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다가도 감히 말하지 못할,
아이돌인 그 애 이야기.
#09. 마지막인 줄 알고 아쉬워 한 시간들이 부질없어지더라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동안의 꿈에 조승연이 나왔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본게 전부였지만, 그 눈빛이 첫만남에서 느꼈던, 친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경계하던 눈빛 그대로였다.
꿈에서 깨면 늘 잠시 멍했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그 날 느낀 초라함이 잠시나마 몰려왔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 두번째 촬영 주가 시작됐다.
나는 새로운 팀을 맡아 진행했고, 맘 정리가 많이 된건지 그다지 아무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안녕하세요오.."
"네에"
이 팀은 정말 꿀이었다. 연습도 길게 할 수 없는 제일 어린 막내들이었고, 갓 들어온 새내기들이라 길게 할 연습 자체도 없었다.
이 곳이야말로 리얼 유치원같았다. 합숙도 하지 않는다.
연습생보다도 그저 중학교 생활이 더 주인 아이들이기에, 각자의 집까지 찍을 이유는 없었다.
나도 호텔 생활이나 밤샘은 커녕, 집으로 출퇴근을 했다.
아이들에게 엄하게 할 필요성도 못느꼈다.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적었고, 무려 초등학생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머리를 굴린다거나, 분량 욕심에 영악하게 행동할만한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지를 한다 해도 무슨 말들인지 모를 가능성이 컸기도 하고...하하.
[작가님 이제 우리팀 아님?ㅠㅠ]
그동안 같이 하고, 그래도 제일 친한 피디님에게 연락이 왔다.
안그래도 그 쪽 팀 궁금하던 차였는데.
-피디님이랑 같이 못하는게 제일 별로야... 저 없어서 승아언니 완전 신났죠?
[메인 작가님 눈치 보느라 그건 아닌 듯.]
-나랑 바뀌는 사람이 메인 언니일 줄은 몰랐을거다. 흥.
[ㅋㅋㅋㅋㅋㅋㅋ]
다만, 그냥 궁금한게 있었다.
절대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기에, 썼다 지울 용기도 나지 않았지만.
[애들도 승아작가님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구만.]
-그래요?
[특히 옹성우 ㅋㅋㅋㅋㅋㅋㅋㅋ]
피식, 순간 웃음이 터졌다.
-어떤데요?ㅋㅋㅋ
[말 시켜도 들은척도 안하고, 오늘 아침엔 남자애들만 있는 방인데 너무 들어오는거 아니냐몈ㅋㅋㅋㅋ뼈 때림]
-오..ㅋㅋㅋㅋ역시 남다르네
[그 덕에 승아작가님 지금 쩔쩔매면서 메인작가님 눈치 엄청 본다구요 ㅋㅋㅋ 옹성우 입만 열면 핵폭탄급임]
조승연은요?
보내기를 누르려다가 지웠다.
뭐야, 지금. 고작 그 며칠 보고. 심지어 날 미워할 수도 있는 애가 날 찾아주길 바라기라도 하는 거야 뭐야.
진짜 나 이렇게 웃기는 애였나. 푸.....
-
많이들 예상했겠지만, 이 시기의 내 기록은 별게 없다.
조승연과 옹성우에 대해서도, 한참 후에야 그 전 기억들 되새기며 조금 조금 써놓은 것들이었고,
이게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들로 남으리란건 한참 후에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달아, 내일 촬영 하루 승아랑 바꿀거야~]
저녁 8시인데도 나는 퇴근 후의 집이었다.
오히려 이틀 지내보니 너무너무 편해서 이 팀으로 쭉 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정도였는데, 메인언니한테 카톡이 왔다.
-언니, 저 결정했어요. 이 팀이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안돼, 늦었어]
-ㅠㅠ
[아니 일단 내일 하루 보고.]
-넹..
[너네팀 끝난지 좀 됐지? 일찍 자고 내일 아침 선발조로 숙소 가 있어~ 몇시인지는 너가 더 잘 알지?]
-ㅎㅎ언니는 아직 멀으셨죠...?
[잘아네^^ 낼 보자.]
-고생하세용..ㅠㅠ
아이 참.....
아직 확정은 아니라지만, 다시 갈 줄 알았으면 그동안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고 감정소모 했던게 창피해지네.
더불어 이 꿀아가팀을 벗어나 극한메인팀으로 다시 갈 생각을 하니 아쉽고.
어후...... 아쉬운데.
아쉬운데 나는 웃고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방금까지 까먹던 과자를 접었다. 너무 먹었네. 에휴, 참^^
근데 왜 내일 하루를 보신다는 거지? 뭘 보신다는걸까.
아무튼 낼 6시에 일어나려면 빨리 자야겠다^^
-
어제 언니에게 호출 받은게 저녁 8시.
그리고 지금은 아침 8시의 숙소 앞. 12시간여만에 후회 중이다. 어젠 왜 웃음이 났던거지... 아우 피곤해....
