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놈 참 잘 생겼다.'
집으로 가라고 담임의 호통이 터진 지 오래인데 영재는 멍청히 얼빠졌다는 소리를 들을 때 까지 제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영재의 머리에서 그 생각을 지배하게 만든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은 새 반에 배정받고 난 뒤 딱 한 달 후의 그 날이었다. 다 똑같은 옷에 다 똑같은 머리를 하고도 독보적으로 잘난 놈이 있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흥미란 단순히 시기심을 가지게 만들 외모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영재는 그 놈의 결함에 큰 관심을 두었다.
"그 병신새끼가 뭐가 멋있냐."
"병신새끼라고 하지 마라."
"지랄을 해라."
"느 대갈빡 속에는 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런 못돼처먹은 말이나 하냐."
"진짜 지랄이네 이 새끼가."
한때 국어선생이 영재 반 수업이 있을 때 '병신'은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그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부르는 아주 평범한 단어였다고, 하지만 일본놈들로 인해 욕설이 되었다는 말을 영재는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맞다. 그 놈은 팔 한 쪽이 없다. 하지만 그것 하나로 그 놈의 모든것들이 가려진다는 건 영재의 상식선에서 절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아마 수백번을 그 놈은 병신새끼라는 말을 주워듣든 대놓고 듣든 흘려듣든 들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영재는 단 한 번도 그 놈이 그런 말들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우중충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영재는 확신했다. 그 상처는 전쟁 때 생겼을 것이라는 걸.
"정 좋으면 니 팔 잘라주든가~"
"이 시발새끼가 아직도!"
그 중의 하나, 그러니까 영재가 그 놈에게 흥미를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이 시발새끼는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을 고통을 겪고도 남들에게 쓰레기같은 소리를 들음에도 굳건한 것이 대단함이 이유였다. 요즈음엔 거의 동경에 가깝다. 영재 옆의 시발새끼인 주호는 기어이 몇 번을 더 지랄하다가 영재에게 맞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너는 정말 뭣도 모른다, 그 새끼가 소문이 얼마나 안 좋은데. 주호가 마지막으로 뱉은 의기소침한 말은 영재에게 상관 없었다.
"너 직접 봤냐?"
주호가 아무 말이 없었다. 영재는 다시 그 동그란 머리통을 갈기곤 입을 열었다.
"그럼 닥쳐 이 새꺄."
그 말에 되려 주호가 다문 입을 다시 열었다. 옥분이보다 그새끼가 좋냐? 영재가 묘하게 이상한 표정을 지어 어이없다는 뜻을 보인 후에 답했다. 대가리 진짜 문제 있다, 너.
"당연히 옥분이 아니냐."
*
전쟁이 끝난 지 일 년 만이었다. 친척형은 행방이 불명해졌고 어머니의 절친했던, 편지도 자주 주고받던 희자 아주머니는 아들을 전쟁통에서 잃었다. 그에 비하면 영재는 이 친척집에서 저 친적집으로 다니던 것이 지치고 힘들었을 뿐 몸에 이상은 없어 부모님이 다행이라고 수십번이고 재차 말했었다. 영재는 다른 이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꽤나 보아서인지 그런 말들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죄책감이 들어 아무 응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고등학교를 편히 다닐 수 있는 형편이 당연하기보다 부담스러웠고, 주변에 널린 병들고 지친 사람들을 스쳐 지나며 보는 것은 지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수많은 아이들 중 영재가 가장 먼저 눈과 마음에 넣은 아이는 옥분이라는 참한 여자아이였다. 물론 남학교이기 때문에 같은 학교를 다니지는 않지만, 뭇 남학생들이 모두 옥분이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근방에선 소문이 난 아이다. 영재도 그 많은 남자아이들 중 하나였고, 실로는 가까이하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은,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옥분의 친 오라버니인 용국 때문이 아닐까. 서울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비상한 용국은 연희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으나 이면적으로는 권투를 배워 옥분에게 치근덕대는 불량한 학생들을 다 조용히 종적을 감추게 한다고 알려졌다. 영재가 처음으로 그 말을 들었을때는 코웃음을 치고 넘겼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싶었다. 되려 본인이 저런 여동생을 가지고 있다면 권투를 배우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유영재."
"예."
