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여름에게.
W. 윈태현
〃 자, 계란. 〃
매섭게 노려보는 시선이 너무 따갑다.
〃 아, 이번 여름은 진짜 오질나게 덥네. 〃
〃 강승윤 ! 〃
남태현, 너랑 있어서 더 더운건가.
- 말복 -
헤어졌다고 말하는 태현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덤덤했다. 너네 죽고 못사는거 아니였어? 어쩌다가? 누가 먼저?
하고싶은 질문들은 너무나 많았지만, 갑작스레 입을 맞춰오는 태현에 내 몸은 석고상 마냥 굳어버렸다.
맞닿은 입술이 너무나 따뜻해서, 그 감촉이 너무나 푹신하게 감겨와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태현이 자연스럽게 내 목을 감싸왔다. 바라고 바라던 너인데, 너무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게 믿기지않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러다가 또 송민호를 찾으러가는건 아닐까. 태현아, 니가 그런 개같은 행동을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하니.
딴 생각을 하는 나를 알아챈건지 태현이 내 입술끝을 살짝 깨물었다. 미미한 아픔에 살짝 입을벌려 신음하자, 작게 벌린입틈새로 태현이 더욱 깊숙히 입을 맞쳐왔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끈적하게 젖어버린 내 등을 섬세하게 쓸어내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자극적이여서 인상을 찌푸리자, 태현이 집요하게 눈을 맞쳐오며 웃었다. 그리고 점점 가느다란 손가락이 밑으로 내려가고,
〃 …악 ! 〃
덥썩 중심을 만져오는 손에 놀라
〃아으,아파라 …〃
태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렸다.
〃 줘도 못먹냐, 병신아 ! 〃
그러게, 나는 병신이다. 태현아.
〃 야, 괜찮냐. 〃
꽤나 쎄게 친거같은데 어디 심하게 멍이라도 들진 않았을까 걱정도 되었고, 처음 건낸 말이 송민호 처럼 다정하지 못해서 태현이 나를 떠나갈까봐 겁도 났다. 고개를 푹숙이고선 미동도 없는 녀석에, 떨리는 손으로 턱끝을 매만져 들어올렸다. 눈물이 그렁거리는 두눈에 놀라기도 전에 높게 주먹을 들어올리는 태현의 손이 더 빨랐다. 남태현 손이 제법 맵다는걸 아는지라, 질끈 감은 눈이 곧 다가올 아픔을 걱정하듯 떨려왔다.
〃 뭐? 야, 괜찮냐? 아오 진짜 ! 〃
잔뜩 신경질적인 태현의 목소리에 번쩍 눈을뜨자, 여전히 주먹을 들어올리고선 날 노려보고 있었다.
〃 송민호였으면 얄짤없는데, 〃
〃 … 〃
〃 강승윤이여서 봐준다. 〃
뭐해, 나 입터졌어. 약발라줘.
어 … 그래.
좁아터진 집안에 약을 찾는건 금방이였다. 선풍기가 있는 자리에 태현일 앉히고서 나도 그 맞은편에 앉았다.
얌전하게도 눈을 내리깔은 하얀얼굴이 어느새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어서 더 묘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한 감정이 들기전에 얼른 손에 연고를 덜어냈다.
〃 아! 〃
〃 … 〃
〃 푸흐흐 ― 〃
〃 …? 〃
〃 흐흐, 으, 아파. 〃
〃 웃지마, 웃으니까 아프지. 〃
〃 아니, 승윤아. 〃
〃 어. 〃
〃 니가 아픈것처럼 인상쓰고있으니까, 그게 웃겨서. 〃
〃 … 〃
〃 강승윤. 솔직히 존나 미안한데, 사과할 타이밍 놓친거지? 〃
묵묵히 입가에 약만 바르고있자, 태현이 부담갈정도로 눈을 맞춰오길래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선 대충 빠르게 마무리를 했다.
〃 뽀뽀해주면 사과로 받아줄게. 〃
연고뚜껑을 닫던 손이 멈추고 어느새 눈을 감은 태현이 귀엽게도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앞으로 내밀고있었다.
