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들 이 짤 알아?
스물 일곱이면 지금 유치원을 가도 마흔전에 대학을 간다는 이야기.
우리엄마는 진짜로 40살에 대학을 갔어. 결론적으로는 지금 공기업 정규직이야. 진짜 놀랍지.
그전까지는
19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8년간 공장에서 일하고,
아빠랑 결혼하고는 10년동안 식당일을 했어.
이런 엄마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게.
엄마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강했어.
당시에 고려대까지 준비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당장 엄마 아래로 동생들이 너무 많아서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어.
엄마가 나가서 돈을 벌지 않으면
동생들이 굶어 죽을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거든.
그런 엄마는 도망치듯 19살에 무작정 서울을 올라왔어.
고등학교를 자퇴해야만 했어.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었어.
그 어린 나이에 혼자 서울을 올라와서 ..
고시원 아줌마한테 사정사정 부탁을 했어.
한달뒤에 월급 받으면 돈을 드릴테니까,
제발 한달만 믿고 재워주시면 안되겠냐고.
그렇게 엄마는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일 시작하고 8년정도를 일했어.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고향에 내려왔고, 아빠를 만난거지.
고생길이 닫힌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아빠 사업이 망해서 빚이 쌓였어.
그래서 닥치는대로 식당을 개업하고식당일을시작했어.
엄청 고생하는 일만 한거야.
그렇게 10년 정도를 식당일을 하며 살다가..
공부에서 손을 뗀지 20년만에 다시 대학을 갔어.
(아마 전문대는 그냥 입학을 할 수 있나봐. 수능안보고 그냥 바로 대학을 갔어)
엄마가 갑자기 대학을 간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어.
60년간 식당일만 하시다가 허리와 무릎, 손목이 아예 아작나긴 채로.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예 바닥을 기어다니셨어. 이유는 식당일이었지. 무거운 쟁반을 하루종일 나르는 일을 하면 누구라도 몸이 망가지지 않을 수 없으니까.. 우리 엄마는 그게 자신의 미래가 될거라 생각했대.
식당일하고, 끝나면 스트레스 풀으러 술먹고.
일, 술. 일, 술이 반복되는 인생.
그러다 죽는 인생.
아, 저게 내 인생이구나. 싶더래.
그래서 엄마는 집 가까운 대학을 바로 등록했어.
별로 좋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장학금을 잘주는 대학이었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안간다고 했던 똥통 전문대. 어쨌든 엄마는 거기서 공짜로 학교를 다녔어. 수업이 끝나면 식당일을 하고, 밤을 새며 시험공부를 하면서 .
엄마는 엄청 행복해했어. 살면서 교수라는 사람을 만나본다고.
세상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많다고.
거기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졸업식때는 엄마 이름으로 플랜카드가 걸리더라고.
ㅇㅇ대학교 (우리 엄마이름) ㅇㅇ자격증 1급 합격.
교수님이 취업하고 싶으면 따라고 했던 자격증을
정말 매일 도서관을 가고 밤을 새서 공부해서 따더라.
진짜 대단하지..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엄마는
공기업에서 계약직을 뽑는 면접을 보고와.
그런데 운 좋게도 그 자리를 지원한 사람이 우리 엄마밖에 없었던거야.
덕분에 우리엄마는 늦은 나이에 공기업 계약직으로 취업을 할 수 있게 돼. 사람들이 모두 놀랬지.
아니, 식당일 하던 사람이 거길가요? 어떻게요?
정말 말도 안됐어.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다닌다고 하면 누구나
"우와" 하는 정말 좋은 직장이었거든.
거기서 한 2년 정도 일했나.
계약 만료되고 또 다른 공기업으로 옮기고.
거기서는 지금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 일도 엄마가 제일 잘한다고 하고.. 돈도 많이 벌고. 다른 지역으로 출장도 가고. 비행기도 타고다니고. 연수도 받고... 짧은 시간동안 많은게 변했지.
비록 좋은 대학도 아니었고, 입시 준비하는 어린 학생들은 똥통인 학교라고 , 하늘에서 떨어져 죽는 한이 있어도 거기만큼은 안간다고 했던 대학이었지만 ..
결과적으로 우리엄마는 그 대학을 다니고 인생이 많이 바뀌었어.
친구들이라고는 모두 식당 아줌마들, 화류계 마담이던 엄마였어.
엄마 친구들은 툭하면 알코올 중독으로 경찰서 끌려가고.
술먹고 사람들이랑 싸우는 사람들이었어. 화류계 친구들은 자살을 그렇게 많이 하데.엄마 따라서 엄마친구 집에 가면 항상 목격하는게 가정폭력이었어.참으로 암울한 인간관계였지.
그런데 대학을 가니 인간관계가 확 달라진거야.
교수님들에서부터 엄마와같이 대학을 늦게온 만학도들.
