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응?"
"네 여자친구 오늘 가족여행 간다고 했지?"
"그렇지."
"네 여자친구가 내 남자친구랑 가족인 줄은 몰랐네."
"하하."
편의점 왔다가 이게 뭐야.
편의점 밖에서 서로 팔짱을 끼며 다정한 행각을 하고 있는 두 남녀를 보며 코웃음을 한 번 친 닝이 원하는 가리가리군 맛을 찾기 위해 냉동고에 머리를 박고 안을 뒤졌다.
"오. 키스한다."
"얼씨구. 키스까지?"
스나는 재밌다는 듯 핸드폰을 들어 찰칵. 소리가 나도록 사진을 찍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져 다른 골목에 들어갈 때까지 냉동고를 뒤지던 닝을 기다리던 스나와 마침내 원하던 맛을 찾은 닝이 고개를 들었다.
"가자."
"손 끝이 빨갛네."
"너무 오래 냉동고에 넣어놨나 보지."
"다 먹을 순 있겠어?"
"오늘 다 먹을 거 아니야. 냉동실 넣어놓고 하나씩 먹을거야."
대화를 나누며 닝과 스나가 편의점을 나오고 스나는 자연스럽게 닝의 손에 들려있던 아이스크림이 잔뜩 담겨있는 비닐봉지를 제 손으로 옮겨들었다.
"아무렇지 않아보이네."
"그러게.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나보지."
애초에 내가 고백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덧붙이며 닝은 스나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서 가리가리군을 하나 꺼내 봉지를 까 입에 물었다.
스나 또한 자신 몫의 츄펫토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는 린도 아무렇지 않아보이는데?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랑 키스하는 걸 보고도 전혀 동요가 없네."
"나름 충격 받았는데."
"거짓말 치네.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으면서."
"역시 넌 못 속이겠네."
신고 있던 삼선 슬리퍼가 질질 끌리며 직직 소리를 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따갑게 피부를 태웠다.
"네가 별로였나보다. 매력 없는 남자친구였나보네."
"닝아. 그거 자폭인 거 알지?"
"아, 맞네."
쯧. 혀를 한 번 찬 닝이 발에 채인 돌맹이를 팍 차고 그걸 보던 스나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뭐, 좀 괘씸하긴 하네."
"복수할까?"
"어떻게 할 건데."
"글쎄. 우리도 우리끼리 바람필까?"
"하?"
어이 없다는 듯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닝의 얼굴에 스나가 미간을 피라는 듯 손가락으로 닝의 미간을 톡톡 쳤다.
"왜, 똑같이 돌려주자는 거잖아. 역지사지 좋잖아."
"아무리 그래도 너랑 나랑?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에?"
"괜찮지 않아? 난 좋은데."
"됐어. 그냥 헤어지면 되지."
"그러면 그렇게 해."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스나의 어이없는 발언은 잠시 머릿속을 부유하다 뜨거운 바람에 날아갔다.
오늘따라 멀기만 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슬리퍼가 직직 끄이는 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그거 맛있어?"
"새로 나온 맛이라길래 샀는 데 그럭저럭. 근데 난 역시 원래 먹던 게 낫다."
"한 입만 줘 봐."
스나가 고개를 숙이고 두 사람의 거리가 한 번에 가까워졌다. 와삭하는 소리와 함께 가라가리군의 한 쪽 부분을 먹은 스나가 다시 멀어졌다.
"나쁘진 않은 데 나도 늘 내가 먹던 게 낫네."
"그렇지? 역시 뭐든 익숙한 게 낫다니까."
그렇네. 그리 말하며 입꼬리를 올린 스나가 닝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카락 얼굴에 붙었다. 많이 더워? 평소보다 더 더워하는 것 같네."
그렇게 말하며 땀 때문에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돈해 귓 뒤로 넘겨주는 손길이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서.
그래서 말한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린."
"응?"
"다시 생각해봤는데 맞바람도 괜찮을 것 같아."
사랑은 바람을 타고
스나는 잘 생각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부터 늘 함께였다. 서로의 부모님이 학창 시절부터 친한 단짝들이었기에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서로의 일상에 함께했다.
스나와 닝은 늘 손을 잡고 함께 동네를 걸어다녔었다. 그러면 동네 어른들은 사이가 참 좋다며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탕을 한 움큼 손에 쥐어주곤 했다.
동네 어른들이 장난 삼아 둘이 결혼할거냐고 물어보면 두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라는 설명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늘 함께였다. 같은 반이 아닐 때에도 점심시간만큼은 약속하지 않아도 꼭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래서 스나가 고등학교는 스카우트를 받아 효고 현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닝은 스나의 집으로 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효고 현으로 간다고 했지?"
"응. 스카우트가 와서."
"그럼 나도 그 학교로 갈래."
"괜찮겠어?"
"괜찮고 안 괜찮고가 어딨어. 너가 가는 데 나도 가야지."
"후회 안 하겠어?"
"안 해."
그 말에 스나는 처음엔 조금 걱정하는 낯을 하다가도 흔들리지 않는 닝의 결정에 이내 웃으며 저녁에 뭐 먹을 건지를 물었다.
"너 내가 너랑 같이 간다고 안 했으면 진짜 혼자 갈 생각이었어?"
"글쎄. 같이 가주면 안 되냐고 매달렸을지도."
"아- 좀 기다릴 걸 그랬나. 린한테 갑질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미 지나간 기회는 돌아오지 않아."
"쳇."
입술을 내밀고 오리 입을 한 닝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잡은 스나에 닝이 인상을 찡그리며 나라라고 말하며 발로 스나를 밀었다.
아야.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척을 하며 밀려난 스나가 자신의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닝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린, 닝? 저녁은 언제 먹을... 어머."
스나의 방문을 연 스나의 어머니가 입을 손으로 가렸다. 아까까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어느새 잠에 빠져있었다.
두 사람이 깨지 않게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온 스나의 어머니가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곤 불을 끄고 문을 닫아주곤 방 밖으로 나갔다.
"여보, 린이랑 닝은?"
"피곤했나봐. 둘이 같이 자네."
"그래? 그럼 자게 냅두고 나중에 깨면 저녁 먹자."
"그럴려고."
방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사라지자 방 안은 두 명분의 고른 숨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
한 2편이나 1편 정도로 마무리가 될 것 같은 짧은 글.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