아, 어떡하지. 존나 귀여운 새끼.
나는 연고뚜껑을 닫은뒤 여전히 눈을감고서 기다리는 태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진득한 연고때문에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었다.
〃 미안. 〃
난 사과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상황파악을 하던 태현이 버럭 화를냈다.
에이씨, 진짜 비싸게 구네!
등뒤로 쏟아지는 야유도 남태현이기에 듣기 좋았다.
* * *
〃 어, 어어? 이게 누구야 ! 태현아 ― 〃
〃 어이구. 단단히 취했네, 어디서 애교야. 〃
벌써 몇잔, 몇병째인지도 모를정도로 들어간 술에 정신을 반쯤 놓았을즈음, 흐리멍텅한 시야사이로 남태현이 보였다.
왜 혼자먹고난리냐며 신경질내는 얼굴이 헛것이 아니여서, 정말 남태현인게 좋아서 바보처럼 웃어보였다.
반쯤정도 비워진 잔에 다시 가득히 술을 따르자 그 잔을 태현이 뺏어가버렸다. 태현의 큰 손사이로 소주잔이 가려졌다.
〃 그만마셔, 술도 못마시는게. 〃
〃 왜에, 뺏지마. 태현아. 〃
〃 너 충분히 마셨어. 〃
〃 뺏지마, 뺏지마라. 〃
에이, 씨발.
애꿎게 눈만 아플정도로 닦아내자, 태현이 그 행동도 못하게 저지했다.
〃 승윤아, 무슨 일 있었어? 〃
반쯤 남은 이성은 태현에게 말하면 안된다고하는데, 몸은 벌써 오늘 있었던 일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 너 윤희가 송민호 만나는거 알고 있었어? 〃
〃 ‥ 어. 〃
그래서 너도 헤어진건가.
〃 오늘 송민호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냥, 언제부턴가 늘 그랬던것처럼 모르는척 지나가려는데.송민호 옆에 윤희가 있더라. 손을 꼭 잡고서는, 그걸보니까 갑자기 화를 주체할 수 없어서 빠르게 둘한테 걸어가서 너네 뭐하냐고 화를내니깐. 윤희가 그러더라. 〃
〃 ‥ 뭐라고 말했는데? 〃
〃 오빠는 목석같아서 지루했는데, 민호 오빠는 정말 자길 사랑해주는거 같다면서. 〃
오빠는 오빠같은 여자랑 연애를 해봐야 안다면서, 되려 화를 내더라.
거기서 병신같이 아무말 못하고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니까, 벌써 몇번째인지도 모르게 또, 송민호한테 패배감이 들더라.
〃 너 윤희 많이 좋아했니 ? 〃
내가 말을 마치자 되묻는 태현의 음성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 그래보여? 〃
〃 아닐거같았어. 〃
〃 왜? 〃
〃 넌 날 좋아하니까? 〃
〃 아, 진짜 뻔뻔해. 남태현. 〃
어느정도 술기운이 잦아들자 더 선명히 보이는 하얀얼굴에 충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 내가 윤희랑 사귄 계기가 뭔지 알아? 〃
〃 궁금하지 않아. 〃
〃 왜? 〃
〃 내가 너 좋아하니까. 〃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잘도 해내는 남태현의 입술을 아프지 않게 살짝 꼬집고선
〃 널 닮아서. 〃
〃 … 〃
〃 송민호에게서 널 가질 수 없으니깐, 널 닮은 윤희라도 사랑하고 싶어서. 〃
내 입술도 살짝 깨물었다.
처음으로 내 감정을 드러낸것에 태현이 충격이라도 먹은건지 멍하니 테이블만 바라보더니 자기손에 쥐여진 소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내가 말릴틈도없이 소주병나발을 입에 들이부었다.
〃 야! 미쳤어? 〃
미처 입으로 들어가지 못한 술이 턱을 타고흘러내리는걸 닦아내던 태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 으흐 ― 〃
〃 … 〃
〃 강승윤이 너무 멋있어서, 맨 정신으로 있기엔 너무 떨려서. 〃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는 남태현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사랑스러웠다.
