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꽃 3 : 獨 花
"재현 나리, 꽃이 빨갛기도 노랗기도 한 것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조심하거라, 겉이 아름다운 것은 속이 곪아 있을 수 있으니."
재현의 말에 준희는 꽃 향을 맡고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꽃 한 송이를 꺾어 재현에게 건네주었다. 재현은 그런 준희가 좋아서, 건네받은 꽃으로 준희 손에 어울릴 꽃반지를 만들어주었다. 그러고선 준희의 왼손을 잡더니 이내 약지에 끼워주었다. 준희는 이게 무엇이냐며, 재현을 빤히 쳐다봤고 재현은 그런 준희를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선 자연스레 재현은 꽃 한 송이를 더 꺾어, 자신의 꽃반지도 만들어 자신의 약지에 끼었다.
"우리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날에 이 두 꽃을 서로 엮어주도록 하자구나. 비록 지금은 떨어져 홀로 있지만, 다시 만날 때는 내 이 반지를 엮고 너에게 새 옥 반지를 끼워주겠다."
"나리, 그 말은 저와 혼인하겠다는 뜻인 거지요?"
"하하, 그렇게 되는구나. 그래, 그러자꾸나."
준희는 재현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져 재현의 손을 잡았다. 재현도 그런 준희 손을 놓지 않고 더 세게 붙잡았다. 그러고선 재현은 꽃반지를 가리키며 입을 뗐다.
"내 이 꽃을 독 꽃이라 불러도 되겠냐?"
그런 재현의 물음에 준희는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의 웃음소리는 산 중턱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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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었다. 재현이 수 왕국의 둘째 공주와 혼례식이 잡힌 이후로 계속해서 꾸는 꿈이었다. 재현은 눕혀져 있던 몸을 일으켜 자신 옆에서 곤히 잠든 둘째 공주를 쳐다봤다.
그래, 이런 공주님을 두고 과거 여인을 생각하다니. 이런 역모가 또 어디 있을까. 재현은 그저 꿈속에 나와 자신을 뒤흔들고 간 준희 생각을 떨쳐내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재현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반응해 옆에서 자고 있던 둘째 공주마저 잠에서 깨어났다.
"서방님, 잠은 푹 주무셨습니까?"
"제소리에 깨셨군요. 더 주무셔도 됩니다, 부인."
재현의 말에 공주는 아니라며 누운 몸을 일으켜 머리 정돈을 하였다. 재현은 새삼 둘째 공주의 모습을 보며 준희 얼굴이 겹쳐 보였다. 또 준희 생각, 이라며 재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공주는 어디 불편하냐며 재현에게 물었다. 재현은 그런 공주에게 별거 아니라며 웃어넘겼다.
"저, 서방님. 좀 있다. 제 비녀 좀 같이 골라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제가 같이 골라드려야죠."
재현의 말에 공주는 기분이 좋단 듯 웃어 보였다. 재현은 방문을 열어서 날씨를 확인했고, 뒤이어 공주도 재현 뒤에 서더니 이내 재현을 안았다. 갑작스러운 공주의 행동에 재현은 놀랐지만 부부 사이니 익숙해져야 한다며 그런 공주의 손을 꽉 잡았다.
"서방님, 오늘 저만의 의녀를 갖는 날입니다."
공주가 공주만의 의녀를 갖는다. 그 뜻은 수 왕국의 증손을 늘리려는 것, 즉 재현과 공주 사이에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한다는 말이었다. 언젠가는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공주의 빠른 실행력에 잠시 놀란 재현이었다.
"부인, 너무 이른 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아기를 갖는다는 건 부인 몸에도 큰 부담이.."
