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월드컵은 못 나가니(2011년 독일월드컵은 아시아 예선 탈락) 2015년 월드컵을 노려야죠. 민지와 힘을 합치면 훨씬 강한 팀이 되지 않을까요."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과 여민지(22·스포츠토토)는 2010년 여자축구 신드롬의 중심이었다. 5년 전 어렵게 두 선수를 동반 인터뷰했을 때 지소연은 눈을 반짝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옆에 앉은 여민지(22·스포츠토토)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시 지소연이 속한 여자 20세 이하(U-20) 대표팀은 7월 독일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자 U-17팀은 그 바톤을 이어받아 9월 트리니다드 토바고 여자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썼다. 한국축구 역사상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첫 우승이었다. 여민지는 트리플크라운(우승-득점왕-MVP)을 달성했다. 지소연과 여민지는 지금의 기성용(26·스완지시티)-손흥민(23·레버쿠젠) 같은 대접을 받았다.
이제 그들의 꿈은 현실이 됐다. 한국은 오는 6월 캐나다 여자월드컵 진출권을 당당히 땄다. '꿈의 무대'를 앞두고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 소집된 두 선수를 12일 만났다. 여민지는 8일 들어왔고, 영국 리그에서 뛰는 지소연은 이날 막 귀국해 합류했다.
2010년 당시 지소연(왼쪽)과 여민지.
◇ 오래 기다린 월드컵
- 동반 인터뷰는 5년 만이다.
지소연(이하 지) : 아유. 그 때는 (여)민지가 인터뷰 다 했죠. 우리는 3위했지만 민지는 우승했으니까. 하하.
- 5년 전 함께 월드컵에 나가겠다고 말했던 것 기억하나.
지 : 그럼요. 5년 전에는 따로 뛰었지만 이제 같이 가잖아요. 너무 기다렸던 월드컵이에요.
여민지(여) : 언니와 발 맞춰 뛸 생각하면 설레요.
지 : 민지가 부러워요. 저도 민지 나이에 월드컵을 나갔다면 이번에 후배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데 말에요. 월드컵 경험한 언니가 두 명 뿐이잖아요(공격수 박은선과 골키퍼 김정미).
- 김정미와 박은선은 어떤 조언을 하나.
지 : 20세, 17세 월드컵과 성인월드컵은 모든 게 다르다고요. 정말 선택된 팀들만 나오는 거잖아요.
- 대담하기로 유명한 지소연도 월드컵 첫 경기에서 긴장을 할까.
지 : 긴장될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데요. 하지만 월드컵을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어 빨리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여 : U-17 월드컵 결승 때도 너무 시끄러워서 우리끼리 의사소통이 잘 안 됐어요. 이번에도 두 경기(1, 2차전)는 돔구장이니 더 정신없겠죠. 경기장에 애국가 울려퍼질 생각하면 흥분돼요.
- 조별리그 성적 예상은.
지 : 일단 브라질(1차전)은 이기면 좋은데 무승부만 해도 괜찮을 것 같고요. 브라질이 첫 경기니 전력 분석에 가장 신경을 써야죠. 코스타리카(2차전), 스페인(3차전)은 이겨야죠. 느낌은 16강 갈 것 같은데. 최악의 경우라도 1승1무1패로 16강?
여 : 저는 U-20월드컵(2012년 일본) 때 브라질(2-0)이랑 했어요. 역습 두 방으로 골이 났죠. 브라질에 비해 개인기는 부족하니 강한 체력으로 카운트어택 해야죠. 역습에서 (지)소연 언니가 하나 넣어주겠죠.(웃음)
◇ 희비 엇갈린 지난 5년
5년 전 지소연과 여민지는 모두 '천재'로 불렸다. 이후 희비는 엇갈렸다. 지소연은 영국 첼시에 진출해 한국 여자축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우뚝 섰다. 반면 여민지는 지긋지긋한 부상으로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졌다가 최근 기량을 회복했다.
- 여민지는 지난 5년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여 :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죠. 하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인간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나쁜 시간은 아니었어요.
- 한때 축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던데.
