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307869_returnll조회 8879l 12
많이 스크랩된 글이에요!
나도 스크랩하기 l 카카오톡 공유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이동진 칼럼) | 인스티즈



터널을 지날때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헤어지고 위안이 되는 글이라 가져와봄 ㅠㅠ

추천  12


 
😥
3개월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혹시 지금 한국이 아니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유머·감동식당에서 데이식스 예뻤어 나오는데 너무 이상해서286 Wannable(워너10.18 14:02125090 32
팁·추천 클렌징 오일+클렌징 폼은 제가 가장 반대하는 이중 세안 조합이에요304 다시 태어날10.18 19:0496684 7
이슈·소식 🚨현재 난리난 한국 아파트 침입영상 (충격주의)🚨185 우우아아10.18 19:08102931 8
유머·감동 얼굴 유행 이거 ㄹㅇ 찐이다144 류준열 강다니10.18 22:1180102 17
유머·감동 리모델링 싹 해서 월세 1만원으로 나온 집.jpg199 담한별10.18 14:3597430 42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이 부른 '의료대란'에… 25주차에 양수 터진 임산부, 75곳 ..8 탐크류즈 09.18 08:44 12017 1
요즘 인스타에 뜨는 애기엄마들 필수템.gif53 뇌잘린 09.18 08:43 55527 6
딩크로 7년간 살다가 아이 가진 사람의 변화.jpg346 세훈이를업어 09.18 08:39 157407 48
타칭 네이비가 잘 어울리는 가수.jpg 치키니이 09.18 08:32 976 0
Snl 촬영한 조국 대표님3 고양이기지개 09.18 08:30 5751 1
이이경-윈터 도촬 논란.JPG389 우우아아 09.18 08:23 206333 7
IMF시절 자신이 가진 금을 모두 내놓으신 금은방 사장님2 굿데이_희진 09.18 08:23 4293 0
양수 터진 임신부, 6시간 응급실 뺑뺑이…병원 75곳서 퇴짜8 Different 09.18 08:19 13994 0
명품 드라마 작가가 토사구팽 빅엿 먹이는 법9 모모부부기기 09.18 08:13 21452 2
MBTI) 당신이 잊었던 장점에 대하여2 픽업더트럭 09.18 08:09 4345 4
페이스북에서 한국인만 맞춘 수학문제.jpg3 태래래래 09.18 07:51 6280 0
새끼냥이에게 잔소리 하고나서 데려가는 엄마 고양이2 장미장미 09.18 07:47 7489 5
12살 여자아이로 인해 밝혀진 비밀.jpg 뭐야 너 09.18 05:57 11402 0
하이힐 신은 카리나.gif3 우물밖 여고 09.18 05:50 11526 0
결혼생각없는 애인과 헤어지고 급하게 선자리 잡았는데 예의없다고 욕먹음284 캐리와 장난감 09.18 05:48 144449 5
어떻게 해야 차가 옥상에 떨어질 수 있는 거지1 311869_return 09.18 05:42 3942 0
주차 이런식으로 하지 마세요!!!!!2 친밀한이방인 09.18 05:38 6597 0
뇌 혈전 제거 모습22 삼전투자자 09.18 05:33 29361 2
유튜버 haha ha네 고양이 무 얼핏 닮은 것 같은 여배우...jpg 백챠 09.18 05:29 7156 1
김재중 조카 인스스23 성종타임 09.18 05:28 46204 4
추천 픽션 ✍️
thumbnail image
by 커피우유알럽
양아치 권순영이 남자친구인 썰나에겐 중학교 2학년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내가 지금 고2니까 현재로 4년째? 솔직히 내 남자친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얘가 진짜 좀 잘생겼다. 막 존나 조각미남!! 이런 건 아닌데 여자들이 좋아하는 훈훈함?내가 얘랑 어쩌다 사귀게 됐는지..
thumbnail image
by 1억
무뚝뚝한 남자친구 짝사랑하기w.1억   "##베리야~ 아직 멀었어?""으응! 잠깐만!! 잠깐!!!"나에게는 8살 차이가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 흐음.. 만난지는 개월 정도 됐다!남자친구는 나와 아~~~주 정반대다. 우선 너무 쓸데없이 방방 뛰고 해맑은 나와는 달리 남자친구는 순하고..
by 한도윤
나는 병이 있다. 발병의 이유 혹은 실제로 학계에서 연구가 되는 병인지 모르겠는 병이 있다. 매일 안고 살아야 하는 병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나를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고치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해 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by 한도윤
제목이 실패의 꼴인 이유가 다 있다.우선 꼴이라는 말을 설명하자면 사전적 의미로 모양이나 형태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실패의 모양이나 실패의 형태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꼴, 꼬라지, 꼬락서니로 표현하는 게 나는 좋다. 왜냐하면 나는 실패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누구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