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네가 준 거니까 특이해 보이고 예쁘지. 이 멍청아!
그렇게 나는 어젯밤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일어났어. 하지만 해가 중천에 있는게 함정.
내가 왜 얘 하나 때문에 잠을 잤다가 못 잤다가 반복을 해야 하니.
아…… 짝사랑 한번 힘들다.
짝사랑이라고 하니 조금 억울하네.
정신은 멀쩡한데 잠을 제대로 못 자 정신을 못 차리는 몸 덕분에 옷을 주워입다시피 하고 집을 나섰어.
그래도 신기한게 수업시간 즈음 되니까 저절로 몸이 일으켜 지더라.
아무튼, 집 문 꼭 잠그고. 휴대폰도 챙겼지.
근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옷을 내려다봤는데,
그 옷이었어. 내가 수능 망치고 마지막이라고 울면서 입었던 옷.
조선 시대 정국 전하께서 보신 유일한 내 사복.
어제 모든 걸 잊겠다며 혼자 난리를 치며 바닥에 내팽개친 옷을 내가 그대로 주워입고 나온 거였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
하기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이런 거 입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다시 집 돌아가기도 귀찮아서 그냥 학교로 갔어.
오늘 1교시가 뭐였더라. 전정국 때문에 제대로 기억나는 게 하나 없네.
나 기 빨리는 거 아니야? 설마 귀신은 아니겠지.
투덜거리며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표를 확인하는데 누가 어깨동무를 해왔어.
갑자기 쏠리는 무게감에 허리를 살짝 숙이고 옆을 돌아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친구 짝사랑녀, 오늘도 좋은 아침!"
아침 아니야 병신아. 옆에서 들려오는 정국의 무심한 타박까지.
짝사랑녀라니. 저게 무슨.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은 전혀 관심도 없는 태형이 그새 정국과 투닥거리고 있더라.
저 초등학생들을 어떻게 말려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날 못 알아보는 정국도 괘씸하고, 옆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듯한 태형도 괘씸했어.
마음만 같아선 다 엎어버리고 소리를 빽 지르고 싶었지.
내가 너랑 연애했다고 전정국. 그리고 넌 그냥 지나가는 백성1만도 못한 병풍이었을 거야 김태형!
정황상 태형은 조선 시대 석진과 같은 입장인 것 같긴 한데 왜 저럴까. 저러고 싶을까.
아무 생각 없이 정국을 쳐다보는데,
태형을 제압하는 정국의 손에서 내가 끼고 있는 옥색 반지와 똑같은 것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어.
잠시만. 내 손가락 한번, 다시 정국의 손가락 한번.
번갈아 쳐다봐도 내 머릿속은 정리가 안 되더라. 눈을 비비고 쳐다봐도 똑같았어.
조선 시대에 이 반지를 팔던 분이 현대에 와서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나…….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는지 정국이 내 쪽을 돌아봤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를 위아래로 쭉 보더니 피식 웃더라.
뭐야 왜 웃는 거야. 왜 비웃는 것 같지.
갑자기 기분 상하길래 그냥 휙 돌아서 수업이 있는 교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
쟤네는 게이가 틀림없어.
아니고서야 저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몸 치대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 저주 아닌 저주를 하고 있을 때 누가 또 내 어깨에 팔을 둘러 왔어.
내가 받침대도 아니고 끈질기네, 정말.
"아, 김태형 그만 좀…… 어?"
"안녕."
어, 어. 그래. 안녕. 좋은 하루네.
떼어내려고 잡았던 팔을 살짝 놓자 그걸 보더니 또 웃는 정국.
얘는 왜 또 적응 안돼게 해맑아.
근데 이 와중에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팔이 괜히 기분 좋게 느껴지면 나 바보인 건가.
반지를 낀 손을 뒤쪽으로 숨기는데, 정국이 자기 손을 내 얼굴 앞으로 들이밀더라.
아까 전부터 이상한 짓만 해 왜. 오른손을 들어 손을 내리려는데, 반지가 눈앞에 딱 들어왔어.
보란 듯이 흔들흔들 흔드는 손에, 내 머릿속도 흔들흔들.
"반지 특이하고 예쁘지."
"어?"
"오늘 햇살도 되게, "
따사롭지 않냐. 정국이 다시 나를 쳐다보며 씩 웃었어.
어, 햇살이 3월치곤 굉장히 따사롭, 예?
설마. 설마. 두 손으로 입을 가리자 내 손을 내리는 손길이 익숙했어.
"부끄러웠던 게야."
정국 전하?
