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꽃 1 : 毒 花
"내 이 꽃의 이름을 독 꽃이라고 짓겠다, 그래도 되겠느냐?"
"나리가 정 원하신다면, 그리하십시오."
"꼭 기다려주거라. 홀로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게 물론 힘들겠지만, 내 꼭 살아올 터이니 꼭 기다려주거라."
"걱정 마십시오. 눈 두어 번 깜빡하면 흘러가는 게 세월이라 하지 않습니까."
은은한 반딧불이들이 달 정중앙에서 춤을 추며 두 남녀를 환히 비추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가락에 근처 들에서 막 뜯은 이름 모를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끼어주었다. 여자는 남자가 지 손가락에 걸어준 꽃반지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해 새어 나온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여자의 손을 두어 번 어루만지던 남자의 손은 점점 위로 올라가 여자의 두 볼을 감싸 안았고, 그 뒤 여자는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쏟아지는 달빛 아래, 주위에 어슬렁거리던 반딧불이들 사이로 두 남녀는 입을 맞추었다.
"연모하고 또 연모한다, 준희야."
"제 마음도 같습니다, 나으리."
두 남녀는 입맞춤 끝에 서로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영원을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붙잡고 놔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점점 바람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고선 여자의 손을 꽉 잡은 채 수풀들 사이를 헤집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남자가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꽉 잡았다. 어느 정도 걸어왔을까 두 남녀를 애타게 찾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제서야 여자에게 먼저 가보라며 손을 놔주었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단 생각에 시선을 남자에게 두고 천천히 걸어갔다.
"앞에 보면서 걷거라, 넘어질라."
"조금만, 조금만 더 이렇게 보고 걷겠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어쩔 수 없단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오늘 이후로 언제 다시 남자를 볼 수 있을지 모를 두려운 마음에 남자를 쳐다봤고 끝내 눈물이 두 눈을 적실 때에야 고개를 돌려 걸었다. 남자는 여자가 황급히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돌리자 가슴이 아려왔다.
" 준희야, 딱 3년만 기다리거라."
남자의 말에 여자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년만 기다려주거라. 허나 3년이 지나도 내가 오지 않는다면, 그땐 나를 깨끗하게 잊거라. 내 소원이다."
남자의 돌아오는 말에 여자는 참을 수 없단 듯 남자에게 뛰어와 안겼다. 그러고선 남자의 가슴팍에 파묻혀 울부짖었다.
"싫습니다, 나으리.. 싫습니다, 재현 나으리. 꼭 돌아와서 저랑 혼인해주십시오."
남자는 품 속에 울고 있는 여자의 등을 하염없이 토닥여주었다.
"알겠다. 알겠으니 울지 말고 기다리거라."
남자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제서야 여자는 마지막으로 남자에게 입을 맞췄고, 부끄럽단 듯 아래쪽으로 뛰어갔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남녀는 서로에 대한 혼인을 기약하며 각자 다른 길로 걸어갔다. 정확히 이때가 지금에서 3년 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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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 언니, 무엇을 그리 물끄러미 쳐다보십니까?"
누가 나를 이리 부르나 해서 쳐다봤더니 향단이었다. 이 조그마한 아이가 나를 우미라고 부른 것은 정확히 8개월하고 보름 전이었다. 그리고 우리 고 왕국이 수 왕국에게 패하여 사라진지 8개월하고 보름 전이었다. 고 왕국의 왕족과 귀족들은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에 절반은 격리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수 왕국 사람들과 혼인을 하여 수 왕국에 몸을 바쳤다.
그리고 오늘이 수 왕국 둘째 공주의 결혼식이 있는 왕궁 내 두 번째로 가장 의미 있는 행사였다.
"우미 언니는 둘째 공주 얼굴을 보셨습니까? 얼굴이 아주 도자기처럼 반지르르하고 새하얬습니다."
"그랬느냐? 향단이 너라도 혼인식이 보고 싶으면 들어가서 보고 오너라."
이내 향단이는 혼자서는 들어가기 무섭다든지. 나를 홀로 두지 말라는 어르신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든지 하며 내 손을 붙잡고 같이 들어가자며 나를 꾀어냈다. 나는 그런 향단이를 말릴 셈도 없이 어린애 손에 이끌려 궁에 들어갔다.
"향단아, 이 손 놓고 가거라. 나는 이번 혼인식을 볼 생각이.."
"우미 언니, 저기 보십시오. 저 남자분이 이번에 둘째 공주랑 혼인하시는 분이신가 봅니다."