젊은 스무살 학생 등등 .
결국 좋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거기 나온 사람들 다 잘풀렸어.
한분은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높은 자리에 오르셨고,
한분은 더 공부하고 사업하기 위해 서울 쪽의 대학원을 다니시더라. 한분은 50살인데 임용고시에 합격하셨대.
20살이었던 어린 학생은 졸업하고 편입해서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했어.
물론 대학 졸업하고 자신이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뤄낸 결과겠지만 .. 결과적으로 대학이 발판이었던거야.
세상에는 늦은 나이에도 뭘 이뤄내는 분들이 많더라. 정말로 그래.
지금도 엄마 친구들은 다들 대학원 다니시고, 사업 하려고 하시고, 강연 뛰시고. 진짜 멋진 지식인분들이 많아. 엄마도 조만간 대학원을 등록할 계획에 있고.
그러니 여시들 ...
뭐가 늦었고 어쩌고 하는거 나는 커뮤사세라고 생각해.
진짜로 할 사람들은 묵묵히 해. 말려도 해.
그때 만약에
"그런 똥통 대학 가서 뭐해"
"어차피 계약직인데 취업해서 뭐해"
"어차피 직장다니는데 대학원 가서 뭐해"
"대학원은 학벌 세탁아니야?"
했으면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들이 있었을까?
없었어.
세상에 뭐든 바로 이뤄지는 건 없어. 노력을 하면서 단계별로 차근차근 이루는거라 생각해.
따지고보면 엄마는
전문대-> 학점은행제로 4년제 취득-> 공기업 계약직-> 공기업 정규직의 루트인거지.
그렇게 차근차근 밟아서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고, 감히 상상도 못했던 대학원까지 지원을 하게 된건데...
그러니 무기력한 여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있어.
늦지 않았어.
작은것부터 시작해보자. 그게 뭐든 , 완벽하지 않든.
일단 시작을 해야 완벽을 향해 조금이라도 가까워 지는거니까.
학습된 무력감이 정말로 위험해. 내가 할 수 있을까, 감히 내가?
왜못해. 왜안돼.
뭐가 됐든 .. 하늘은 자기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조금이라도 바라보고 돕지,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을 돕지는 않는다고 느꼈어.
26살에 무스펙이다, 30살에 무스펙이다. 38살에 무스펙이다.
인생 쓰레기다. 망했다. 비관적으로 이러는 사람들 많이봤어 .
여시에서도 그렇고.
그렇게 따지면 우리엄마는 40살까지 무스펙이었어.
그때 엄마가 누군가에게 늦었냐고 물었으면
100이면 100 늦었다고 말렸을거야. 당장 아빠같은 경우에도 대학가면 이혼한다고 그랬으니까. 애들 교육비도 아까운데 말이 되냐고.
그러나 엄마는 오직 자신만 믿었어.
행동과 결과로 증명하니 사람들이 다 따라하더라.
주변에 경력 단절된 주부들도, 배운거없이 식당일만 하던 이모들도. 심지어 아빠까지도. 엄마라는 표본을 봄으로써 대학 나오면 인생이 바뀐다는걸 알은거야.
그 사람들 지금 어떻게 됐는지 말해줄까?
다 취업했어. 심지어 모두 식당일, 공장일, 노가다 전전하다가 40살 넘어서 대학 다니신 분들이야. 애도 있고.
남들은 좋은 직장이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적어도 공장일과 식당일을 전전하던 분들에게는 소중한 일자리더라. 평생을 부러워했대. 회식하는 삶, 정장을 입는 삶. 구두를 신고 직장에 출근하는 삶.
지금은 아빠도 식당 그만두고 엄마따라서 대학나와서..
편한 직장에서 일 잘 하면서 살고 있어.
나는 그 이후로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어. 엄마는 아직도 20살에 빚을 내서라도 대학을 갈걸 후회하고 았어.
여시들 진짜 쥐뿔도 없어도 배신 안 하는게 뭔지 알아?
교육이야. 지식은 모든걸 잃어도 사라지지 않아.
사람들이 교육, 교육 하는 이유 뭔지 몰랐는데 알겠더라.
대학 네임벨류보다는 대학을 가는게 더 중요하고,
어디 직장인지 보다는 직장을 가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고. 세상엔 그것마저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뭐라도 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은 하자.
부딪혀야 결과가 나오니까. 처음부터 완벽하려고 하지말고, 조금씩 변화하자. 낮은 대학을 가더라도 편입을 하고,
좋지 않은 직장을 가더라도 이직을 노리자.
안주하지 않으려는 여시의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냥 새벽에 잠이 안와서 써본글
여시들 아자아자. 늦은건 없다!
+ 엄마의 경우
사회복지 나왔고 이것저것 상담 자격증 땄어
계약직에서 정규로 전환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