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패딩조끼ll조회 3695l 1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 인스티즈https://m.blog.naver.com/lifeisntcool/220277185788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추천  1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팁·추천 일본 하라주쿠 먹었다는 한국 캐릭터214 민초의나라07.26 10:00114311 3
유머·감동 용띠 vs 호랑이띠 간지달주 뽑는 달글203 몹시섹시07.26 16:1355157 0
이슈·소식 현재 난리난 KBS뉴스가 모자이크로 가린 것.JPG209 우우아아07.26 13:09104588 15
정보·기타 한국 중국 일본의 입시미술 비교.jpg355 세훈이를업어07.26 08:48124680 38
이슈·소식 와이프의 극심한 입덧.. 낙태 고민 중입니다..230 인어겅듀07.26 10:01119800 36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연프찍던 출연자들 근황 홀리홀리쀼 07.19 15:53 1255 0
트와이스 사나와 절친이라는 일본 배우.JPG3 칼굯 07.19 15:50 8619 4
비혼, 비출산 오지라퍼들의 무례한 말에 대한 최화정식 대처법 .jpg6 ddasik2805 07.19 15:42 6767 3
일본 슬럼가 풍경 한문철 07.19 15:31 5097 1
아들 생일상 정성들여 차린 아버지2 Wannable(워너 07.19 15:12 4456 0
자기채널로 유튜브 시작한다는 이창섭.jpg 가이악 07.19 15:05 869 3
휘서, 리이나가 말하는 진짜 예쁘다는 아이돌1 bbqqqq 07.19 15:04 6681 0
아빠가 동생 운전연습시킨다고 엄마랑 나한테 옷 입으래.jpg1 아야나미 07.19 15:03 5855 2
결혼 알린 조카에게 고모의 반응 당연한건가요?174 311344_return 07.19 15:02 82396 5
브라이언이 피식대학 나가지말라고한 이유.jpg2 으기 07.19 15:00 6406 0
팬이라고 DM 보내도 피해야 하는 이유4 칼굯 07.19 14:55 5969 0
아기고양이 사기 사건2 베데스다 07.19 14:51 2037 0
가족 관련 유튜브들 보다가 알고리즘에 걸린 한 영상1 위례신다도시 07.19 14:46 1914 0
외국인: 한국 피자는 덜 짜잖아84 담한별 07.19 14:30 62508 2
1+1은 과연 이득일까?1 위례신다도시 07.19 14:30 1497 0
오마카세 갤러리 홈마카세 수준7 칼굯 07.19 14:11 9873 0
자다가 물벼락맞은 하프물범.gif10 qksxks ghtjr 07.19 14:05 6147 2
조세호 용산 신혼집 공개19 성종타임 07.19 14:04 40517 2
탈북민이 10년동안 당한 세뇌 5분만에 풀린 이유.jpg11 칼굯 07.19 14:02 18111 3
매드맥스 cg 제거 영상.gif14 옹뇸뇸뇸 07.19 14:02 6529 5
전체 인기글 l 안내
7/27 1:04 ~ 7/27 1:06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유머·감동 인기글 l 안내
7/27 1:04 ~ 7/27 1:06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