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 나는 1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내가 탄 엘리베이터는 7층에서 멈춘다. 그리고 그 애가 탄다.
1층까지 함께 내려가는 짧은 시간이 어색하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나서는 걸 보면 얘도 고3인가, 싶다. 김동혁, 명찰에 반듯한 글씨체로 그 애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그 애의 모습을 관찰한다.
하나하나 자리에 꼭 붙어있는 교복 단추부터 걷는 걸음걸이까지 깨끗하고 반듯한 느낌이라 계속 시선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파트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 애의 모습을 잊듯, 그 애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그조차도 나를 신경쓰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하복을 입었다는 점을 빼면 그날도 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같은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탔고, 역시나 7층에서 그 애가 탔다. 잠깐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1층에 다다랐을 때 웬일인지 그 애는 내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뒤에 서 있던 내가 눈치를 보다 그 애를 앞질러 먼저 내렸고, 여전히 미동이 없는 그 애가 걱정이 돼서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자,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고 그 애가 나를 보며 입모양으로 얘기하는 게 보였다.
‘예쁘다.’
그 애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마주친 눈 때문에 달아오르는 얼굴이 부끄러워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뒤늦게 그 애가 한 말을 곱씹으며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내리쬐는 햇빛 탓인지 네 탓인지, 자꾸만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갔다. 보통은 아침에만 마주치지만, 오늘은 집에 들어가는 길에도 그 애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치 내 맘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놀이터 입구의 벤치에 앉아있는 네가 보였다.
“ 안녕. ”
“ 아, 안녕.. ”
“ 저기, 아침엔 미안해. 당황시킬 생각은 없었는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벌써 말하고 있더라. ”
말을 마치고 빨개진 니 얼굴을 보자 작게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 예뻐. 이 말을 참을 수 없을 만큼. ”
그 날 이후로, 누가 먼저 사귀자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동혁이는 내 환상 속에만 존재했을 때보다 더 깨끗하고 다정한 애였다. 어떤 단어들로 동혁이를 표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만큼, 동혁이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었다. 세상에 있는 단어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른 학교를 다니는 탓에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그나마 연락도 자주 하기가 힘들었다. 동혁이는 모범생이었고, 우등생이었다. 나는 공부에 재능은 없었지만, 동혁이에게 철없는 여자친구로 보이고 싶진 않아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많이 욕심내지 않았다. 아침에 잠깐 동혁이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걸로 충분했다. 때로는 동혁이의 웃는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곤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의 수험생 생활도 끝이 났다. 수능이 끝나고, 놀이터 앞에서 보자는 너의 연락이 시험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반갑게 느껴졌다.
“ 동혁아! 많이 기다렸어? ”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헝크러뜨리는 동혁이의 손이 오늘따라 따뜻하게 느껴진다. 동혁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다른 팔로 나를 당겨 안는다. 잠시, 내 심장에 전해 오는 너의 심장 박동이 느껴져 눈을 감았다.
동혁이는 잠시 몸을 떼고 나를 보다, 내 이마에 입을 맞춰온다.
“ 그동안, ”
이번에는 내 눈꺼풀 위로 너의 입술이 닿는다.
“ 얼마나 ”
이번에는 코.
“ 참았는지 알아? ”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동혁이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포개져 온다.
짧게 입을 맞추고는 다시 말을 잇는 너.
“ 그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주고 싶었어. 니가 날 보면서 웃어줄 때마다 입맞추고 싶었어. 근데 못 그러겠더라. 눈만 마주쳐도 설레는데, 하루 종일 니 생각만 하는데. 너를 안아버리고 나면, 너한테 입맞추고 나면 난 진짜 너를.. 너무, 사랑해버리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 ”
“ ..근데 너 방금 나 안았잖아. 그리고... ”
“ 그래서 지금 더 사랑해. ”
말을 마치고 빙긋 웃더니 다시 나를 품에 안으면서 동혁이가 물어온다.
“ 근데 너 그거 알아? ”
“ 뭐? ”
“ 우리 학교, 너네 학교보다 등교시간 20분 늦어. ”
“ 몰랐어. 근데 그게 왜? ”
“ 바보야, 너 보려고 매일 일찍 일어났어. ”
아, 난 왜 몰랐을까. 동혁이는 매일 아침 그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거였다.
“ 나 어쩌다 평소보다 일찍 나왔던 날, 너 처음 봤거든. 널 또 볼 수 있을까 해서 다음날도 그 시간에 나왔는데 니가 있더라고. 매일 그 시간에 등교하나보다 했어. 진짜 피곤해도 너 생각하면 더 잘수가 없더라. 우리학교 하교도 늦은데, 밤에 보는 넌 어떨까 궁금해서 하루는 야자 때 일찍 도망쳐 나왔어. 근데 해가 없어도 반짝여 보이더라 니가. 그 때부터 매일 니 손을 잡는 상상을 했어. ”
나를 안은 채 말하는 동혁이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처음 설레임을 기억이라도 하는 것처럼. 언제나, 언제까지나 너를 설레게 하는 유일한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 동혁아, 나 너 사랑하게 될 것 같아. 많이. ”
“ 나는, 너 이미 사랑해. 많이. ”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너는 줄곧 내 옆을 지켜줬다. 계절이 스무 번 더 바뀌더라도 니가 내 옆에 있어줬으면.
시험은 끝이 났고, 우리를 기다리는 학교는 이제 없지만 나는 오늘도 엘리베이터를 탄다.
+) 적절한 짤을 찾고싶었는데 이 짤이 너무 예뻐서 그냥 넣었습니다ㅠㅠ
웃는 동혁이가 너무 예뻐서 확인 버튼을 못누르겠네요
본격 자기글에서 자기가 못나가는 못난 작가;
이번 글은 쓰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동혁이의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구요ㅠㅠ
제 필력으로는 예쁜 동혁이 모습을 담아내기가..어려웠습니다..
처음에 글을 쓸 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계절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네요
다음 글을 마지막으로 계절 단편은 끝낼 생각이에요
그 다음은..저도 모르겠어요..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굿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