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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 저 남산 아래 작은 고을

꽃 같은 사람 둘이 간간이 연꽃을 밝히고 살고 있더래요

 

금슬이 어찌나 좋던지 해님과 달님은

그들을 축복했더라지요

 

한 꽃은 밤을 밝혀주고 한 꽃은 낮을 황홀하게 했대요-

--​

동우가 다 떨어진 쌀통을 보고선 한숨을 쉬었다. 호원이 쌀을 받아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쌀통에는 쌀이 다 떨어져 몇 알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매일매일 가난에 허덕여 살아오긴 했는데 요즘 들어 호원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서환의 호출이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오직 서환, 그 자만이 알 것이었다.

한 번에 몰려오는 걱정거리에 동우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동우가 머리를 잡고 조용히 바닥에 앉았다. 흙이 하얀 치맛자락에 묻었다. 그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총체적 난국. 이럴 때 쓰는 말인 걸 알게 되었다.

"동우야"

​고단해 보이는 얼굴로 호원이 집으로 들어섰다. 동우가 흙이 묻은 치마를 탈탈 털어내며 일어났다. 썩 좋지 않은 표정의 동우를 본 호원이 물었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호원의 물음에 동우가 쌀통을 가지고 나왔다.

"다 떨어졌어, 쌀이"

"...."

호원은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된 건 다 제 탓이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여장을 하고 있던 동우는 나가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동우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그래서 조용히 집에서 삯바느질을 해왔다. 그래서 호원만이 나가 돈을 벌어왔다.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먹는 걸 아무리 줄여도, 입는 걸 아무리 아껴보아도. 세상에는 안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아까 서 대감의 집 장남이 다녀가셨어..."

"중전마마의 오라비 되시는 분이 왜 여기에....?"

"내가 그 이유를 어찌 알겠어. 그냥 네가 오면 바로 영상 대감의 댁을 찾아가 서환이라는 사람을 찾으라 하였어"

"그 사람이 너에게 뭘 하시지는 않았어?"

"하시지 않았어. 그냥 너를 찾으실 뿐이었어."

동우는 아까 있었던 서환과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다혈질의 호원이 무얼 할지는 모르는 일이였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 자가 앞으로 호원에게 무얼 하든, 저에게 무얼 하든,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야 했다. 반드시.

호원은 동우의 말에 앞이 막막했다. 저는 나름대로 착하게 살라고 하여 착하게 산 것 같은데. 잘못 했다라고 한 것이라면 동우와 이리 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서환도 모를 것이었다. 그 누구도 장동우가 그 장동우인 줄은 모른다. 그리고 이 나라의 영의정이라는 사람의 아들이 한낱 가난한 서민인 저를 부른다. 무슨 일일까...

호원은 다시 짚신을 고쳐 신었다. 이 나라의 지존을 제외한다면 가장 높은 나리께서 부르시는데 거역할 수가 없었다. 궁으로 향하는 길에 서 대감의 집이 있었다. 동우를 집에 두고 나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였다.

"동우야, 다녀올게"

"갔다 와서 무슨 이유인지 얘기를 좀 해줘..."

"그래, 그리할게"

호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동우의 앞으로 지나갔다. 그저 호원의 한숨이 깊이 남겨질 뿐이었다. 저 멀리에 이 나라의 지존인 왕이 숨 쉬고 있는 궁궐이 보이였다.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지금 호원은 으리으리한 대문 앞에서 쭈뼛쭈뼛 댈 뿐이었다.

'흠, 흠... 이보시오...'

긴 침묵이 이어지고 뉘세요? 하는 말과 함께 노비 하나가 나왔다. 허름한 차림의 호원을 보던 그 늙은 노비 하나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서환...이라는 자가 나를 불러 만나러 왔소. 그 자에게 왔다고... 전해주실 수 있겠소...?"

"감히 네깟 놈이 어디서 우리 도련님을...! 썩 꺼지거라. 행색이 그리한데 내가 어찌 믿겠소?"

"내가 불렀다."

갑작스러운 서환의 등장에 그 늙은 노비도, 호원도 놀랐다. 기품 있는 자태가 남달랐다. 부잣집 도령이라 그런가... 호원은 서환에게 절하며 인사했다. 이리 들어오시게, 서환의 말과 함께 호원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보는 것만큼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저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두리번 두리번대며 놀람을 금치 못하는 호원을 보던 서환이 입을 열었다.

"나의 집이 그리 신기하시오...?"

"예, 소인은 이런 집에 처음 와보니 말입니다. 이런 집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죠"

"내가 도와드리리다. 이런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예?"