"압니다. 하지만 서방님과 저를 닮은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부인의 말에 알겠다며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궁녀 한 명이 공주에게 다가와 고개를 조아리고는 의복을 갈아입어야 한다며 공주를 데리고 갔다. 재현은 그런 공주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공주를 보면 재현은 항상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언젠가, 꼭 언제가 되면 공주를 정말 사랑할 날이 올 거라고 재현은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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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향기가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은 수 왕국에 꽤 짭짤한 바닷가 내가 섞인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수 왕국, 이곳이 내 한 몸을 바쳐 지낼 곳이기도 했다. 궁전 내 작은 연못에 개구리가 울기를 멈췄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끊김과 동시에 사람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구석에서 일어나 고개를 조아렸다. 걸음걸이, 목소리, 향 등 모든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재현 나리의 부인이자 이 나라의 둘째 공주였다.
"공주마마, 제게 공주마마를 모실 기회를 주셔서 크나큰 영광이 옵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과 동시에 나는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둘째 공주는 그런 내 앞에서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어찌 이런 누추한 제 손을 잡으신다는 것입니까. 나는 둘째 공주의 눈조차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자 공주는 자기 눈을 쳐다보라며 내게 입을 열었다. 공주마마의 눈을 쳐다봄과 동시에공주마마의 올린 머리가 눈에 띄었다. 올린 머리를 쳐다보기보단 노랗디노란, 그래 노란색 비녀가 눈에 들어왔다. 내 시선이 비녀에 꽂힌 것을 알아챈 것인지. 공주마마의 손끝이 비녀로 향했다. 그러고선 내게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제 서방님이 골라주셨는데, 저랑 많이 안 어울리나요?"
"아닙니다. 언제나 다시 찾아오고, 다시 찾을 봄 같은 사람인 공주마마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어찌 입에 침 한번 안 바르고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것도 내 전 남자가 골라준 비녀를 하는 이에게 말이다. 말로는 다 잊었다. 생각하였지만, 아니었다. 궁 안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만만히 본 것이 또 이런 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저의 의녀가 되어주시다니,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 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지. 얼마나 가슴앓이를 할지, 벌써 눈에 훤히 보였다. 내 전 남자의 부인에게 아기 씨를 뿌리는 방법을 알려줘야만 한다니, 이것보다 생지옥이 있을까? 순간적으로 온몸에 흐르는 피가 멈춘 것만 같았다. 손끝도 얼굴도 온 곳이 하얗게 질렸고, 공주는 이런 내 안색을 보고선 괜찮냐며 안부를 물었다.
"너무 긴장하여 아침에 먹은 것이 얹힌 듯하옵니다. 하나 심한 것은 아니니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공주마마는 내 말에 조금 안심한 듯하였지만, 이내 다시 걱정되는 듯 내 뺨을 어루만지셨다. 그때 였다. 저 멀리서 재현 나리가 보였다. 나는 황급히 재현 나리에게 아니 공주마마의 부마에게 고개를 조아려 인사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둘째 공주가 재현 나리에게 자신의 의녀라며 날 소개했다. 재현 나리의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떨림이 여기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부마: 공주의 남편을 뜻 합니다.)
"서방님께서는 지금부터 자리를 비켜주셨으면 하는데, 어떠십니까?"
"아, 부인께서 여자들끼리 할 얘기라면 제가 빠지는 게 맞는 거겠죠. 좀 있다 다시 얘기합시다."
그렇게 공주마마께서는 온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재현 나리를 떼놓고선 내 손을 잡고 자신의 방 안으로 데리고 갔다. 아마 지금부터가 공주마마와 내 사이 진행될 이야기는 꽤 고통스럽겠구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공주마마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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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시준희 라고 하였고 고 왕국 시절에 꽤 잘나가던 집안 홀 딸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 여인이 어째 시답잖은 궁까지 들어온 것입니까?"
영호는 며칠 전부터 자신의 머릿속을 괴롭히던 우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지만, 어찌 그녀가 자신이 있는 궁에 버젓이 들어와, 자신의 동생의 의녀가 된다고 하니. 이것이 운명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일까. 그래서 영호는 자신의 신하에게 우미에 대한 과거를 알아 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지금 우미의 과거에 대해 조사를 마친 신하가 영호에게 우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전쟁 이후 부모님과 재산 모두를 잃은 듯 하옵니다. ...하나 약혼자가 있었다고 하옵니다."