향단이 말에 이끌 리 듯 자연스레 눈이 남자에게 돌아갔고 그 남자도 알게 모르게 내 쪽을 쳐다본 거 같다. 그리고 단숨에 재현 나으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재현 나리를 보는 순간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살아있어 다행이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괘씸하다 였다. 재현 나리가 이번 전쟁을 패하면서 수 왕국의 사람으로 들어갈 정도는 이미 소문을 통해 익히 들어와서 놀라진 않았지만, 그게 왜 둘째 공주인지, 하필 오늘 혼인식인지.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뒤이어 식이 진행되어 둘째 공주가 혼인식에 발을 디뎠고, 더 이상 보고 있을 순 없단 생각에 향단이에게 뒷간에 가 볼 일을 보고 오겠다며 보고 있으라 말함과 동시에 최대한 식이 잘 안 보이는 곳으로, 식이 잘 안 들리는 곳을 찾아 궁 뒤로 더 멀리로 걸어갔다. 어느덧 궁의 북 쪽 대문까지 걸어온 것을 인지한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에 하늘도 내 심정을 대변하듯이 작은 빗줄기 한 방울씩 내려주었다. 그래, 이런 혼인식 날 여우비 정도 내려줘야 내 마음이 그나마 덜 불편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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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쥐가 나신 겁니까? 왜 주저앉아 계십니까."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조심스레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꽤나 큰 키에 단정하게 올린 머리는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저 바다 건너 넘어서 온 사람의 모습이었다. 황급히 궁 안 사람인 거라 생각해 빠르게 치마를 두 손으로 어루만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남자는 내게 손을 건넸다. 순간적으로 남자가 내밀던 손이 마치 3년 전 나으리 모습과 겹쳐 보여 나는 남자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남자는 내가 손을 잡지 아니하자 이내 민망한 듯 내밀은 손을 다른 손으로 어루만졌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민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닙니다. 방금 본 사이인데 어느 누가 손을 잡겠습니까. 제 실수입니다."
남자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내게 웃어 보였다. 나는 남자의 웃는 얼굴을 보자 다시 3년 전 재현 나으리 얼굴이 생각나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늘은 그제서야 내리던 여우비를 멈췄고 어느 정도 혼인식도 정리가 되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혼인식이 끝나면 백성들과 함께 다과를 즐기는 풍습이 있는 수 왕국의 문화가 생각나 황급히 향단이를 챙겨 궁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급히 궁 밖에 나가봐야 하여 이만."
"아! 제가 괜히 급한 사람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내게 미안한 듯 내게 빨리 가보라며 부추겼다. 나는 남자에게 고개 인사를 하고 급하게 혼인식을 하던 장소로 뛰어가려던 찰나. 남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혹시 이름 정도는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아.. 이름은 몇 년 전에 없어졌고, 지금은 '우 미'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아 아. 우미. 인연이 된다면 다음에 더 길게 얘기해보고 싶네요. 꼭."
남자의 마지막 말을 뒤로한 채 나는 혼인식을 하던 장소로 달려 향단이를 찾았다. '향단아 어디 있느냐?'란 말을 내뱉으며 이리저리 향단이를 찾았지만 이미 향단이는 다과를 나눠먹는 장소로 자리를 옮긴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끝내 가고 싶지도 않던 다과를 나눠먹는 뒤뜰로 장소를 옮기자 그제서야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향단이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향단이 팔을 빠르게 잡아 밖으로 나가자며 쏘아붙였다.
"우미 언니, 이것만 먹고 가요? 응?"
"궁에 쉽사리 들어올 수 없는 기회라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다음에. 다음엔 꼭 낮이 밤이 되도록 있게 된다면 그때까지 같이 있어줄게."
향단이 얼굴은 이미 시무룩 해져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단 듯 향단이 손을 잡아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어머, 이게 누구야? 준희 맞지?"
하필, 이럴 때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이 영감 네 딸과 마주쳤다. 이렇게 차고 넘치는 사람 중에 하필 이 아이를 만나다니 최악이었다.
"너도 혼인식 보러 온 거야? 하기야 과거 남자가 어떤 여자랑 결혼하는지 정도는 궁금하지."
이 영감 네 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 지 적어도 뒤쪽에 모여있던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내 쪽을 향해 쳐다봤다. 그제서야 몇 사람들은 놀란 눈을 하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맞네, 맞아.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시 씨네 딸, 시준희네!'
'아이고 안쓰러운 것, 시 씨 가문이 전쟁 땜에 딸 빼고 다 죽었더라면서?'
'왜 시 씨가 자기 딸내미 정 씨네 장남한테 시집갈 거라고 노래 부르고 다녀 사람들한테 떡도 돌렸었잖아~'
사람들은 나와 향단이, 그리고 이 영감 딸을 주위로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지더니 이내 뒤에서 내 과거를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준희 너, 그 어디야. 궁녀들 키우는 그곳에서 지낸다며 거기서 버틸만하니?"