서환의 말에 호원이 놀라 대답했다. 서환이 사랑채로 호원을 이끌었다. 서 대감은 궁에 있는지 사랑채는 그저 텅 비어 있었다. 서환이 비단으로 덮혀진 이부자리 위로 앉았다. 호원은 몸을 조아려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며 아래를 보고 있었다. 허허허, 서환이 웃었다.

"편하게 앉으시게. 그리 앉고 있으면 다리에 쥐가 날 것이니"

"예"

호원이 편한 자세로 앉았다. 자세만 편할 뿐, 편할 건 없었다. 서환이 노래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항상 부르고 다니는 노래를 다 큰 양반집의 자제가 부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서환의 노래 실력은 꽤나 출중하였다.

"여기서 이 꽃이 너라지?"

"아... 사람들이 그렇다 합니다..."

"이게 의미가 밤일을 잘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들었소. 허허, 누가 지었는지 비유 참 잘 들었군."

"..."

"정말 그러한가?"

서환이 호원에게 장난스레 물었다. 서환의 얼굴은 장난기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꽤나 음란한 말이 숨겨져 있는 서환의 말에 호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라고 대답하기도, 아닙니다라고 대답하기에도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소인에게 어찌... 볼 일이..."

"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에 대해 너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 안 그러면 너고 뭐고, 다 죽을 테니까."

"예?"

"네놈 집에 가보니 여인이 하나 있더군. 꽤나 아리따운 여인이. 그렇지 않소? 그 여인은 그 노래에서 낮을 황홀하게 한다는 꽃이라 들었는데..."

"예... 그러하옵니다만..."

"중전이 너를 원하신다."

"예???"

서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중전이라니. 이 나라의 최고의 여인인 중전이 한낱 상민에 불과한 저를 원한다니. 그렇다면 이 나라의 왕은 무어가 되는가. 이 일은 반역이었다. 들은 것 자체로도 충격이었다. 온 백성인 어미가 지아비가 아닌 다른 자를 원한다니. 그것도 나를!

"중전께서 이 노래를 아신다. 그리고 이 노래의 뜻도 알고 있지"

"예... 그래서"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널 보고 싶어 하신다, 널 원하신다."

"저는 도통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소인의 머리를 늘 도저히..."

"중전이 너와의 관계를 원하신단 말이다."

호원은 뒤로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이 일에 참여를 안 하면 서한에게 죽음을 당할 것은 뻔하였다. 그리고 중전과의 관계를 들킨다면 왕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같이 살고 있는 동우 또한 그리될 것이다. 그 생각까지 미치게 되니 여기서 빨리 접고 제가 살던 그 일상으로 돌아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허나 생각에 불과할 뿐이었다.

"제가 여기서 어찌해야..."

"어찌해야 뭐, 안 죽겠냐... 뭐 이런 걸 묻는 것이냐?"

"예... 저에게는 이미 처가 있습니다..."

흐음, 서환이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허름한 집에 있던 그 여인과 지아비와 처의 관계로군. 헌데 이걸 어쩌지... 이호원, 내 동생이란 중전마마께서는 너를 원하시고, 나는 너의 그 처를 원하니 말이다. 내가 여기서 어찌 손을 놓겠느냐. 그 여인이 참으로 참하게 생긴 것을.

"지금 전하께서는 중전마마와의 합궁을 그리 중요치 않게 하시오. 지금 저 삼남 지방에 가뭄이 난 걸 더 걱정하고 계시지. 중전마마가 너와 붙어먹는 거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실 분이 아니다"

"..."

호원이 침을 꼴깍 삼켰다. 점점 들으면 들을수록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듯했다. 집에서 동우가 기다릴 텐데... 서환에게 온 걸 궁금해하며 걱정할 텐데...

"가난하다 들었다."

"....!"

"내가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어때, 하지 않겠느냐? 집에 쌀이 다 떨어지지 않았느냐. 앞으로 너의 처는 굶는 수밖에는 없겠구나"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제 여인만 지켜준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호원은 서환의 제안에 더 들을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동우가 오기 전 걱정을 했다. 매일 배를 곯아 점점 핼쑥해져 가는 동우가 생각난 호원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서환은 그런 호원의 끄덕임을 보고는 한 차례 일이 풀렸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 일은 뭔지 모르지만.

네 여인을 지켜준다라... 어떤 면으로는 지켜줄 수 있을 것도 같으나 네 여인은 아니겠구나.

