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민윤기] 10년만에 만난 친구가 일진이 되었을 때의 대처법.01
W. 숭해
내가 7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10년 전에 나는 굉장히 활발한 아이였다.
동네를 지나다니면 아줌마들이 눈에 주름이 지게 활짝 웃으며 사탕 한 개라도 쥐어 줄 정도의, 인사도 꾸벅 잘 하는 낯 가림이 없는 그런 애였다.
우리 어린이집에서도 유명했지, 그 때 당시 모든 여자 아이들의 공통적인 별명인 ' 조폭 마누라 ' 라는 수식어도 항상 따라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불을 뻥뻥 찰 만한 기억이지만 그 때의 난 참 행복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나는, 뭐든 솔선수범 하며 친구들을 앞장섰다.
우리 햇님반에 새로운 남자아이가 왔을 때에도, 나는 내가 잘 챙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책임감이 너무도 당연시했었다.
남자 아이는 또래에 비해 참 조용했다. 말만 걸면 애들을 피하고, 부끄러워 하고, 맨날 울었다. 나보다도 훨씬 작았다.
남자 애들 사이에서 울보 라고 놀림 받아 친구가 없던 그 애 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것은 모두의 예상대로 나였다.
그 때부터 그 애는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선생님 말씀도 듣지 않고 내 말만 옳다고 믿으며 나만 따라 다녔다.
나도 그 애가 귀찮을 법도 했지만, 자꾸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아기를 대하듯이 그렇게 챙겨주었다.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귀엽다며 웃던 선생님들도 계셨다.
그 애와 반 년 정도 있었을까, 날씨가 점점 쌀쌀해졌다. 겨울이 오기 시작할 때 쯤 되니 우리 집은 이사를 갔다.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마치고, 짐을 챙기고, 아빠 차를 타고 어린이집을 떠날 때까지. 내가 본 그 애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참, 웃기지. 그 때는 뭐가 그렇게 진지하고,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꼭 다시 보자는 인사를 남긴 채, 나는 그 애와 영영 이별했다.
그리고 지금 10년 후, 다시 그 동네로 이사오게 되었다.
비록 집안 사정 때문에 자취를 하게 되었지만 뭐 어때. 싶은 마음으로 학교 근처에 이사까지 오니, 그 애가 절실하게 그리워 졌다.
아직 여기 살고 있을까?
그 때의 그 어린이집 바로 옆인 고등학교이자 내가 다닐 고등학교에 다른 애들보다 살짝 늦게 등교했다.
아, 지각이다. 라는 생각에 부리나케 뛰어서 후문 쪽으로 들어가는데,
" ..... "
나를 기억할까? 나만 알고 있는 추억일 뿐일까?
그 애는 10년 간의 긴 상상들을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해주었다.
그 울보 찌질이가, 나만 쫒아다니던 나보다도 조그맣던 꼬마가.
내 앞에서 불량한 교복 차림새로 담배를 피워대고 있는 모습이.
10년의 설렘을 무너뜨렸다.
" 민윤기... "
나도 모르게 불렀다.
그 애의 이름, 불현 듯 떠오른 이름. 민윤기.
이게 뭐야, 머리가 복잡했다.
너는 나보다도 훨씬 컸다. 어쩌면 너무 커버려서 조금 무서웠다.
" 가라. "
너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담배를 마저 피우는 민윤기에, 홀린 듯 너를 지나쳐 학교로 들어왔다.
계속 뛰어와서 그런가, 심장이 폭발할 것 처럼 뛰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