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장 민윤기랑 연애하기 12-2 (부제 : 마침내, 결국은)
w. 달비
12-3
“뭐야, 둘이 뭘 그렇게 비밀스럽게 카톡을 하고 그래요?”
“좋은 말로 할 때 입 다물어.”
2차가 끝나갈 무렵, 김태형은 아예 핀트가 나가버렸고 저런 아슬아슬한 상황만 벌써 몇 번째 연출되고 있었다.
민윤기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것 같음에도 어금니를 꽉 물며 김태형을 타일렀지만, 김태형이 민윤기 말을 들었으면 진작에 들었겠지. 내 쪽까지 들리지 않는, 뭐 약간 좀 험악한 것 같은 말들이 옆에서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김태형은 꿋꿋했다. 헤실헤실 웃어가며 금방이라도 일을 터뜨릴 것 같이 구는 꼴이 참 아슬아슬했다.
“뭐야, 뭔데. 나 빼고 무슨 얘기 해요?”
설상가상으로 정호석까지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우리 대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김태형의 나댐에 동참하기 시작했으니 뭐, 말 다 했지.
딱딱하게 굳어버린 민윤기의 표정을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보고도 술김에 어딘가부터 굴러 나온 용기가 그 얼굴을 무시할 수 있게 된 건지 김태형은 참 대단하게도 입 놀리는 걸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나는 거의 반포기 상태였고, 그의 앞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고개를 박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뿐이었기에 김태형을 막는 건 온전히 민윤기의 몫이었다. 애초에 김태형을 막는다는 게 불가능하긴 했지만. 그것도 술에 취한 김태형이라면 말이다.
어느새 2차는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끝나가는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자리를 일어나는 동기들이 속속히 등장할 때쯤,
“아, 형! 이제 좀 떳떳해져도 되잖아요…!”
“다물어.”
“흐- 아니, 왜 숨겨요?”
“다물자, 태형아.”
“둘이 사귀는…!”
일은 기어코 터지고 만다.
“……?”
“……?”
“윤기형이랑 여주랑 사귄다고?"
그것도 제대로.
.
.
.
“와, 형 그러는 거 아니에요. 대체 얼마나 속인 거야.”
“…….”
“이야- 오빠, 신입생은 너무 도둑 아니에요?"
“어쩐지 둘이 낌새가 이상하더라니.”
“자, 그럼 우리 모두를 속였으니 벌칙주 콜?”
“콜!”
방금 한 대답은 나나 민윤기가 한 게 아니다.
정호석의 되물음을 시작으로 끄트머리에 물음표를 매단 말들이 줄지어 이어졌고, 결국 모든 테이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시선이 나와 민윤기 쪽으로 쏠렸을 때 김태형은 테이블 위로 엎어진 상태였고, 우리는 아무런 부인을 하지 않으며 암묵적으로 연애를 인정했다. 그렇게 식어가던 2차 분위기는 우리의 연애 공개로 다시 뜨겁게 달궈졌으며, 그동안 속인 것도 대단하다느니, 나는 사실 눈치 채고 있었다느니…. 민윤기와 눈을 마주보며 한숨을 내쉴 때 이미 자기들끼리 낸 결론은 민윤기는 도둑놈이다 였고, 많은 사람들을 속인 우리는 벌칙주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언니들과 오빠들이 합심하여 만든 벌칙주는 차례대로 나와 민윤기에게로 향하고, 마셔라!를 외치는 소리에 잔을 들면,
“이리 줘.”
“아, 뭐야- 흑기사 하는 거예요 지금?”
“와…. 형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야유에도 민윤기는 내 잔까지 받아들어 단숨에 들이켰고, 아무렇지 않게 입가를 닦아내더니 시간이 늦었다며 나머지는 날 좀 데려다주고 나서 받겠다며 날 일으켜 세웠고, 뒤통수로 꽂히는 따가운 시선 위로도 가게 문 밖을 나설 때까지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목소리들이 쌓였다.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했던 것과는 달리 거리는 의외로 한산하고 조용했다. 은은하게 깔리는 자동차 소리와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우리의 발밑으로 쌓여가고,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 손만 잡은 채 걸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아직까지도 술집에서의 시끄러움이 귓가에 웅웅 맴돌아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민윤기에게 물으면 괜찮아. 하며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사실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었다. 단지 과씨씨, 그것도 고 학번과의 과씨씨이다 보니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원래는 종강하고 한 2학기쯤엔 공개연애를 할 생각도 있었다. 다만 예상보다 시기가 빨랐다는 것, 또 예상치 못했던 때라는 것.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의 공개연애란 참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공개된 거라면 더더욱.
“그래도 후련하네.”
그래도 뭐 어쨌든, 민윤기라면.
“…….”
“이제 마음껏 티내야겠다.”
“…….”
“너무 걱정하지 마.”
민윤기니까.
12-4
걱정 반, 설렘 반, 복잡한 감정들을 모두 껴안고 잔 뒤 일어났을 땐, 자는 동안 가장 연락이 많이 와있었던 건 김태형이었다.
어떻게 1교시 수업은 용케 갔는지 아침부터 카톡이 꾸준히 와있었고, 대충 내용은 이랬다.
- 여주야 미안해 ㅠㅠ
- 여주야….
- 내가 잘못했어.
-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고기? 고기 먹을래?
- 자니…. 답 좀 해줘….
