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을 떠보니 익숙한 광경이었다. 나는 언제 기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담하고 주변 동료들이 내 주변으로 둘러싸고 있는 걸 보아 기절했다가 지금 깬 게 분명했다. 찌릿찌릿 아픈 허리가 아까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자각시켜주었다. 이런 망할 놈. 실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익숙한 얼굴뿐, 정말 보고 싶은 얼굴이 없었다.
지원이가 없었다.
조금 속상한 마음도 들었지만 남창 주제에 뭔 로맨스를 바래- 하며 넘겼다. 점점 지원이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나를 느끼며 설마 그 아이에게 사랑이라도 빠진 건가 했지만 답은 하나였다. 눈을 떴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섭섭하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좋아하나보다. 마담은 내가 깨어나기 전부터 계속해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따듯한 손길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 마담을 쳐다보았다. 고주섭 때문에 소리를 꽥꽥 질러서 그랬는지 목이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목소리가 목을 타고 겨우 나왔다. 나는 내 손을 잡고 있던 마담의 손을 힘을 주어 잡았다. 마담은 내가 일어나서 놀랐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마담... 걱정 많이 했나보네. 얼굴이 이렇게 못나서 어디 남자가 좋아해주겠어?"
"야, 이 나쁜 놈아... 그래, 일어났으니 됐다!"
마담은 항상 그랬듯 엉엉 운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상한 얼굴에 눈물까지 번져 더욱 못났다. 그래도 우리 마담보다 얼굴도, 마음도 이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누가 있을까. 참, 항상 고마운 사람이야.
마담에게 여차여차 들어보니 고주섭이 옷을 챙겨 방을 나가자마자 들어와보니 나는 방바닥에 못볼꼴로 업드려 있었다고 한다. 기절을 하고서도 행위를 계속한 것 같다고. 딜도를 자동으로 앞뒤로 움직이게 해주는 커다란 기계를 가지고 와서는 그걸로 한참을 괴롭힌 것 같다고 얘기해주었다. 마담은 방에 들어와서 내 꼴을 보았을 때 고주섭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며 그때를 회상하는 듯 했다. 계속해서 그 상황이 어땠는지 나에게 말해주면서 분노가 북받쳐올랐는지 눈을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서는 눈물을 흘렸다.
마담이 그렇게 이야기 해주니 조금씩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 수갑 채우고 그 기계에 눕혀서 딜도를 내 아래에 꽂아서 작동시킨 것까지 기억이 났다. 나는 안대를 낀 상태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감에 살려달라고 버둥버둥거렸지만 끝끝내 나는 기절하고 만 모양이었다. 마담의 말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섞인 정액은 바닥에 말라붙어 흉한 꼴을 하고 있었댔다.
안대를 끼고 수갑을 낀 채 뒤에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 기계를 꽂고 기절한 채 발작하는 나를 보자마자 미연이는 충격에 쓰러졌다고 한다. 나 하나 때문에 마담도 그렇고 미연이도 그렇고, 다 고생이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고주섭이 나만을 탐한다는 거였다, 오직 나만을. 요즘 미연이에게 툭하면 말 걸고 소위 말해 찝쩍거려서 미연이를 건드릴까 두려웠지만 고주섭은 끝까지 나를 찾았다. 남자라서 씨를 배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그 쓰레기의 여자에 대한 배려일까.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런 일 당하는 사람은 나 하나만으로도 족하니까.
망가져 버린 몸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꼬리뼈 언저리부터 극심한 통증이 올라왔다. 일어나 앉아보려 했지만 다시 푹신한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계속 걱정을 하고 있던 다른 동료들이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하나하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일도 안 하고 내 옆에 붙어서 뭐하는 거야. 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준 마담에게 미안해서 천천히 일어나보려고 했지만 마담이 일어나려고 하는 나를 제지했다. 몸 많이 상한 거 알아, 누워 있어. 마담의 걱정 어린 말에 괜히 눈가가 찡했다. 마담 밖에 없어, 정말.