"그렇다면 이미 혼인한 것이냐? 어찌 혼인한 이가 궁녀로 들어 올 수가 있느냐."
영호의 말에 신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입을 다셨다. 영호는 뭐길래 그렇게 뜸을 들이나며 자신의 신하에게 우미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러자 신하는 머리를 한 두 번 긁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약혼자라는 사람이.. 고 왕국 시절 정 장군의 아들, 정 재현이라고 하옵니다."
"정 장군의 아들이라.. 공주의 부마가 아니더냐?"
신하는 영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호는 신하의 끄덕임과 동시에 어이가 없단 듯 웃어 보였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것일까. 단순한 궁녀인 것도 아닌 자신의 전 약혼자 부인 의녀로 생활해야한다니. 영호의 생각으로는 절대 버틸 수 없는 일 있었다.
"이 일은 너와 나만이 아는 것이다. 절대 다른 이에게 말하지 말아라. 특히, 둘째 공주 귀에는 절대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영호는 자신의 신하에게 입단속을 시키고선 급하게 자신의 방 밖으로 나왔다. 지금 당장 우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를 이 궁전에서 구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자기뿐이라는 생각이 가득 찼다. 그렇게 영호는 자신의 방 문마저 제대로 닫지 못한 채 자신의 동생인 둘째 공주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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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공주와 단둘이 있는 공간이 그 무엇보다 어색하지만 이제 이런 공간마저도 자연스럽게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더 길러야만 했다. 공주는 내 앞에서 찻잔을 두어 번 만지작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아바마마를 정말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지금 수 왕국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그래서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공주마마의 소신 있는 발언에 두 눈을 공주마마에게 고정했다. 그러자 공주는 제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겠냐며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저의 이 마음을 한 번도 포기해본 적이 없지요. 그래서 아바마마가 시키신 무예, 무술, 사냥, 그리고 학업 무엇하나 군더더기 없이 잘해왔습니다. 그래서 아바마마도 저를 굉장히 많이 이뻐하셨지요.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아바마마가 제 아버지여서 저를 이뻐하시던 거지, 한 번도 왕으로서 저를 인정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과거 저와 제 오라버니 위에 언니가 있었습니다. 소문으로는 들어보셨지요?"
"첫째 공주께서는 병이 악화하셔서 단순히 누워있다고만 들어왔습니다…."
공주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자기에 담긴 차를 내 찻잔에 채워주더니 내게 들라고 권했다. 나는 공주가 준 찻잔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시며 다시 공주의 말에 집중했다.
"당신이 제 사람이라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저희 언니는 이미 그 소문이 나기 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단지 아바마마께서 왕으로서 언니를 왕위로 올리고 싶어하기도 하셨고, 아버지로서도 언니를 잃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궁 내 높은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이지요. 어찌 되었든 간에 그 뒤로 아버지께서는 왕위를 여자인 저에게 넘겨주시는 걸 원하시지 않아 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막내라 그런 것이라고도 생각되지만.."
"아, 그렇다면 왕자님께 넘기신 건가요?"
"그것도 아니옵니다. 저희 영호 오라버니께서는 왕의 자리를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의사를 아버지에게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왕의 자리를 넘기시지 않는다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머릿속에 재현 나리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놀란 두 눈으로 공주를 바라보자,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생각하신 분이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이입니다. 아바마마께서 저희 서방님을 그 전쟁통에서부터 눈여겨보고 계셨던 겁니다. 제 남편으로도, 자신을 뒤이을 사람으로도."
한순간에 찾아온 정적이었다. 공주가 왜 재현 나리와 혼인을 했는지도, 재현 나리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드렸는지도.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 공주께서 왜 그렇게 재현 나리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지도. 조금 틀어진 방향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이 정치에 개입할 유일한 기회가 될 테니까 말이다. 공주마마와 길어진 대화에 이미 차는 식었고, 그 어색하던 공간마저도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그렇다면, 우미 당신도 되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요?"