서환이 호원을 제 가까이로 불러 귀에다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하나하나 말했다. 호원의 머릿속은 점점 혼란에 빠져갔다. 앞으로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이걸 왕에게 들키지 않고 할 수는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우에게는 이 모든 것을 어찌 말해야 할지, 아니 말하긴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

"명수야"

우현의 마당을 쓰는 대신 명수가 하고 있던 것은 훈련이었다. 남 대감이 내린 진검을 들게 된 명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칼에 아무도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실수로 다치게 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 이 두 가지였다. 같아 보이나 달랐다. 이 칼을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 칼을 쓴다는 것은 필히 무슨 일이 있기 때문일 테니까.

"예"

어린 명수가 쥐고 있던 칼을 내리고 우현에게 인사를 했다. 땀이 명수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검은색의 의복이 명수에게 잘 어울렸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명수에게 우현이 다가갔다.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지..?"

"예. 이름이 이가의 호원이라 한 것 같았습니다."

"이 가의 호원이라... 그래, 어찌 지내느냐"

그렇다. 서환이 호원에게 말한 것은 호원이 중전의 호위무사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 외에는 의심을 적게 받을 만한 방책이 없었다.

서환과 우현은 꽤나 친한 사이였기에 자주 그들의 노비들을 모아 술자리를 벌이며 서로가 도와주도록 하는 그런 관계로 지내왔다. 호원과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워낙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해왔던 호원이라 훈련에는 딱히 차질 없이 잘 진행되어왔다. 건장한 청년인지라, 그 힘도 더 셌다. 허나 호원의 얼굴은 항상 어두웠다. 뭔가 어딘가 꽁꽁 숨기고 있는 것처럼.

"어둡습니다.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어둡다니? 아름다운 처가 있다 들었다 그런데 어찌 표정이 어둡단 말이냐"

"입꼬리하고 눈꼬리가 이러어엏게 처진 것이 우울해 보입니다. 요즘 얼굴만 봐도 미안해진다라는 말을 전해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명수가 작은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한 번 쭉 내리고선 입꼬리를 쭉 내렸다. 명수는 잠시 어두운 표정의 호원을 생각하고선 다시 시무룩한 얼굴을 지었다. 전에 시전에서 한 번 우연히 봤을 때에는 밝고 쾌활한 사람이었는데, 어찌 저렇게 변할 수 있는지 명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그 호원이란 자의 아내를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헌데 매우 아름답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매혹적이다, 이 표현을 많이들 쓴다고 합니다." 

"우리 한 번 보러 갈... 까?"

우현은 호원의 동우가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고 항상 궁금해했다. 양반 신분에 나가서 그 남산 아래 그 누추한 집까지 간다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런데 명수도 이렇다 말하고.. 사내로 태어나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암, 그렇고말고.  명수는 우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련님. 도련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갓을 쓴 우현이 명수의 앞에 썼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엄청 검소하지도 않게 차려입은 우현의 모습은 멀리서 본다면 꽃도령이라며 우현에게 달려올 게 뻔하였다. 호원의 집에 가려면 기생각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때 달라붙은 기생들과 질색하며 밀어낼 우현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는 명수였다. 픽-

 

 

 


"왜 웃느냐. 내가 웃기냐?"

 

"아닙니다, 아무것도."

 

 

 

 

저잣거리로 나간 우현과 명수는 눈에 띄었다. 작은 체구지만 날렵히 생긴 외모와 무예로 인해 단련된 몸은 숨길 수가 없었고, 귀티 나는 우현의 모습도 또한 멀리서 보니 아름다운 두 사내가 걸어가는 모양새였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검은 도복을 입은 명수가 한 쪽에는 남 대감이 내린 칼을 차고 우현의 팔을 잡고 끌었다. 사람이 혼잡한 이 저잣거리에서 우현을 잃어버린다면 저는 나리에게 혼날 것이 뻔하였다.

 

 

 

 

"내가 어린아이인 줄 아느냐. 이 손 놓아도 된다"

 

"아닙니다. 나리께 도련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않았다며 꾸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절대 이 손 못 놓습니다"

 

"그래? 그럼"

 

 

 

 

어느새 대감님께서 나리로 호칭이 변한 남 대감이었다. 우현은 명수의 말에 한 번 재미지다는 듯 웃더니 명수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명수는 우현의 반응에 당황한 듯 잠깐 멈칫했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 다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발걸음을 서둘리 했다. 명수가 우현의 손을 잡고 침을 꼴깍 삼키었다. 한양 최고의 기생각이 있는 곳이었다. 분명 몇은 우현을 알아볼 테고, 그러면 달라붙을 테고... 하...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지끈해져 오는 명수였다.