〃 남태현. 〃
눈가까지 발갛게 물든 태현이 언제 끝날지 모를 이 더위조차 잊게 만들정도로 예뻐보여서.
〃나랑 잘래? 〃
* * *
〃 아, 몰라. 어떡해 ! 〃
나 오늘 중요한 면접있는데, 어떡하냐구우 ― !
〃 니가 존나 예뻐서 그래. 내 잘못이 아니지. 〃
아주 이제는 나보다 더 뻔뻔해, 강승윤.
〃 여름이여서 가릴 수도 없잖아. 〃
목부터 쇄골까지 울긋불긋한 자국들이 전날밤의 정사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려주듯이 놓아져있었다.
예전에 화장품을 사면서 받은 비비크림샘플을 키스마크위로 대충 바르고선 쌜죽하게 승윤을 쳐다보자, 아이처럼 웃어보이는 그 얼굴이 영 밉지않아서 한숨을 셨다.
어느덧 영영 끝나지 않을거 같던 이 여름이 끝을 달리고 있었다. 비교적 많이 덥지 않을 날씨에 얼마전에 둘이 돈을 모아서 마련한 새 선풍기의 모터가 매끈한 소릴내며 시원하게 바람을 일으켰다. 그 근처에 팔자좋게 누워있자 어느새 참외를 예쁘게도 깎아온 승윤이 먹으라며 한 조각 건내주었다. 일어나기 귀찮아, 먹여줘. 하고 투정부리듯 말하자, 아씨,존나 귀엽네. 라고 대답하는 참 강승윤다운 말투에 비죽거리며 웃음이 났다. 어미새의 먹이를 기다리듯 입을 벌리고 있는데 입안으로 들어온건 참외와 승윤의 입술이였다. 달콤한 참외즙과 승윤의 혀가 얽혀서 입안으로 들어왔다.어느새 참외조각은 이미 입안에서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진득하게 키스해오는 승윤의 뒷통수를 모른척 감싸안았다. 정식으로 사귀게 된 이후로 승윤은 틈만나면 스킨십을 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참은게 너무 오래된지라, 쉴 틈 없는 그 스킨십도 힘들기보다는 너무 행복해서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얼마전에 민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잠시 마트를 갔다온다던 승윤이를 지켜보기위해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서서 전활 받았다.
잘 지내냐고 묻던 민호가 윤희와 헤어졌다고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일도 있었냐며 감정없이 위로해주었다. 나와 다시 시작하길 바랬던건지 민호가 앞으로 바람같은건 안피겠다며, 내가 너의 소중함을 잠깐 미쳐버려서 잊어버린거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말에 대답않고 작게 웃었다. 베란다 난간에 서있는 날 본건지 보도블럭에서 위험하다며 기대어있지말라고 짐짓 화난표정으로 소리치는 승윤이에게 알겠다며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손을 흔들어주었다. 태현아, 하고 들려오는 휴대폰속 목소리에 베란다에서 방으로 들어와서 그냥 지나치려던 협탁근처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지금보니까 촌스럽기짝이없는 액자속엔 얼마전에 승윤이와 함께 처음으로 찍은 스티커사진이 넣어져있었다. 이런건 처음이라며 낯부끄러워하던 승윤이는 스티커사진기 대신 내얼굴을 보고선 사진을 찍었다. 바보같아, 강승윤.
태현아, 하고 한번 더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그때서야 나는 있잖아, 민호야. 하고 대답했다.
민호야, 나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게 사랑하던 고등학생때의 그 여름, 그 청춘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그 순간은 아무런 왜곡없이 너무 빛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어.
수화기 너머로 민호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힘든 사회속에 지쳐 고등학생때만큼 순수하지 못한 20대의 지금, 이 여름 내가 승윤이와 사랑하고 있는 지금이 내게 가장 찬란한 청춘이야, 민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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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