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네가 행복해지면 세상은 멸망하지 않을 거야.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곳에서도 꽃이 핀다는 것을 네가 보여준다면.
아침 6시.
몸이 무겁다. 울다 잠든 탓인지, 머리가 띵하다.
평소와 같이 아침 대신 냉수 한 컵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따라 내려가 몸을 도는 게 느껴진다.
운 없게도, 오늘도 살아있구나.
학교를 나갈 준비를 하면서 나는 좀처럼 거울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원래도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최근 들어 살이 더 빠진 듯하다.
상관없다. 아사라도 좋으니 죽기라도 했으면 싶다.
정해진 등교시간보다 30분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해 책상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불길한 애. 나는 그런 애였다.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나를 피해 다녔다.
그래도 나는 가식을 떠는 어른들보단 솔직한 애들이 나아보였다.
매일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나의 세상은 깜깜한 밤이 되었고, 그곳에서 나는 제일 덜 외로웠다.
드르륵-
“ 일찍 왔네? ”
나는 순간 멍해져서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내일부터는 10분 더 일찍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나왔다.
“ 빨리 와서 앉아. 잘됐다, 나 심심했는데. ”
“ 너랑 놀아줄 생각 없으니까 말시키지 마. ”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그 애 옆에 앉았다.
넌 뭔데 늘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애처럼, 말도 안 되는 일에 질투가 난다.
“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 없으니까 말시키지 마. 내 말 못 들었어? ”
“ 들었지. 들었는데 이유는 말해줘야 될 거 아니야. 난 너 오기만 기다렸는데. ”
“ 기다려달라고 한 적 없잖아. 피곤하니까 나 좀 내버려 둬. ”
“ ....넌 나 기억 못하는구나? 그래, 내버려 둘테니 자라, 자. ”
기억을 못하긴. 어제 이름을 듣는 순간 알았는걸.
무관심한 아빠 대신 내 뒷바라지를 해 주던 가정부 아주머니들 중 한 분의 아들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지만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원이네 엄마는 김지원이 나랑 놀고 싶다고 보챌 때 마다 ‘ 아가씨는 바쁘셔. 지원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으시대. ’ 라며 달래곤 했다.
나는 엄마가 있는 니가 부러웠다.
한낱 어린 아이인 나에게 말을 높이고 고개를 숙이던 너의 어머니가 나는 부러웠다.
나에게 없는 걸 가진 니가, 나보다 불행해야 할 너의 행복이 나에겐 고통이었다.
그래서였다. 태어나 처음 아빠에게 한 부탁이었다. 너를 보고 싶지 않았다.
너를 향해 웃는 아주머니의 모습도. 아빠는 내 부탁을 들어줬다.
그 뒤로 아주머니와 너를 볼 일은 없었다.
넌 모르겠지. 왜 하루아침에 너의 사랑하는 엄마가 직장을 잃고 길바닥으로 내몰렸는지.
나 때문이야. 나는 너랑 말을 섞을 자격도 없어.
나는 네가 불행하길 바랐어. 너의 불행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 넌 애가 변하지도 않았냐. 그 때도 한 번 웃어주질 않더니. 얼음공주네, 얼음공주. ”
방해 안하겠다더니 수업이 시작한 후에도 계속 내 쪽을 보며 툴툴거린다.
깜깜한 내 세상, 어두운 나의 밤에 자꾸 균열이 생긴다. 진짜 성가셔.
“ 공주야, 점심시간이래. 밥 먹으러 가자. ”
“ 너 미쳤어? ”
“ 왜, 우리 엄마가 너 맨날 공주님, 아가씨, 이러고 불렀는데. ”
능청스럽게 웃는 니 얼굴을 보자 내 안의 수치심이 소리치는 게 들린다.
웃기는 소리, 이 껍데기 안에 얼마나 역겨운 감정들이 들어차 있는 줄이나 알아?
“ 그렇게 부르지 마. 난 공주도 뭣도 아니니까. ”
말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김지원이 내 팔목을 잡는다. 내내 웃던 얼굴이 사뭇 굳어있다.
“ 넌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
“ 손 놔. 듣기 싫으면 니가 말을 안 걸면 되겠네. 제발 멍청한 짓 말고 나 좀 내버려 둬. ”
김지원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아이들이 없는 건물의 화장실이 휑했다.
문을 잠그고 벽에 기대어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다가오지 말라고 가시를 세웠다. 너는 가시가 있는 걸 알면서도 맨손으로 나를 잡았다.
어린 날의 내가 역겨워 눈물이 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기에 그 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그저 그 애의 까만 눈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까만 눈동자 안에 작은 우주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 애를 아가씨, 공주님, 하고 불렀다.
정말로 그 애는 공주 같았다.
왕자가 구해주기 전까지는, 누군가 사랑해주기 전까지는 모든 불행을 홀로 짊어지는 슬픈 동화 속 공주.
그리고 나는 너의 왕자님이 되고 싶었다.
어느 날 너와 조각이나마 공유했던 나의 세상이 사라졌다.
엄마와 나는 새 집을 얻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방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로 작았다.
좁고 추운 방에서 엄마를 껴안고 잠을 청하면서도 너의 생각을 했다.
따뜻한 방에 누워있을 너의 세상이 나의 세상보다 훨씬 더 춥다는 걸 알았다.
이사 온 첫날, 엄마는 나를 껴안고 말했다.
‘ 지원아.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러니 누구도 원망하지 마렴. ’
그 애가 자기 아빠에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원이네 엄마가 싫어요.’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와 나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겨우 방을 찾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난 널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일 외로울 니가 걱정이 됐다.
널 우연히 학교에서 다시 만났을 때, 너는 여전히 공주처럼 예뻤지만 속이 비어있는 껍데기 같았다.
우주를 담고 있던 눈은 빛나지 않았다. 피부는 창백했고, 작은 몸은 많이 야위었다.
말을 걸어도 차갑게 대꾸하는 너인데 나는 도통 밉지가 않았다.
네 목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넌 모르겠지.
예쁜 목소리로 날이 선 말들을 뱉아내는 네가 안타까워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너는 부서져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는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울지 마. 내가 사랑해줄게. 내가 웃게 해줄게.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주말은 다들 잘 보내셨나용
글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많이 어둡지만 음울하게만 끌고가지는 않을테니 참고 기다려주세요ㅠㅠ
지금 제 컴퓨터는 브금이 재생이 안되는데 독자님들 컴퓨터로는 들리는지 모르겠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늘 봐주시는 독자님들 고마워요!
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