12시에만 자도 6시간은 잘수 있다 하고 누웠는데, 생활하던게 있다보니 새벽 4시에 겨우 잠들었다.
아우 2시간 잤어......
그나마 세팅 다 되어있는 3일째라서 망정이지, 첫 날이었으면 세팅 시간때문에 집에서 4시에 나왔어야했다.
흐아아암, 피곤해....
어제는 자려고 누워서, 이들이 날 반가워할거라곤 생각은 않지만, 적어도 눈짓으로 아는척은 해주려나 싶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애들 반응이 어떨지 겁나거나 의기소침은 커녕. 그저 피곤했다.
[똑똑-]
애들은 자고있을 것 같아 작게 노크를 했다.
이미 피디님에게 연락을 해둔 터라, 곧바로 문이 조용히 열렸다.
"...."
피곤한 얼굴로 고갤 들자, 열흘만에 보는..... 옹성우가 여기서 왜 나와?
"어...작가님?"
나만큼이나 피곤한 얼굴로 눈을 비비며 그런다.
"아~못보는 줄 알았네."
하고 씩- 웃는다.
"잘 지냈죠?"
"그럼요."
나도 못참고 웃으며 반가운 티를 한껏 냈다.
고마워. 반가워해줘서.
-
우연의 일치인지, 넓은 집도 아닌데 연습실로 이동할 때까지 조승연을 한 번도 못마주쳤다.
신기할 정도로 엇갈렸다.
일단 막내를 두고 내가 먼저 연습실로 이동했다.
"언니, 오셨어요?"
"어~ 아우, 피곤하다 이 팀."
"이번주는 평가 없는데도 빡빡했어요?"
"응, 연습생 생활이 좀 된 애들이라 그런지 욕심이 더 많은가봐."
메인 언니랑 연습실 앞에 서서 잠시 얘기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차가 서는게 보였다.
애들이 도착했나보다.
조승연이랑 마주치는게, 언니랑 있는 지금은 아니어야 될 것 같았다.
조금 티나게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등만 보고 알아볼 것 같진 않았고, 나와 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눈치없이 말을 걸진 않았던 조승연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
"애들 오나본데?"
"아아, 도, 도착했나보네요."
"피디님들은 아직 도착안했나 봐, 촬영은 안하네."
"그래요?하하. 저희 오,올라갈까요?"
누가봐도 어색했다. 다행히 언니는 애들이 인사를 한건지 '네~' 하며 저 쪽을 보고 있어서 날 신경쓰진 않았다.
할 일도 없겠지만, 난 평생 연기는 못하겠다. 이렇게 등 돌리는 것 조차 혼자 어색해서 몸둘바를 몰라서야....
그 때, 누군가 내 등을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깜짝 놀라서 돌아볼 생각도 못한 채 그대로 얼자,
"작가님~! 오셨네요?"
잠긴 목소리가 나아서 그런가. 거의 처음 듣는 듯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반가운 티를 한껏 내는.
활짝 웃는 얼굴의 조승연 얼굴이 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활짝 웃는 얼굴을 제대로 쳐다도 못보고, 그저 메인 언니에게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늘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내 심장을 떨어트리는 조승연에, 불안한 와중에도 솔직한 심장은 콩콩 뛰고 있었고,
조승연은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 그대로, 연습실로 올라갔다.
"푸..."
어쩔 줄 모르겠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나와 마주한 언니의 놀란 듯 한 얼굴이, 이내 바람빠지는 소릴 내며 웃는다.
"승아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 야."
"......."
"애들이 널 좋아해서 질투하느라 바빴구나, 걔?"
"어우, 절 좋아하긴요..!!! 전 맨날 혼내기 바빴는데요...."
저렇게 인사한 적도 없는 애가, 왜 하필 언니 앞에서.... 어후...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저 정도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애들도 다 알아. 연습생이라는 게 얼마나 눈치가 중요한데."
"......?"
"진짜 자기들을 위해서 그러는건지, 아닌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알았을까요, 제 마음을.
"달아, 그거 알아?"
"...네?"
"조승연은, 승아가 싫다고는 안했어."
"......"
"그냥, 계속 너를 찾았어."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피디님한테 차마 쓰지도 못했던 질문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그 궁금증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달이가 엄청 잘해줬나보네? 하니까, 쟤가 그러더라."
"......"
"그 작가님은 그냥 계셨어요."
"......"
"아무 말도 안거시고, 대답도 잘 안하시고, 그냥 잘했으면 좋겠다는 눈빛으로 지켜만 보셨어요. 라고."
"........."
"달이 너, 잘 했더라."
결국 나는, 언니 앞에서 창피하게도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왜 자꾸 내가 조승연을 찾게 되는건지, 왜 이렇게 마음의 의지가 되는지를 겨우 깨달았다.
그 아이는 내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내 마음이 알았나보다.