쾅- 누군가 문을 세게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열었다기보다는 그냥 밀치고 온 거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안 봐도 그 주인은 하나. 김지원이다. 급하게 어디서 뛰어왔는지 땀은 송골송골 맺힌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디서 또 맞고 왔는지 얼굴에 새로운 상처를 달고 왔다. 급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다급한 눈빛에서 걱정이 보였다. 진심 백프로로.
"왜 맨날 아파? 너는?"
"괜찮냐구 먼저 물어봐주면 안 돼?"
"보면 몰라? 누가 봐도 안 괜찮아 보여. 얼굴이 이게 뭐야? 맞았어? 마담, 얘 왜 이래."
"지원이 어디 가서 맞고 왔어? 얼굴에 이게 상처가 뭐야."
갑자기 지원이 들어오는 바람에 반쯤 감겨있던 눈이 확 떠졌다. 나를 걱정해주는 지원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마담은 지원이를 보더니 철딱서니 없는 아들 보듯 쳐다보고선 내 손을 한 번 세게 잡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김지원에게 둘만의 시간을 주려했는지 방문을 닫고 아예 방을 나가버렸다. 크지 않은,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방에 지원과 단 둘이 이렇게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플 때 이렇게 단둘이 있어본 적은 없었는데. 잠자리를 가질 때 빼고는.
"약 발라야지. 피 난다, 얼굴에서."
아파서 그런가. 괜히 이렇게 보고 있으니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힘이 빡 들어간 미간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치켜뜬 눈의 꼬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쭈욱-. 우리 지원이. 형아 노려보는 거 아니야.
아픈 허리를 겨우겨우 움직이느라 욕 봤다. 서랍에 항상 있는 콘돔들과 약이 있었다. 새살이 솔솔 돋는다는 그 제품을 꺼내 얼굴에 발랐다. 지원은 살짝 따가웠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힘이 빡 들어간 미간을 꾸욱 눌렀다. 지원이 아이같이 웃었다. 항상 붙여주는 뽀로로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얘는 조폭보다는 이런 게 더 어울리는데 말이야.
"이제 말해.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손님 받느라 고생해서 몸살 난 거야, 그냥."
"도망갈까?"
"응?"
"도망갈까? 내가 도망가줄게. 형아, 손 꼭 잡고 그 사람들 못 찾는 어디든 가서 이 거지 같은 조폭질하는 거, 형아 남창짓하는 거 그만하고 새 삶 찾자. 응?"
상당히 위험한 말이었다. 항상 꿈꿔온 일이지만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망을 간다 해도 조폭집단의 사람들은 끝까지 우리를 추격할 것이다. 처음 이 곳에 들어와 남자에게 예쁜 웃음을 지으며 술을 팔 때. 어제 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조직의 간부라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몸을 판 날부터 한 번도 '도망' 이라는 걸 꿈꿔보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한 번 도망 갔다가 붙잡혀 들어와 이 곳이 아닌 정말 사창가로 들어가 정말 몇 분 쉬지도 못하고 박히는 그런 여자, 남자들을 몇 번이나 보고 나서는 일절 꿈도 못 꾸었다. 한 번도 그 '도망'에 성공한 사람을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이곳에서는, 조직에서는 도망 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금기였다.
"니가 온 지 얼마 안 되서 모르는 것 같은데,"
"알아, 아주, 아주 잘 알아, 도망이라는 말 자체도 금기라는 거 잘 알아. 근데 니, 니도 꿈꿔봤을 거 아니야. 어차피 이 짓하다가 디질, 디질 건데, 도망 한 번이라도 해보자. 응?"
"지원아…."
헛말을 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 지원이를 꼭 안아주었다. 가빠져갔던 숨소리가 점점 누그러져갔다. 어색하게 머물던 손이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아이를 어루달래듯 지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하자, 도망. 나중에. 천천히 지원이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2.
"뭔 손님이 애를 이렇게 험하게 다루냐."
