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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 원 X 장 동 우 




작년 겨울 그 아저씨와 길거리의 소년을 기억하시나요 


w.요몽





--





구세군 모금을 위한 종소리가 온 거리에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각자 저가 사랑하는 연인들과 팔짱을 낀 채 수다를 떨며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호원은 모처럼의 휴일에 집에 그저 있기 그래서 혼자 목도리를 두르고 홀로 거리를 다니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연인이나 친구를 데리고 있었지만 호원은 홀로 거리를 거닐었다. 혼자 다니는 것도 딱히 외롭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동우는 갈 곳도 없고 해서 그냥 나와서 추운 길바닥의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오도도도 떨고 있었다. 집에 있어야할 엄마, 아빠는 어딘가로 데이트 나가 없고 두 누나들은 각각 남친들에게 팔짱을 끼고 어딘가로 쓩 날라가 버렸다. 덕분에 집에서 밥도 없이 심심하게 있어야 했던 동우는 외출을 했고 아무것도 할 것 없이 그냥 벤치에 앉아 있었다. 뭐이렇게 추운 거야. 미끄러운 길바닥에서 한 번 미끄더엉- 하고 넘어진 후 다시 길거리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호원의 눈에는 그런 동우가 가출했는데 갈 곳 잃은 어린양처럼 보였다. 보면 많아봤자 고등학생일 얼굴. 나이에 답지 않게 쓴 털모자와 목도리와 털장갑. 손을 비비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고 다시 비비기를 반복하는 동우를 보며 호원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요즘 학생들 중에 저렇게 귀여운 애를 본 적이 있었나. 







호호 부는 입김하며 덜덜 떠는 다리까지.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게 생긴 동우에게 호원이 천천히 다가갔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녀서 바닥의 얼음이 다 녹아 질척거렸다. 가서 컵라면이나 같이 하나 하자고 할까.







호원이 동우의 앞에 섰다. 동우는 자기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이 눈썹 짙은 아저씨는 뭐지.







"아저씨는 뭐예요."
"나?"
"그럼 아저씨지, 제가 얘기할 사람이 누가 더 있다고 그래요."
"나 아저씨 아닌데."
"군대 갔다 왔죠?"
"군대 갔다온지는 4년 넘었지."
"그럼 아저씨네."
"그런게 어딨냐."









여기 있어요. 동우는 호원의 시선을 피했다. 이상한 아저씨가 붙고 난리야. 호원은 동우가 앉아있는 자리 옆 빈 자리에 털썩 앉았다. 밀착된 팔에 동우가 슬금슬금 옆으로 갔다. 동우는 몸을 호원의 반대쪽으로 쭈욱 빼고 호원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보니 잘생기기도 한 것 같았다. 딱 둘째 누나 이상형이다. 근데 왜 크리스마스에 여자 없이 혼자 이 커플천국을 걸어다니는 건지. 동우는 괜한 의구심이 들었다.







"애인 없어요?"
"컵라면 먹으러 갈래?"








뜬금없이 저 이상한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말에 동우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애인이 있냐없냐는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데 배고픈거는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니까. 호원이 동우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벤치 주변은 아직 얼음이 안 녹았는지 살짝 발이 미끄러졌다. 호원은 두 발과 허벅지에 단단히 힘을 주고 동우를 편의점으로 잡아끌었다. 자꾸만 미끌거리는 발을 겨우겨우 디뎌서 호원을 졸졸졸 따라갔다. 두 남정네가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게 이상해보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우 쪽팔령. 








결국 호원은 블랙신라면. 동우는 진라면 매운 맛에 물을 붓고 젓가락을 꽂아놓은 채로 4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우는 젓가락을 쪽쪽 빨다가 호원에게 아까 물어보려던 거를 다시 물었다. 








"아저씨는 애인 없어요? 크리스마스에 혼자 돌아다니게."
"응, 없어. 아가는 모르지만 연애는 다 때가 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란다."
"왜 때가 아니에요? 지금이 한창이구만."
"다 그런게 있어, 아가."