여 : 2012년 초에요. 왼발등이 너무 아파서요. 통증이 가시질 않아 '이러다 축구 못하는 거 아닌가' 싶더군요. 힘들 때 소연 언니 조언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지 : 민지가 아플 때 너무 안타까웠어요. 지금 이렇게 같이할 수 있어 너무 기뻐요. 민지는 훨씬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으니 제가 힘 닿는 부분까지는 이끌어주고 싶어요.
- 지소연은 5년 동안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지 : 글쎄요. 2011년 일본이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요. 정말 부럽고 배아파 죽을 뻔했어요. 하하. 우리는 나가보지도 못한 월드컵인데.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저 일본대표팀에 친한 선수들이 많아서. 헤헤.
- 지소연은 늘 칭찬 받는 선수 아닌가.
지 : 아녜요, 저 훈련하면서 진짜 많이 울었어요. 최인철(2010년 U-20 여자대표팀 감독. 현대제철 감독) 감독님 때요. 저에게 유독 엄하셨어요. 패스 미스 하나만 해도 큰 소리로 혼났죠. 그래도 칭찬을 받는 것보다 꾸중들을 때 더 발전이 있는 것 같아요.
- 여민지는 김은정 코치(여민지 함안대산고 시절 감독. 현 대표팀 코치)가 많은 힘이 될 것 같은데.
여 : 그럼요. 코치님이 정말 눈이 좋으세요. 뭘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빠르고 잡아내시니까요. 예전의 저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이니 정말 도움이 되죠.
- 여민지는 유럽 무대에 대한 꿈은.
여 : 나가고야 싶죠. 많은 분들이 소연 언니처럼 안 나가냐고 물어보시는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요. 팀과 계약도 있고….
지 : 민지는 오면 통해요. 물론 처음에는 힘들 거에요. 진짜 터프하거든요. 저도 진짜 많이 나가떨어졌어요. 민지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 지소연이 경기 중 강하게 질책할 때도 많은데.
여 : 예. 욕을 하지는 않고요 음…. 성을 내는 정도? 하하. 근데 별로 상처가 되진 않아요. 언니 말에 수긍하게 되죠.
지 : 민지야 괜찮아 편하게 말해(웃음). 승부욕이 강해서 그런거죠 뭐. 근데 사실 저는 언니, 후배들 의견도 늘 듣고 공유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축구는 팀 스포츠니까요.
- 훈련이 고된 듯하다.
지 : 참아야죠. 지금은 만신창이가 돼도 나중에 보약이 될 거에요.
여 : 언니. 아직 훈련 안 해봐서 그런 거야. 지금 충분히 힘들거든. 전 오늘 훈련 끝나고 울컥해서 눈물이 나더라니까요.
지 : 그 정도야?
여 : 내일 한 번 해봐요.
◇ 민지가 돕고 소연이 넣고
5년 전 여민지는 풋풋하고 앳된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은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숙녀로 성장했다. 지소연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털털해 보인다.
- 여민지는 많이 성숙해졌다.
여 : 예전엔 몰랐는데 언젠가부터 '남자같다'는 말이 듣기 싫었어요. 머리도 기르고 평소에는 신경도 좀 쓰죠. 하하
지 : 저라고 왜 안 그러고 싶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여 : 언니, 그럼 내가 뭐가 돼(웃음). 이건 확실해요. 저도 경기장 들어가면 '상남자'로 변해요.
- 영국에서 뛰는 남자 선수들이 응원 안 해줬나.
지 : (기)성용 오빠가 밥 많이 사줬어요. 비싼 소고기로요. 식당 가서도 종업원에게 저를 가리키며 '얘 많이 주라고. 많이 먹고 힘내야 한다'고 하고요(웃음).
여 : 우와.
지 : 존 테리(35·첼시의 간판 수비수) 삼촌도 한국 오기 전에 격려해줬고.
여 : 테리 삼촌이라고 해? 언니 그럼 아자르(첼시의 핵심 공격수. 지소연과 동갑. 아자르와 지소연은 나란히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뽑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됨)랑은 친구야?
지 : 친구는 무슨. 흐흐.
- 월드컵에서 골을 합작할 자신 있나.
지 : 제가 언니니까 민지한테 도움 받아서 한 골 먼저 넣고요. 그 다음에 제가 또 민지 도울께요.
여 : 그런 시나리오대로 가면 우리 16강은 충분히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