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최세훈 교수님의 글입니다
흉부외과 교수 사직의 변.
매일 악몽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불과 한 달 만에 이 땅의 의료가 회복불능으로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불과 1달 전, 우리 팀이 전부 있었을 때에는 어떤 환자가 와도 무서울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환자를 보는 것이 무섭고 괴롭습니다. 어떻게 치료하면 될지 손에 잡은 듯 알면서도 여건이 안 되어 그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사를 초라하게 만드는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외래에서 환자에게 “나도 미치겠어요. 우리 팀만 다 있었으면 하루에 몇 명이라도 수술할 수 있다고요. 나도 정말 수술하고 싶어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요” 울컥 말을 내뱉고는 제가 더 놀랐습니다. 인턴/전공의/전임의 없이 수술하고 병동을 지켜온 지 이미 한 달, 원체 밤새 수술하는 사람이었으니 몸이 힘든 것이야 큰 문제가 아닙니다만, 정신이 너무 힘듭니다. 전공의/전임의가 사직한 후 제가 혼자서 수술할 수 있는 환자는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급한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수술하다 보면 나머지 환자는 그저 쌓여만 가고, 다른 곳에 보내려고 해도 ‘수술 공장’이냐고 핀잔 듣던 big 5 병원들의 그 많은 환자들이 다 어디를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만 할 뿐입니다. 작년에만 해도 ‘폐암 진단 후 1달 이내 수술하는 비율’을 따졌는데, 지금 폐암 환자들은 기약없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과 1달 사이에 바뀐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정신을 온전하게 가다듬지 못하겠고, 당직이 아닌 날도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제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어 무섭습니다.
이 상황을 도저히 못 견디어 사직서를 냅니다. 더 이상 새로운 환자-의사 관계를 만들지 않을 것이고, 제가 수술하기로 약속했던 환자들까지는 어떻게든 해결하고 난 후 저는 이 자랑스러웠던 병원을 떠날 것입니다. 저는 가장 행복한 흉부외과 의사였습니다. 학생/전공의일 때 좋은 교육을 받았고, 외과의사로 독립하였을 때에는 최고의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외래 보는 동안 내내 환자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다 보면, ‘내가 뭐라고 이렇게 쓰임을 받나.’ 분에 넘치는 선물에 몸 둘 바 모르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만나는 전공의/학생 누구에게나 흉부외과는 정말 좋은 과라고, 나의 노력이 그대로 환자의 생명으로 연결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평생에 걸쳐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끼는 인생을 산다고 적극 권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흉부외과 전공의/전임의가 있었던 병원에서, 같이 일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큰 기쁨 속에서 진심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정말 멋지고 값진 순간들이 많았는데… 평생 하라고 해도 즐겁게 일할 것이었고, 이 세상에 흉부외과 의사가 한 명 남는다면 그게 나 일 것이라고 장담하였는데… 이렇게 떠나게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황금 시기, 외국 어디를 가서 무엇을 봐도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던 시기는 이제 끝이 났음을 압니다. 정말 너무 슬프고 황당해서 요사이 계속 머리가 멍한 채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환자 한 명의 병도 정확하게 진단하고, 수술 계획을 세우고, 환자가 이 수술을 견딜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온 나라의 의료 체계를 바꾸는 것은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할까요? 이렇게 졸속으로 강압적으로 진행하여서는 안 됩니다. 정책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 정책으로 인하여 한 나라의 의료가 붕괴된다면 아마추어 정부, 돌팔이 정부일 뿐입니다. 정말 길가는 국민 한 분 한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잘 못 했는지… 우리 나라 의료가 그렇게 망가져 있었는지… 이런 파괴적인 의료 정책이 정말 필요한 상태였는지…?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의사를 가장 편하게 빨리 볼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어려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나라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공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인데, 이 정부의 무자비한 정책으로 그들 모두가 미래에 절망한 채 자발적인 사직을 결정하였습니다.. 전공의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땅의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전문의가 되어 이 땅 의학의 맥을 이어갈 사람들입니다. 전공의들이 우리의 미래였기에, 그들 모두가 떠난 지금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에는 절망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하고 또 원통합니다.
현재 한국 의료에 문제점이 있다면 기득권 의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정부는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며 사명감을 갖고 공부하는 전공의와 학생들만을 이리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 정책을 고집하기 전까지는, 전공의들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배웠으며 많은 학생들이 필수의료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공의와 학생, 3만명이 우리 나라 의료의 미래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흉부외과에는 전국에 고작 100명의 전공의가 있을 뿐입니다. 매년 20명 남짓 나오는 겨우 한 줌의 전문의들, 그들 한 명 한 명이 우리나라 국민 만 명을 살릴 사람들입니다. 평생 그 업에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한 젊은 의사들이 다 떠난 이 때에, 정부는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여전히 위협과 명령으로만 그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환자 한 명의 죽음도 의사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지금 수 천, 수 만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환자 한 명의 죽음이라도 직접 경험해 봤으면 절대로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나라 전체를 망하게 할 정책을 고집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 가장 소중한 것, 제 인생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의업, 제가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던 제 삶의 목적을 포기합니다. 이 정부의 정책은 이 나라 의료를 영구히 망가뜨릴 것입니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차피 우리나라 흉부외과의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겨우 버텨오던 흉부외과는 남은 자들이 온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얼마간 버티다가 결국 문드러져 버릴 것입니다. 이 땅의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포기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 보느니, 차라리 저는 의업을 떠납니다.
누가 이 나라 의료를 망하는 길로 몰아갑니까? 누가 우리 국민들을 위협하고 있습니까? 누가 1달 전까지만 해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환자를 살리던 젊은 의사들을 절망 속에 떠나가게 하였습니까? 그 떠나간 젊은 의사들이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국민이 고통 속에 죽어갈 때에, 그 책임이 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인간들에게 있었다는 것만은 우리 국민들께서 오래동안 기억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들 한번 꼭 읽어봐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