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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준홍이가 더 좋습니다. 방 선생님은 너무 무섭거든요. 준홍이는 내가 자기를 기억하는 걸 모르나봐요. 사실 자꾸 어렴풋이 기억나다가 다시 잊을까봐 무서운 게 맞아요. 준홍이는 저한테 너무 많은 걸 남겼다는 걸, 전 준홍이보다도 잘 알아요. 선생님은 기억이 안 나요. 분명 무언가를, 그에게 느꼈었는데 이젠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뇌교종은 무서운 병이예요. 어떻게 절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는건지, 가끔은 제게 모든 죄가 덮어 씌여지는 것만 같아요. 그것들을 모두 긍정적으로 여기려 해도 전 자꾸 다가오는 죽음이 무섭기만 해요. 머리가 아픈것도 이젠 지겹습니다. 아파도 안 아픈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 나보다 어린 그에게 그런 척을 한다는 것도 꽤 힘듭니다. 그런데 이것 좀 기록해 주실래요. 저 이따가 또 그사람 잊을거거든요.

 

"정대현 환자, 혹시 불편한 데는 없어요?"
"네."

 

제가 이상증세를 보일때마다 눈이 벌게지는 그를 보면 너무 아파요. 원래보다 배로 아프니까, 준홍이는 제발 안 아프면 좋겠어요. 순진하게 제 욕심이래도 전 상관없거든요. 제가 안 아프면 다 끝날일이지만, 그건 불가능하단걸 알잖아요. 제가 세상을 떠나면 그는 어떡하죠. 겉으론 다 커서 벌써 조교인데다가 의젓한 티가 나는데 속은 젤리보다도 더 여려서 금방 부서질텐데. 그가 나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을까 걱정이예요. 제 착각이라고 여기신대도 정말인걸요. 준홍이는 너무 어려. 그런데 항상 나를 어리게 대해요. 가끔, 아주 살짝 기분이 나쁘지만 준홍이니까 괜찮아요. 그 나름의 배려 아니겠어요. 제가 그를 잊을 땐 저도 모르게 사나워지니까, 그로썬 어쩔 수 없겠죠.

 

얼마 전에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서 원래 나빴던 시력이 더 많이 나빠졌어요. 그래서 준홍이 얼굴을 제대로 못 보는게 너무 아쉬워요. 난 조금이라도 내 사람들을 더 보는게 소원인데, 엄마가 그토록 말하시던 하느님은 저한테 그건 허락하시지 않으시나봐요. 이럴 때가 되니까 그렇게 미워했던 엄마도 보고싶어요. 이젠 안 미운데. 엄마는 내가 지금 이런 상태라는 걸 알까요? 엄마는 지금 어떨까요? 평생을 뒷바라지 해줄 것만 같던 형한테 아직도 매달릴까요? 이혼한 아버지에게 아직도 술에 취해 전화를 할까요? 아니면, 아주 약간이라도 나를 생각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희 엄마가 아니니, 그런것까지 알려고 하는건 욕심이 분명하겠죠. 제가 엄마를 생각하니까, 엄마도 나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의 엄마라면 미친새끼라며 욕을 했겠지만, 전 그것마저도 상관없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저도 아니까요. 이 병은 엄마가 준거라서요. 내가 알기론 뇌종양은 유전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댔는데, 하느님은 또 그건 저한테 허락하셨네요.

 

제 병실을 옮기는 건 선생님 때문이 맞지만요, 그래도 전 준홍이가 좋아요. 왜 선생님에게 계속 뭔지 모를 마음이 생기는지는 계속 생각해봐도 모르겠어요. 준홍이를 생각하면 설레는데, 선생님을 생각하면 너무 아파요. 어떤 느낌이, 자꾸 나더러 아프대요. 그래서 더 생각을 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간절해요, 선생님을 보면. 준홍이가 좋은데, 선생님은 그거랑은 다른 감정이 있는거같아요. 혹시 이게 양다리는 아니겠죠. 아님 김칫국이거나.

 

얼마 전에 제 예전 방 서랍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발견했어요. 글씨체가 익숙한데 지금 제 글씨체랑은 다른 걸 보면, 아마 예전에 쓴 건가봐요. 글을 읽는데 많이 헷갈렸어요. 제가 선생님을 좋아했나봐요. 그래서 아팠나봐요. 다행히 영재는 안 잊었는데, 편지 내용에 나 혼자 울었어요.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미련하기 그지없어요. 아, 제가 지금의 준홍이보다 그때의 선생님을 더 많이, 많이 좋아했나 봅니다. 그리고 그땐 형이라고 불렀었나봐요. 근데, 좀 많이 부끄럽지만 전 이걸 선생님한테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준홍이에게 줬습니다. 선생님에게만 주니까 준홍이에게 미안해요.

 

"나 죽으면."

 

준홍이는 그 말을 듣고 제가 먼저 저를 안았어요. 이거 봐요, 준홍이 너무 여리다니까요. 원래 떨려야 하는데 떨리지가 않았어요. 머리가 너무 아팠거든요.

 

"선생님 안는 거 좋아하는구나?"

