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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님, 빵님, 아잉뿌잉님 ♡ |
그 어느 누구도 믿지 말았어야 했다.
어느 누구도.
사무실 한켠에 놓인 쇼파 위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지금 이순간 나의 터질 것 같은 머릿 속에는 온통 그 남자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고통스럽게 보낼 수 있을까.
이전까진 내 손으로 직접 떠나보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 남자 만큼은 기필코 내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직접 처리해야 한다.
"찬열아, 저러다가 머리부터 터지는 거 아니야?"
남자를 거꾸로 매단 채 물 한모금도 주지 않고 있다.
가만히 그 남자를 지켜보다 문득 남자의 조직원들이 생각났다.
"걔들은 잘 보고있어?"
"그럼, 일거수일투족 다 감시하고 있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었다.
"그 사람들이 너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알아?
너같은 쓰레기 새끼들은 더 고통스럽게 죽어야 해."
구석에 있던 공구상자를 펼쳐 한손에 들어오는 펜치를 들고 와 남자의 손톱 하나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뽑았다.
"으아아아악!!!!!"
"살려달란 말 한마디 아까워서 안하더니, 이게 그렇게 아픈가봐?"
보통 때려서 고문하는 터라, 처음보는 광경에 옆에 있던 조직원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엄살부리지마. 이제 시작이니까."
그 남자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을 표하는 남자의 손끝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매섭게 남자를 노려보다, 손톱 하나를 더 뽑았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소리치며 피를 흘렸다.
"이제 두개 뽑았어. 여덟개나 남았는데 목좀 아끼지?"
포효하는 남자를 뒤로 한 채 나와 차키를 챙겼다.
"어디 나갔나?"
집에 들어오니 고요한 정적이 나를 반겼다.
무겁게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코트를 벗어 가방과 함께 침대 위로 던졌다.
침대 모서리에 앉아 앞을 보니, 화장대 거울 속 초췌한 얼굴이 비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다니진 않았는데.
한숨을 쉬며 마른 세수를 했다.
철컥-.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이윽고 너의 모습이 보였다.
"어? 아저씨, 일찍 오셨네요?"
"아가 보고싶어서 빨리 왔지."
큰 쇼퍼백을 메고 한손에는 장을 봐왔는지 꽉찬 장바구니가 들려있다.
"반찬거리가 없어서 마트 좀 다녀왔어요. 부엌에 놓고 올게요."
어깨에 걸쳐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하는 너였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니,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지이잉-.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던 너의 핸드폰이 한번 운다.
저녁 준비로 바쁜 너에게 주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내용이 보였다.
-오늘.
저장된 번호가 아닌지, 발신인은 뜨지 않았다.
너의 깊은 사생활까지 들추고 싶지 않아 그대로 화장대에 두었다.
"아저씨, 어디 아파요? 죽 끓여줄까?"
먹는둥 마는둥 젓가락으로 애꿎은 밥알만 세고 있는 나를 보고 걱정스레 물어오는 너였다.
"어..? 아니. 괜찮아."
오늘... 오늘이 무슨 뜻일까.
아까 본 문자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발신인이 찍히지 않았으니, 잘못 보낸 것일까?
"아저씨, 요즘 많이 피곤해보여. 일 쉬엄쉬엄해요. 몸 상하겠어."
서재에 있는 나에게 주스를 건네며 웃는 너.
"안바쁘면 나가서 산책할래요?"
안그래도 숨좀 돌리고 싶던 차였다.
간단하게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늦은 시간인지라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만큼 한적했다.
고요한 산책로를 지나, 저멀리 놀이터가 보였다.
"아가, 저기서 좀만 쉬다갈까?"
"응, 그래요."
놀이터 입구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겨울밤이라 공기가 많이 찼지만, 너와 마주잡은 왼손은 따뜻했다.
"아저씨, 나 그네 타고 올게."
아이같이 뛰어가는 너의 뒷모습이 그저 사랑스러웠다.
신나게 발을 구르며 그네를 타는 너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것을 타려는지, 너는 그네에서 내려와 옆에 있는 미끄럼틀 뒤로 갔다.
어두워서 보이진 않았지만, 곧 너무계단을 쿵,쿵, 오를 너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몇분이 지났을까.
조용한 놀이터에 너의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가! 거기 있어?"
의자에서 일어나 너가 있는 곳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제발.
더이상 아무 일 없길 간절히 바랬던 나의 기도가 처참히 무너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