카톡 잠금화면에 뜬 미리보기로 모든 내용을 확인한 나는 답장을 하지 않은 채 학교 갈 준비를 마쳤고, 점심때가 다 되도록 민윤기는 연락이 없었다.
어젯밤,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애들이 이를 갈고 있어서 연락이 잘 안 될 수도 있다고는 했는데 아직까지 자는 걸 보면 어제 그렇게 돌아간 후에도 계속 술을 마시게 한 것 같다. 술이 그렇게 센 편도 아닌데 꽤나 고생했을 것만 같아 학교로 올라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숙취음료를 사들고 문과대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 건물 앞에 가만히 서서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들어가면,
“야, 대박- 나 어제 그 오빠 미친 줄 알았다.”
“그러니까. 오늘 윤기오빠 오면 태형오빠 완전 작살날 것 같은데.”
응. 그 전에 내가 먼저 작살내려고, 친구야.
“그나저나 다른 과 학회장도 다 알더라. 니네 얘기하던데.”
“뭐라고?”
“그냥, 둘이 연애한다고. 윤기오빠 도둑놈이라고 그러지, 뭐.”
유독 우리 과가 소문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벌써 다른 과까지 이 이야기가 다 흘러갔나보다.
내가 막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수업 중이었는지 조용했던 건물 안이 조금씩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면서 강의실로부터 과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바로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설마, 했던 일의 시작.
“어? 여주야!"
편의점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있었더니만 그 주위를 빙 둘러싸며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는데 쏟아지는 질문은 많았지만 정리하자면 다 똑같은 말이었다. 어떻게 만났냐, 얼마나 만났냐…. 난처하긴 했지만 그래도 웃으며 다 대답을 해주는데 누가 내 머리 위에 손을 얹더니만,
“그만해라.”
이 목소리에, 아직까지도 술 냄새가 나는 게 딱 민윤기였다.
고개를 뒤로 젖혀 얼굴을 바라보면 눈을 마주보며 볼을 두어 번 톡톡 두드리고, 이내 내 옆에 의자를 빼서 앉는다.
그 모습에 선배들은 닭살이라는 듯 팔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리고, 민윤기는 그래, 너희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나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고, 나는 처음엔 앞에 언니, 오빠들 눈치를 보다가 곧이어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자다가 바로 나온 거야?”
“응. 1교시는 자체휴강 했어. 피곤하다."
"그러게 술 조금만 마시지.
학회장이라는 직책도 있고, 술을 마셨어도 항상 말끔한 차림새로 오곤 했는데 어젠 정말 많이 마신 듯 아예 얼굴을 꽁꽁 감싸고 왔다. 마스크에, 모자에, 후드에, 거기다 술 냄새는 옵션. 속이 안 좋다는 민윤기의 말에 가방 깊숙이 넣어뒀던 숙취음료를 꺼내 건네면 고맙다며 한껏 웃어준다. 그 와중에 예쁘네.
“뭐야, 둘이 반말 써?”
“그럼 사귀는데 존댓말 쓰냐?”
“어? 여주…! 형…."
민윤기가 꽁꽁 감싸고 있었던 것 때문인지 김태형의 시각에서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건 나밖에 없었기에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달려오려는 찰나에 고개를 돌린 민윤기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런 민윤기는 곧바로 입을 살짝 가렸던 마스크를 턱 밑까지 내리며 김태형을 향해 이리 오라고 손짓했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김태형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민윤기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김태형, 이 개새끼. 너 이리 와.”
아마 오늘이 학교에서 보는 김태형의 모습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그러길 바라며 민윤기를 응원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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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비의 말 (약간의 연재공지) |
안녕하세요. 달비입니다. 제목미정 맛보기 2편을 올리던 주에 12-2편을 들고 오기로 했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들고 오게 되었네요. 죄송해요. 음, 3-4개월 아무 말 없이 잠수를 탔다가 돌아온 이후에 연재가 되게 불안정한데 제가 독자님이라면 좀 어라 뭐지...? (심기불편) 싶을 것 같아서 뭐 어떤 말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게 지금 상황이자 제 심정입니다. ㅠㅠ 그냥 항상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제 곧 개강이기 때문에 제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읍니다. 네. 바빠질 예정이에요. 일주일 내내 겹치는 수업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학기 초는 괜찮겠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학기 중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바쁠 것 같아요. 바빠지기 전에 꼭 완결을 내고 싶은데 그게 뭐 제 마음대로 되는... 제 마음대로 되겠네요. 제 글이니까요. 하하. 하하하...(먼 산) 틈틈이 글은 쓰겠지만 아마 이제 텀이 좀 길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또 곧 자취방 입주를 해서 매우 바쁩니다... 그래도 열심히 글 쓰도록 할게요. 제가 답글 남기지 않아도 댓글 여러 번 읽는 건 아시...조? 진짜 틈날 때마다 읽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한 분, 한 분 모두 정말 감사드리고 매번 글 같지도 않은 (울컥) 글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 뿌듯하고 고맙고 행복합니다. 아무튼! 네. 늦게 와서 죄송하고, 앞으로는 텀이 더 길어질 것 같다는... 네... 그런 말이었읍니다. 방학이 한 달 연장되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뭐했다고 3개월이 이렇게 금방 지나간담...! (이마짚) 이 새벽에 올려서 아마 아침이 돼서야 다들 읽으실 것 같은데, 아직 안 주무시는 분들은 얼른 주무세요! 저도 자러 갈 겁니다! 잘 자요! (급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