 

준홍이가 더 꽉 안았어요. 그러라고 한 말이 맞아요. 나도 같이 안아주고 싶었는데, 아무 말 없이 안기만 하는 준홍이가 너무 안쓰러워서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준홍이는 아마 저를 따라 신경학을 공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전 왜 신경학을 공부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텐데, 왜 기억이 안 나는건지 답답하기만 하네요. 하지만 금방 수긍할 수 밖에 없어요. 기억을 하나하나 잃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전 더이상 살아가는 데에 더 가치를 두기 힘들거든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는 말을, 안 아픈 사람들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죽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사람들이, 이렇게 죽음을 앞에 두고 체념한 나를 봤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이 떳떳하게 잘 살아가면 좋겠어요. 저도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가정사도 형편도 다 밑바닥이었지만 머리 하나만 믿고 끝까지 당당하게 행동했거든요. 병에 걸리고서 한동안은 아니었긴 했어요. 이제도 아니긴 하지만요. 근데요, 당당하지 않은게 아니라 더이상 당당하게 대할 사람이 없을 뿐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아파요. 저 많이 아픈데, 그래도 끝까지 미련은 안 남기려고,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려고 하거든요. 그 사람들은 병은 안 걸렸지만 속은 나보다도 아플 거 아니예요. 근데 나 오지랖도 참 넓다. 내 걱정 하기도 전에 그 사람들이나 걱정하고. 그런데 그게, 내 주변 사람인걸요.

 

그게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제 주변 사람인 건 확실하게 기억나요. 누가 저한테 말해줬는데,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그래도 그 사람한테는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어떻게 해 주죠. 적어주면 되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요. 잠시 잠이라도 자고 나서 준홍이한테 연필이랑 종이라도 달라고 해야겠어요. 자고 일어나면 잊을 거고 글씨도 제대로 못 적을거지만 그래도 시도라도 해 봐야죠. 그러고 보니까, 준홍이에게도 할 말이 많은데. 나 이렇게까지 계속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나한테 계속 신경써줘서 고맙다고, 이거 말고도, 진짜진짜 많은데. 준홍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아무튼 자고 나서 생각해 봐야겠어요.

 

딱, 그 생각을 하고 잠에 들었어요. 눈을 뜨니까 제 병실이 아니더라고요. 다시 하기도 싫었던 산소호흡기에 제가 겨우 삶을 부지하고 있었어요. 네, 저 지금 많이 아픕니다. 정말 미치도록 아파요.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이요.

 

"……제가 못 가졌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원하는대로 한번쯤이라도 하실 수 있었잖아요."

 

숨을 쉬기가 힘드네요. 강제적으로 들어오는 산소를 마시면서 준홍이가 하는 말을 다 들었어요. 왜 이렇게 아프게 생각하는 걸까요. 나는 괜찮은데. 이제 네가 좋은데. 준홍이한테 알려주려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네요. 제가 너무 늦었어요. 지금 말해야하는데, 준홍이의 손을 잡으니까 울고 있네요. 이건 여린거라고 말 못하겠네요. 저라도 울 것 같으니까요. 울지 말라고 웃어줬어요. 준홍이가 가까이 다가와서야 제가 눈물을 닦아줬고요. 그러니까 더 우네요. 달래주려고 한 건데, 더 울면 어떡해. 저도 울고싶네요. 그 때 마침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요.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예요. 그쪽으로 돌아보니 선생님이 제 손을 잡으신 채로 '앞으론, 아프지 말아' 하고 말하시는데, 그 말이 너무 따뜻했어요. 그래서 또 웃었어요. 이젠 선생님을 생각해도 안 아플 것 같은데, 더이상 못 보겠네요, 아마도요.

 

준홍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제 손등에 입을 맞췄어요. 로맨틱하네요. 준홍이는 멋진 남자친구 아니면 남편이 될 수 있을거같아요. 너무 행복하네요, 이런 남자한테서 키스를 받으니까. 그런 그가 하는 말은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미리 못 말해서 미안해요.' 아닌데, 저는 이미 준홍이가 무슨 말을 할 지 다 알고 있는걸요. 그런데 점점 산소가 들어와도 숨이 안 쉬어지네요. 눈을 뜨려고 해도 점점 몸에 힘이 빠져요. 어렴풋이 들리는 사랑해요, 하는 말이 준홍이의 목소리로 들려요. 아, 역시 로맨틱한 남자예요. 나도 사랑해. 대답은 준홍이가 들었기를 바래요. 나도,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이상으로, 너를 사랑해.

 

결국 준홍이한테 인사는 못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전해요. 잘 있어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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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쓰다가 번외편을 중간에 넣는 게 나을것같아 넣었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소금소금 ㅠㅠ

개인적으로 수면에서 대현이 이야기만 쓰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뿐만이 아니라고 믿어요.

본편도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 ㅎㅎ 쉬어간다고 생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 말하는거지만...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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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어으어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빵친인데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대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 가슴이 왜이리 미어지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럭우러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눈물이 앞을가리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대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눈무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엉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3
구름이에요ㅜㅜㅜㅠㅠㅠㅠㅠ요즘안들어와서이제봣네요ㅠㅜㅠㅠㅠㅠㅠㅠ아련아련 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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