 

 

 

 

"도련님"

 

".... 그래... 가자꾸나"

 

"도련니임~ 오늘 소녀가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들어오시지요 오~"

 

 

 

 

아니나 다를까 말꼬리를 최대한 늘려 말하는 기생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명수의 팔을 꼭 잡은 우현이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독한 향수 냄새가 우현의 코로 들어갔다. 한 기생이 우현의 팔을 잡아 제 가슴께로 이끌었다. 은근슬쩍 제 가슴에 우현의 팔을 묻게 한 기생이 더 우현에게 아양을 떨었다. 아아아, 도련니이임-

 

 

 

 

명수가 더 심해지기 전에 빨리 떨어트려 놔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칼을 꺼내 들어 기생들 앞에 냈다. 긴 장도가 햇빛에 반사되었다.

 

 

 

 

"이 분은 귀한 양반 자제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으니 비켜주십시오"

 

 

 

 

명수가 그대로 우현을 잡아끌어 냅다 달렸다. 뒤에서 한 여인이 도련님!!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게 살포시 들려왔다. 픽-하고 웃은 우현과 명수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자 저 멀리 혼자 외롭게 서있는 집 한 채가 보였다. 저 집인 게냐. 그 여인이 있다는 것이.

 

 

 

"예"

 

"그런데 어떻게 그 여인의 얼굴을 보게 해준다는 말이냐"

 

"제게 다 방법이 있습니다. 헌데, 저 여인은 지아비가 있는 몸입니다..."

 

"....."

 

 

 

 

맞다, 우현이 보고 싶어 하는 낮을 황홀하게 하는 꽃에게는 밤을 밝히는 꽃, 호원이라는 남편을 둔 몸이었다. 부부는 한 몸이라 하거늘, 지금 우현은 그렇게 읽어온 유교의 교리를 부시는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뭐 어떡해, 보러 온 거 무라도 찔러봐야지. 명수는 다시 그 집을 향해 걸어가는 우현을 보더니 그냥 말없이 뒤따라 갔다.

 

 

 

 

멀리 있지 않았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그 집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현은 명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긴장이 되서 손에 땀이 찼는지 우현이 도포에 손을 슥슥 문질렀다. 명수가 큼큼,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이보시오"

 

 

 

 

예,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름한 문이 열렸다. 더워서 저고리는 벗어둔 채 치마만 입고 있던 동우가 보였다. 동우의 머리는 가지런히 묶여있지 안고 긴 머리를 그냥 풀어놓은 상태였다. 더운 여름 날씨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 덕에 살짝 젖은 동우의 속살이 더 야해 보였다. 우현은 그 자리에서 정지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수도 그런 동우의 차림에 당황했는지 어... 어... 하며 버벅대었다. 동우는 그런 두 남정네의 모습을 계속 보고선 자신의 차림새를 알고 급히 문을 닫았다.

 

 

 

 

우현과 명수의 입이 닫힐 줄을 몰랐다. 다시 하얀색의 저고리를 입고선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동우가 방 안에서 나왔다. 동우, 명수 그리고 우현까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귀한 분 같아 보이시는 데 여기에는 어쩐 일로... 동우가 침묵을 깨고 명수에게 물었다.

 

 

 

 

"아... 그 지나가던 행인이옵니다만, 우물이 없길래 물 한 바가지만 얻어먹으려고..."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동우가 최대한 여인의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말한 뒤 부엌으로 들어갔다. 쓰개치마를 쓰는 양반 댁의 자녀와는 다르게 바로 얼굴을 본 우현이 그냥 동우의 모습에 반해 설레는 가슴을 잡았다. 얼른 동우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 쿤 눈으로 나를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어떠십....니까?"

 

"지아비가 있는 몸이라는 것에 한숨만 나올 뿐이로다. 나를 먼저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여색에는 통 관심 없던 도련님의 첫 상대가... 참... 안타깝습니다"

 

 

 

 

명수는 어딘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을 느꼈다. 고작 저 여인 때문에 괜히 뒤로 밀려나는 그런 기분을 느낀 명수였다.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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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엄청 좋아요 이런 글 ㅠㅠ 근데 걱정이네요 호원이든 동우든.....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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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의 시대 - 남혜승 및 박상희본 글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을 배경으로 나아갑니다.경성블루스 五정국은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자꾸만 아까의 상황이 그려졌다. 저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과 살랑이던 바람. 하천의 물결 위로 올라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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