이 영감 네 딸은 날 걱정하는 어조로 말을 했지만 표정은 지금 내 상황을 비꼬는 게 재미있단 듯 비웃고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는 또 어찌나 컸던 건지 앞에 있던 사람들과, 오늘 혼인식을 올린 두 사람 이목까지 끌기 충분했다. 내 옆에 있던 향단이는 뭔 상황인지는 몰라도 화가 난 것인지 이 영감 딸에게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물론 나도 향단이처럼 마음 같아선 머리칼을 쥐어뜯고 얼굴 한 대를 거세게 치고 싶었지만. 나는 준희가 아니고 우미이니깐. 신분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조아렸고 최대한 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를 기억해주신다는 건 크나큰 영광이옵니다만, 전 단지 궁내 사람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마음을 배우고 있는 중생 중 한 명이라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우미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영감님 댁 장녀님께서는 여전히 목소리가 새 같이 아름다워 온 세상 여기저기 들리는 거 같습니다. 근데 그거 아시나요? 고귀한 새일 수록 사람들이 못 찾게 울음소리를 더 적게, 그리고 더 낮게 낸다는 것을?"
"뭐? 너 지금 나 비꼬는 거니?"
"비꼬다니요. 전 단지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을 하나 말해준 것입니다. 혹시 아래 것이 가르치려 들라고 해서 기분이 상하신 것입니까? 그러시면 그 노를 풀어주십시오, 제가 아직 배우는 게 느려서 그랬습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 위로 큰 도포를 덮어주었고 낮게 읊조렸다.
"제 벗이 무례한 일을 저질른 것입니까?"
궁의 북 쪽에서 마주친 남자였다. 남자의 말과 동시에 이 영감 네 딸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선 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발길을 돌린 건 이 영감 네 딸뿐이 아니었다. 오늘 혼인식을 올린 둘째 공주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혹여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둘째 공주가 내게 다가와 물었을 때, 뒤따라 오던 재현 나리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 앞에서까지 고개를 떨구실 필요 없습니다. 사람에게 귀천이 어디 있습니까? 고개를 들어주세요."
".. 아 저는 괜찮습니다."
고개를 듦과 동시에 마주친 건 둘째 공주가 아닌 재현 나으리었다. 이렇게 사람이 비참할 수 있을까. 처량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향단이 쪽으로 돌려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으나 향단이가 아직 내 마음을 눈치채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듣자 하니 영호 오라버니 친구라고 하셨는데. 그럼 제 친구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밤 저희 끼리 소소한 연회가 준비되어 있으니 오시지요."
"아닙니다! 제가 오늘 할 일을 미처 다 하지 못하여서 들어가 봐야 합니다. 저희 어르신께서 불똥 같은 성격이라 시간을 조금이라도 어길 시에.."
"우미 언니도 참! 내가 대신해줄 테니깐 갔다 와요!"
옆에서 눈치 없는 향단이가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냐는 눈빛을 쏘아냈다. 그러자 말을 꺼내던 둘째 공주는 좋다는 듯 내 손을 잡더니 웃는다. 이내 옆에 서있던 나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그 정도까지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손께서 불편해하십니다."
부인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만일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저 단어의 주인은 내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눈물이 떨어질 거 같아 빠르게 고개를 숙이자,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겨지는 게 느껴져 쳐다보니 북 쪽에서 만난 그 남자였다.
"제 벗은 제가 데려가서 놀고 있을 테니. 공주는 좀 쉬다 내 방으로 놀러 오세요."
"하긴 저보단 오라버니의 벗이시니, 오라버니가 더 편하겠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좀 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알게 모르게 남자가 이끄는 곳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향단이는 올 때 조심하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방금 전 이 남자가 날 왜 도와준 건지 묻고 싶었다.
왜 도와줘서 굳이 벌리지 않아도 될 상황들을 벌려 놓은 건지, 왜 자꾸 재현 나리랑 나를 마주치게 하려는지, 그리고 친해지고 싶지 않은 둘째 공주와 연을 만드는 건지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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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안녕하세요. 내 틴트 색은 서영호입니다! 그냥 영호 시대극을 보고 싶어서 썼는데.. 어쩌다 보니 내용이 산으로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네요.. 제가 그리고 시대극을 쓰기엔 지식이 좀 많이,, 부족합니다.. (?) 수 왕국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국가라 의상 착의가 다양하다고 합시다..!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엔 더 재밌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ㅠ.ㅠ 읽어주셔서 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