이들을 피해 정류장 쪽으로 장우산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그러고는 고개만 약간 뒤로 젖혀 남겨진 두 사람에게 통보하듯이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 먼저 간다. 잘 들어가."
얼굴조차 쳐다보지도 않고 건네는 야쿠의 마지막 인사에 쿠로오와 켄마 중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탄 버스가 가솔린을 태우며 막혀가는 사거리 쪽으로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이 타고 갈 버스가 금방 도착했기에 우산을 쓰지 않고 있던 쿠로오는 머리카락과 어깨가 약간 젖는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그 버스에 타고나서 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이를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말없이 핸드폰을 하고있는 켄마 옆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쿠로오는 아직도 자신의 겉옷 주머니 안에 무사히 들어있는 이어폰과 낡은 엠피쓰리의 촉감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기기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음 음악을 이미 흘려보내고 있으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자신이 그것들을 잘 이겨낼 자신이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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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will love you?
누가 당신을 사랑할까요?
who will fight?
누가 싸우게 될까요?
who will fall far behind?
누가 저 멀리 뒤쳐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