공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그러자 공주는 긴장하지 말라며 손을 잡아주고선 웃었다. 아, 내가 당신 남편의 부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데 당신은 이 기분을 알 수 있을까.
"..소인은 귀금속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옥 반지하며, 비녀 하며. 제가 가장 좋아하던 꽃무늬를 위에 입혀 가장 아름다운 귀금속 말입니다. 근데 기술도 없고 만들 재료도 부족하여서 하진 못했지만요."
그러자 공주는 내 이야기가 제 이야기인 냥 내 손을 더 꽉 잡더니 점점 흥분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닙니다. 제가 반드시 아바마마에게 잘 말하여 기술을 배우고 올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귀금속은 황 나라가 가장 아름답게 만들기로 유명하죠. 제가 꼭 유학을 하러 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정말 열정도 넘치고, 긍정적인 공주마마였다. 뒤이어 '크흠'하는 소리와 함께 공주마마와 나란히 앉아있던 방 안에 문이 열렸다. 훤칠한 키, 파란색으로 물들인 의상. 왕자였다.
"공주, 제 벗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네요. 혹여 얘기가 끝났다면 제가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공주마마는 자신의 오라버니와 내가 아직 벗인 줄 알고선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놔주었다. 왕자는 고맙다며 이내 내 손을 잡고선 날 이끌고 어딘가를 향해 걷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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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곳보다 궁궐이 크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될 정도에 먼 거리를 걷고 있는 도중이었다. 왕자와 나는 그대로 지나가던 재현 나리와 마주쳤다. 왕자와 재현 나리는 서로 가던길을 멈치더니 이내 서로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고선 그간 만나지 못한 것인지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묻더니 왕자가 바로 재현나리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부마분께서 어디 다녀오신 길이시길래, 이곳을 지나가 신 겁니까?"
"잠시 국왕 폐하께서 부르셔 다녀온 길 이옵니다. 그나저나 왕자님께선 그간 안 보이시더니 어디 다녀오신 것입니까?"
"최근 꽃에 관심이 가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니느라 통 얼굴을 비추지 못했습니다."
둘의 묘한 긴장감이었다. 재현 나리는 왕자의 말에 잠시 표정이 굳더니 다시 웃어 보였고 아까부터 왕자께선 인자한 미소만 띨 뿐이었다. 재현 나리는 나를 한번, 왕자를 한번 보더니,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선 다시 자기가 걸어가던 방향 쪽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공주마마에게 가는 것이겠지. 순간 머릿속에 공주마마와 재현 나리가 웃고 떠드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거참 지나간 인연에 대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어쩌자고 나도 이러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왕을 따라간 곳은 왕자의 처소도 서재도 아닌, 궁궐 뒤에 위치한 작은 연못이었다.
"제가 왜 이 시간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혹여 아까 얘기하신 꽃에 관해 물으시려는 것이면 송구하옵니다만, 소인은 식물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러자 왕자는 내 말에 웃으며 반응했다. 그러고선 작은 연못 위에 떠 있는 연꽃을 그윽이 쳐다보더니 다시 내 쪽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왕자가 지금 내게 이런 행동을 취하는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어림잡을 수가 없었다. 나를 자신의 동생인 공주마마의 의녀로서 알맞는지 시험해보는 것인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로 내가 자신의 벗이라 생각되어 친근함의 표시인 것 같기도 하였다.
"여기에 제가 요즘 관심 가는 꽃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맞혀보시겠습니까?"
"연못 위에 연꽃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왕자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오더니 허리를 숙여 내 눈과 눈높이를 맞추고선 웃었다. 불쑥 들어온 왕자의 행동에 놀라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내 이런 행동을 짐작한 것인지 왕자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자신이 한 질문에 답을 말해주었다.
"틀리셨습니다. 제가 관심 가는 꽃은 바로 우미, 아니 준희 당신입니다."
