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꽂혀서 길게 써봄
실제로 태종은 원경왕후에게 은혜도 모르는 시박새기이긴 함
근데 또... 서로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라...
혐관이... 맛있긴 해....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내가 보고싶은대로 뇌절도 했으니 참조바랍니다
실록이랑 논문이랑 이거 저거 찾아보고 적긴 했는데 썰들이라 역사적 오류가 있을 수도..
제가 신세경 이도현 배우 조합 염불 중이라 둘로 썼어요
배우들 까플ㄴㄴ
때는 나라의 운명이 뿌리채 흔들리던 격동의 고려말
고려중기 부터 대대로 고위 관직자를 배출한 명문가 중의 명문가 여흥 민씨. 고려 시대 왕가에서 인정한 15대 가문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대표적인 권문세족 가문이었음.
그런 엘리트 집안의 총명하고 담대한 딸이었던 민씨(훗날 원경왕후). 태어나면서부터 그 비범함이 남달랐다고 함. 세종대왕의 총기가 원경왕후에게서 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냐는 평이 있을 정도였음
거기다 부부가 10년만에 얻은 자식이라 얼마나 예쁨 받으면서 컸을지.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본인 능력까지 뛰어나니, 마음에 드는 사윗감이 없었던건지 본인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인지, 재상의 딸이 당시 나이로는 혼기를 지난 18세까지 혼인을 하지 않았음
그런 그녀의 곁에 혜성 처럼 등장한 인물이
이방원.
방원의 집안은 당시 민씨 집안의 위세에 비하면 별거없는 촌놈 지방 출신 무인집안.
그러나 이씨 가문의 빛과 소금마냥 방원은 명석한 두뇌를 갖고 태어나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입성함. 그리고 그곳에서 민씨의 아버지인 민제를 스승으로 만나게 됨.
타고난 야심과 출중한 능력을 가진 방원.
이것이 민제의 눈에도 띈 것인지,
민씨 집안에 픽되어 사위이자 민씨의 남편이 됨.
이는 당대 최고의 가문이라 일컬었던 조씨네와 결혼한 민씨의 언니와는 비교되는 행보였음.
어지러운 고려 후기 정국. 방원의 아버지 이성계는 가문은 한미하나 왜구들을 토벌하며 구국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었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무인집안의 무력을 등에 업으면 향후 정치적으로도 나쁠 것이 없었기에 민제가 선택한 것일 수도.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똘똘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씨가 원하지 않는 혼인이었다면 받아들였을까? 역사적 자료만 봐도 민씨의 기개는 보통이 아니었고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었음. 거기다 야심 또한 방원이도 울고 갈 만큼 대단한 인물
그런 사람이 혼기를 지나서도 혼례를 올리지 않고 있다가
두살 연하의 본인보다 한미한 집안의 아들과 결혼했다?
(뇌절주의) 아버지가 아끼던 제자였던 만큼 둘은 어느정도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자유로운 연애결혼이 가능했던 시대상과 아버지의 제자와 딸이라는 둘의 관계성을 보았을때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었을지도 (뇌절)
집안, 외모(민씨의 어머니 집안이 출중한 외모로 유명한 집안이었음), 총명함 뭐하나 빠지는 거 없이 빼어났던 민씨에게 방원이 첫눈에 반했다면 (뇌절)
영특한데다가 도성 샌님들과 다르게 북부 무관집안 출신(마치 로설 북부대공)으로 차갑고 강인한 면모가 있던 방원을 민씨도 마음에 품었다면 (뇌절)
어쨌거나 그렇게 민씨와 방원은 혼례를 올리고 부부의 연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을 정치적 동맹이 맺어짐.
아니나 다를까 민씨 집안의 안목은 정확히 들어맞아 방원은 결혼 후 17살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함. 무려 최연소 합격자, 병과 7등, 전국 10위, 이성계 집안 최초 라는 타이틀로.
지방 무관 출신이라는 컴플렉스를 갖고 있던 이성계는 궁궐쪽으로 눈물을 흘리며 절했을 정도로 기뻐했고, 당시 과거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급제자들을 자랑스레 선달이라 불렀는데 장인어르신인 민제도 이런 제자이자 사위인 이방원을 너무 예뻐하여 선달 선달 하고 다님. 민제는 이런 방원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줌.
아마 이때가 민씨와 방원이 가장 평탄하고 행복했던 시기가 아닐까
그러나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중심이 되면서 둘의 운명에도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