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지 못한 슬픔으로 목 놓아 울던 왕비여. 초생달이 하늘에 걸린 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숲 속으로 가시오. 어둠이 반기리. 어둠이 그대를 축복하리. 고요한 냇물에 몸을 뉘이시오. 천천히, 물결이 차마 흔들리지도 못하게. 근심으로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다시 꽃 피우소서. 늙은 달빛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못하리.
“옛날이야기를 믿기엔 다들 너무 커버렸지.”
새로운 왕의 탄생은 조용하게 진행될 것이오. 초생달이 제 기를 펼치다 지쳐 그믐달이 된 날, 왕관의 주인이 깨어날 지어니. 바람 한 점 불지 않게 하겠소. 온갖 만물들이 그의 탄생을 축복하리. 정적을 깨고 울부짖으소서. 탄생, 그 하나만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시오.
“오히려 이야기를 조롱할 뿐.”
Persona
가면을 벗어주오.
왕비의 울음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가녀린 음성이 높은 천장에 닿았고 왕은 귀를 막았다. 듣기에 거북하구나. 왕은 신하에게 말했다. 문을 닫거라. 죄악의 심판은 어둠이 어련히 해낼 테지. 저 배에 아이까지 배게 하지 않았더냐? 웃긴 일이지. 내가 그렇게 아이를 원해도 끝내 품지 않더니 어둠과 행위를 속삭였더군. 제 간수 따위와.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저년을 창녀촌으로 보내어라. 저 계집에게는 왕비가 아닌 매춘부가 딱이다.
아이의 탄생, 그로부터 십 년 후. 왕비는 행방이 묘연해지고 왕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마을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오른 아이와 엉망이 된 왕궁. 코흘리개가 읽을 법한 동화 같은 이야기는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들이 어린 왕을 괴롭혔다. 귀를 막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궐 안 숨 쉬는 존재는 저 혼자뿐이었고 고요함은 유일하게 숨 쉬는 어린 왕의 숨통마저 막히게 했다.
안녕. 어린 음성이 빈 공간을 울렸다. 작은 손이 왕의 귀를 감쌌다. 무섭구나. 오른쪽 귀를 덮었던 손이 왕의 눈을 가렸다. 오른쪽 눈, 왼쪽 눈, 차례로. 모두 감긴 눈에서 설움이 흘러내렸다. 듣기 싫으면 듣지 마. 보기 싫으면 보지 마. 왕이 팔을 뻗어 저와 비슷한 키의 소년을 끌어안았다. 앞으로, 내 눈이 되어줄 수 있느냐. 소년이 살그미 고개를 끄덕였다. 내 귀가 되어줄 수는 있느냐. 소년이 작게 대답했다. 그럴게. 내 곁에 있어줄 수 있겠느냐. 소년은 어린 왕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폐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사뭇 진지함까지 띠었다.
한줄기의 어린 달빛의 출입, 왕은 궐의 문을 닫았다. 새어나갈까 두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