호원이 동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우는 알 수 없는 느낌에 그냥 라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4분이 지났고 동우는 젓가락을 반쪼각 내서 라면을 후후 불어 입으로 넣었다. 호원은 자꾸만 떨어지는 동우의 목도리를 아예 잡아 빼서 개어 한 쪽에다가 놓았다. 동우는 호원의 눈치를 보면서 라면을 호호 불어먹었다. 호원도 곧 라면 뚜껑을 뜯어서 라면을 먹었다. 한참을 말 없이 그렇게 라면만 먹었다. 








라면 찌꺼기들은 대충 버리고 편의점을 나왔다. 딱히 할 것 없어 나온 동우와 호원인지라 그냥 같이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호원에게는 작고 귀여운 고등학생이. 동우에게는 잘생긴 아저씨가. 그렇게 둘이 아무 말도 없이 같은 거리를 걸었다. 캐롤이 들리고 동우는 그것을 작게 흥얼흥얼거렸다. 호원은 안 듣는 척 하면서 동우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었다. 아, 귀엽다. 








"아저씨."
"뭐."
"근데 저 알아요?"
"아니. 모르는데."
"근데 왜 저한테 라면 사주고 그래요? 설마 납치범이에요?"
"내가 납치할 사람으로 보여?"
"네."
"어이가 없어서. 그냥 심심한데 니가 오들오들 떨고 있길래 가출 청소년인가 해서 밥 한 번 맥여준 거야."









어이가 없어서, 하. 동우가 호원의 이상한 대답을 비웃었다. 동우가 무얼 하든 호원의 눈에는 아직 어린 고등학생이 하는 그런 귀여운 행동으로만 보였다. 거리 한가운데에 있는 시계는 어느새 10시를 가리켰다. 동우는 시계를 보고 히익 놀라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벙어리장갑 때문에 자판이 안 쳐져서 동우가 한 쪽 장갑만 뺐다. 으아아- 손 시렵다. 동우는 그새 빨개진 손을 비비다가 몇 번 핸드폰 액정을 눌렀다. 이게 무슨 일이야. 벌써 엄마랑 아빠가 들어왔는지 동우의 핸드폰에는 벌써 엄마와 아빠의 부재중 전화로 가득차 있었다. 뭘 걱정하고 그러나. 









동우는 초조한 눈으로 호원을 쳐다보았다. 호원은 핸드폰을 쓰윽 보더니 시계를 보았다. 학생한테 이게 늦은 시각인가? 호원의 앞에서 동우가 발을 동동동 굴렀다. 호원은 그때 아직 동우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정말 뜬금없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쪼꼬만 것을 안아보면 무슨 느낌일까. 









"가야하는 거면 가야하는 거라고 말해."
"아니이... 그게 아니고-."
"엄마, 아빠한테서 부재중 떴드만. 집에 가. 얼른."
"아니. 그래도 라면도 사줬는데 미안하잖아요."
"그러면 소원 하나 들어주고 갈래? 잠깐이면 돼."









소원이요? 작고 귀여운 아이가 자신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호원은 대답대신 동우를 세게 끌어안았다. 아직키가 작아 한 품에 들어오는 동우의 체향이 좋았다. 바디워시 뭐 쓰길래. 사람들의 눈치가 슬슬 보일 때 쯤 호원이 동우를 놔주었다. 이게 내 소원이야. 








동우는 호원을 동글동글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호원을 껴안았다. 뭔가 나를 감싸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호원은 동우의 갑작스런 행동에 어찌해야할 지 몰랐다. 방황하던 팔이 겨우 동우의 어깨를 감쌌다. 동우는 호원의 품에서 빠져나가 호원에게 꾸벅- 배꼽인사를 하고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호원은 동우가 사라진 곳을 보며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름을 못 물어봤네."









*******









다음 해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호원은 취업을 해서 정장을 입고 매일매일 출근했고 그렇게 다가온 달콤한 휴일, 크리스마스였다. 호원은 겨울 내내 동우가 생각났다. 12월 25일, 단 하루의 인연을 생각하며 동우를 처음 만났던 그 벤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혹여나 동우가 없으면 어떡하나. 나는 이렇게나 생각하고 아직까지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우는 나를 그저 쉬운 사람으로 생각했으면 어쩌나.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컸다. 








벤치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밤 9시. 아직 10시면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올 학생일 그 아이를 생각하면 만나지 못할 게 당연했다. 없네. 호원이 대충 혼잣말을 하고 벤치를 쳐다보았다. 








"누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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