지원이 내 눈가로 손을 뻗었다. 어루만지는 손길이 아팠다. 고주섭이 멍이라도 만들어놨나. 얼굴, 몸으로 먹고 사는데 얼굴을 망쳐놨네. 며칠동안은 손님도 못 받겠네.
내 상처를 어루만지는 지원의 눈을 쳐다보았다. 오늘 상납하고 오는 날인데 왜 얼굴에 무얼 주렁주렁 달고 왔을까. 내가 준 돈은 두 번 정도 상납해도 남았을 돈인데.
"얼굴에 달고온 이 상처들은 뭐야."
"아…. 니가 준 돈 안 썼어."
"뭐? 왜?"
"그냥, 그냥."
지원이 내가 준 흰 봉투를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지원의 행동에 어벙- 해졌다. 맞는 거 무서워하는 지원인데, 자존심 굽혀가며 나한테 돈 봉투 받아간 지원인데.
"형, 근데 내가 안 썼다고 해서 형이 쓰면 안돼."
아까까지만 해도 너, 너 거리며 반말하더니 다시 형으로 돌아왔다.
"왜?"
3.
도망갈 때 쓰려고.
4.
고작 그 말도 안 되는 일 하려고 이렇게나 맞고 온 거야?
5.
지원은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면 참 순수한 아이야- 다시금 느꼈다. 서랍에서 연고를 꺼내 손가락에 살살 덜어 찍- 옆으로 상처가 난 볼따구에 톡, 살짝 터진 입술 위에도 톡톡 발랐다.
쪽-
갑자기 다가와 지원이 입을 맞추었다. 곧 떨어지는 입술이었지만 지원의 온기가 촉촉히 와닿았다. 지끈지끈거리는 허리를 겨우 부여잡고 똑바로 앉아 지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아이, 내 아이, 귀여운 내 아이. 지원은 내 눈가를 어루만지다가 입을 깊게 맞추었다. 지원의 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까칠까칠한 입술이 느껴졌다.
"지원아, 나 좋아해?"
"응."
"어?"
"좋아해, 형아 좋아해, 내가. 많이."
"치-."
형아 하며 매달려오는 지원이가 귀여워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내 반응에 지원이는 얼굴에 물음표를 달았다. 지원이 이렇게 나를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건 또 처음이라 어떻게 대답을 해주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나도, 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으아아- 될 대로 되라지.
"나도."
"응?"
나는 다시 묻는 지원에 그냥 배시시 웃었다. 나도, 좋아한다고. 지원이 입을 쩍 벌리더니 나를 세게 안았다. 순간 질끈 아파오는 허리에 소리를 질렀다. 악! 지원이는 깜짝 놀라 내 몸에서 떨어졌다. 안는 건 좋은데 너무 아파ㅠㅠ. 마음만 같아서는 지원의 얼굴을 잡고 뽀뽀라도 한 번 해주고 싶었지만 몸이 내 생각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원은 급하게 나를 눕혔다. 나에게 이불을 덥혀주고는 자기는 그 이불 위로 올라타 누웠다. 이렇게 나란하게 둘이 누워본 적은 없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누워있으니까 가슴이 몽글몽글한 게 기분이 좋았다. 지원이는 자기가 한 행동에 자기가 부그러웠는지 귀가 빨개져있었다. 아닌 척 하려 기침을 큼큼 하는 모습이 귀엽고 보기 좋았다.
6.
이런 날만 매일매일 같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 고주섭이고 상납이고 뭐고 간에 다 내려놓고 단둘이 평범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7.
도망이라도 갈까?
***
G.U.B.YOU
G.U.B.NEVER
그리고
G.U.B.Seen
이제 제목 뜻을 아실 분 있을랑가... 몰라...!
저번에는 아무도 모르시던데 이번에 아시면
당신은 진정 바비팬!
이 제목의 의미를 아신다면 아마 다음 편의 제목도 맞추실 거에용.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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