그런데도 참 이상한 것이다. 영재가 그 놈을 자꾸 주시하는 것 말이다. 그것도 계속 쳐다보는 것이 아니고,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도둑놈같았다. 수많은 학생들로 바글거리는 교실 속에서 영재는 기어이 그 놈을 보고 만다.
"정대현."
"예."
그 놈의 이름이 불린다. 모두가 오른팔을 들 때 왼팔을 들어 존재를 확인시킨다. 그것을 보고 몇몇 철 없는 아이들은 수군거리다가 영재와 어제 영재에게 당한 주호의 눈초리를 받고는 입을 다문다. 그것도 안 먹히는 아이들 한 두 명은 그저 무시하는 것이 답이다. 영재는 그러고는 다시 대현을 살짝 본다. 그런데 참 우연이란 기가 막히는 것이, 그 때 눈빛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던 영재를 눈치채고 그를 바라보던 대현과 딱 눈이 마주친 것이다. 영재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 후에 눈이 동그래져 어쩔 줄을 몰랐다. 대현은 제 자리에서 계속 영재를 바라보다가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히 쳐다봤다.'
속으로 그 말을 수십번은 해서 새겨졌을 영재는 또 아무 일 아닌 척 칠판으로 고개를 향한다. 주호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코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해 담임에게 불려가 몽둥이로 찜질을 당하고 제 자리에 들어왔다. 그 상황이 모두 진행되어도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영재는 또 그 말을 곱씹는다. 아, 아, 괜히 바라봤다.
'별 생각도 없는데 왜.'
그렇다. 따지고 보면 동경 그 이상도 아닌데 자꾸 신경쓰는 게 더 이상하다. 머릿속은 그렇다고 정의를 내린 지 오래인데, 행동이 머리를 따르지 않으니 요상한 꼴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머리와 몸이 서로 맞지 않아 경직된, 그야말로 어색의 극치인 모습만 나타난다. 왜냐, 하고 생각이 미치자마자 수업종이 울린다. 가방을 싸는 아이들 사이에서 영재 혼자 다시 힐끔 대현을 본다. 역시, 잘 생겼다.
*
요즘따라 영재에게 이상한 일만 자꾸 생기는 것이 필시 누군가 꾸미고 있는 것이라고 주호는 단언했다. 영재는 그 말을 듣고도 벙하여 대응하지 않았다. 손에는 방금 전에 옥분이 쥐어 준 편지 한 통이 있고, 주변에는 그를 힐끔 보고 지나가며 에이 시팔, 하고 욕을 하는 남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주호는 그 와중에 대단하다, 성공했다, 하여튼간에 수많은 말들로 응원을 하는건지 실패를 염원하는건지 계속 치근덕댔다. 애초에 주호는 딱히 옥분을 좋아하지 않았다.
'꼭 혼자서 읽어야 한다.'
옥분이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되물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영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상태 그대로 옥분을 보내버렸다. 주호가 몇 번을 읽어보자고 난리를 피워도 파리 쫒듯 손짓으로 훑어내기만 하였다.
"분명히 옥분이가 너 읽으라고 쓴 거라니까?"
"닥쳐라. 그러면서 옥분이 하는 말은 못 들었냐?"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나 하나 못 보여줘?"
"그럼."
사실은 당장이고 읽어보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손 안에 있는 편지를 더 꽉 쥐는 것 밖에는 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스쳤다.
"편지다."
"……그러면, 편지지, 휴지냐?"
"아니다, 임마. 넌 먼저 가라."
그러면서 영재 저가 먼저 혼자 냅다 뛰었다. 야 이 시발새끼야! 주호의 목소리가 울리든 말든 영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편지다.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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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
글을 안 쓴다고 말한 지 일 년 좀 넘은 것 같네요. 그러면서 글을 아예 안 쓸 줄 저도 알았다만은... 기어이 쓰고 말았습니다. 끊지 못했고요ㅠㅠ 이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돌아오는 것에 대해 사실 약간 부끄러운 감도 있고 죄송스러운 감도 있고 한데요. 무엇보다 저는 글잡담이 너무 그리웠어요... 정말정말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제가 자주 글을 쓸 상황이 못 되지만, 쓸 때에는 최대한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인데 여러분 잘 주무세요. 혹시 저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ㅎㅎ 누가 되었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