가슴 쪽에서 큰소리로 두근거렸다. 왕자가 어찌 내 이름을 아는 것인지. 아니, 것보다 어느 이유로 내게 관심을 갖는 건지. 나는 왕자가 바라보던 두 눈을 피했다. 그러자 왕자는 그런 뜻이 아니라며 다시 피하던 내 눈을 맞췄다. '정녕 나의 궁 생활은 한달도 버티지 못한 채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머릿 속에 최악의 상황까지 그려가며 이 순간을 피하고만 싶어졌다. 그러자 내 머릿 속을 항상 꿰뚫던 왕자는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정말 관심이 있어서 알아본 것뿐입니다. 그런데 꽤 당신이 곤란하겠더군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소인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저, 송구 하오지만 공주마마께서 저를 찾으실.."
지금이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하자 왕자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과거 미련을 과거로 묻지 못한 나 자신도 싫었지만 이렇게 과거를 들먹이며 협박하려는 왕자가 미웠다. 당신은 잃을게 없겠지만 내게 궁 생활을 잃으면 길거리에 나 앉는 거지 아니면 남의 집에서 눈치 보며 일하는 계집종이 되는 삶 밖에 남아있지 않는단 것을 모르는걸까. 최악의 상황만을 생각하니 눈 속에 눈물이 가득찼다. 전쟁 때 이후 어떻게 버텨왔는데 과거 재현 나리와의 인연 하나 때문에 내 삶이 무너져가는구나. 또.
"전부 들었습니다. 공주의 부마와 연모하던 사이었던 것도, 약혼자였던 것도.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그분하고 일말의 감정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을 나가라는 제안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정말입니다. 소인이 어찌 공주마마님의 것을 탐낸답니까."
혹여 왕자가 궁에서 사라지라는 제안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선 무릎을 꿇고 빌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향단아 그리고 어르신 저는 이제 어찌하며 좋은 겁니까.. 온갖 생각이 머릿 속을 떠다녔다. 그러나 내 말이 끝나고도 조용한 왕자의 반응에 눈을 떠 앞을 보니, 왕자도 나와 같이 무릎을 꿇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상상을 하시고 그러신지는 몰라도. 당신이 부마 옆에서 괴로워하지 말고 저의 옆에 있었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저의 제안은 공주만의 의녀가 아닌 저만의 의녀가 되십시오. 그래서 의학술도 익히시고 추후에 궁궐에서 나가 최소한의 삶을 살며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드리고 싶을 뿐 입니다."
그러고선 내게 다가와 말없이 나를 감싸 안았다. 혼란스러웠다 왕자분께서 어찌 저에게 이러는 것인지. 저같이 낮은 이에게 잘해주며 추후 내 자유까지 생각해주는건지. 지금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내가 멍한 눈빛으로 왕자를 바라보자 이내 왕자는 내 마음에 답하듯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관심 가는 꽃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 때 였다. 아무도 찾지 않던 연못 위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들어 오더니 연꽃잎 위에 올라앉았다. 그러고선 이내 연못 물을 마시고는 자신의 두 날개에 물기를 묻혀 연꽃 위에다가 물을 마구 뿌려댔다. 그리고 때는 7월, 예정보다 늦은 장마를 기다리는 수 왕국의 어느 뜨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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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잘 지내셨나요 독자님들? 2주 뒤에 온다 해놓고 2달 뒤에 온 작가, 내 틴트 색은 서영호입니다..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 성적에 치이고, 한 달간 기숙형 몰입식 생활을 하다가, 다음 한 달은 ,, 힐링하고 왔습니다. 그 2개월 동안 공지 하나 올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ㅜ, ㅜ 물론 제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한 분이라도 읽으신다면 공지 하나 올렸어야 하는데.. 앞으로는 무조건,, 공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번 화는 굉장히 써지지 않아 4번을 엎어 다섯 번째 쓴 글입니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와 가장 긴밀한 연결을 주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ㅜ,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