헐. 엄마 저 울 것 같아요.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인 거야.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었나. 나 못 알아봤으면서.
장난치는 거겠지. 아니야, 누가 어떻게 알고 저런 장난을 치겠어.
전정국이 역사학과였나. 아닌데. 아니면 수업이 그런 건가.
자기 개발과 어쩌고 그거 듣는다고 김태형이 그랬었는데.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
뭔가 생각을 하고 싶은데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어.
이대로 그냥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촤르륵 펼쳐지는 기분이었지.
꿈은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지금 이것도 꿈인 건가.
내가 좋아하는 거 아니까 괜히 떠보는 건가.
그러면 괜히 조선 시대 말투 쓸 필요가 없을 텐데.
이거 김태형이 꾸민 몰래 카메라 이런 거 아닐까. 아니야 나 그 누구한테도 조선 시대 언급한 적 없단 말이야.
내 손을 잡아오는 정국의 손이 따뜻했어.
사실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수능을 기점으로 한 달 가량 꾼 꿈이 있는데 거기에 네가 나왔거든.
사실 그게 누군지도 모르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여기 와서 실제로 보니까 되게 당황스럽더라.
마냥 꿈인 줄 알았는데, 보이지 이거. 이 반지도 내 손에 끼워져 있고.
근데 내가 왕이었다니까. 왕. 역시 난 어디 가서 빠지질 않아요.
아무튼, 좀 긴가민가했는데 너 반지 보고 맞나 싶었다.
근데 네가 오늘 이게 입고 와서 완전 확신이 드는 거야.
좀 웃기긴 한데 꿈이었어도 내가 너 많이 좋아했나 보더라고.
너도 그 꿈을 꿨어? 야, 미쳤다고 한강 물에 뛰어들어. 니가 무슨 심청이도 아니고.
그러다가 골로 갔으면 어쨌으려고 그랬냐. 애도 아니고 무슨 생각을…….
어, 그럼 나 이거 작업 거는 거 아니겠네.
사실 이거 말할까 말까 고민 많이 했거든. 좀 진부한 작업 멘트 같지 않냐.
꿈에 네가 나왔는데 내가 너를 많이 사랑했거든, 그러니까 우리 사귈래. 이게 뭐야. 으, 오글거려.
근데 너도 꿨다니까 다행이네. 우리 천생연분 아니야?
"그럼 이제 들어볼까,"
"뭐를……."
"여행 소감 좀."
늦어서 미안해.
귓가로 내려앉는 정국의 속삭임이 간질거리게 들렸다.
오늘도 잠자긴 글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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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DUSK 입니다.
독방에서 짧게 써내려가던 조각글을 바탕으로 '열기'라는 태형이 빙의글을 시작하다가 연중.
그러던와중 심심풀이로 적어본 '우연히 조선 시대에 갔다 온 썰' 이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으니 항상 감사 할 따름이에요!
하지만 조각글을 중심으로 두고 써내려가던 즉흥 글이었던 것 만큼 연재도 들쑥날쑥이었고,
하루에 두편을 올리는 가 하면, 공지도 없이 아예 안 올리는 날도 있었던 것 같네요.
바빴다고 하기엔 사실 모든 게 다 핑계에요. 하루 종일 인티에 있으면서 연재를 안했다는 건 제가 게을렀던 거겠죠 =)
항상 모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감사 할 뿐입니다.
어떻게 더 좋게 쓸까 고민도 많이 하지만 썰이다보니 조금 한정적인 면도 있네요.
제가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쓰다보니 글도 가벼워지구요.
항상 금손이라 해주시고, 내용 좋다고 해주시는데 저한텐 과찬이에요, 듣기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그래서 늘 그런 칭찬을 보고 더 발전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공지를 본편에 껴넣는 이유는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이유에요.
따로 공지를 올리기엔 더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짧게 적어보는 겁니다.
전개 상으로 따지면 이 작품은 여기까지가 완결이에요 :) .. 사실 더 이어나갈 자신도 없는 탓이 크지만.
다른 작품이 준비 중이니까요,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암호닉 신청하신 분들, 그리고 꾸준히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그리고 지금 이걸 읽고 계실 모든 분들을 이끌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고 싶지만 그건 제 욕심이겠죠?
다음 편에서 혹시라도 또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자연스럽게 저 누구에요~ 하고 암호닉 알려주시면 됩니다!
저는 같은 작가이고, 독자분들 또한 같은 분들이니까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땡큐 베리 감사!
앞으로도 쭉 계속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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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랑 연애하는 썰 / 199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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